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27)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27화(527/1120)
527화 너는 너대로 (1)
“안 돼요, 안 돼. 알았어요?”
제인은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달리고 또 달린 덕에 가까스로 강혁이 주먹질을 하기 전에 말릴 수 있었다.
‘에이, 설마.’
물론 속으로는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설마하니 정말 현 파키스탄 총리의 동생이자 여당 중진 의원인 모하메드 칸을 칠 리는 없을 테니까.
‘아냐……. 모르는 일이야…….’
하지만 아까 강혁의 달려가던 기세와 굳게 쥐어진 주먹을 봤다면 누구라도 의심 한 번쯤은 했을 터였다.
“알아, 나도. 자, 됐지?”
아무튼, 지금은 강혁도 주먹을 푼 지 오래였다.
그는 양손을 펼친 채 제인과 모하메드를 지키기 위해 파견되었던 지역 경찰 및 수도 관할 특수 경비대에게 빈손을 보여 주었다.
애초에 제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설마 병원 의사가,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봉사하러 왔다는 의사가 모하메드를 공격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더랬다.
그저 환자가 깼으니 회진이라도 온 모양이겠거니 여기고 있었던 것.
“안으로 들어가시죠. 의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해서 강혁은 그 흔한 신체검사마저도 없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강혁이 마주한 것은 아주 얇은 베게 하나 덜렁 벤 채로 낑낑거리고 있는 모하메드였다.
얼굴만 봐서는 진짜 죽도록 통증이 심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활력징후는 지극히 안정되어 있었다.
‘혈압도 심장박동 수도 정상. 약은…… 항생제에 진통제만 들어가고 있네.’
경원에게 맡겼었고, 지금은 경원이 댄에게 인계한 상황 아니던가.
둘의 판단은 아마도 정확했을 터였다.
그렇다는 건 어제 환자에게 들어가던 약들은 죄다 끊을 만해서 끊었다는 얘기가 되었다.
‘역시 이 몸은 천재야.’
세상에 어느 누가 어제 폭탄 맞은 사람을 지금 이렇게 안정되게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수술 후 내과 의사 요다를, 지금은 저기 널브러져 있는 요다를 갈아 넣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수술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아, 왔…… 군. 당신이……. 백강혁…… 인가?”
강혁은 그렇게 홀로 자화자찬 모드에 깊이 빠져 있을 무렵, 모하메드가 어렵게 입을 뗐다.
바짝 마른 입술에는 벌써 피가 살짝 배여 있었다.
보통 수액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코가 붓기 마련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면 입으로 숨을 쉬게 되었고, 입술이 마르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강혁은 별로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하메드, 맞습니까?”
“그…… 렇소. 내가 모하메…… 드요.”
확실히 어제 대수술을 받은 사람치고는 의식이 또렷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기자 회견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강혁이 판단하건대 모하메드는 지금부터 대략 3, 4일간은 절대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이 너무 우수해도 문제가 있구만.’
중환자 관리를 좀 적당히 했으면 지금 입도 벙끗 못 하고 있을 거 아닌가.
아니, 아예 삽관한 것을 빼지도 못했을 터였다.
“통증은 좀 어떻습니까?”
하지만 이왕 깬 거 어쩌겠는가.
강혁은 의사로서, 또 집도의로서 해야 할 질문을 해야만 했다.
“우리…… 한 통증은 있지만. 참을 만합니다.”
“참을 만하다고?”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굴에 가슴, 배까지 다친 양반이 아프냐는 말에 뭐 참을 만해?
‘마약이라도 줬나?’
정말 나쁜 주사라도 들어가는 건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강혁이 발견한 것은 기껏해야 진통제와 진정제 정도뿐이었다.
“아, 박경원 선생님이 레미펜타닐을 아예 끊지는 않았어요. 진통제 베이스 진정제는 어느 정도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강혁의 의문은 고스란히 제인에게 전달되었다.
제인 또한 그와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아까 경원과 댄에게 전해 들었던 말을 고대로 전달해 주었다.
“호흡은?”
“안정적입니다. 용량이…… 아주 정확한 거 같아요.”
“박경원이 실력이 더 늘었네.”
환자를 보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그 환자를 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그것에만 매몰되다 보면 환자가 사람이라는 것을 종종 놓칠 때가 있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겠지만.
어떤 일이든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었다.
‘환자를 편안하게 해 줘야 한다……. 확실히 기본에 충실해.’
그러나 박경원은 이제 익숙해지다 못해 대가가 된 마당에도 기본을 잊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환자가 한 사람의 인격체이며, 마땅히 치료받는 동안 그 편의를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종종 그것을 자기도 모르게, 또는 일부러 망각하기도 하는 강혁으로서는 존경스럽다는 생각 외에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뭐, 다 내가 잘 가르친 덕이지.’
물론 결국에는 자기 자랑은 끝나고야 말았지만.
“뭐, 우리 선생님들이 통증 관리를 잘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환자분은 아직 멀쩡히 다 나은 게 아니에요. 움직이거나 무리하는 건 절대 삼가야 해요.”
“알고…… 있소.”
아무튼, 강혁은 일단 말로 모하메드를 말리기로 했다.
여기저기 얽힌 것만 없었으면 손날로 연수라도 쳐서 기절시키면 편했겠지만.
지금 이곳엔 보는 눈이 너무 많지 않은가.
제아무리 강혁이라고 해도 증인들이 있는 상황에서 공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건 부담이었다.
“하지만……. 시아파 광신주의자들에게…… 영토를 침범당했소……. 당신은 모르겠지만……. 파키스탄인으로서 절대 좌시해서는……. 안 될 일이오.”
하지만 모하메드는 딱히 설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비록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져 있었지만, 눈에는 살기가 그득했다.
