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3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32화(532/1120)
532화 건물을 사자 (2)
“이걸 진짜 이렇게 말하라고요?”
“어. 왜?”
“이렇게 말하면……. 너무 좋은 곳 같은데.”
“왜. 후진 곳 같아? 너는 지금 너 은사님이 두 분이나 있는 여기가, 어? 그렇게 후져 보이냐?”
“아니, 그건……. 얘기가 왜 또 그렇게 가요.”
재원은 진땀을 흘리며 방금 자신이 읽은 내용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아니……. 이렇게만 말하면 한국대학교 병원보다 좋은 거 같잖아…….’
세계 최고의 외과 의사와 함께할 수 있다느니.
보험 수가 따위 신경 안 쓰고 마음껏 진료할 수 있다느니.
진정한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느니.
이런 것도 좀 과해 보이는 멘트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사실은 사실이지 않은가.
백강혁이 세계 최고의 외과 의사라는 거야 뭐 반박의 여지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보험 수가는……. 그래, 여긴 보험이 없지.’
말장난 같아도 사실이긴 했다.
적어도 수가의 제한은 받지 않으니까.
다만 병원 시설과 의약품에 제한을 받을 뿐이었다.
그 제한이 보험 수가에 의한 제한보다 훨씬 더 심하다는 말을 안 했을 따름 아니겠는가.
봉사의 기회가 지천에 깔린 거야 뭐, 바깥만 잠깐 둘러봐도 알 수 있는 것이고.
‘근데 뭐 호텔급 숙박 시설 무상 제공? 미군 본부급 안전?’
호텔이라니.
아예 호텔이 없는 도시인데.
이게 말이나 된다는 소립니까, 교수님.
“왜. 저기 정말 그렇게 만들 거야.”
“아니……. 그게 되겠어요? 당장 여기 시설도 이렇게…….”
에어컨도 없는 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재원은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교수 둘이 이런 곳에서 지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하마터면 눈물이 핑 돌 뻔했더랬다.
“왜? 나는 좋은데? 호텔같이 좋아.”
“와…….”
그런데 어쩜 사람이 이리 뻔뻔할 수 있을까.
“뭐, 인마. 이렇게 가서 전해.”
“이렇게 알고 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내가 설득할게, 현장에서.”
“그…….”
설득이 되긴 될 거 같았다.
방금 강혁이 내보인 주먹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 그럴 거 같긴 했다.
‘그래, 그럼 된 걸까.’
굳이 다른 사람 생각해서 매 맞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알라고. 휘유, 돈 많이 걷어서 리모델링도 잘할 수 있겠네.”
강혁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서약서를 내려다보며 껄껄 웃었다.
뭘 믿고 그렇게까지 확신하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강혁이 웃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있어서였다.
뭐가 되었건 간에 그 돈을 받아 낼 수 있을 거라는.
그건 재원이나 다른 사람들 모두 인정하는 바였다.
“자, 그럼 밥이나 먹을까나.”
해서 강혁이 미소를 지은 채 손바닥을 비비고 있을 때도 누구 하나 반박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오늘은 제육 덮밥입니다.”
움직인 사람은 단 하나 김영수 사장이었다.
그는 온종일 밥때만 기다린다는 듯 나는 듯이 움직여 음식을 내오기 시작했다.
“오. 제육.”
“좋다, 좋아.”
세상에 제육볶음만큼이나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메뉴가 또 있을까?
다들 들뜬 얼굴로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심지어 외국인인 제인이나 카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사이 환자 정리하고 돌아온 장미, 경원, 댄 등의 얼굴에 화색이 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 너네 둘도 거기 서약서에 사인하고 앉아.”
강혁은 일단 밥부터 먹을 생각에 서둘러 자리를 잡고 앉던 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미리 자리 앞에 놓아두었던 종이를 가리키면서였다.
“이게……. 이게 뭐예요?”
당연하게도 둘 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강혁이 한창 떠들고 있을 때 수술한 환자 보느라 바빴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강혁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좀 설명을 해 줘도 좋을 텐데.
