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화(5/1120)
5화 미친개 (3)
“항문, 넌 내 반대편에 서고. 이쪽도 레지던트 때는 다 해봤지?”
강혁은 어느새 메스를 쥐고 환자의 우측에 서 있었다.
재원은 당연하게도 강혁의 반대편, 그러니까 좌측에 서 있었다.
“네. 해봤습니다.”
“비장 절제술도?”
“보조는…….”
“아, 항문이지, 참. 그래……. 손상 도구는 사시미였고. 길이는 5cm. 깊이는 대략 10cm 이상.”
“깊이가 보이십니까?”
“아까 피 나는 거 보면 대강 알지. 이건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거라, 그냥은 몰라.”
“아, 네…….”
재원은 아주 태연하게 경험 운운하고 있는 강혁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자신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솔직히 아까 정장 입고 있을 땐 그저 또래로만 보였으니까.
“아무튼……. 이제 절개해야지. 좌우로 당겨.”
“네.”
재원은 강혁의 말에 따라 길게 난 상처를 좌우로 벌렸다.
눌려 있었기 때문에 피가 그나마 덜 나고 있었는데, 당기니까 줄줄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틀어막고만 있을 때는 아니었다.
이젠 상처를 열고 실제로 피 나는 곳을 잡아야 할 때였다.
지이이익.
강혁은 길게 난 상처의 위, 아래에 2cm씩 절개를 더 넣었다.
“이제 전기칼.”
“네.”
강혁의 말에 간호사가 전기칼을 들려주었다.
강혁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방금 자신이 절개한 틈새로 전기칼을 들이밀었다.
타다다다닥.
강혁이 전기칼을 작동하며 절개를 이어나가자 하얀 연기와 함께 절개 면이 끊기듯 잘려나갔다.
쉬이익.
재원은 꽤 센스 있는 편에 속하는 레지던트였던 모양이었다.
연기가 미처 강혁의 코에 닿기 전에 모조리 석션해 내고 있는 것을 보면.
“항문.”
“네?”
“이렇게 하면 이름 불러줄 수도 있겠다.”
“아, 네…….”
재원은 당연한 걸 해주겠다고 하면서 생색을 내는 강혁에게 뭐라 답해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 이름이 양재원인데 항문으로 부르는 걸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재원은 이 짧은 생각 하나도 제대로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
강혁의 손놀림이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보조를 맞추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항문, 이제 복막 걸어서 당겨.”
“네.”
“아니, 아니! 위 말고 아래쪽!”
“아, 네.”
“그렇게 말고……. 너는 피 나는 곳이 안 보이니?”
강혁은 그리 말하면서 상처 안쪽을 가리켰다.
재원이 보기엔 그저 검붉은 핏덩이뿐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뭔가 다른 거라도 보이는지 있는 대로 성질을 내고 있었다.
“아니, 됐다. 안 보이면 말아. 이거나 걸어서 좌우로 당겨.”
“네.”
“그래……. 지금 그 정도로. 더 당길 필요는 없어. 왜곡돼서 혈관 숨을 거 같아.”
강혁은 그리 말하면서 재원이 내려놓았던 석션을 집어 들었다.
반대편 손으로는 핀셋을 이용해 거즈를 집고 있었다.
그는 석션으로는 이미 흘러나온 피를 빨아들이고, 거즈는 단면을 눌러 닦으면서 차츰차츰 더 깊은 곳을 향해 들어갔다.
‘대체 뭐가 보이냐는 거야…….’
재원은 그런 강혁의 기구 끝을 뚫어지도록 바라보았다.
진짜 뭐가 보이는가 해서였다.
하지만 별 보람이 없었다.
그저 눈을 깜빡이지 않은 탓에 눈만 시릴 뿐이었다.
“여깄네.”
하지만 강혁은 핏덩이 사이에서 핀셋을 이용해 무언가를 톡 하고 집어내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던 핏물이 ‘훅’ 하고 줄어들었다.
체감상 새어 나오는 핏물이 거의 70%에서 80%는 줄어든 기분이었다.
“어?”
“뭐가 어야. 너 피 안 잡아봤어?”
