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478)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478화(478/1120)
478화 이건 처음인데 (3)
산모에 이어 아이 수술이라니.
댄은 솔직히 말하면 정신없다는 말도 모자라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작디작은 아이를 보고 있자니 미래의 집중력이라도 끌어와야만 했더랬다.
“흠.”
다행히 실패할 경우에도 백강혁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기도 하고.
그래서 댄은 작은 기합 소리를 내고는 가느다란 플라스틱 튜브를 집어 들었다.
그나마 제인이 본부에 요청해서 받아 놓은 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게 없었다면 꼼짝없이 목에 절개창을 넣어야 했을 텐데.
‘닥터 제인……. 당신은 훌류한 팀장이야.’
댄은 그런 생각을 하며 훅 하고 튜브를 집어넣었다.
이렇게 작은 아이는 오랜만이라 손이 조금 떨렸는데, 떤 것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아주 부드럽게 들어갔다.
“튜브, 제대로 들어갔어?”
강혁은 여전히 메스를 쥔 채로 물었다.
부드럽게 들어갔다고 해서 이게 꼭 기도로 들어갔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었다.
식도로 들어가는 경우도 아주 많았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수술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신생아에게는 거의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바로 째야만 했다.
“잠시만.”
댄은 일단 튜브를 고정하지 않은 채, 청진기를 아이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리곤 청진기를 우선 가슴에 놓아두고는 옆에 있던 앰부를 튜브에 연결했다.
후웅.
그 앰부를 쥐어짜자, 폐가 부풀어 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딱히 청진기를 대지 않아도 확인이 될 정도로 가슴이 부풀었다.
“좋아.”
그제야 강혁은 안심했다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메스를 기구대 위에 슬며시 내려놓으면서였다.
“후.”
뒤에서 대기 중이던 한유림 또한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아이가 죽을 뻔했던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자, 연결됐습니다. 이제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댄은 침착하게 나머지 작업을 마쳤다.
숙달된 마취과 전문의답게, 아주 작은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용량의 실수는 없었다.
‘좋아. 잘하네.’
강혁은 매의 눈으로 댄의 처치를 살펴보고 있다가 이내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 품 안에 안겨 있을 때에도 그렇게 작더니, 이렇게 내려놓고 보니 더 작아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래도 아까 강혁의 심장 마사지로 인해 아주 잠시간 안정을 되찾았다는 점이었다.
아마 태어나자마자 그런 적절한 조치가 없었더라면 지금 강혁이나 한유림이 마주하고 있는 건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주검일 터였다.
끼이익.
그사이 카심이 돌아왔다.
헐레벌떡 뛰었는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럼에도 자기 할 일은 잊진 않았다.
“산모는 안정적이에요. 지금 제인이 돌보고 있습니다.”
“좋아. 바로 시작하자고. 우리 소독하고 있는 동안, 기구 다 빼.”
“아……. 네. 개흉 세트로 풀면 될까요?”
카심은 바로 얼마 전 썼던 개흉 세트를 떠올렸다.
강혁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단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는데.
어째 한번 풀기 시작하니까 자꾸 풀게 되었다.
“응. 절골은…… 가위로 할 거야. 본 시저도 풀어.”
“가위?”
가위로 개흉을 해?
카심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장미였으면 이렇지 않았을 터였다.
장미는 벌써 여러 번 이보다 더 작은 아이 수술도 들어간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카심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강혁은 화를 내지 않았다.
“얘 봐라. 얘 가슴뼈가 단단하겠니? 가위로 자르는 게 제일이야.”
“아…….”
“뭐, 힘이 좀 들긴 하지만. 난 힘세니까.”
“그, 그건 그렇죠.”
“아무튼, 빨랑 풀어 놔. 난 이제 닦아야 해.”
“아, 네. 교수님.”
강혁은 카심에게 다시 한번 뭘 꺼내야 되는지 주지시킨 후 돌아섰다.
