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427)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427화(427/1120)
427화 파열 (2)
“됐습니다. 잘 들어갔어요.”
댄은 케타민을 이용한, 아주 구식이지만 안전한 마취를 하고는 작은 튜브를 아이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이게 성공한 건 전적으로 제인의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 성인 사이즈만, 그것도 딱 한 사이즈의 튜브만 구비되어 있었던 것을 거의 비난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요청을 통해 여러 사이즈를 가져다 놓은 게 불과 몇 주 전의 일이었으니까.
‘대단했지, 그땐.’
댄은 당시 제인의 모습을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그사이 강혁은 카심에게 차디찬 베타딘 소독액을 받아 아이의 배에 잔뜩 바르기 시작했다.
“배꼽, 배꼽.”
한유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복막염에 이은 패혈증이 의심되는 상황 아니던가.
지체할 시간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주르륵.
거의 들이붓다시피 소독이 완료되었다.
실제로 수술대 밑으로 베타딘 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바닥을 신경 쓰진 못했다.
“혈압……. 약간 흔들리는데…….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모니터링하고 있던 댄이 아이의 활력징후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려 왔기 때문이었다.
“에에이.”
그와 동시에 강혁과 한유림의 손이 더더욱 빨라졌다.
아까까지도 이보다 빠를 수 있을까 싶던 속도였기에 다소 허둥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단 더 닦아요. 나 먼저 손 닦을게.”
“어어.”
강혁은 일단 대강의 범위를 문질러 닦은 후 환자에게서 멀어졌다.
원래 같으면 당연히 손 닦는 곳이 수술방 밖에 마련되어 있었겠지만.
여긴 한구 병원이었다.
손 닦는 곳 비슷하게 생긴 게 하나 있긴 했는데, 물이 나오질 않았다.
해서 강혁은 그냥 방 안에 비치된 간이 손 세정제와 솔을 이용해 벅벅 닦아야만 했다.
‘아, 간지러워.’
물로 씻어내지 못해 약간은 따가운 감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조금 괴로운 것이 눈앞에서 환자를 감염으로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자 왔어요. 한 교수님도 빨리.”
“어, 어 알았어. 보채지 마.”
“보채긴.”
강혁은 한유림을 서둘러 손 닦는 곳으로 보내며 손을 털어 냈다.
일회용 타월 같은 게 있다면 닦아 내겠지만.
수술복마저 빨아 쓰는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사치였다.
카심은 못마땅해하는 강혁의 속내를 읽어 낸 채, 장갑을 건넸다.
“그래도 이건 새것이잖아요.”
사실 장갑을 재활용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긴 했다.
얘기를 꺼낸 카심조차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하지만 적어도 분위기 환기는 되었다.
“그래. 이건 새것이지.”
강혁은 비로소 쓴웃음이나마 지으며 장갑을 마저 끼었다.
한유림도 부리나케 다가와 가우닝을 마친 후, 장갑을 끼었다.
“교수님이 저쪽.”
“알았어. 절개는 가운데지?”
“그래야죠, 뭐. 염증이 어디까지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래, 그래야지. 근데 대강이라도 안 보여?”
한유림은 강혁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은 적은 없었다.
강혁이 자신의 눈에 관한 얘기는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간 같이 다닌 게 몇 년이란 말인가.
한유림이 바보도 아니고.
눈치는 채고 있었다.
이 인간에게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대충 짐작은 가는데……. 그 범위가.”
“아. 알아들었어. 이런 망할.”
한유림은 그냥 묻지 말고 눈으로 확인할걸 하는 후회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강혁의 절개가 용이하도록 절묘한 위치에 가져다 댔다.
주우욱.
당기자마자 딱 손끝으로 전달되는 느낌은 ‘X됐다’였다.
“너무 단단한데?”
“그렇겠죠. 어지간해서 이렇게 어린 애가 패혈증으로 가겠나.”
“이런 건 오랜만에 보는데……. 음.”
