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47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476화(476/1120)
476화 이건 처음인데 (1)
다다다.
강혁과 한유림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어차피 환자와 보호자는 이미 분리가 되어 있겠지만, 그런데도 가발을 쓴 채였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는 생각에 강혁도 한유림도 제인의 지침을 따르고 있었다.
“백 교수, 근데…….”
“왜요?”
“제왕절개 들어가 본 적 많아?”
질문을 던지는 한유림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유림이나 강혁이나 이곳에 오기 전에 전주 예수병원의 협조를 받아 산부인과 수술을 배우긴 했었더랬다.
하지만 일정에 쫓기다 보니 불과 몇 개월 배우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임신 중독증 산모의 분만이라니.
응급도 이런 응급이 없었다.
“많겠어요?”
강혁 또한 인상을 찌푸린 채, 한유림을 돌아보았다.
한유림은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아니……. 시리아 있을 땐 나름 국경 없는 의사회 자문도 했다며? 거기 뭐 산모 많았을 거 아냐?”
시리아.
명실공히 죽음의 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
희망이라는 말과 딱 정반대로 느껴지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있었다.
강혁도 그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현장에 있었으니까.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미쳤다고 산부인과 자문을 나한테 구해요? 시리아 외곽 쪽으로는 지원이 어마어마하다고. 거긴 성형외과 의사들까지 있어.”
“성형……?”
“그런 성형 말고……. 에이. 나중에 얘기해, 일단. 수술방 다 왔어.”
강혁은 긴급 구호 현장 중에서도 상당히 험악한 곳으로 손꼽힐 만한 곳에 와 있는 주제에 정작 현장에 관해서 하나도 모르는 한유림을 보며 고개를 휘휘 저어댔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하고서였는데, 한유림에게는 다행히도 강혁에겐 시간이 많이 없었다.
“들어갑시다.”
환자가 눈앞에 있을 테니까.
끼이익.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들어선 수술실은 분주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새 불려 내려온 댄이 마취를 걸고 있었고, 동시에 바이탈을 잡고 있었다.
제인은 제대로 수술 가운도 걸치지 못한 채 장갑만 덜렁 끼고 메스를 들고 있었고.
“어, 어! 빨리! 빨리 와서 거들어!”
그러다 문소리를 들었는지, 제인이 칼 든 손을 휘적거리며 소리쳤다.
평소라면 강혁이나 한유림에게 절대 이렇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그녀였지만.
응급 상황에서는 칼 든 사람이 대장인 법이었다.
게다가 이 환자는 산모.
산부인과인 제인의 명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어, 알았어! 씻지 말고?”
“씻을 시간 없어요! 나중에 항생제랑 소독으로 커버해!”
“오케이!”
강혁도 그렇지만 한유림도 이러한 응급 상황에는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다.
물론 의료 술기에는 다 정해진 절차가 있고, 모든 절차는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어떤 절차도 환자의 생명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둘은 그러한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게 아니라, 뼛속 깊이 체득하고 있었다.
“여기, 내가 당길게!”
한유림은 늘 그러하듯 제인이 절개하기 쉽도록 배를 위아래로 당겨 주었다.
임신 중독증이 온 산모이니 만큼, 당도 아주 높은 모양이었다.
초음파를 굳이 쓰지 않아도 아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좋아요! 절개합니다. 석션 준비하고!”
“석션?”
석션이라는 말에 강혁이 조금은 당황한 얼굴이 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인은 칼을 들고 있는 데다가, 이 수술의 집도의니 석션 따위를 집어 들어서는 안 될 터였다.
‘다음은?’
뭔가 이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묘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유림이 눈에 들어왔다.
입가에 맺힌 엷은 미소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어쩐지 이 인간이 냅다 뛰는가 싶더니, 이걸 피해서였나.
뭐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제인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석션!”
“어, 어. 알았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피가 날 텐데.
피가 나면 시야가 흐려질 텐데.
