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43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436화(436/1120)
436화 최선 (2)
“뭔 개소리야?”
“일단 수술에 집중해요.”
“아니……. 뭐……. 흠. 그래.”
한유림은 뭔가 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까 지금은 수술 중이지 않은가.
그것도 한 아이의 엄마를 살려야 하는 수술.
이미 오래전 자신의 아내를 떠나보내야 했던 한유림으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어, 여기…… 오케이.”
해서 한유림은 제인의 보조를 최선을 다해 맞춰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조용해진 수술방에서 강혁은 천천히 베타딘 액을 복강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점차 자궁이 밖으로 딸려 나가고 있었기에 작업은 점점 더 수월해지고 있었다.
‘좋아. 어떻게 봐도 더 다친 곳은 없어.’
좋은 일이었다.
부상이 적은 건.
외상 외과 전문의로서 살아온 경험상, 역시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건 초기 부상의 정도였다.
아무리 열심히 수술해 봐야 너무 많이 다친 상황에서는 그 한계가 명확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환자는 운이 좋았다.
‘근데 범인이 남편이라 이거지?’
이곳의 사법 처리 수준을 고려할 때, 남편이 처벌받을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애초에 사법 기관 자체가 좀 모호한 지역이기도 하지 않은가.
지역 유지들의 말이 곧 법이었고, 관습이 법이었다.
그리고 소위 그 법이라는 것들은 무조건 남편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범인 손에 또다시 들어가야 한다, 이건데.’
자기 아이를 가진 산모도 찌른 미친놈이었다.
그런 놈이 자기 아이의 엄마라고 해서 찌르지 않을까?
제인이 말할 리도 없긴 하겠지만, 만약 자궁이 없어진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굳이 눈을 감지 않아도 이 산모의 미래가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두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손을 탄 이상, 그런 개죽음은 용납할 수 없었다.
줄줄줄.
그의 생각과는 별개로 베타딘 액은 천천히 복강 안을 채워 들어갔다.
강혁은 그렇게 채워진 베타딘 액을 이용해 복강 내부를 꼼꼼히 세척했다.
별거 아닌 행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결국,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기도 했다.
특히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는 감염 여부가 곧 모든 것일 때도 많았으니.
“어디, 어떻게 되고 있나.”
강혁은 휘적휘적 복강 안에 넣은 손을 움직이면서 동시에 제인을 바라보았다.
안쪽으로 보면서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자궁이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자궁으로 연결되어 있던 혈관들은 결찰이 된 상황이었다.
덕분에 댄은 여전히 안에서 출혈이 있었는지, 어쨌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만큼 밖에서 보기엔 나름 평온한 수술이었다.
“제거합니다, 이제 봉합만 하면 돼요.”
“오케이, 좋아. 한 교수님.”
강혁은 아주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은 채 석션을 한유림의 손에 들려 주었다.
어제도 잡았던 거라 그런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게 좋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하…….”
“해요.”
“하나만……. 하나만 묻자.”
한유림은 벌써 장갑을 벗어 던지고 있는 강혁을 향해 외쳤다.
강혁은 장갑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으며 한유림을 돌아보았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이 말을 하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질러 보기로 했다.
‘우리 사이가 이 정도로 주먹질하고 그럴 사이는 아니잖아?’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긴 참이어서 그럴 수 있었다.
“나가서……. 땡땡이치려는 건 아니지?”
아닐 거란 생각이 더 강하긴 했다.
그가 아는 강혁은 단 한 번도 땡땡이를 쳐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오고 난 이후엔 그러한 생각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한국과는 다른 종류의 힘듦에 한유림 또한 좀 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 않은가.
한유림은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후하게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다면 강혁도 그럴 거로 생각했다.
“미쳤어요?”
물론 강혁은 그런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어어. 치지 말고. 나 이제 석션해야 해. 인간적으로 이러지 말자.”
“음.”
강혁은 두 주먹을 꼭 쥐었다가, 애처로운 얼굴로 석션을 들고 있는 한유림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석션이 입가에 가까이 가 있어서 더더욱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 뭐……. 쳐서 뭐 해.”
“진짜 땡땡이 아니지?”
“칠까, 그냥.”
“아니, 답을 해 줘. 위협만 하지 말고!”
한유림은 고민하는 강혁을 보며.
심지어 그 고민이 자신을 칠까 말까인 강혁을 보며 외쳤다.
다행히 강혁은 그래도 인정이 있는 사람이라 주먹을 휘두르진 않았다.
“아니에요. 땡땡이 아냐.”
“그럼 뭔데.”
“말해 주면 싫어할 거 같아.”
“뭐?”
한유림은 뭔가 더 캐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여기서 더 물었다간 정말 끔찍한 얘기가 튀어나올 거 같아서였다.
‘하긴 이 자식이 환자 두고 괜히 나갈 리는 없어.’
아마도 아까 말했던 것처럼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나가는 것일 터였다.
환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즉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지금의 부상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설마 남편을 죽일 작정인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수술방 밖을 바라보던 강혁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의사가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당연히 기이한 일이었지만.
강혁은 기이한 인간이었다.
뭐든지 가능할 거 같았다.
“아, 안 돼.”
“뭐가 안 돼. 뭐 할지 알고 하는 말이에요?”
“죽, 죽이려고. 제인, 안 돼. 이 인간 이거…….”
해서 한유림은 여태 수술 마무리를 하느라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던 제인을 불렀다.
