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480)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480화(480/1120)
480화 준비 (1)
톡톡.
원래 같았으면 제아무리 연골이라 해도 드릴로 구멍을 뚫는 게 옳았다.
그 후에 철사나 두꺼운 실로 봉합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 여기서는 그런 원칙을 다 지킬 수가 없었다.
일단 수술실 자체도 양압 환기가 안 되는 상황 아닌가.
그 바람에 바깥의 공기가 무방비로 술술 들어왔다.
다들 항생제는 믿자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실로 한심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게 되는구나, 진짜.”
해서 강혁은 원래 코 수술 할 때 정말 가끔 쓰이는 송곳 같은 것으로 연골을 뚫어 대고 있었다.
그걸 본 한유림은 혀를 내둘렀고.
이놈은 블랙 워터스에서 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임기응변에 강한 걸까.
이런 걸 볼 때마다 과연 어떤 걸 하는 곳인지 못내 궁금해졌다.
‘나도 나중에 가 볼까?’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었는데, 역시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아니지, 내가 미쳤나.’
한유림은 그의 생각대로 미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이곳만 해도 정신이 나갈 정도로 힘든데.
어찌 총탄이 날아드는 곳으로 간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되지, 그럼. 잘해야 되긴 하지만.”
강혁은 정말 바늘이 딱 들어갈 정도로 작은 구멍을 뚫어 놓으며 대꾸했다.
그러면서도 손은 단 1mm도 떨지 않았다.
사람이 다 잘할 수는 없는 법일 텐데.
이놈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후. 이제 다 뚫었고. 실 통과시킵니다.”
“그래. 내가 위에서?”
“그러죠.”
“오케이.”
살갗을 봉합할 때는 미리 실을 통과시켜 둘 필요는 없었다.
삐뚤어지지 않게 중간중간 땀을 뜨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모든 구멍에 실을 통과해 두진 않는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뼈나 연골을 봉합할 때는 얘기가 좀 달랐다.
이건 단단한 조직이라 한 번 당겨져서 닫히면, 그때 가서 실을 통과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슥.
슥.
한유림이나 강혁이나 그러한 사정에 관해서 알 만큼 다 아는 사람들 아닌가.
이후로는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고도 척척이었다.
곧 둘은 각기 할당받은 지점에 대한 술기를 거의 동시에 끝마칠 수 있었다.
“됐어?”
“제가 한 교수님보다 늦는 거 봤어요?”
그냥 좀 ‘네’라거나 하다못해 ‘응’이라고 하면 좀 좋단 말인가.
어쩜 같은 말을 해도 이렇게 싸가지 없게 할 수 있을까.
한유림은 이것도 재주는 재주란 생각에 한숨을 쉬었다.
“어휴.”
“어휴 뭐.”
“아냐. 닫어, 이제.”
“좋아요.”
아무튼, 둘은 방금 통과시켜 둔 실들을 하나하나, 너무 장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주의해 가면서 잡아당겼다.
그러자 곧 아이의 벌어져 있던 가슴이 가운데로 오므라지듯 닫혔다.
톡.
아주 가벼운 충돌음을 내면서.
“자, 활력징후는 어떻지?”
강혁은 완전히 닫기 전에 댄을 바라보았다.
혹 닫고 나서 문제가 생기면 대처하는 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혁이 볼 때, 수술은 완벽하긴 했지만.
또 동맥관 개존증은 그것만 해결해 주면 거의 바로 좋아지는 질환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사람 생명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칠 수 없지 않겠는가.
“아, 아주 좋습니다.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 약도 안 들어가는데 아예 변화 없습니다.”
“좋아.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잘 좀 봐 줘.”
“네, 교수님. 걱정 마십쇼.”
강혁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댄에게서 시선을 떼어 냈다.
‘뭐……. 닥터 댄이라면 믿을 수 있지.’
박경원처럼 알아서 다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긴 했다.
아마 박경원이었으면, 아이 수술하면서 단 한 번도 따로 묻거나 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오히려 이제 환자 마취 관리에서 심지어 중환자 치료에 있어서도 강혁보다도 더 우수한 면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닥터 댄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박경원이 괴물이어서라고 보면 되었다.