그러면 수술이 망할 테고, 산모는 물론이거니와 아이의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
설마하니 이런 고난도 수술 실패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 온 한구 병원의 명성이 뒤흔들리기나 하겠냐만은서도.
눈앞의 환자는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흡.”
그래서 강혁은 카심이 묘한 얼굴로 건네준 석션을 집어 들었다.
카심은 강혁이 석션을 입을 물자마자 발로 옆에 있던 양철 바구니를 슥 하고 밀어주었다.
삼키지 말고 여기다 뱉으라는 뜻이었다.
분명 고마워야 정상일 텐데.
어딘지 배알이 꼴렸다.
“미안해요.”
카심도 괜히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제인이 칼을 그었기 때문이었다.
지이익.
메스가 환자의 복부를 가르자마자 피가 팍 하고 튀었다.
워낙 상황이 좋지 못한 터라 활력징후를 정돈하지 못하고 들어온 탓이었다.
아니, 임신 중독증 환자에게 적절한 설비도 없이 섣불리 혈압을 낮추는 게 극히 위험해서이기도 했다.
괜히 혈압 낮추겠답시고 약 잘못 썼다가 산모도 아이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흡.”
강혁은 그 피가 제인의 눈을 가리지 않도록 급히 석션에 들어갔다.
“오.”
“좋아요!”
수술 실력만큼이나 석션도 완벽했다.
“켁.”
그만큼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아무튼, 제인은 강혁과 한유림의 도움을 받아 아주 빠르게 산모의 배를 가르고 들어갔다.
들어가는 도중 도저히 석션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출혈도 마주쳤지만.
그때마다 한유림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팍.
수처 타이.
급할 때 뭉뚱그려서 묶는 방식으로 출혈을 잡을 수 있는 방식.
한유림은 강혁 때문에라도 이 술식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피만 나면 지랄을 하니까…….’
어찌나 예민한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가리킬 지경이었다.
‘그 덕에……. 출혈은 진짜 잘 보게 됐지.’
애초에 눈이, 아니 색각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강혁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국 외과 의사들을 싹 모아서 줄 세워 두면 한유림은 아마 거의 맨 앞에 있을 수준은 되었다.
“카심! 아이 받을 준비해!”
“네!”
그 덕에 제인은 얼핏 봐도 4kg은 되어 보이는 아이를 곧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절개부터 크게 넣은 터라 아주 무리는 없었다.
더구나 산모도 상당히 체구여서 다행이었다.
아마 조그마한 체형이었다면 제아무리 제왕절개라 해도 무리가 따랐을 터였다.
“아이 받아!”
“네!”
“일단 아프가부터! 점수 어때?”
“네!”
아프가(APGAR).
출생 직후 신생아 상태를 판단하는 검사법인데, 나온지 오래된 검사법인데도 여전히 그 효용성을 자랑했다.
카심은 여태 제인과 함께 해 오면서 이 검사를 도맡아 했기 때문에 아주 능숙했다.
‘사지에 청색증……. 심장박동은 분당 80회에……. 때리는데 반응이 없어. 이런 제기랄. 호흡은……. 호흡은 그래도 있어. 휴.’
아프가란 피부색, 심박수, 반사, 근긴장, 호흡을 평가한 후 종합 점수를 매기는 검사법이었다.
보통 임신 중독증 산모에게서 난 환아는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지금처럼 별다른 산전 처치를 받지 못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이 산모야 막판에 이르러서는 제인의 보살핌을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안전을 보장하기엔 방치된 기간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피, 피! 수혈해!”
문제는 제인이나 다른 의료진들이 미처 아이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단 점이었다.
그러기엔 산모의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다.
“들어갑니다!”
그나마 산모는 입원한 지 좀 된 후에 수술실에 들어온 참이라 딱 맞는 피가 준비되어 있기는 했다.
그리고 댄은 이러한 상황에 아주 익숙한 마취과 의사였고.
