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39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396화(396/1120)
396화 가족 (2)
“이제 더 여기까지 오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강혁은 매주 한 타임 열리는 외래에 찾아온 환자에게 함박웃음을 지어 가며 말했다.
환자는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얼핏 봐서는 어디를 다쳤었는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만큼 건강해 보였다.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그러니까 그의 배 부분을 들여다보면 결코 상세가 가볍지만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배에는 긴 흉터가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그렇게 규칙적이지 않았다.
사방으로 얽혀 있는 데다가 화상이라도 입었던 것인지 부풀어 오른 곳도 있었다.
“근데, 아직도 군인이에요? 제대 안 하나?”
“아……. 전 후유 장애가 없어서요.”
“다행인 거죠?”
“그럼요. 몸 성히 복무하는 게……. 다처서 제대하는 것보다는 낫죠.”
환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허 웃었다.
약간의 씁쓸함이 묻어나는 미소였는데, 아마도 전우들이 떠올라서일 터였다.
불행히도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또 몇 명은 후유 장애가 남아 제대해야만 했으니까.
그에 비하면 운이 좋은 셈이었다.
“그래……. 그렇죠. 그럼 다음부터는 보지 맙시다.”
“네, 교수님. 감사했습니다!”
“네.”
강혁 또한 같은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기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환자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넬 때만큼은 재차 환히 웃었다.
환자도 마지막 인사는 더없이 환한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끼이익.
그리곤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진료실 안엔 강혁과 그의 외래를 돕는 직원만이 남게 되었다.
직원은 강혁이 아침에 사다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강혁을 돌아보았다.
“교수님, 오늘 외래 환자 모두 보셨어요. 그래도 오늘은 응급 환자가 없어서…….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정말로 다행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강혁이 외래 보다가 출동하거나 응급실로 뛰어가는 일이 일상다반사였으니까.
진지하게 세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제대로 끝난 날과 그렇지 못한 날이 거의 반반 될 것 같았다.
“그렇네. 커피는 좀 어때? 아침에 직접 내렸는데.”
“맛이 좋은데요? 언제 이럴 시간이 있으신 거예요?”
“사소한 취미지.”
강혁은 역시나 그의 손에도 들려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다 못해 차갑게 변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과 향이 살아 있었다.
정말 좋은 원두로 정성껏 내렸다는 뜻이었다.
“교수님은 진짜 못 하는 게 없는 거 같아요.”
직원은 사실 그렇게까지 커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커피가 맛있는 커피란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정말 맛있는 커피란 뜻일 터였다.
원래 사람들은 좋은 건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법이었으니까.
“찾아보면 많은데, 못하는 건 안 해서 그래.”
“뭐가 있는데요?”
“사실 아직 안 찾아봤어.”
“와…….”
직원은 역시나 백강혁은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이란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일견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기는 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완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긴 했으니까.
절대로 쉬지도 않고 환자만 보는데, 그 실력은 세계 최고인 데다가 제자들끼리 잘 키워 내고 있지 않은가.
‘외모도 뭐…….’
맨날 푸른 수술복에 가운만 걸치고 다니는데도 어지간한 연예인들보다 멋있어 보일 지경이었다.
“아무튼, 오늘도 고생 많았어.”
“교수님은 어디로 가세요?”
“응급실 가야지. 아마 재원이가 알아서 보고 있었을 거야. 환자가 없었을 리는 없어.”
“하긴……. 아마 그랬겠죠?”
“당연하지. 밥 맛있게 먹어.”
“네. 교수님도 좀 제대로 챙겨 드세요.”
“고맙다.”
강혁은 그렇게 말하곤 방을 나섰다.
텀블러에 든 커피를 홀짝이면서였는데, 그 뒷모습이 어쩐지 조금은 지쳐 보였다.
‘제대로 먹을 리가 없지.’
직원은 적어도 여기서 강혁과 함께 일한 지난 2년 동안 강혁이 단 한 번이라도 직원 식당에 가서 점심 먹는 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늘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응급실로 달려갈 따름이었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지만, 그게 2년이나 반복되다 보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좀 먹어요!”
매주 한 타임만 보는 직원도 그럴 정도였으니, 팀원들이 볼 때는 어떻겠는가.
특히 그나마 제일 건강한 생활 규칙을 영위하고 있는 장미의 타박이 극심했다.
“아, 알았어. 먹는다니까? 근데 일단 환자 좀 보고.”
“그러다 교수님이 쓰러진다고요. 알아요? 요새 좀 야윈 거?”
“그래?”
“그렇다니까요. 사실 한유림 교수님이 아니라 교수님이 검진 받아야 한다고.”
“음.”
검진이라.
강혁은 잠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우람한 근육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좀 마르긴 했네.’
장미도 눈치챌 만한 변화를 강혁이 모르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진짜 한번 받아 볼까?’
사실 의사만큼 건강 염려증에 걸리기 쉬운 여건에 있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맨날 아픈 사람들만 보고 사는 사람들인데.
특히 한국대학교 병원처럼 큰 병원에서는 심심하면 정말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도 픽픽 나가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자요.”
잠깐 고뇌하고 있으려니 장미가 뭔가를 건네주었다.
작은 종이였는데, 자세히 보니 예약증이었다.
“뭐야?”
“뭐긴 뭐예요. 건강 검진 예약증이죠.”
“어?”
“저랑 양 선생님도 예약했어요. 하는 김에 교수님도 같이 하면 좋잖아요.”
“음.”
“그런 표정 짓지 말고요. 날짜 다르니까. 절대 진료 공백은 안 생겨요.”
장미는 고민하는 강혁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이지 못 말리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된 사람이 자나 깨나 환자 걱정만 하는 걸까.
“아, 그래? 다른 날이야?”
