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1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14화(514/1120)
514화 머리 가슴 배 (1)
덜컥.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벌써 준비를 싹 마친 팀원들이 강혁과 환자를 반겨 주었다.
“어유, 상태가…….”
다들 외상 외과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니, 딱 보기만 해도 환자 예후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어째 방 안에 있던 사람들 얼굴이 거의 동시에 어두워졌다.
“일단……. 마취하겠습니다. 쉽지 않겠는데……. 이거.”
특히 마취과 의사로서, 수술하는 내내 바이털을 책임져야 하는 박경원의 얼굴이 제일 그러했다.
그렇다고 멍하니 넋 놓고 있지는 않았다.
즉시 기관 절개된 채로 들어가 있던 튜브를 마취 기기에 연결하고, 또 바이털 관리를 위해 수액 라인을 점검했다.
그중 몇 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순식간에 교체하기까지 했다.
그리곤 강혁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중심 정맥관 하나는 잡아야 할 거 같은데. 어디가 괜찮을까요?”
중심 정맥관이라는 게 잡고 싶다고 막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특히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함부로 잡아 두었다가는 수술에 크나큰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음.”
하지만 강혁 또한 중심 정맥관 하나 정도는 잡아 둬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은 용케 바이털이 크게 흔들리고 있진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건 아마도 저 페샤와르 국립 의료원에 있던 피를 쏟아부어서일 터였다.
‘반드시 바이털은 흔들리게 되어 있어.’
비록 강혁이 수술 시에 피를 남들에 비하면 거의 흘리지 않는 편에 속하기는 해도, 이만한 수술에서는 출혈을 피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강혁의 몸이 여러 개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유림이 실력이 늘었다고는 해도 초능력자는 아니었기에 한계는 명확했다.
무슨 일이 터져도 대강 대응이 가능하게끔 준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우측……. 허벅 정맥에 잡자. 나머지는 수술 범위 안에 들어갈 공산이 커.”
해서 강혁은 그나마 수술 범위에 잡히지 않을 만한 곳을 골라 정해 주었다.
마침 경원도 나름의 근거를 두고 그쪽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딱히 반박하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옮겼다.
“네, 교수님.”
“자, 그럼 닦자. 얼굴부터…… 배까지 다.”
강혁은 경원이 중심 정맥관을 잡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나머지 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교수님.”
“네, 맡겨 주십쇼.”
다른 이들은 모두 시키는 대로 하는 반면, 한유림은 무작정 움직이지 않았다.
“어, 알았어. 내가……. 어디로 갈까?”
대신 질문을 던졌다.
딱 환자 상태를 보아하니, 동시 진행을 하지 않으면 거의 절대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정도로 죽을 거 같은 상황 아니던가.
게다가 강혁은 쓸데없이 이렇게 많은 의료진을 데리고 다니는 타입도 아니었다.
한때 교육에 버닝 하던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러기도 했지만.
그때도 성가시고 귀찮다고 매번 한유림에게 신경질을 부려 댔더랬다.
“아, 배. 가슴은 건드리지 마요. 저거 괜히 건드렸다가 난리 난다, 진짜.”
“응? 내가 얼굴 아니고?”
한유림은 자신의 물음에 즉각 답해 주고 있는 강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침 파편 주변을 소독하면서였는데, 아무리 봐도 이쪽 파편이 얼굴보다는 훨씬 커 보였다.
아니, 커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컸다.
거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당연히 배가 훨씬 위험해 보였다.
“얼굴? 이거 지금 저 안쪽으로 내경동맥 찌른 거 같은데…… 해 볼래요?”
“어, 그래? 내경동맥이야? 어……. 그럼 내가 배 해야지. 어, 배 해야겠네.”
하지만 내경동맥을 찔렀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꼬리가 내려갔다.
어머나 세상에, 내경동맥이라니.
‘어유, 어유…….’
위치도 저 안쪽 깊숙한 곳에 있지 않은가.
게다가 내경동맥이 피를 공급하는 부위는 머리였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죽거나 뇌에 후유 장애가 남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일단 배 쪽……. 비장 출혈만 잡아요. 뒤에 신장은 신경 쓰지 말고. 여차하면 떼, 그냥. 어쩔 수 없지, 뭐.”
