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6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65화(565/1120)
565화 빗속에서 (3)
의무병은 이 사람이 대체 뭐 하는 걸까, 하는 얼굴로 수술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당기라고 하니까 당기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왜 이걸 당겨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만 가득한 상황이었다.
‘그냥……. 그냥 대강 하고 빨리 닫으면 안 되는 건가?’
의무병이 보기에 지금 톨레도 상사의 상태는 급격한 호전을 보이고 있었다.
우선 아무리 눌러 놔도 새어 나오던 출혈이 모조리 멎지 않았던가.
게다가 삽관을 통해 숨길을 제대로 잡아 준 덕에 호흡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실 의무병은 앰부를 짜기 시작하고 나서야 톨레도의 갈비뼈가 적어도 3개 이상 부러졌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아까까지는 흉강이 완전히 펴지지도 못했었다는 것도.
‘이 정도면……. 트럭 위에서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한 거 아니야?’
아니, 트럭 위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준의 처치를 했다고 봐야 했다.
뒤따라오고 있는 앰뷸런스 안으로 옮긴다 해도 살아날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저 대사관에 딸린 의무실에 어떻게든 빨리 도착하고, 그때까지 톨레도 상사가 버티기만 바라고 있었는데.
닥터 백이라는 사람이 오자마자 정말로 수술을 해 버렸다.
이미 믿기지 않을 만한 성과를 내었으니, 이젠 그만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음.”
그때 강혁의 입에서 신음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다.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려 보니, 강혁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출혈이 미친 듯이 철철 흘러나올 때도 이렇진 않았던 거 같은데.
‘뭐지? 왜 이래?’
혹시 이 사람도 다쳤나?
뭐 이런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강혁에게 물리적인 손상은 없어 보였다.
푹.
그저 쉴 새 없이 손을 놀려 댈 뿐이었다.
그마저도 아까에 비하면 속도가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움직임이 느려졌다기보다는 바늘을 꽂고, 또 다음 꽂을 때까지의 텀이 길어졌다는 느낌이었다.
‘지금 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 말은 곧 엄청 어려운 작업 중에 있다는 뜻일 텐데.
아쉽게도 의무병은 이 어마어마한 술기를 똑바로 알아볼 만한 실력이 없었다.
아마 뒤에서 요인을 살피고 있는 리처드가 이걸 보았다면, 기함했을 터였다.
강혁은 지금 근육의 결을 살려 내고 있었으니까.
다시 말해, 끊어진 근육을 원래대로 봉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로지 흐릿한 등과 헤드라이트 그리고 맨눈에 의지한 채로.
푹.
게다가 트럭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는 중이었다.
강혁의 심력이 빠르게 소모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발……. 나도 늙기는 했구나.’
강혁은 봉합 도중, 예전 일을 떠올렸다.
재원을 노예로 거둔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백령도에서 돌아오는 배 위에서 신경을 이어 주지 않았던가.
그때 2호 이강행도 꼬셔다가 확보했던, 아주 즐거운 기억이 있었다.
‘배 위에서 신경도 이었는데……. 이게 힘드네?’
근섬유 봉합도 사실 현대 의학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술기였다.
아니, 술기라는 말을 붙여도 되나 싶을 정도라고 보면 되었다.
아무도 안 하니까.
하지만 신경 봉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게 더 쉽다는 건데, 강혁이 체감하기엔 그냥 비슷했다.
더럽게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돼.’
그런데도 강혁은 봉합을 이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톨레도의 끊어져 있던 근섬유가 하나하나 회복되었다.
그렇게 대략 40여 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난 후에야 강혁의 손이 멈추었다.
딱 이전까지의 술기에 걸렸던 시간과 비슷한 시간이 흐른 셈이었다.
“휴, 됐다. 닫을 테니까, 가위 들어.”
“아, 네.”
의무병은 그때까지도 강혁이 대체 뭘 한 건지 잘 가늠하지 못했다.
다만 봉합하기 전보다는 훨씬 상처가 이쁘단 생각은 들었다.
다친 적이 있었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 이걸 위해서……. 이런 건가?’
단지 이쁘게 하기 위해서 이 난리를 피웠다고?
그 잠깐 사이에 얼굴이 반쯤 거무죽죽해질 정도로 힘들게?
의무병은 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컷.”
“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못했다.
정작 반죽음 상태가 된 강혁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푹.
강혁의 생각은 이러했다.
‘빨리…… 빨리 끝내고 좀 자자.’
돌이켜 보니 오늘 진짜 힘든 날이지 않았나.
단기 팀 배웅하고, 차 타고 작전 지역으로 이동하고, 거기서 대기하고.
대기하다가 구출된 요인 수술하고, 비를 뚫고 트럭 위에서 또다시 수술.
‘늙은 게 아니라 그냥 오늘, 날이 개 같은 거네.’
하긴 늙었다고 보기엔 요새 근력은 더 늘지 않았던가.
얼마 전 3대 천도 달성했었고.
“후후.”
그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뭐야, 뭔데 이거.’
