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13)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13화(513/1120)
513화 테러 (3)
타타타타.
강혁이 흉흉한 기세로 어디론가 뛰어 올라갔을 때쯤, 헬기가 완전히 광장에 내려앉았다.
이미 한구 지역 유지들과 정부 관계자들과 연락이 다 되었는지 광장에는 몇 안 되는 경찰 인력과 주요 인물들이 거의 모조리 나가 있었다.
“어, 여보세요.”
헬기가 내려앉은 동시에 시야에서 놓친 한유림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스미스는 아니고, 스미스가 한구 지역을 맡겨 놓은 인물에게서였다.
“아, 한 장관님.”
이미 장관 끝난 지 한참이었지만, 그럼에도 상대는 존칭을 사용했다.
존대의 의미도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장관에 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박성민 대통령의 정치력은 여전히 굳건했으며, 동시에 한유림 및 백강혁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내각 재구성안이 나올 때마다 꾸준히 거론되는 인물들이기도 했더랬다.
어차피 한구 지역에서 같이 일을 하게 된 이상 이 정도 립 서비스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아, 네. 지금…….”
“저희도 좀 놀랐습니다. 헬기 이송이라니…….”
“안전한 건 맞습니까?”
“음.”
상대는 이 질문에 어디까지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헬기 이송을 택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 피습당한 상황…….’
게다가 페샤와르 쪽 요원의 첩보에 따르면, 이미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당국은 범인 중 일부를, 그러니까 시아파 광신주의자로 추정되는 자를 붙잡았다고 하지 않은가.
배후가 이란 혁명 수비대라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밝혀낼 수 있을 터였다.
어차피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파키스탄 서쪽은 분리주의 운동이 한창인 데다가 중앙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아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접겠지만.
적어도 긴장도는 급격히 올라갈 터였다.
어쩌면 영공이 닫힐 수도 있었다.
이미 파키스탄은 이전에도 수차례 영공을 닫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 말은 곧 그 어떤 비행기도 파키스탄 하늘을 지날 수 없다는 얘기였고,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서는 스스로 뒤처지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한구. 여기 지금 괜찮냐고 묻는 겁니다.”
물론 한유림은 그렇게까지 먼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비교적 시야도 넓고 뭐 그랬던 적도 있었던 거 같은데.
이곳 한구에 와서부터는 매일 당장 생존하는 게 급선무이다 보니 성향이 바뀐 탓이었다.
“아, 네. 미행 없습니다. 있었다 하더라도, 헬기를 쫓아 올 정도의 단체는 아닙니다.”
“휴. 그럼 다행이고.”
“혹시 몰라서 한구로 들어오는 주요 길목에 요원 배치했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쇼.”
“네, 뭐……. 알겠습니다. 수고 많습니다.”
“뭘요. 저희를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한데요, 뭐. 부담 갖지 마십쇼. 장관님.”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유림은 거기까지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새끼, 뒤지려고 말이야.”
아니, 인기척만 느껴진 게 아니라, 욕설도 들려왔다.
“아뇨. 그게 아니라.”
“뭐 아니야. 어? 새꺄.”
“아니……. 왜 저한테만 새꺄, 새꺄 해요.”
“그럼 저 노인네한테 하리?”
리처드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강혁이 가리킨 한유림을 보고는 고개를 저어 댔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사람이랑 동급 취급받는 건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전 장관인데 지금 여기서 정수리 발랑 까진 채로 개고생이지 않은가.
기껏해야 소령인 리처드는 분수를 잘 알았다.
“그……. 다른 친구들 있잖아요. 그래, 댄. 댄.”
그래도 같은 미국인이고 또 나이도 동년배인 댄하고는 같은 취급을 받아야 되지 않을까?
뭐 이런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댄? 지금 똥 푸고 있는데?”
“네?”
“저기서 똥 푸고 있다고.”
강혁은 정말 그러길 원하냐는 눈으로 천막을 가리켰다.
천막이라고 해 봐야 아주 두껍지는 않아서 안쪽이 어른거렸는데, 누군가 정말 삽질을 하고 있었다.
열린 뚜껑을 통해서는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었고.
“회충 태우긴 했는데, 다들 거기다가 직접 싸기엔 뜨겁다고 해서. 옆에 파고 있어. 네가 할래?”
“그…….”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리처드로서는 정말이지 이게 뭔 개소린가 싶을 뿐이었다.
회충을 태운다는 말부터 거기다 대체 뭘 싼다는 걸까.
산전수전 다 겪은 미군이지만 이런 일은 처음인 리처드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현시점에서는 놀랍게도 저 댄보다는 자신이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아뇨. 아뇨. 수술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이게 그리고 너 커리어에도 도움 되는 수술일 거야.”
“커리어…… 요?”
리처드는 설마 자신의 스승이 자신이 지금 미군 소령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지, 이 사람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그가 아는 백강혁이란 사람은.
“그래. 너 중동 온 김에 뭐라도 한 건 해야지? 안 그래? 험지까지 왔는데.”
얘기 들어 보니 근데 그건 또 아닌 거 같았다.
중동에 험지 얘기까지 하고 있으니까.
“여기 있으면 뭐가 되나요?”
“잘 봐, 이제. 옳지, 오네. 저 봐라, 저. 다른 사람 죽어 갈 때는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저 봐, 저.”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리처드에게서 고개를 떼어 낸 후, 이제 막 병원 담장 너머로 보이기 시작한 행렬을 가리켰다.
행렬이라는 말이 적절한가 싶겠지만, 그야말로 행렬이었다.
차량만 무려 세 대였는데, 모두 벤츠였다.