“잡아…… 봤습니다.”
외과 의사치고 복강 내 출혈 안 잡아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어느 정도의 출혈을 잡아봤는가에 대한 차이야 당연히 있긴 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재원도 한국대학교 병원에서 외과를 수료한 인재 중의 인재였다.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은 기분이 나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이게 안 보여?”
“아까부터 뭐가 보이냐는 건지…….”
“흠.”
강혁은 자신이 집어 둔 핀셋 끝을 바라보았다.
핀셋에 잡혀서 단면이 눌린 혈관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이런 건 보통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나.’
강혁은 그리 생각하며 석션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손바닥을 내밀었다.
“켈리 줘요.”
“네, 선생님.”
강혁은 간호사가 건네준 켈리를 이용해 조금 전까지 핀셋으로 잡고 있던 혈관을 물었다.
지익.
강혁이 켈리를 살짝 당기자, 비로소 숨어 있던 혈관의 단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강혁은 그 혈관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비장 동맥 줄기 중 하나네. 이게 잘렸으니까 피가 그렇게 나지.”
“아…….”
“항문, 넌 뭘 좋다고 감탄하고 앉았어. 이거 안 묶냐? 나 계속 들고 있어?”
“아, 네네. 저 실 좀 주세요.”
재원은 바로 제 실수를 인정하고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간호사는 강혁이 켈리를 찾는 그 순간부터 이미 실크로 된 실을 문 기구를 준비해 둔 참이었다.
덕분에 바로 건네줄 수 있었다.
“여깄습니다.”
“네. 교수님, 바로 타이하겠습니다.”
“어, 해 봐.”
“네.”
재원은 신중한 표정으로 실로 강혁이 들고 있는 켈리를 빙 두른 채 타이를 시작했다.
톡, 톡, 톡.
속도도 빠르고 정확했으며, 무엇보다 단단한 타이였다.
강혁은 꽤 만족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항문. 잘하네?”
“네 뭐……. 감사합니다.”
“맨날 타이만 했나 봐? 자폐가 있나?”
“아니……. 아뇨. 그건 아닙니다.”
“왜 그런 애들 있잖아. 의국 안에서 맨날 타이만 하는 애들.”
강혁은 단추고 뭐고 뭐 걸 것만 있으면 타이를 해대던 동기를 떠올렸다.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졸국(의국을 졸업하다, ‘전문의를 따다’와 동의어)할 때가 되어서야 진단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스퍼거 신드롬이라는 진단으로.
“너도 그런 타입이었어?”
“아, 아뇨. 전 그냥 원래 타이는 좀 합니다.”
“그래? 음……. 머리보다는 아무래도 몸 쓰는 걸 좀 더 하는 타입이구나, 너.”
“아뇨……. 저 1등이라니까요…….”
“아무튼, 수술하는데 누가 이렇게 떠드냐?”
“네?”
재원은 ‘지금 말 시킨 게 누군데 이런 소리를 하나’ 하는 표정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강혁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벌어진 상처 안쪽을 다시 후벼 파고 있을 따름이었다.
“피가 아까보다 좀 더 스며 나오는데. 마취과!”
“에?”
“혈압 얼마지?”
“아……. 90. 아니 95입니다.”
강혁의 물음에 뒤쪽에 숨어서 카톡이나 하고 있던 선우가 부리나케 답했다.
“95. 이 환자 저혈량 쇼크에 아직 피 완전히 못 잡았는데 그 정도면…… 너 승압제 썼냐?”
강혁은 상처에서 눈을 떼고 선우 쪽을 노려보았다.
눈에서 불이 나는 듯했기 때문에 선우는 황급히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아까……. 혈압이 낮길래…….”
“얼마나.”
“60…….”
“그렇다고 승압제를 써? 심낭 압전 있어서 천자까지 한 환자를?”
“그…….”
선우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잘못이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아, 좀 편하게 가보려고 승압제 썼더니……. 그걸 또 잡아내네.’
출혈량으로 혈압의 변화를 알아내다니.
미친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미친놈은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너 이름 뭐냐?”