슥.
이미 한유림은 베타딘으로 아이의 가슴을 문질러 대고 있었다.
워낙 작아서 한두 번 문지르니까 배까지 다 문질러 버린 느낌이 들었다.
“음.”
“내가 다 했어. 손이나 닦고 와.”
“그럴게요. 나머지 좀 더 닦아 줘요.”
“알았어, 알았어. 걱정 마. 아, 에이 라인(A-line: 동맥 라인, 동맥혈 채혈 및 실시간 혈압 확인이 가능)은……. 우측에 잡으면 되지?”
한유림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다시 돌아서려는 강혁을 불러 세웠다.
베타딘 거즈를 집은 기구로 댄을 가리키면서였다.
댄은 에이 라인을 잡기 위해 주사기를 들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이미 아이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쪽이라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혁 또한 다른 의견이 있지는 않았다.
“당연하죠. 심장 수술하는데 왼쪽에 잡나, 그럼?”
“왜 이렇게 날카로워. 아무튼, 그렇대요. 댄.”
한유림은 괜히 성질내는 강혁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댄에게는 괜찮다는 뜻의 눈빛을 보내면서였다.
댄도 워낙에 강혁 성질이 더럽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또 이번 수술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별반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가슴을 열고…….’
강혁은 그렇게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을 등진 채 손을 솔로 문질러 닦았다.
머릿속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심장을 찾아야 해. 그래야…….’
혹 대동맥을 묶어 버리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아이는 당장 죽고야 말 터였다.
물론 강혁에게는 기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뛰어난 시각이 있고 또 그만큼은 아니지만 극도로 예민한 청각이 있긴 하지만.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기선 내가 해야 해. 나를 믿자. 나는……. 나는 백강혁이야.’
강혁은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나는 백강혁이다’라는 문장을 반복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미친 사람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외과 의사라 불리는 강혁에게는 이보다 훌륭한 자기 최면은 있을 수 없었다.
또한 세계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현대 의학의 한계 앞에선 가끔 이런 자아도취가 필요한 법이기도 했고.
“다 됐어요?”
손을 닦고 온 강혁의 태도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댄이나 카심이야 모르겠지만.
한유림은 알 수 있었다.
‘여유가 생겼는데? 계획이 섰나?’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한유림 또한 마음이 좀 편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유림은 강혁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수술이라고 해도 혼자 들어갈 때랑 강혁이 들어갈 때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고나 할까.
‘그래, 이래야 백강혁이지.’
그래서 한유림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솔을 집어 들었다.
“뭘 히죽거려? 빨리 안 와요?”
딱 강혁의 구박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 어. 알았어. 간다, 가.”
“심장 수술 앞두고 정신이 나가셨나. 왜 웃고 있어. 애 아픈 게 좋나.”
“그런 게……. 그런 게 아니라.”
“나중엔 우리 본부 가면 한번 정신과 상담 받아 봅시다. 나는 몰라도, 한 교수님은 진짜 소시오일 수 있다니까?”
“이런 미친…….”
누군가 한유림에게 소시오패스라고 한다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래도 합당한 이유나 사례를 들고 오면 화가 나진 않을 거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강혁에게?
인성만 따지자면 똥 묻는 개가 아니라 똥 그 자체인 백강혁에게?
얘기를 듣자마자 볼살이 푸들푸들 떨려 왔다.
“미친? 집도의가 지금 칼 들고 기다리고 있는데, 욕을 해?”
“으, 응? 칼 들었어?”
하지만 정말로 메스를 든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강혁을 보자 신기하게 화가 싹 가라앉았다.
대신 이놈이라면 저 칼을 던질 수도 있다는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실제로 계단 복도 벽에 저 놈이 가위 던져서 뚫어 놓은 구멍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 아무리 삭은 건물이라고 해도 벽을 뚫다니.