연식이야 오래되었으니 그리 좋게 보이진 않을지 몰라도.
아무튼, 이 근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좋은 차들이었다.
“잉.”
“아마 유력 정치인일 거야. 특혜지.”
만인은 평등하다고 배우고야 있지만.
그건 학교에서 그렇다고 가르쳐 주는 것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거 정도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대한민국처럼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도 그러했다.
아직 후진국의 범주에 속하는 파키스탄에서는 그 정도가 더더욱 심했다.
“다치자마자 긴급 조치하고 헬기까지 불러서…… 여기 유지들 차로 병원까지 왔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인지는 알겠지?”
“아.”
“감이 오냐? 이제? 왜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는지?”
“아……. 네. 이건…….”
파키스탄은 석유가 나는 나라는 아니었지만.
중국, 인도,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이지 않은가.
게다가 인구가 2억이나 되는, 세계 5위의 대국이기도 했다.
이런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언제나 미국이 갈망하는 일이었다.
“다 내가 너 인마 여기 잡아 줘서 얻게 된 기회야, 알았냐?”
“어…….”
“고맙다고 안 하지?”
“그…….”
“뒤져?”
“감사…… 감사합니다.”
분명 이건 잘된 일인 거 같긴 했지만.
그간 당해 온 것을 생각해 보면 감사라는 말이 선뜻 나오진 않았다.
세상에 무슨 노예도 아니고.
물론 노예라고 불리긴 하지만.
이제 소령씩이나 된 사람을 공짜로 이토록 함부로 부린 주제에 감사를 바라는 건 정말이지 너무한 처사 아닌가.
“환자 상태는?”
하지만 그사이 환자가 타고 있던 차량이 검문검색을 통과해 병원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병원 안쪽 마당에는 이미 진료 대기 중인 수많은 사람이 있었으나 그 누구도 비집고 들어오는 차량에 대해 손가락질하진 못했다.
유지가 모는 차라는 걸 다들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저 북부나 서부에 비하면 사법 기관이 힘을 쓰는 편에 속하는 지역이었지만.
여전히 법보다는 지역에 힘 있는 사람이 우선이었다.
“그…….”
강혁의 말에 같이 타고 온 의사가 환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기관 절개가 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숨 쉬는 부위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딱 그거 하나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환자는 거의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우선 얼굴에 쇠 파편이 박혔습니다! 제거는 불가했고……. 피가 넘어가서 기관 절개를 했어요.”
“그리고?”
강혁은 설명하는 의사의 어깨 부근에 새겨진 병원 로고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우르드어를 읽고 쓸 정도는 아닌데, 다행히 영어로 쓰여 있었다.
‘국립 페샤와르 의료원이라.’
대한민국에 있는 국립 의료원 의료진이라면야 꽤 신뢰가 갔을 텐데.
아쉽게도 파키스탄의 지역 불균형은 차이가 극심해서,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를 제외하고는 감히 형편없다는 말을 써도 좋을 지경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멀쩡한 병원 두고 이리로 왔지.’
강혁이 잠시 딴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의사는 부리나케 입을 놀려 대었다.
“그리고 가슴과 배에도 파편이 박혔습니다.”
환자의 몸통 부근을 가리고 있던 천을 들춰내면서였다.
“어우.”
제아무리 강혁이라 해도 탄식이 흘러나올 정도로 커다란 파편이었다.
물론 당황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경험이 많았다.
거의 자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상처에 대한 분석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파편은 차량에서 튄 거 같아. 그럼 아무래도 차량에 타고 있다가 터진 거 같은데. 파고든 부분을 생각하면 다친 부분은……. 비장. 어쩌면 동측 신장까지 들어갔을 수도 있겠는데.’
비장과 신장이라니.
죽지 않고 온 게 용할 지경이었다.
리처드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저도 모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 댔다.
“여기 혹시 에크모 있나요?”
“리처드 소령, 미쳤어요? 에크모 같은 소리 하시네.”
어찌나 정신 나간 소리였는고 하니.
옆에 있던 한유림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아.”
“엘리베이터 가동하려면 1층 불 꺼야 하는데. 어? 에크모? 어휴. 비켜 봐요. 수술방 바로 가야겠네.”
“아……, 네.”
아마 한구 지역에 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면 리처드도 한유림이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싶었을 터였다.
하지만 한 1주일 넘게 지낸 참이다 보니 한유림의 반응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여기 말고는 하루 4시간 이상 전기 들어오는 집도 거의 없다는데…….’
그나마 자체 발전소라도 있으니까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병원도 수시로 전기가 들락거렸을 터였다.
“뭐, 그래도 초기 처치가 아주 엉망은 아냐. 다행히.”
강혁은 그렇게 옆에 붙은 한유림을 돌아보며 말했다.
말은 희망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그래 봐야 이대로 두면 1시간 이내에 죽긴 하겠지만.”
워낙에 환자 부상 정도가 심각해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최선의 치료를 한다고 해서 후유증 없이 멀쩡히 살 가망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유림이나 리처드나 아예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둘 옆에는 성질은 더러워도 실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왔으니까, 최선을 다해 봐야지.”
거기에 더해 그 장본인인 강혁도 방금 말마따나 최선을 다할 참이었다.
‘높은 사람이라고 특별히 잘해 주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이제 강혁도 아예 애송이는 아니지 않은가.
때론 이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지역 전체를 살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는 걸 배웠다는 소리였다.
“자, 들어가자.”
해서 강혁을 비롯한 셋은 환자를 곧장 들것에 옮기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환자 상태만 멍하니 보고 있던 다른 관계자들이 앞다투어 입을 열어 댔다.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이 병원…….”
“살려 주시면 병원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