물론 심한 외상 환자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외상 외과는 그 특성상 상처에 감염이 생긴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할 만한 일이 많지는 않았다.
오랜만이라고 하기엔 바로 어제 탈레반 인사를 수술하긴 했지만.
그만큼 드물다고 보면 되었다.
“일단 그을게요. 피 많이 날 테니까 거즈랑……. 주사 잘 씁시다.”
“주사로 지혈이라니.”
한유림은 투덜거리면서도 카심이 미리 에피네프린과 리도카인을 섞어 재워 둔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제인이나 댄에 따르면 그나마 이게 있는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그전에는 진짜 피 나면 묶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이익.
강혁은 주삿바늘 끝을 응시하고 있는 한유림을 뒤로한 채 메스로 환자의 배를 그었다.
언제나 그렇듯 완벽하기 그지없는 절개였다.
‘캬.’
그토록 많이 보아 온 한유림마저 감탄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흠. 그나마……. 복막 위로 염증이 번지지는 않았나.’
반면 강혁은 절개하면서 동시에 환자 상태 파악에 들어갔다.
칼끝에 느껴지는 절개 면의 질감 그리고 눈으로 확인되는 색, 출혈의 양 등등.
하려고만 하면 고려할 만한 요소는 꽤 많았다.
그 결과 강혁은 그나마 최악은 아니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좋아. 주사 부리나케. 그래 거기. 옳지 잘하네. 그렇다고 혈관에 쏘지는 말고. 죽어요.”
“알아, 나도. 그러니까 정신 사납게 하지 마. 지금 집중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게만 해요.”
“아주 한 마디를 칭찬을 안 해.”
그러나 한유림은 알고 있었다.
강혁의 입에서 쌍욕이 나오지 않는 게 칭찬이라는 것을.
특히 지금처럼 급박한 수술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지익.
한유림 덕에 절개 면에서 줄줄 새어 나오던 미세한 출혈들은 거의 다 잡혔다.
에피네프린이 강력한 혈관 수축제 역할을 해서 주변 혈관들을 틀어막은 덕이었다.
이러다 혈관 안으로 약이 직접 들어가서 심장으로 흘러 들어간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지겠지만.
한유림은 이제 그런 실수 따위는 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음. 아무래도 복막은 단단해졌네. 아, 이거…….”
강혁은 한결 나아진 시야를 무기 삼아 복막을 확인했다.
색도 약간은 거무죽죽하게 변해 버린 데다가, 메스 끝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도 단단했다.
“확실히 복막염이 있구나.”
“그럼요. 아까 그 정도의 반발 압통은 아무 때나 나타나는 건 아니죠.”
반발 압통이란 손으로 배를 누를 때가 아니라, 손을 배에서 뗄 때 나타나는 통증을 의미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보통 이 반발 압통이 있으면 의사들은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태반이었으니까.
그리고 직접 들어가 보면 이 지경이 되어 있기도 했다.
지익.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칼로 복막을 그었다.
과연 아까와는 달리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심지어 피에는 고름마저 섞여 있었다.
염증이 복막 안쪽 깊숙이 침범했다는 뜻이었다.
“이건 주사로 안 돼. 일단 눌러요.”
“어, 알았어. 아……. 보비 어떻게 이거 못 구하는 거야?”
“후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거 뭐 되겠어요? 사실 여기 탈레반도 오고 자경단도 오고 하는 거 말 안 해서 그렇지 다 알고 있을 텐데.”
“하긴 그건……. 그렇긴 해.”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인원들이 조심하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 도청 장치 하나만 걸어 놨다면 안쪽에서 굴러가는 일을 모조리 알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한 상황 아니던가.
딱히 주요 감시 대상이 아니라서 그렇지, 아마 어지간한 정보는 다 새어 나갔을 터였다.
묵인하는 정도라면 인도적 단체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해 줄 수 있겠지만.
능동적인 지원까지 해 주길 바라는 건 무리였다.
적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러했다.
“하지만 한구가 앞으로 서북부의 허브가 된다면 또 모르지.”