비록 박경원 교수 정도는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댄 정도면 일류였다.
“예상 출혈량은 얼마나 되죠? 피 3개로 될까요?”
“어……. 그건 장담하기 어려워요! 태반이……. 태반이 불안정해!”
태반은 이를테면 핏덩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피가 많이 나는 장기였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피가 나기 시작하면 피 3개는 택도 없을 터였다.
아니, 산모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 그럼 자궁 절제술 고려하십니까?”
목숨을 잃느니, 차라리 자궁을 들어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자연 분만을 시도하던 중이 아닌 게 다행이지 않은가.
이미 배는 열었으니, 결정만 내리면 가능할 터였다.
“어쩌지?”
이게 대한민국이었다면 바로 보호자 불러서 상황 설명하고 떼면 될 텐데.
극히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인 것이 문제였다.
한유림은 혹 보호자가 죽어도 자궁은 남기라고 할까 봐 울상이 되었다.
그에 반해 제인은 여태 자신이 겪었던 보호자의 캐릭터를 되짚어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라포는 좋아……. 그리고…….’
보호자는 애처가였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에도 아이 대신 산모를 살리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자궁을 떼고, 아이와 산모 모두 살리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적어도 폭력적으로 나올 거 같진 않았다.
“뗍시다!”
해서 제인은 의학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곳이 한구 병원이 아니라 본국의 다른 병원이었다면야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건 한유림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이렇게 당길게요.”
그래서 한유림은 자궁 안이 잘 보이도록 당기던 것을 멈추고, 자궁 자체가 잘 보이도록 배의 절개면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리곤 강혁을 불렀다.
“야, 석션! 너 뭐 해!”
다소 도발적인 말투를 써 가면서였다.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고 두 눈을 질끈 감았는데, 의외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니, 아예 이쪽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강혁은 카심의 앞에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의 앞에 있었다.
“어……. 아이 심박수 떨어집니다. 60? 40?”
“알아. 나한테 줘 봐.”
다들 산모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아이의 상태가 급변하고 있던 탓이었다.
강혁은 눈앞에 집중하면서도 주변 환자에게도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는, 아주 넓은 시야의 소유자 아니던가.
덕분에 오직 강혁만이 아이 앞에 다가갈 수 있었다.
꾹꾹.
일단 강혁은 아이의 심장을 손가락으로 눌러 대기 시작했다.
비록 임신 중독증 산모에게서 난, 아주 큰 아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생아 아닌가.
모든지 조심스러워야 했다.
“아…….”
카심은 강혁이 흉부 압박을 시작하자마자, 아주 약간이나마 사지 청색증이 호전되는 것을 보며 입을 쩍하고 벌렸다.
신생아의 경우 이러다 그냥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 않았던가.
카심은 여태껏 자신이 보았던 기적을 떠올리며 희망을 품었다.
“이런 망할.”
하지만 강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욕설이었다.
거기에 희망 따위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강혁은 가슴을 누르는 사이사이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가져다 대었던 청진기를 떼어 내며 말을 이었다.
“왜, 왜요?”
“PDA(Patent ductus arteriosus: 동맥관 개존증)야.”
“네? 그걸……. 아니. 그렇다 해도…….”
카심은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려다가 말을 바꾸었다.
여태 강혁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알아 맞춘 적이 너무도 많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런 의문은 들었다.
‘동맥관 개존증은……. 보통 몇 개월 기다렸다가 수술하지 않던가?’
심지어 저절로 막히는 경우도 꽤 있을 지경이었다.
강혁도 카심의 질문을 못 알아듣진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너무 커. 이대로 두면……. 얘 죽어.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해.”
“허…….”
“괜찮아. 수술 간단하잖아.”
“네?”
그냥 심장 수술도 아니고 신생아 심장 수술이 간단하다니.
카심은 이 사람이 미쳤나 하고 보다가,
“억.”
머리통을 한 대 맞았다.
“준비나 해. 시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