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49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495화(495/1120)
495화 양재원 (1)
“센터장님, 이제 가세요?”
어엿한 중증외상센터 2팀의 선임 간호사가 된 지민이 재원을 향해 물었다.
재원은 입에 빵을 문 채 뒤를 돌아보았다.
약간은 얼빵한 표정을 지은 채였다.
“읍읍.”
아마도 응이라는 뜻일 터였다.
척 하면 척 통하는 사이가 된 지민은 다 알겠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좀 빼고 말해요.”
물론 장미는 그런 꼴을 더 두고 보지 못했다.
어째 이 인간은 기껏 센터장씩이나 되어 놓고도 이러고 있단 말인가.
실력이야 일취월장이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늘었지만.
여전히 칠칠치 못한 건 변하지 않았더랬다.
“어, 빼고 말하면 되는구나. 고마워.”
재원은 그렇게 장미가 빼 준 빵을 바라보곤 허허하고 웃었다.
장미는 빵에 묻은 재원의 진득한 침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조금은 부끄러워해도 좋을 텐데.
재원은 장미와 이미 볼꼴, 못 볼꼴 다 본 사이였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지민을 돌아보았다.
지민 뒤에는 사대진과 이동주 그리고 김기봉이 있었는데, 그중 김기봉은 방금 온 환자 때문에 뛰어가는 중이었다.
“네, 센터장님.”
“음.”
재원은 잠시 그들을 비롯한 여러 팀원을 둘러보았다.
이만한 인원이 모이면 누구 하나 모자란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이중에서는 전혀 그런 사람이 없었다.
‘당연하지.’
이 사람들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백강혁이 손수 거두고 키운 인재들이었다.
배울 때야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험악했지만.
그 결과는 확실했다.
다들 일류 외상 외과 전문의가 되어 있었고, 또 전문 의료진이 되어 있었다.
‘우리 센터가 세계 제일이야.’
덕분에 재원은 이들에게 센터를 잠시 맡기고 떠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얼굴에 자연히 미소가 띄워졌다.
훈훈한 분위기의 연속이었는데.
강혁 밑에서 자란 이들답게, 이런 게 딱히 익숙하지가 못했다.
“무게 잡지 말고 그냥 말해요, 형.”
그중에서도 특히 직계에 속하는 사대진이나 이동주가 그랬다.
둘 중에서는 정형외과 출신인 이동주가 더했고.
재원은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가며 입을 열었다.
“형이라니 동주야. 나 센터장이야. 센터장. 몰라?”
“사석에서는 형이라고 하라면서요.”
“여기가 어떻게 사석이냐…… 병원인데.”
“사복 입고 있어서 사석인 줄 알았네. 미안합니다, 센터장님.”
‘엎드려 절 받기’라는 게 이런 기분일까.
재원은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일 맡기고 떠나는 처지에 너무 한 것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대신 그나마 말이 통하는 사대진을 바라보았다.
“대진아.”
“네, 형. 아니, 센터장님.”
“휴.”
결국, 이놈도 똑같은 놈이라는 것만 확인한 셈이 되고야 말았지만.
아무튼, 재원은 이왕 말 꺼낸 김에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나 없는 동안 센터 잘 보고 있어. 뭔 일 생기면 연락하고.”
“아, 물론이죠. 염려 붙들어 매세요. 센터장님 없어도 저희 문제없습니다.”
“방금 그 말은 약간 상처 되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하하.”
재원은 낄낄 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얼굴로 웃어 대고 있는 대진을 보며 왜인지 모르게 강혁을 떠올렸다.
‘왜 그렇게 때리고 싶어 했는지 이제는 알 것도 같습니다, 교수님…….’
제자도 아닌, 후배가 깐족대는 것도 이렇게 빡치는데.
쥐알만 한 제자가 깝칠 때는 대체 어느 정도로 빡칠까.
그것도 강혁같이 성질 나쁜 사람이.
새삼 그가 여기서 얼마나 참고 지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삭히고 있으려니 장미가 재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양 선생님. 차 왔어요. 가야죠. 비행기 놓치면 어쩌려고.”