“어……. 알았어. 내가 봐서 그때그때 결정할게.”
“좋아. 다 닦았나?”
“대강 다 닦았어.”
“그럼 손 닦고 바로 들어갑시다.”
“오케이.”
한유림은 강혁에게 지시받은 사항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손을 부리나케 닦았다.
“장관님, 제가 보조합니다.”
그런 한유림 바로 옆으로 리처드가 붙어서 말을 붙였다.
말투에 진득한 친근함이 잔뜩 배여 있었다.
그나마 리처드에게 이 난데없는 노예 생활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주는 사람이 한유림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전직 장관인 것도 그렇고.
가끔 강혁에게 개겨 주는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러다 거의 100% 응징을 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할 말을 가끔 아주 순화해서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오, 리처드. 그래, 나 혹시 실수할 거 같으면 바로 말려.”
“실수는요. 장관님이 저보다 훨씬 나으시던데.”
게다가 실력도 좋았다.
솔직히 강혁 말고는 자신이 더 배움을 청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한유림을 보면서 그 생각이 많이 바뀔 지경이었다.
‘뭔 노인네가 손이 이렇게 좋담.’
전성기는 이제 지난 상황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창 전성기를 구가해야 하는 리처드보다 더 잘하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도 강혁이 리처드가 아니라 한유림에게 아래쪽 수술을 맡기고 있지 않은가.
‘저 양반이…… 의학적으로는 진짜 옳은 판단만 하거든.’
기분 나빠할 만한 일이 아니라, 뭔가 이 수술에서 한유림에게 배워야 할 게 있다는 얘기였다.
“하하, 뭘. 근데 여기 와서 더 늘긴 했어요.”
한유림은 강혁과는 달리 얼굴에 금칠해 주는 리처드의 말이 좋은지 껄껄 웃고는 다시 환자에게로 향했다.
이미 강혁은 가우닝까지 한 채, 환자의 머리 쪽에 서 있었다.
그의 타박에 강제로 서둘러야 했던 김인수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아……. 망했네.’
그렇게 고대하던 수술 실력을 뽐낼 시간이 왔건만.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나 정형외과 의사라고…….’
세부 전공까지 따지자면 무릎이었다.
외상센터에서도 무조건 무릎 수술하러만 들어가고 있었다.
한국대학교 병원 외상센터는 이제 더는 올라운더가 필요할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진 않았으니까.
‘근데 왜 사람 얼굴……. 아…….’
그러던 사람이 난데없이 사람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어지간히 다친 상황도 아니고, 철판이 박혀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집도를 맡은 양반은 얼굴에 철판 박힌 꼴을 보면서 운이 좋니 어쩌니 하고 있었고.
‘돌았나…….’
일단 폭탄이 터진 것만 해도 상당한 불운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지극히 상식적인 편에 속하는 김인수로서는 이런 생각이 우선 들었다.
‘아냐, 아냐. 백 교수님은 옳다. 백 교수님은 옳아. 아무렴.’
하지만 곧 강혁이 아주 오래전부터 심어 놓은 세뇌 시스템에 의해 사고 회로가 다른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강혁은 그런 김인수의 눈빛을 죄다 읽어 내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바로 파편 당기면 진짜 큰일 나니까, 여긴 일단 둡시다. 알았죠?”
“어……. 네, 물론이죠. 네네.”
“그래. 조폭, 칼 줘.”
“네.”
그리곤 장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장미는 이미 강혁이 어딜 째려는지까지도 다 알고 있었기에 즉각 메스를 건네주었다.
딱 경부 절제하기에 알맞은 블레이드, 그러니까 15번 블레이드를 끼워 준 채였다.
“좋아.”
강혁은 그런 세심함이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인수 교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엇.”
“그런 표정 짓지 마요. 나 방금 칠 뻔했어.”
너무 갑작스러웠던 탓에 김인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마치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이라도 된 듯이.
강혁이 제일 싫어하는 표정이기도 하기에 좋은 말이 나가진 않았다.
