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0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04화(504/1120)
504화 드림 팀 (4)
사각.
강혁은 아이리스를 이용해 혈관을 박리해 나갔다.
아이리스가 워낙에 작은 가위 형태의 기구였기 때문에 멀리서는 대체 뭘 하는 건지 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어느새 제인과 카심을 비롯한 모두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오면서 발판도 다들 들고 왔기 때문에 뒤쪽으로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각.
하지만 강혁도 재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혈관을 박리해 나갈 따름이었다.
‘괜히 인터오세우스 동맥이 피판 만들 때 인기 없는 게 아니지.’
사실 노동맥보다도 더 중요도가 떨어지는 동맥이라고 보면 되었다.
당연히 있는 게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어차피 뼈 안으로 들어가는 동맥은 좌우로 달리는 노동맥과 자동맥에서 충분히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팔뚝 살로 피판을 뗀 때 거의 쓰이지 못하는 걸까.
“아, 거 더럽게 깊네.”
방금 강혁의 투정처럼 채취 자체가 아주 어려워서였다.
사실 재원도 생각만 해 봤지 실제 채취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아예 인터오세우스 동맥을 보는 게 해부학 시간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 뒤로 엄청 돌아가네 이거.”
특히 앞쪽 분지보다는 역시 뒤쪽 분지가 문제였다.
애초에 그래서 4cm 정도만 채취하자고 한 거긴 하지만.
역시 어렵긴 했다.
‘와, 그래도 이걸 하네. 나는 이렇게 하려면 시간 두 배는 더 걸릴 거 같은데.’
하지만 백강혁은 백강혁이었다.
투덜거리면서도 아이리스를 쉴 새 없이 놀려 대고 있었다.
크기는 작지만 그만큼 끝이 무지하게 날카로운 기구인데, 그 끝을 먼저 훅 하고 찔러서 전진시키고 벌려서 혈관을 박리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저러다 끝이 혈관이나 다른 곳을 찌르게 되면 바로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극히 위험한 술기였다.
‘그래, 지금. 지금은……. 이거 보통 사람은 절대 찌를 수 없는 거 아닌가?’
재원은 그런 강혁의 술기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을 게 뻔한 그런 술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아무리 봐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지점들이 곳곳에 산재했다.
아직 불가능해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은 인간이라 불가능해 보이는 지점이라고 해야 했다.
‘확실히 한 교수님 말이 맞아. 이 사람은 좀 이상해.’
이상하다기보단 지나치게 뛰어난 거긴 하지만.
아무튼, 재원은 제멋대로 표현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이 배알이 꼴리는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려워요? 지금이라도 다리 닦아요?”
그 방식은 당연히 시비였다.
그리고 그 시비의 효과는 대단했다.
“이 새끼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초 치냐?”
“아니, 하도 투덜거리니까. 역시 키메라는 다리죠.”
“시끄러워. 누가 기도를 다리로 재건해. 이 자식은 하여간 잘하나 싶으면 엉뚱한 소리 해. 이거 한국에 다시 돌아가야 되나.”
“아, 아뇨. 한국은…….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결국, 재원의 패배였다.
강혁의 귀환이라니.
환자들 입장에서야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는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일 아니던가.
잠시나마 나이 들어서 좀 유해졌나 싶었지만, 맞으면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체력만 더 강해진 거 같았다.
‘안 되지, 안 돼.’
재원은 애원하는 듯한 장미의 눈빛을 보면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됐고, 이제 뒤는 다 됐어. 앞에 보조해.”
“아, 네. 햐……. 이거 진짜 깔끔하게 됐네요.”
“영혼 없는 아부하지 말고. 너가 이런 거에 놀랄 짬이냐? 솔직히 너도 할 수 있잖아.”
“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 빨리는 못 하죠.”
“그건……. 뭐 어쩔 수 없지.”
강혁은 ‘노력하면 될 거야’라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미 재원은 강혁과 같은 일종의 초능력이 없는 인간에서는 거의 한계까지 짜 낸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에 한유림처럼 고열에 시달리게 만들면 뭔가 벽을 뚫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와……. 말을 이렇게 하시네. 어쩔 수 없대.”