“아, 왔구나. 그래, 나 간다. 기껏해야 2주니까…… 잘 버티고 있어.”
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때 외과 천사로 불리던 사람답게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없다고 대충 하지 말고. 갔다 와서 문제 있으면 다 죽어.”
그에 반해 장미는 괜히 조폭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려 주었다.
“네, 센터장님, 수 간호사님!”
센터 인원은 그런 둘을 향해 일시에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원년 멤버라 할 수 있는 둘은 말 못 할 감회가 샘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땐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새 식구가 이렇게나 많이 늘어 있었다.
“아, 팔 떨어지겠다. 선배, 장미 선생님. 안 와요?”
그런 둘을 향해, 벌써 짐을 들고 로비 쪽에 가 있던 경원이 투덜거렸다.
그러게 같이 인사 좀 하라니까 민망하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결국, 사서 고생인 셈이었다.
“어, 갈게.”
“갑니다.”
우여곡절 끝에 셋은, 그러니까 이 중증외상센터의 원년 멤버들은 택시에 올라탔다.
앞자리는 늘 준비성이 완벽한 경원이었다.
“공항이요.”
“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경원의 말에 기사는 빙그레 미소를 지은 채 액셀을 밟았다.
부우웅.
무려 2주 치의 짐을 실은 택시는 곧 병원 응급실 로비 앞을 떠나갔다.
지금 당장 맡은 환자가 없던 사대진과 이동주는 로비 앞까지 나와서 떠나가는 택시 뒤를 바라보았다.
아까 재원과 장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우리 걱정하면서 간 거 맞지?”
먼저 입을 연 건 이동주였다.
진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사대진 또한 그 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저 형 진짜 감 많이 죽었다.”
“그러게. 무려 백 교수님 만나러 가는 건데…… 누가 누굴 걱정해.”
불과 한 몇 달 안 봤다고 강혁에게 당한 걸 잊었다니.
사람이 센터장 되더니 미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면 진짜 뒤지게 고생할 텐데.”
“파키스탄이라니…… 거길 무슨 관광 가듯이 생각하더라.”
“원래 대피해야 하는 곳이라며, 한구는.”
“외교부에서 안전은 책임진다고 하는데…….”
“백 교수님이랑 있는데 안전은 개뿔. 교수님만 조심하면 되지.”
“그것도 그렇네.”
둘은 한동안 대화를 이어 나가다, 뒤쪽에서 달려오는 지민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설마하니 밥 먹자고 저렇게 달려오지는 않을 거 아닌가.
무조건 환자 얘기라고 보면 되었다.
“가위바위보.”
그걸 본 사대진과 이동주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어차피 온종일 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순번을 정하는 것이 중증외상센터의 하루를 버티는 낙이었다.
“오케이. 내가 이겼어.”
단박에 이긴 이동주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1시간 안에 무조건 환자를 받게 될 테지만.
그동안이라도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려는 듯했다.
“아, 뭘까. 달려오는 게 지나치게 빠른데.”
그에 반해 사대진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지민이 다급한 얼굴로 외쳐 댔다.
“등산객, 낙상이에요! 헬기 출발했답니다!”
“아……. 알았어요. 자세한 건 가면서 들읍시다.”
“네, 팀장님.”
이미 재원에 대한 걱정은 간 곳 없었다.
머릿속엔 그저 환자가 어디를 어떻게 다쳤을까 뿐이었다.
“이동주 교수님! 논현 사거리 교통사고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레지던트 하나가 뛰어왔다.
그야말로 1분 정도의 차이였기에 이동주는 혀를 끌끌 찼다.
이러자고 가위바위보를 이긴 건 아닌데 하면서였다.
“인 카야? 아니면 아웃 카?”
물론 레지던트와 얼굴이 딱 마주치자마자, 진중한 얼굴로 사고 경위부터 따져 물었다.
인 카라면 조금은 여유가 있을 것이고, 아웃 카라면 그렇지 못할 터였다.
어쩌면 지금 당장 앰뷸런스에 탑승해야 할 수도 있었다.
“아웃 카 입니다!”
“이런 망할.”