“음…….”
“됐어. 말 안 해도 돼.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알겠지. 지금 전화해서 다른 마취과 의사 불러. 그 사람 오면, 넌 나가.”
“아, 그건 좀…….”
“닥쳐. 난 제 한 몸 편해지자고 환자한테 해 되는 짓 하는 새끼는 의사라고 생각 안 하거든. 수술실에 의사 아닌 놈이 있으면 되겠어? 빨리 전화해서 다른 사람 불러. 그리고 항문.”
강혁은 서릿발 같은 눈빛으로 재원을 돌아보았다.
덕분에 재원은 별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움찔거렸다.
“네, 네.”
“저 새끼 사고 쳐서 시간 확 없어졌으니까. 속도 낼 거야. 정신 바짝 차리고 부지런히 따라와.”
“아, 네.”
“봉합 기구 줘요. 바늘은 2번으로. 비장 부분 절제술 대신 봉합으로 출혈 틀어막습니다.”
“엇. 네.”
강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간호사에게 봉합 기구를 넘겨받았다.
2번 바늘은 복부 살가죽을 봉합할 때나 쓰는 아주 굵고 커다란 바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배 안에다 사용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경우라고 보면 되었다.
일단 좁은 수술 부위 내에서 쓰기가 어려웠다.
푹.
하지만 강혁은 그런 생각에 반박이라도 하듯이 망설임 하나 느껴지지 않는 손길로 봉합 기구를 움직였다.
푹.
강혁의 손이 유려하게 움직임에 따라, 바늘은 근처 피가 나고 있는 비장을 어김없이 뚫고 들어갔다.
‘이게……. 이래서 되는 건가?’
처음엔 그저 무의미한 손놀림처럼만 보였다.
아니 오히려 환자의 회복을 방해할 것만 같았다.
바늘이 뚫고 지나갈수록 구멍이 난 부위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으니까.
푹.
하지만 강혁이 세 번가량을 찔렀을 때는 재원도 강혁이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예 비장 모양을 우그러뜨리면서 피를 막는 거구나……. 누르면 피는 멈추니까…….’
비장은 사실 제거해도 생존할 수는 있었다.
몇몇 감염에 취약해지긴 했지만.
거기에 봉합이 굉장히 까다로운 장기였다.
오래되고 쓸모없어진 혈액 세포를 죽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피를 아주 많이 함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외과 의사들이 수술하다가 제일 빨리 포기하는 장기에 속했다.
덕분에 재원은 이런 방식으로 비장을 살려내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뭘 보고만 있어. 실 안 잘라?”
“아, 네. 컷.”
“좋아. 이제 피는 다 잡았고. 너 피부 닫을 수 있지?”
“물론입니다.”
“그럼 그거 닫아. 난 위로 가서 가슴 열고 있을 테니까.”
“혼……. 혼자서요?”
“넌 칼질 둘이서 하니?”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조도 없이 가슴을 연다니.
이건 거의 미친 소리나 다름없었다.
해서 재원은 최대한 빨리 닫고 올라가기 위해 봉합 기구 쥔 손을 부리나케 놀려대기 시작했다.
강혁은 그런 재원을 뒤로하고 환자의 가슴 쪽으로 올라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선우가 똥 씹은 표정으로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심낭 압전이 있었고, 복부 자상으로 저혈량성 쇼크가 있었다는 거죠?”
“그래. 몇 번을 말해야 알아? 암튼, 그렇고. 승압제 한 번 들어갔어.”
“네? 승압제요? 심낭 압전…… 있었는데요?”
“새꺄, 필요하니까 썼지. 네가 펠로우냐? 레지던트 새끼가 어디서 주제넘게.”
“죄, 죄송합니다.”
새로 내려온 마취과 의사는 선우보단 나이가 더 많아 보았다.
하지만 직급은 훨씬 아래인 모양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혼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 역시 강혁이 보기엔 마음에 안 드는 일이긴 했지만 적어도 환자와 관계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두기로 했다.
게다가 이것저것 신경 쓰고 있기에는 갈 길이 너무 급했다.
“자, 메스. 가슴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