사람 몸이라면 아예 꿰뚫고 지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 칼 들었다.”
“왜 반말해. 근데.”
“칼 들었으니까.”
“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칼 든 사람한테 반말하는 자신이 이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서 있지 말고 빨리 와요. 아이……. 오래 못 버텨.”
다행히 강혁은 곧 깡패 강혁에서 집도의 강혁으로 돌아왔다.
그 덕에 한유림은 쫄래쫄래 뛰어올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 카심이 건네준 가운과 장갑을 끼면서 강혁의 절개를 내려다보았다.
지이익.
제아무리 개흉이라고 해도 아이가 작지 않은가.
범위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아니, 단점이 더 컸다.
“빨리 들어와요. 벌써 다 쨌어.”
“아, 알았어. 여기, 이렇게 당기면 되지?”
그나마 한유림은 강혁과 함께 이런 수술을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해 본 적이 있다는 건 크나큰 강점이었다.
덕분에 한유림은 강혁의 절개 윗부분을 위로 들어 올려서 강혁이 가슴뼈 아래쪽을 일부 박리할 수 있게끔 시야를 제공했다.
“좋아요.”
강혁은 그 즉시 메스로 슥 하고 절개면 안쪽을 그었다.
그러자 살짝 가슴뼈가 아래와 분리가 되면서 떨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아직 그 안으로 뭐가 보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절골을 위한 가위 한쪽을 밀어 넣는 데에는 충분한 공간이 나왔다.
“자아……. 이제 잘라 볼까. 댄, 활력징후 어떻지?”
“아직 좋습니다.”
“아직? 불길하게 그런 소리 하지 마.”
아직이라는 말에 강혁의 눈썹이 꿈틀댔다.
어떻게 보면 참 이쁘장한 얼굴인데.
이럴 때는 또 악마 같았다.
“아, 네. 죄송…… 죄송합니다.”
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조아렸다.
단지 강혁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은연 중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흔히 의사들이라고 하면 미신하고 가장 거리가 멀 거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의사들이야말로, 특히 수술하는 의사들이야말로 어떤 징크스를 하나씩은 지니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 공유하는 것이 바로 수술장에서 재수없는 소리하지 않기였다.
“조심해.”
강혁은 그 금기를 깬 댄에게 다시 한번 경고를 한 후, 가위질을 시작했다.
한유림이 단단하게 잡아 주고 있었기에 거칠 것이 없었다.
뚝.
뚝.
아무래도 잘려 나가는 것이 골화가 진행되지 않은 가슴뼈다 보니, 소리 자체가 달랐다.
인체 조직이 서걱서걱 잘려 나가는 소리도 소름 끼치지만.
이건 더더욱 그러했다.
뚝.
뚝.
하지만 자르는 사람도.
그걸 보조하는 사람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실수 하나가 생명과 직결되는 순간이었기에 그러했다.
‘역시 한 교수님 데리고 오길 잘했어.”
사실 몸 성한 상태도 아니지 않은가.
아까까지만 해도 수액 맞고 누워 있던 양반이 이렇게까지 잘해 줄 줄이야.
물론 긴장하면서 교감신경 톤이 올라가서이긴 하겠지만.
아무튼, 그 덕에 강혁은 무사히 가슴을 열 수 있었다.
작디 작은 아이의 가슴 속엔, 역시나 조그마한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주 힘겹게.
바르르 떨면서.
‘바르르 떨면서?’
그 순간 댄이 비명을 질러 댔다.
“혀, 혈압 안 잡힙니다!”
아까 에이 라인을 달아 놓은 보람이 있기는 했다.
혈압의 변화를 당장 알아낼 수 있었으니까.
“이런 젠장! 내가 쥐어짤게! 카심은 제세동기 들고 와!”
“어……. 그거……. 네!”
“한 교수님은 흔들리지 않게 꽉 잡아요. 교대해 달라고 하면 교대하고!”
“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