“그렇지 뭐. 난 천재고. 넌 아니니까.”
“와…….”
“아무튼, 앞 보조하라고. 환자 앞에 두고 자꾸 잡담 꺼낼래?”
“알겠어요. 알겠어. 보조합니다. 어차피 손은 한 번도 안 쉬었구만.”
“시끄럽다고. 아 저거 입을 때릴 수도 없고.”
수술실만 아니었으면 때려도 벌써 한 열 번은 때렸을 텐데.
강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앞 분지를 박리해 나갔다.
아까처럼 아이리스를 이용한 박리였는데, 아무래도 접근이 더 쉽다 보니 훨씬 속도가 빨랐다.
‘미친……. 저걸 저렇게 박리한다고?’
모두의 경악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술기였다.
‘이런 게 원래 되는 건가? 외과는 다 이래? 아니면 한국 의사들이 다 이런가?’
그중에서는 요다처럼 얼토당토않는 오해를 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아주 황당해할 것만은 아닌 게, 그가 평생 본 한국인 의사가 딱 셋이지 않은가.
그 셋이 하필이면 백강혁, 한유림 그리고 양재원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일는지도 몰랐다.
“됐어. 너가 어디 묶을래.”
“제가 메인 분지랑……. 아래쪽 묶죠.”
“좋아. 실 줘.”
“네. 여기.”
장미는 거의 동시에 손을 내민 둘을 향해 각각 봉합 기구를 건네주었다.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딱 쥐고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한 후였다.
‘이 수술을 따라가면서 저런 거까지 된다고?’
아까부터 강혁이나 재원보다는 계속 장미만 보고 있던 카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설마 이 이상은 뭐가 없겠지’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까 백 교수님이 처음에 그렇게 한숨을 쉬었지…….’
그게 좀 줄어들길래 이제 내 실력이 좀 늘었나 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라 그냥 강혁의 인내심이 늘었던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지켜본 것만 하더라도 장미와 카심의 실력 차는 어마어마했다.
툭.
툭.
강혁과 재원은 곧 각기 맡은 혈관들을 단단히 묶었다.
타이 실을 자른 것은 다름 아닌 장미였다.
워낙에 타이트한 인력으로 운영되던 중증외상센터에 있던 탓에 이런 멀티 잡이 아주 능숙했다.
“됐어. 이거 일단 식염수로 좀 덮어 주고.”
“네, 교수님.”
강혁은 그렇게 떨어져 나온 팔뚝 살을 장미에게 건네주었다.
장미는 그것을 아주 소중히 받아다가 미리 적셔 둔 거즈로 덮어 두었다.
몇 분 공기에 노출된다고 무슨 큰일이 생기겠냐 싶기도 하겠지만.
단 0.1%라도 합병증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줄이는 게 옳았다.
특히 그것이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라면 더더욱 습관화가 되어야만 했다.
“어따 이어 줄까?”
강혁은 장미를 굳게 믿었기에 환자의 목에 올라온 즉시 방금 떼어 낸 피판에 대해선 신경을 껐다.
그저 저 피판을 어디에 어떻게 이어 줄지만 생각할 따름이었다.
“음…….”
그리고 그건 재원도 마찬가지였다.
장미는 평소에도 그렇지만 일에 있어서만큼은 절대라는 단어를 써도 좋을 만큼 믿어도 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두 사제는 딱 지금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뭐, 벌써 갑상샘은 날아갔잖아. 이거 쓰겠니? 이거?”
둘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망가져 버린 장기가 하나 있었기 때문에 그러했다.
“절반 날아갔으니까……. 아까 묶어 둔 좌측 동맥이랑 정맥 쓰면 되긴 하겠네요.”
“응. 나머지나 살려 보지, 뭐.”
“약 안 먹어도 되겠죠? 여기서는…….”
재원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번 수술실을 둘러보았다.
아까 차에서 내렸을 때도 그랬지만.
참 기가 차는 환경이었다.
여기서 갑상샘 호르몬을 보충해야 한다면.