“죄, 죄송.”
“급하니까, 그냥 갈게요. 여기. 여기를 죽 그을 거예요. 그러니까, 당겨요.”
“어……. 목을요?”
그나마 환자 상체에서 괜찮은 데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목을 골라야 할 거 같았다.
근데 갑자기 목이라고?
“목 째서 내경동맥 찾아야지.”
“아……. 그렇죠. 거기가 찔렸으니까. 음.”
보통 혈관 손상이 의심되는 경우엔 일단 그거부터 처리하는 게 좋았다.
출혈이 계속되면 어차피 시야가 흐려져서 다른 부위를 수술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또 그 출혈 자체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지 않은가.
혈관이 중요한 혈관일수록 더더욱 우선순위는 앞당겨졌다.
‘그래. 내경동맥을 얼굴에서 들이 파면……. 찾기 진짜 어렵지.’
물론 다친 부위를 직접 처리할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지금처럼 접근이 용이한 부위에서 출혈을 막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근데…… 내경동맥이 다친 건 뭐로 확신하는 거지?’
수술 순서 자체는 납득할 수 있었지만.
그 순서를 정한 근거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아냐, 백 교수님은 옳다!’
하지만 강혁의 세뇌는 워낙에 강력한 것이어서 김인수는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이익.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최선을 다해 경부 절제를 보조하고 있었다.
“옳지. 또 하니까, 잘하시네.”
심지어 거즈로 피도 닦고, 절개된 단면을 위로 올려 당김으로써 안쪽의 시야까지 확보해 주는 중이었다.
‘치, 칭찬받았다.’
물론 그걸 스스로 자각하고 있진 못했다.
그저 강혁의 말 한마디에 웃고 울고 할 따름이었다.
“좋아. 이거 바깥쪽으로 당겨요.”
“아, 네.”
그사이 강혁은 흉쇄유돌근의 앞부분을 분리해 낸 후, 딱 그곳에 후크를 걸어다 김인수 교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 안쪽으로 보호되고 있던 경동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정상 그 자체였다.
여긴 손상된 적이 없었으니까.
“고무줄.”
“네.”
강혁은 경동맥이 내경동맥, 외경 동맥으로 나뉘는 부위를 찾아낸 후, 내경동맥에 고무줄을 걸었다.
“아, 묶는 게 아니라…….”
김인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냅다 묶는 건 좀 이상하다 싶었더랬다.
그랬다간 출혈이야 막겠지만 머리가 망가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당연하죠. 걸어 뒀다가……. 위험하면 그때만 잠깐 당겨서 눌러야지.”
“좋네요. 이건 정말 영리한 방법이에요.”
“정형외과 쪽 외상에서도 응용할 거리가 있을 거예요. 나도 이거 이비인후과 선생님한테 배운 거야.”
강혁은 그 말을 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옛 친구를 떠올렸다.
‘잘 지내고 있겠지. 오라니까 안 오고 말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달리 하는 일이 많아 바빴으니까.
“아무튼, 여기 됐고……. 이제 얼굴로 갑시다.”
“아, 네.”
“일단 입안으로 좀 볼까. 베타딘 희석해서 줘 봐.”
“네.”
분명 되게 즉흥적으로 요구하는 거 같은데.
장미는 그때마다 딱딱 물품을 건네주었다.
‘같은 수술 보고 있는 거 맞나…….’
카심은 그런 장미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된 놈의 사람이 볼 때마다 더 대단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좋아. 번 거즈.”
강혁은 입안을 베타딘 가글로 대강 헹궈 내고는 번 거즈로 물기를 제거한 후,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아주 과도하게 입을 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파편이 움직이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거울을 이용하면 그렇게 크게 입을 벌리지 않아도 대강 비인두 부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기 보여요?”
“아……. 반짝하는데요?”
“피 때문에 정확히 보이진 않을 텐데. 꽤 길게 박혔어, 이거.”
“후우.”
경험 많은 외과 의사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쉴 정도로 커다란 부상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한숨 대신 머리를 굴릴 따름이었다.
벌써 떠오르는 방법만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음.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