강혁은 그래도 개념이 제대로 박힌 인간 아닌가.
팀장 말은 들을 터였다.
“죽여요? 누굴……. 설마?”
제인 또한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유림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예상도 하지 못했으나, 그 말을 듣자마자 이해가 팍 갔다.
“뭔…… 누굴 죽여.”
반면 강혁은 뭔 개소리냐는 얼굴이 될 뿐이었다.
“아, 죽일까? 그게 깔끔할 거 같긴 한데.”
뒤에 진짜 이상한 소리를 덧붙이긴 했지만.
아무튼, 방금까지는 남편이란 사람을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한유림은 이 이상한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부리나케 끼어들었다.
“아니, 안 되지! 아까 하려던 거 해!”
“정말?”
방금까지만 해도 죽이는 것만 아니면 다 좋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강혁의 되묻는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아닐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강혁의 ‘정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어……. 뭔데.”
“죽이는 건 아니에요.”
“그럼…….”
한유림은 해도 되겠냐는 눈으로 제인을 바라보았다.
제인은 탈레반 측과 나사르 측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도 강혁은 반 미친 사람 같은 말을 했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일단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었다.
이곳과 같은 상황에서는 뭔가 되고 있나 하는 느낌만 받아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요.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진 않겠죠?”
해서 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림은 그런 그녀에게 꼭 생각이 있을 가능성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강혁이 제인의 허락이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말을 듣자마자 벌컥 수술방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딱 한 사람 나갔을 뿐인데 굉장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뭔 짓을 저지르려나.”
한유림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마치 절간처럼 조용했더랬다.
제인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든 수술을 마무리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수 없죠.”
정말로 알 수 없었다.
원래 현장은 미지로 가득 차 있다곤 하지만.
강혁이 관여하는 현장은 그 궤를 달리하는 듯했다.
그러나 걱정만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냥 두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흠. 그런…… 가?”
한유림은 봉합사를 툭 자르며 중얼거렸다.
산모의 모습은 아까 처음 이곳에 실려 오던 때보다 훨씬 좋아진 상황이었다.
아깐 죽음의 문턱에 가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그래도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이만한 수술을 해 내다니.
한유림은 자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하긴……. 이대로 두면 남편한테 돌아가겠지.’
한유림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니.
제아무리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그였지만 단연코 아버지가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도리어 애처가임을 자처했더랬다.
물론 그 시대 방식의 사랑이라 지금 상상하는 것과는 좀 다르겠지만.
“한 교수님. 일단 우리는 수술을 마쳐야 해요.”
제인은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그런데도 평균적인 의사 몫은 하는 한유림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부드럽지만 단단한 손이었다.
한유림은 어쩐지 근심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러지. 그래.”
“백 교수님, 같이 지내보셨으면 알 거 아니에요? 사고 칠 만한 인물인가요?”
“사고라.”
어떤 종류의 사고냐에 따라서 다를 터였다.
남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고도 겁나게 쳐댔으니까.
언론하고 싸우질 않나, 카메라에 대고 욕설을 내뱉질 않나, 병원 계정을 해킹하질 않나.
일일이 대자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였다.
‘뭐……. 그게 크게 문제 된 적은 없었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 부드럽게 넘어갔더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잘된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러한 것들을 다 계산하고 했다면 역시나 천재일 터였고.
‘운이 좋다고 해도……. 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 정도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을 왜 걱정한단 말인가.
“뭐……. 괜찮았죠.”
“그럼 이번에도 괜찮을 거예요.”
게다가 제인은 딱 한유림이 듣고 싶어 했던 말을 해 주고 있었다.
덕분에 한유림은 상당히 안심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삐걱삐걱.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그때, 강혁은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2층으로 갈까, 3층으로 갈까.’
이미 1층을 벗어나는 순간 가발을 벗어 던진 그의 얼굴은 평온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발걸음을 어디로 향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역시 협박이 먹히려면 2층이겠지.’
물론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장 수술실을 나선 후에 시작된 고민이 아니지 않은가.
이미 어느 정도 수술의 결말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했던 고민이었다.
덜그럭.
그래서 강혁은 예의 그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2층에 있는 굳게 잠긴 문 앞에 섰다.
이미 제인에게 열쇠를 받아 둔 지 한참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안쪽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잠깐.”
“아아, 환자 보러 온 거야. 나 알잖아.”
문이 열리는 동시에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두 병사가 강혁을 가로막았다.
한유림이었다면 그 길로 돌아갔겠지만, 강혁은 달랐다.
더듬거리는 우르드어와 함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둘은 뭔가 전해 들었던 것이 있는지 순순히 옆으로 비켜 주었다.
“음.”
안으로 들어가자, 한결 더 나아진 모습의 탈레반 인사가 있었다.
볼 때마다 이름을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일단 참기로 했다.
이름을 묻는 거 자체가 의심의 단초가 될 수 있었으니까.
“괜찮아 보이네.”
“무슨 일이지?”
“의사가 환자 보러 오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이때까지, 아침이랑 저녁 말고는 온 적이 없지 않나?”
확실히 머리가 좀 있는 친구였다.
강혁은 껄껄 웃으면서 그의 앞에 놓인 의사에 앉았다.
“부탁 좀 하려고.”
“이미 목숨값에 대한 부탁은 들어준 거로 아는데?”
과연 만만한 놈은 아니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단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이자 몰라? 이자는 안 치렀잖아.”
정말 나는 놈이 있기 때문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