“일단 앰뷸런스 가고 있다고 하던데……. 우리도 갈까요?”
“신고만 들어온 거야?
“네. 아직 현장에 요원 도착 못 했습니다.”
“음.”
이동주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뭔가 대단한 것을 떠올리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의 스승인 강혁을 떠올릴 뿐이었다.
‘백 교수님이면 어떻게 했을까.’
아웃 카(Out car).
즉 보행자 교통사고.
그 특성상 중상으로 이어지기에 십상이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사고의 대부분은 이 ‘아웃 카’일 정도였으니까.
‘그럼 갔을 거야. 가자.’
강혁이라면 환자가 위급할 거라고 생각되는 즉시 움직였을 터였다.
가서 마주하는 것이 이미 죽은 환자일지라도.
“야, 가자.”
“아, 네! 교수님.”
그러므로 이동주는 병원 앞에 주차되어 있던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레지던트와 함께 보조를 맡아 줄 응급 구조사와 함께였다.
강혁이 있을 때 들어왔던 친군데, 아직은 레지던트보다 손발이 훨씬 잘 맞았다.
“논현 사거리. 아웃 카래. 부상 정도는 아직 몰라.”
“아, 네.”
부르릉하고 시동을 거는 순간, 하늘 쪽에서는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의사로 살면서 저 소리가 익숙해질 거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못 했었는데.
이제는 한참 멀리서 들어도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저 헬기에는 아마도 사대진이 타고 있으리라.
‘땅에서 하늘에서 아주 바쁘구만.’
이동주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 * *
“양 센터장님. 오랜만이에요.”
“어? 의원님?”
재원은 공항에서 무려 이현종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초선 의원, 그러니까 정치 새내기이긴 했지만.
그 영향력은 여느 중진 의원 못지않았다.
워낙에 대국민적인 지지가 있어서였다.
“얘기 들었습니다. 백 교수님 만나러 가신다고요?”
“어, 네.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워낙 바쁘시니까, 이렇게라도 얼굴 뵈러 왔죠.”
“바쁘신 건 의원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생명의 은인 보러 오는 게 무슨 대수라고요. 당연한 일이죠.”
아마 지지가 흔들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인성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야죠. 자, 여기.”
“이건…… 이게 뭐죠?”
재원은 이현종이 내민 편지 봉투 비슷한 것을 쥔 채 되물었다.
이현종은 하하 웃고는 우측에 있던 사람을 가리켰다.
단연코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었으니까.
“주한 파키스탄 대사세요. 이번 일에 대한 협조 공문입니다. 뭐……. 제가 알아보니까, 벌써 백 교수님이 현지에서도 손을 쓰셨던데. 기왕이면 준비는 하면 할수록 좋으니까요.”
“아……. 대사시구나. 안녕하십니까, 양재원입니다.”
재원은 강혁이 보면 놀랄 만큼 유창해진 영어를 구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사는 그런 한국식 예법에 익숙한 듯, 마주 고개를 숙이곤 손을 내밀었다.
“한구 지역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만…… 그쪽 치안이 그리 좋지는 못합니다.”
“그런가요?”
강혁에게는 치안에 관한 소리는 전혀 듣지 못하지 않았던가.
시간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좀 알아보기라도 했을 테지만.
아쉽게도 재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건 뒤에 서 있는 장미나 경원도 마찬가지였다.
대사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재원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설마 그것도 모르고 가겠나 싶어서 일단 준비했던 말을 이었다.
“그래도 걱정 마십쇼. 최대한 협조하라고 전화까지 넣었으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몸 성히 잘 다녀오십쇼.”
“네, 알겠습니다.”
대화가 끝나자, 이현종은 반대편에 있던 외교부 직원 쪽을 가리켰다.
“출국 심사는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잉? 이래도 되나요?”
“일종의 대사로 가는 거니까요. 파키스탄에서 우리나라 이름을 드높여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데.”
반쯤 놀러 간다고 생각했던 재원은 목을 한 바퀴 돌리며 대꾸했다.
결론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이제 와서 어깨가 무거워질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강혁이 준비한 축제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