“너무 먼 얘기잖아…….”
“그때까지는 불편해도 이렇게 합시다. 그래도 귀신같이 잘 누르네.”
“못 누르면 지랄하니까, 어쩔 수 있나.”
“지랄이라니. 요즘 가만 보면 매일같이 욕하는 거 같어, 아주?”
“나이 들어서 그래, 나이 들어서.”
“언제는 젊다며.”
“나이 들어서 왔다 갔다 하는 거야.”
“나 원 참.”
강혁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절개는 쉬지 않았는데, 어느새 명치 부근에서 시작한 절개가 배꼽 밑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제 어지간히 멎었네. 당겨 봐요.”
“어우……. 냄새. 이거…….”
“당연히 나지, 그럼. 제대로 약도 못 먹었을 텐데.”
대한민국이었다면 설령 수술 때를 놓쳤다 하더라도 항생제는 먹었을 테니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엔 항생제는 고사하고 진통제 하나 먹지 못하지 않았던가.
배 속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일단 충수 돌기부터 찾아야지?”
“여깄잖아요. 정신 안 차려요?”
“어? 아니……. 그 손으로 잡고 있던 게 그거야?”
“그럼 이걸 제가 왜 잡아요.”
“아니……. 방금 열었는데, 어떻게 찾았어?”
“대강은 여기쯤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
강혁은 멍해진 한유림에게서 시선을 떼어 낸 후,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에 잡힌 충수 돌기는 본래 돼지 꼬리같이 얇았어야 했지만, 지금은 불어 터진 상황이었다.
강혁의 엄지보다도 굵어져 있었고, 끝부분이 파열되어 있었다.
그 구멍을 통해 안쪽에 고여 있던 고름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그게 복막염을 일으킨 것이고.
‘그나마……. 장내 내용물이 나가진 못했네.’
염증이 하도 심하다 보니, 충수 돌기염과 맹장 사이의 통로가 부어서 틀어 막혀 있었다.
만약 여기가 터지거나 열렸다면 정말 끔찍했을 터였다.
고름만 나간 게 아니라 변이 나갔을 테니까.
변에는 수많은 대장균이 살고 있지 않은가.
대장에 있을 때야 유익균이니 뭐니 하고 불러 주지만.
복강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냥 세균일 뿐이었다.
“묶으면 되는 거지?”
파악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보니, 한유림이 타이할 실을 들고 있었다.
해서 강혁은 손가락을 놀려 그나마 묶을 만한 지점을 노출해 주었다.
“네. 여기. 딱 여기. 더 밖으로 가면 잘릴 거 같아.”
“아싸리 수처 타이 하는 게 낫겠지? 그냥 구멍을 틀어막게.”
“당연하죠. 그럼 뭐 하려고 했어요.”
“그냥 좀 잘한다고 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
“덧날 거 같아, 내 마음이.”
“와……. 이 개…….”
한유림은 당황한 나머지 손을 부르르 떨었다.
본인만 알 정도로 경미한 움직임이었지만.
강혁의 눈을 피해 가진 못했다.
“어어. 손 흔들린다. 죽어?”
“어, 미안.”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염증의 기원이었다고 할 수 있는 충수 돌기는 별문제 없이 묶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일단 고름에 직격탄을 맞은 것처럼 보이는 소장 쪽이 큰일이었다.
“벽이 녹았어. 뚫리진 않았는데.”
“버틸까?”
“아뇨. 이건 못 버티지. 여기서 한 번 더 터지면……. 다음은 방광이에요.”
“안되지. 그럼 잘라야겠는데.”
“문제는……. 이 뒤도 아주 깨끗하진 않을 거라는 건데.”
“그럼 어쩌지?”
강혁은 걱정 어린 한유림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처음엔 강혁도 비슷한 표정이었는데 점차 변하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웃는 듯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
“우리 의료진 몇 명이지? 다 체력은 좋지?”
“그, 백 교수가 체력 운운하니까 너무 불안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