강혁은 딱히 그런 거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 그냥 사인해.”
“숫자가……. 숫자가 100만 원인데요?”
“난 500…….”
하지만 장미나 경원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물론 돈이야 꽤 잘 버는 편에 속하는 둘이었지만.
사실 100만 원이나 500만 원이라는 돈은 누구에게나 큰돈 아니겠는가.
억을 벌든 그 이상을 벌든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막 내다 던질 수는 없었다.
“아, 여기 병원 기부금이에요. 박 교수. 백 수간호사.”
“기부금이요?”
“네. 여기 현지인들도 낸다고 해서, 저희도 다 내기로 했습니다.”
“아…….”
다행히 경원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은 강일구와 김인수였다.
둘 모두 중증외상센터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인 데다가, 인덕 또한 드높은지라 차분히 설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적어도 경원이나 장미가 이 금액에 관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이 말이었다.
“그래, 얘기 다 들었지? 그럼 사인해.”
어쩐지 저 백강혁의 뻔뻔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사인해 주기가 싫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있지 않은가.
‘떼먹진 않겠지…….’
‘그래, 어지간한 곳에 기부하느니……. 백 교수님이 믿을 만하지.’
저 양반은 수수료니 뭐니 하는 것도 없는 사람 아니던가.
지금 들어가는 돈은 정말 단 한 푼도 빠짐없이 이곳 한구 병원을, 더 나아가 한구를 위해 쓰이게 될 터였다.
해서 경원이나 장미나 더는 불만을 표하지 않고 사인을 완료했다.
강혁은 그런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딱 사인이 끝나는 순간에서야 밥을 날라 주었다.
“좋아. 여기 먹어라.”
“그……. 네.”
“감사합니다.”
이를테면 각기 100만 원, 500만 원짜리 밥이 된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객관적인 맛은 썩 훌륭한 편이었지만, 그런데도 입맛이 쓰게만 느껴졌다.
“와, 진짜 맛있네.”
물론 둘의 입맛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강혁은 그저 맛있게 먹고만 있었다.
어차피 다 포기하고 신경을 끄기로 하고 있던 한유림도 마찬가지였고.
아니, 딸 얼굴을 보니까 마치 소화제를 먹은 것처럼 소화가 잘되는 기분이라 평소보다 훨씬 잘 먹고 있었다.
드드드드.
그때 한유림의 전화기가 울렸다.
“응?”
평소라면, 그러니까 한구 병원의 평소였다면, 밥 먹는 것까지 끊어 가면서 전화를 받지는 않았을 터였다.
어차피 여긴 환자 왔다는 걸 전화로 알리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1층에 있는 누군가가 소리를 질러 대면 충분한 사이즈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좀 달랐다.
‘뭐야, 뭔 일 터졌나?’
아무래도 단기 팀들이 있다 보니 안전에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스미스를 비롯한 각국 군 관계자들에게 특별히 더 주의를 해 달라고 요청을 해 놓은 상황이었다.
그들의 전화라면, 무조건 받아야만 했다.
“한유림입니다.”
“아, 모르는 번호라 당황하셨겠네. 스미스입니다.”
“아, 네. 무슨 일이시죠?”
한유림은 스미스라는 말에 자신의 전화기를 가리키며 몸을 일으켰다.
그게 무슨 뜻인지 찰떡같이 알아먹은 강혁 또한 그를 따라서 거실로 향했다.
“아……. 중요한 얘긴데. 혹시 옆에 엿들을 만한 사람은……. 없네요.”
“그걸 어찌 알았습니까?”
“부탁하셨잖습니까? 잘 봐 달라고.”
“아…….”
잘 봐 달라는 게 집 안을 몰래 엿봐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서 뭘 어쩌겠는가.
그만큼 더 안전해진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래서 일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흠.”
다만 강혁만 유리창을 통통 두드려 볼 따름이었다.
‘진동 방식 도청인가 보네.’
민간에서는 모르겠지만.
CIA와 같은 정보 기관에서 더는 도청기를 취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창문의 진동만으로도 다 도청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으니까.