‘이만하면……. 운이 좋은거야.’
한구에서 이런 마취과 의사라니.
분에 넘치는 실력 아니겠는가.
강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실을 꼬아 쥐었다.
“타이 하죠.”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실을 꼬아 쥔 한유림을 바라보면서였다.
“좋아. 빨리 끝내자. 빨리 한다, 빨리 한다 했는데, 벌써 2시간 다 되어 가.”
“그렇네. 내가 요새 좀 무뎌졌나.”
“그럴 수도 있어. 확실히 수술 건수는 줄었잖아.”
“여기서 한국대학교 있을 때처럼 하면 환자랑 우리 다 죽어요.”
“그건 그렇지.”
기묘한 관계의 두 사내는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이어 나가며 타이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실로 완벽한 솜씨였는데, 그런 둘을 보면서 카심과 댄은 잠시 눈을 맞추었다.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방금 나눈 대화가 어이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미친놈들이……. 개흉 수술을 2시간 안에 끝내고……. 뭐? 늦어져? 마취 시간도 포함했는데?’
‘돌았나……. 이게 무뎌진 거라고? 그럼 전에는 대체 어땠다는 거야.’
‘한국은 다 이러나……. 유학을 한국으로 갔어야 되는데…….’
‘나중에 기회되면 진짜 꼭 한번 가 보고 싶다…….’
댄과 카심은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강혁과 한유림은 타이를 마무리했다.
과장 조금만 보태면 단 한 번도 갈라진 적 없어 보일 정도로 깔끔한 봉합이었다.
애초에 절개 자체가 완벽했다는 얘기였는데, 그게 진짜 놀라운 것이었다.
톱도 아니고 그냥 가위로 자른 거였으니까.
“됐어. 이제 피부 봉합……. 음.”
강혁은 봉합 기구를 한유림에게 건네주려다 말고 침음을 흘렸다.
생각해 보니까 아이가 너무 어려서였다.
‘한 교수님 봉합도 좋긴 좋아. 좋은데…….’
특히 심장 파열 환자 수술할 땐, 이 사람이 미쳤나 싶을 정도로 잘하긴 했더랬다.
근데 지금 보니까 약간 더 는 거 같기는 한데 그때랑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아지경 속에 자기도 모르게 한 모양이었다.
‘그때처럼 하면 모르겠지만. 평소 실력이면 단단해도……. 흉은 질 거야.’
다행히 아이가 털 많이 나는 중동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흉터가 없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거……. 이건 그냥 제가 닫을게요.”
“어, 그 말은.”
해서 말을 꺼냈더니, 한유림이 상처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를 믿을 수가 없지.”
이딴 식으로 중얼거리면서였다.
아이 상태가 확 좋아지니까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약간의 장난기가 담겨 있었다.
“왜 그래, 또. 그럼 해 볼래요?”
“아니, 아냐. 함 보지 뭐. 나도……. 뭔가 알 거 같거든? 지금? 근데 직접 움직이는 거론 모르겠어.”
“알 거 같다고?”
“어제 나 여기 눕혀 놓고 어? 막 물어봤잖아. 그거.”
“오.”
강혁은 잠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카심에게 5번 실을 받으면서였다.
‘그렇게 늘면……. 좋긴 하겠지.’
속으론 실력이 더 늘어난 한유림을 생각하면서 방금 받아 든 실을 바라보았다.
원래 가슴쪽 살을 이렇게 가는 실로 꼬매진 않지만.
아이는 신생아 아닌가.
그것도 아프가 점수가 그렇게 높지 않은.
움직임 거의 없을 테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터였다.
“그럼 봐요. 눈 똑바로 뜨고.”
“어, 알지. 보고 있어.”
“좋아, 그럼.”
그래서 강혁은 봉합에 돌입했다.
평소보다는 조금 느린 봉합이었다.
한유림에게 봉합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시간은 있어.’
아이에게 이런 선천성 질환이 있었다는 건 물론 불행한 일이었지만.
태어나자마자 강혁에게 발견되어 곧장 치료받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자신이 너무 광오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마 강혁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는 반드시라는 단어를 써도 좋을 정도의 확률로 죽고 말았을 터였다.