“네. 그날이에요. 교수님 오후에 박성민 후보 위세 도우러 가시는 날.”
“아…….”
“어차피 그날은 절대 못 빼잖아요.”
“그렇긴 하지.”
박성민은 여전히 지지율 여론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초반에 70% 이상을 점유하던, 그 미친 듯한 수준에서는 조금 내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60%가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머지 당들이 모두 합친다 해도 승산이 없는 상황이라는 뜻.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도 도와야지.’
그의 그러한 태도는 강혁마저 감동하게 한 터였다.
때문에 강혁도 무려 하루를 빼서 그를 돕기로 하게 된 것이고.
“그래, 그날이면 뭐. 괜찮겠네.”
“네. 그럴 거 같아서 그날로 잡았죠.”
“좋아. 그럼 환자 보자.”
“아니, 밥은 먹고요.”
“안 통하네.”
“통하면 어쩌려고요. 굶으려고?”
“아니, 알았어. 먹어, 먹는다. 먹어요, 네.”
강혁은 도끼눈을 뜨고 있는 장미를 피해 장미가 건네준 김밥을 욱여넣었다.
“맛있네?”
“당연하죠. 제가 안 만들었으니까.”
“누가 싼 거야? 파는 거 같지는 않은데.”
“이동주 선생님이요. 해외 파병 갔을 때 거기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김밥 싸는 거 배웠대요.”
“오……. 4호가 재주가 좋네.”
강혁은 지금은 이 자리에 없고 흉부외과 수술방을 전전하고 있을 동주를 떠올렸다.
어차피 정형외과 전문의라 정형외과적 지식이 많은 건 어마어마한 장점이었지만.
아무래도 바이털 다루는 부분이 좀 약점이었다.
외상 외과에서 바이털은 필수였으니 이 약점은 치명적인 셈이지 않은가.
때문에 강혁은 주기적으로 흉부외과나 신경외과로 동주를 돌리고 있었다.
다행히 한유림이 기조실장이라 전혀 어려움이 있진 않았다.
더구나 흉부외과에는 강일구가 있지 않던가.
어려움은커녕 더 못 가르쳐 줘서 미안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네, 수술도 요새 늘었어요.”
“늘었더라. 확실히 많이 굴리면 느는 거 같아. 더 굴려야지.”
강혁은 저 멀리 있는 동주의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을 만한 소리를 해 대면서 김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리곤 곧장 아까 가려던 곳, 즉 환자들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좀 급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장미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일단 밥을 먹었으니, 그걸로 만족이었다.
“같이 가요.”
“어, 그래. 나 없는 동안 수술했다고?”
“네. 얼마 안 걸렸어요. 그냥 복부 손상이라. 장루 뽑아 놔서 그렇긴 하지만, 예후도 좋을 거예요.”
“흠. 가서 보기나 하지 뭐.”
“네.”
강혁은 어지간한 레지던트들보다 환자 상태에 대해 외과 의사처럼 얘기해 주는 장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간호사가 중환자실을 맡고 있는 건 정말이지 크나큰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비단 강혁에게 뿐만이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그러할 터였다.
예후가 완전히 달라질 테니.
“호…….”
강혁은 눈앞에 누운, 아직은 재운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있는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옆에 놓인 탭에서 재생 중인 재원의 수술 동영상과 번갈아 보면서였다.
‘잘하네, 이젠 정말.’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기는 했지만.
이만하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특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단계가 아주 능숙해져 있었다.
‘역시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네.’
강혁은 그 모든 것이 다 자기 덕이라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장미는 몰래 그 모습을 찍어 재원에게 보내 주었다.
재원은 강혁의 반응이 있을 때마다 실력이 늘었으니까.
아마도 이번에도 예외는 없을 터였다.
“더 볼 거 없겠어. 이대로 루틴대로 보면 되겠어.”
“네, 교수님.”
강혁은 시원스레 웃고는 다음 환자에게로 옮겨갔다.
다음 환자도 특이한 외상 환자는 아니었기에 문제 또한 없었다.
이제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 인원들은 숙련될 대로 숙련이 되어 있었기에 루틴한 환자 처리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아직 루틴하지 않은, 즉 일반적이지 않은 환자에는 아직 그만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환자 상태는?”
강혁은 사방에서 휘날려 들어오는 바람을 맞아가며 김강률 팀장을 향해 물었다.
“별로 좋지 않습니다. 현장 요원 보고에 따르면……. 일단 의식은 없고, 혈압도 낮습니다.”
“그렇겠지.”
그냥 어떻게 다쳤는지만 들어도 그럴 거 같았다.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에 치였다 이거지.’
시골길인 데다가, 비까지 왔으니 무척 어두웠을 터였다.
그랬다는 건 제동 거리가 그리 길지 못했을 거란 얘기이기도 했다.
그냥 자동차였다면 그나마 좀 나았을 테지만.
이건 버스였다.
‘살아 있을까?’
헬기를 타고 출동 중임에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원래도 보행자 교통사고는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니까.
그런데 버스라니.
희망을 가지는 것이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 저기 경광봉 보입니다.”
한참을 날아가던 헬기 기장이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밑에 경광봉이 보였다.
비가 내리고 있어 흐릿하긴 했지만.
“착륙은 근처 보건소에 하겠습니다. 도보 5분 거리입니다.”
“오케이.”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전혀 다름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김강률 팀장의 얼굴엔 다소간의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교수님 지금 관장약 먹었어요.]조금 전 도착한, 재원이 보낸 문자 때문이었다.
이제 막 수술을 끝내고 나온 모양인데 그새 강혁이 나갔다고 자책을 하고 있었다.
‘괜찮겠…… 지?’
그가 아는 강혁은 초인 아니던가.
그러니까 아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