지금 강혁의 눈에 이렇다 할 장치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이 한구 병원도 그 장치로 도청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강혁이 여기서 대놓고 반미 운동할 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도청해 봐야 좋은 일을 조금 나쁜 방식으로 한다는 것만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아무튼, 꽤 주요한 정보가 하나 들어와 있습니다.”
“뭐죠?”
“한구 병원, 특히 백강혁 교수님과 연관이 있는 정보죠.”
“백강혁……?”
한유림의 눈이 가늘어졌다.
스미스 요원 입에서 나오는 정보는 분명 심상찮은 정보일 터였다.
그런데 그게 강혁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럴 공산이 컸다.
“네. 아마 그쪽에서도 직접 연락이 갈 텐데……. 온전한 정보는 다 제공하지 않을 겁니다.”
“그쪽?”
“파키스탄 탈레반.”
“아. 탈레반…….”
아, 맞다.
탈레반하고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였지.
한유림은 절로 나오는 한숨을 토해 내며 강혁을 바라보았다.
눈만 좋은 게 아니라 귀도 밝은 강혁은 뭐 어떠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늘 새벽 탈레반 측에 비정기적인 움직임이 있었어요.”
스미스는 그런 한유림이나 강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워낙 진중한 말투였기엔 한유림은 다시 스미스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 워낙에 탈레반이야 제멋대로 움직이는 편이지만. 이곳 한구 지역의 탈레반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추적해 보았습니다.”
한구 지역이라면 오마르가 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폭탄을 두르고 뛰어들라는 명령을 내리는 인간치고는 퍽 신의가 있는 사람이어서 지금까지도 협정을 잘 지키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움직이다니 대체 무슨 일일까.
“정확히 한 시간 반 전쯤 총격이 있었어요. 상대는…… 처음엔 미상이었습니다.”
“총격?”
“네. 규모는 대량 20명에서 25명 사이의 총격전이었죠.”
“음.”
한유림은 머릿속으로 그만한 크기의 총격전을 상상해 보았다.
영화로 나오기는 무리일 만큼이나 작은 총격전이겠지만.
다친 사람들이 병원으로 온다면 거의 재앙이라 할 만한 사이즈였다.
“상대는 불과 네다섯 명 정도였습니다. 대략 30여 분 후 제압되었는데, 그제야 저희도 상대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 데요? 저희가 알아야 하는 정보입니까?”
“한 장관님은 몰라도, 백 교수님은 관심이 있을 겁니다.”
“음.”
한유림은 여전히 탈레반이 누구와 싸웠는지가 뭐가 중요할까 싶은 얼굴이었다.
반면 강혁은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까 사기 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기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중해 보였다.
“이란 혁명 수비대입니다. 이번 모하메드 의원 폭탄 테러의 주요 용의자이자, 배후로 지목되는 녀석들이죠.”
“살았나?”
그 말을 듣자마자 강혁은 전화기를 뺏어다 물었다.
이미 강혁이 옆에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지, 스미스는 전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한 명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더군요. 다쳤지만.”
“오.”
강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걸 알려 주는 이유는?”
“탈레반 측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저희가 파악하기론 그쪽도 다쳤거든요.”
“그리고?”
“그럼 그쪽 하나 살려 주고…… 이란 혁명 수비대 녀석도 입원시키십쇼. 탈레반 측이라고 생각하는 식으로 행동하면 아마 그렇게 해 줄 겁니다. 어차피 놈들도 일단 숨을 붙여 놔야 고문을 하든 뭘 하든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뭘 할거지?”
“빼돌려야죠.”
파키스탄 주요 인사에 관한 용의자 확보라.
굉장히 큰 건이었다.
아마 스미스로서는 백악관에 할 말이 좀 생길 만한 건수일 터였다.
만약 강혁이 일반적인 의사였다면 그냥 넘어갔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이런 쪽으로 꽤 빠삭한 편이었다.
“정보의 대가로는 좀 과하게 퍼 주는 느낌인데?”
“민간 앰뷸런스를 드리죠.”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