‘그러니까……. 한유림 교수님을 키워 주자.’
그리고 강혁은 꼭 자신이 아니라 한유림만 있어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게 하고 싶었다.
그래, 한국에 두고 올 수 있었던 양재원처럼.
여전히 뺀질거리긴 해도 실력 하나만큼은 최고 아니던가.
아직 강혁이 보기엔 조금 모자라긴 했지만, 그래도 양재원은 뒤를 맡길 수 있었다.
만약 한유림이 그렇게 되면 이곳 한구 병원은 물론이고 앞으로 가게 될 어떤 곳이라도 크나큰 도움이 될 터였다.
툭.
그런 마음가짐으로 움직인 바늘이 아주 천천히 움직여 아이의 살갗을 뚫었다.
그리곤 곧 적절한 깊이에서 빠져나와 정확히 반대편의 같은 깊이를 툭 하고 뚫었다.
지이익.
뚫는 것만 심혈을 기울일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어린아이의 피부를 봉합할 때는 당기는 것도 주의해야 했다.
그냥 아무렇게나 당기다가는 그것만으로 피부에 상처를 낼 수 있었다.
“음.”
한유림은 여태 정말 수도 없이 보아 왔던 강혁의 봉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본 봉합인데, 오늘은 뭔가 좀 다르게 느껴졌다.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강혁의 움직임의 이유를 어쩐지 가슴으로 알 거 같다고나 할까.
‘그래, 거기서……. 그렇게. 옳지.’
심지어 어떻게 움직일지조차 보이는 느낌이었다.
개안이라도 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는데, 진짜 이상한 일이었다.
‘이게 무슨 만화 같은 일이야.’
물론 간혹 실력이 계단식으로 느는 경우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계단의 턱이 턱없이 낮아서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그 계단이 몇 번인가 반복되었을 때 쯤, 환자의 예후로 체감하게 되는 수준이라고나 할까.
수십 년간 외과 의사로 살아온 한유림조차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툭.
한유림이 자신의 성장에 경악을 품은 사이, 그러니까 조금은 정신 나간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강혁의 봉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했다.
“도움이 좀 됐어요?”
그리곤 그가 묻는 말에 한유림은 감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런 거 같은데?”
“오. 정말요?”
“어. 다음엔 진짜 좀 달라질 거 같아.”
“이야……. 다음에 못하면 어쩌려고 이러신데.”
“넌 말 좀……. 아니다, 보여 줄게. 최대한 빨리.”
“그런 말은 하지 말고. 안 힘들어요? 연속 두 번 수술했는데. 게다가 한 교수님 지금 좀 아프지 않아?”
제아무리 적절한 배농이 들어갔다고 해도, 일단 그 농이 찰 정도로 염증이 심각했던 상황 아니었던가.
몸이 아주 멀쩡하다고 하면 그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까 다시 좀 아픈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일단 좀 쉬라고. 아, 댄. 아이 깨우자.”
강혁은 장갑 낀 손으로 한유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미 수술이 다 끝난 마당인지라, 오염이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 강혁의 말에 댄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 깨워요?”
“응. 깨워서 나가야지. 지금 밖에 벤틸레이터 없어.”
“아…….”
심장 파열에, 종아리 결손 환자에, 산모까지.
이미 두 개는 돌아가고 있었고, 다른 하나 또한 필요하면 바로 달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모자라는 뜻.
이 상황에서 애까지 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괜…… 괜찮을까요?”
“괜찮아. 수술 내가 했어. 아이는 괜찮을 거야.”
“음…….”
댄은 강혁의 말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가 가지고 있는 의학 상식으로는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강혁이 괜찮다고 하니까 정말 괜찮을 거 같았다.
“알겠습니다. 깨우겠습니다.”
“좋아. 한 교수님은 나랑 같이 튜브 뺄 준비해요.”
“어? 어.”
“그리고 가서 쉬어. 오늘은 제발 환자 그만 오라고 기도도 좀 하고. 교회 다닌다고 했던가?”
“어, 그렇지. 너 땜에 못 간 지 몇 달 되긴 했는데.”
“그럼 안 들어주실 수도 있겠네.”
“재수 없는 소리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