단지 이번에 폭탄 테러를 당해서인 것만 같지는 않아 보였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 온 증오의 역사가 분명히 그 안에 존재했다.
‘아. 정말 짜증 나네.’
옛날 같았으면, 그러니까 여기 처음 왔을 무렵의 강혁이었다면 사실 그냥 귀찮기만 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해 알게 되지 않았던가.
좋든 싫든 끔찍했던 이 근방의 역사를 체득하게 된 셈이었다.
그랬기에 마냥 귀찮아할 수도 없었다.
누구의 분노라도 이유는 있었으니까.
“알겠는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설득은 불가했다.
그 주체가 강혁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천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원한을 말 몇 마디로 어찌 해소할 수 있단 말인가.
해서 강혁은 하지 말라는 말 대신 미루라는 말이나 해야겠다고 생각 중이었다.
“상황? 이…… 보시오. 총리가……. 가장 신임하는 여당 의원이 피습당했는데……. 무슨 상황 얘기가 나온단 말이오.”
물론 모하메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도리어 언짢은 듯한 눈빛으로 강혁을 노려보다가 같이 들어와 있던 비서진인지 뭔지 모를 정부 요원들을 향해 말을 이어 나갔다.
“빨리……. 기자들 불러. 외신도 좋아. 이슬라마바드에서 오라고 해.”
“네.”
방금 말한 것처럼 모하메드는 현 총리가 가장 신임하는 여당 의원이었다.
여당 내 입지 또한 어마어마했고, 또 대외 활동을 워낙 많이 한 터라 얼굴 노릇을 하기도 했더랬다.
당연하게도 요원들은 추상같은 모하메드 칸의 말을 받들어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다.
아니, 빠져나가려고 했다.
“어허, 어른들 얘기하는데 다들 어디 가.”
강혁이 막아서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 터였다.
그는 길쭉한 양팔을 벌린 채 문 앞을 막아 버렸다.
덩치가 좀 작은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비집고 나갈 틈이 보였을 텐데.
안타깝게도 강혁은 체격이 꽤 커다란 인간이었다.
“비켜 주시죠. 닥터 백.”
그래서 요원 중 가장 덩치가 좋은 이가 맨 앞으로 나섰다.
손바닥에 잡힌 굳은살이나, 지나치게 발달한 우측 어깨 및 광배근으로 미루어 볼 때 특수 경비대 소속이 틀림없어 보였다.
아마 이 두툼한 손을 이용해 사람 몇몇 정도는 저세상으로 보낸 경험이 있을 터였다.
단지 훑어본 것만으로 여기까지 알아내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강혁은 심지어 그걸 알아차린 주제에 쫄지도 않았다.
“아니, 안 돼. 기자 회견은 안 돼.”
“고집부리면……. 저희도 무력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 그래? 정부 요원이 NGO 단체 의료진을 폭행하겠다고?”
강혁은 일부러 제인 쪽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제인은 사실 강혁의 안위보다는 감히 그에게 덤비려고 하는 요원 걱정을 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꺼내진 못했다.
입을 연 것은 여전히 요원 측 인사였다.
“그럼 비켜 주시죠.”
“안 된다니까? 지금 기자 회견을 하면 여기가 그 시아파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들의 표적이 된다고.”
“저희가 있으니 걱정할 거 없습니다.”
“오……. 그래? 니들 페샤와르에서는 없었나 보지? 그래서 모하메드가 저 꼴이 됐어?”
“그건…….”
특수 경비대 소속 요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인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저 사람은 왜 굳이 도발을 하는 거야…….’
이러다 정말 물리적인 행사가 있으면 어쩌려고 저런단 말인가.
‘왜 저렇게 무대뽀인 거야…….’
어떨 때 보면 치밀한 전략가 같은데.
이럴 때 보면 그냥 생각 없는 깡패 같았다.
‘지들이 어쩔 거야. 여기 미군이 몇인데.’
물론 강혁은 다 믿는 구석이 있었더랬다.
파키스탄이 반미 국가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반미 한다고 해서 미국의 무서움을 모르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미국이 우방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 영공을 절대 열어 주진 않았을 터였다.
“지금 말 다 했어?”
한 가지 강혁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지금 여기 있는 요원들은 성질이 매우 급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미군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미군은 현재 리처드를 제외하고는 다친 병사 병실 및 3층 그리고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저격 포인트에 다들 가 있었으니까.
“어?”
해서 강혁이 이게 아닌데 하는 동안 맨 앞에 있던 요원이 달려들었다.
“당신이 자초한 겁니다, 닥터 백. 잠깐만 있으면…….”
뭔가 아주 멋진 말을 하면서였는데.
“어?”
그 끝까지 멋지진 않았다.
상대적으로 덜 우람해 보이는 강혁의 하체에 태클을 걸려고 달려들던 요원은 강혁에게 목덜미를 강타당한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에이. 말로 하려고 했는데.”
강혁은 그렇게 널브러진 요원을 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배, 백 교수님!”
제인은 도대체 왜 그러냐는 얼굴로 외쳤고.
“어, 괜찮아. 안 다쳤어. 아, 또 오네.”
강혁은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다른 요원들을 하나하나 제압하기 시작했다.
“억.”
“윽.”
거의 손이나 발이 한 번 번쩍할 때마다 한 명이었다.
어디 동네 개싸움도 아니고, 요원들을 상대로 한 싸움이었음에도 그러했다.
물론 초반에는 요원들의 손에도 사정이 있었으나, 후반에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너……. 너…… 누구야…….”
모하메드는 그렇게 무려 4명의 요원을 제압한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혁을 향해 물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가슴 한편에는 이놈이 설마 시아파인가 싶기도 했다.
강혁은 두려움 가득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나? 의사지, 누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