그냥 사는 지역을 바꾸는 게 더 쉬울 거 같았다.
“어렵지. 약을 그거 어디서 구해. 일단 안 부족하기를 바라 봐야지.”
강혁의 의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럼 좌측 갑상샘 동맥이랑 정맥으로 결정하는 거죠?”
“어. 바로 잇자. 조폭, 아까 그거 줘 봐.”
결정됐으면 미룰 거 없지 않은가.
특히 이 둘처럼 실력이 한계까지 다다른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장미도 그런 둘을 믿는지라 즉시 피판을 건네주었다.
“좋아. 봉합사랑……. 헤파린 섞은 건 얘 줘.”
“네. 여깄습니다.”
강혁의 요구는 즉각적이었다.
아마 카심이 보조로 들어와 있었더라면 각 요구 때마다 몇 분씩 소요가 되었을 터.
하지만 장미는 수술을 죄다 읽고 있는 데다가, 강혁의 속도에 적응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망설임이라고 일체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말만 하면 기구가 딱딱 튀어 나갔다.
“야, 당겨.”
강혁은 그렇게 받아 든 기구 중 하나를 재원에게 준 후 입을 열었다.
“야가 뭐예요. 야가. 양재원이라고 뻔히 이름이 있는데.”
“그래? 그럼 노예가 좋아, 항문이 좋아.”
노예와 항문.
어떤 이에게는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겠지만.
재원에게는 PTSD를 일으키는 단어들이었다.
“야가……. 그나마 낫네요.”
“고맙지?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섬겨, 인마.”
“어……. 네.”
덕분에 펠로우 때처럼 고분고분해진 재원은 그러나 아까와 같은 실력으로 최선을 다해 보조하기 시작했다.
찍.
시야가 흐려질 거 같으면 물을 뿌려 주었고.
지익.
조금이라도 혈관이 멀어지는 거 같으면 밀어주었다.
혼자서도 문합술이 가능한 사람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작정하고 하는 보조가 대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피판으로 동맥과 정맥이 딱딱 이어졌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피판이 아닌지라 살짝 피가 새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 출혈은 단순 봉합만으로도 조절이 가능했다.
“됐어. 이제 뒤쪽 살로는 기도 후면 재건하고. 나머지로는 앞면 만들어 주자.”
“네, 교수님. 제가 어디 봉합할까요?”
“음……. 일단 후면 같이하고. 그 담에 오른쪽 왼쪽 나눠서 해.”
“아, 그럴까요?”
“굳이 그럴 거 없긴 한데…….”
강혁은 말을 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모아이 석상처럼 우뚝 서서 수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특히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역시나 제인이었다.
‘닥터 제인은 아직 발전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 게다가…….’
여기 와서 겪어 본 결과, 저 사람은 이미 현장에 중독되다시피 한 사람이었다.
아마 어지간히 늙고 기력이 쇠하지 않는 이상에는 계속 현장을 돌아다닐 게 뻔했다.
그런 사람에게 술기를 하나라도 더 볼 수 있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까.
어차피 시간 차이라고 해 봐야 5분 남짓할 텐데.
‘경원이가 있잖아?’
박경원이 커버해 준다면야 5분이 아니라 50분을 끌어도 될 터였다.
물론 50분이 더 걸린다고 한다면 좀 더 고민하긴 하겠지만.
해서 강혁은 좀 더 시야를 확보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내 말대로 해.”
“어, 알겠습니다.”
다행히 아까 노예, 항문 공격으로 반쯤 펠로우로 돌아간 재원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강혁은 기도 재건술을 온전히 모두에게 보여 줄 수 있었다.
‘이건……. 이건 못 하겠는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제인에게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으나.
‘이만큼 보여 줬으면 다음엔 하겠지. 아무렴. 내가 보여 준 건데.’
강혁은 개인적으로 크게 만족했다.
“자, 수술 끝. 경원아. 깨우지 말고……. 바로 중환자실로 가자.”
“중환자실이 있어요?”
“우리 벤틸레이터 두 개나 있다.”
“오…….”
“대신 엘리베이터 타려면 불 좀 꺼야 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