의무병은 그런 강혁의 미소를 보며 몸을 움츠렸다.
실력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이 사람이 좀 이상하다는 것 또한 알겠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는 사람이 의사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다 됐다…….”
집중한 지 얼마 후, 강혁이 만족했다는 얼굴로 환자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어느새 총탄에 꿰뚫려 있던 상처가 제대로 붙어 있었다.
이쪽도 절개할 때부터 이미 다 고려하고 쨌기 때문이었다.
“오…….”
문외한이 보기에도 이쁜 상처였다.
어떻게 총탄에 꿰뚫린 게 이렇게 붙을 수 있을까.
가까이 있던 세 명의 병사 모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혁은 이왕 모여든 세 명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 좀 자야 되니까, 셋이 돌아가면서 앰부 짜. 분당 10번.”
“아…….”
“짜는데 활력징후, 음. 그러니까 저기 보여?”
강혁은 딱히 일반인 대상으로 뭔가 설명해 본 경험이 적은 사람이지 않은가.
외래를 중점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환자에게 얘기하는 방식이 익숙해졌을 테지만.
강혁은 외상 외과 전문의였다.
그것도 중증외상을 보는.
일단 환자와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 환자는 집에 가야 했다.
다른 과로 전과를 가거나.
‘나도 진짜 많이 늘었다.’
물론 강혁은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손가락으로는 활력징후를 나타내는 작은 모니터를 가리키면서였다.
그걸 설치한 의무병을 포함한 전원의 고개가 돌아갔다.
“저기서 저 체온이 35 밑으로 내려가면 깨워.”
“네.”
“나머지는…… 음…….”
혈압과 심장박동 수 그리고 호흡수의 관계를 어찌 설명해야 할까?
때리면서 설명하면 1시간 안에는 대강 이해시킬 자신은 있는데.
그러기엔 너무 지친 상황이었다.
딱히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도 아니었고.
“그냥 저거 울리면 깨워…….”
해서 강혁은 반쯤 포기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트럭 바닥에 엎어졌다.
손끝에 아까 던져둔 톨레도의 소장 쪼가리가 걸렸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사소한 것에 신경 쓰기엔 너무 졸렸다.
밤새 덜컹이는 차 안에서 수술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전체적인 시간이 적게 걸린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제 곧 새벽 4시였다.
“자네.”
“여기서 그냥 잔다고?”
“전투 명상이라도 배웠나.”
거의 눕자마자 잠이 든 강혁을 보며 세 병사 모두 한마디씩 했다.
다들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지만 이 사람은 좀 특별해 보였다.
“의사라고?”
“어……. 의사잖아. 수술하는 거 못 봤어?”
“아, 하긴. 난 상사님 돌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그 상황에서 살려 냈으니 의사는 의사일 터였다.
그것도 아주 엄청난 실력을 지닌.
“야, 야. 분당 10회 짜고 있어?”
“어? 당연하지. 짜고 있지.”
“그래. 일단……. 일단 대사관까지 주의하자고. 한두 시간은 더 가야 할 거야.”
“알았어.”
하지만 계속 강혁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지는 못했다.
비록 작전이 거의 다 끝나 가는 상황이긴 했지만.
아직 종료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란 말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이슬라마바드가 보입니다.”
의무병의 말대로 차량 일행은 한 시간 후 카슈미르 하이웨이에 올랐고, 곧 이슬라마바드를 목전에 둘 수 있었다.
한 나라의 수도이니만큼 한구나 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멀리서도 마천루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높은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아직 해가 뜨지 않았음에도 비교적 많은 건물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24시간 전기가 들어오는 도시라는 뜻이었다.
부우웅.
하지만 병사들은 도리어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이슬라마바드에서도 폭탄 테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최근 들어, 그러니까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조금 사그라들긴 했지만.
여전히 반미 감정은 극심했고.
이곳에서의 반미는 줄곧 무차별적인 테러로 이어지곤 했다.
게다가 시아파와 수니파, 탈레반과 정부의 갈등 또한 이슬라마드를 무대로 벌어졌기 때문에 차량 내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팽팽하게 당겨졌다.
“음.”
그 긴장도 탓일까?
강혁은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눈을 부릅뜨고는 몸을 일으켰다.
불과 2시간 남짓 잔 사람치고는 상당히 멀쩡해 보였다.
“별문제 없었지?”
그는 깨어나자마자 일단 환자 상태부터 살폈다.
활력징후는 자기 전과 비교해 그렇게 변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 네.”
“약은. 계속 들어가고 있고?”
“네.”
“근데, 안 힘드나? 아무리 훈련받았어도……. 그거 짜는 거 힘들 텐데.”
“괜찮습니다. 톨레도 상사님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요.”
“뭐, 하긴. 그렇지.”
전우는 때론 본인보다 중요한 법이지.
강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트럭 위를 덮은 천 틈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는 아침 해가 삭막한 이슬라마바드를 덮어 오고 있었다.
흙빛 도시가 빛을 받아 노란색으로 물드는 광경은 한구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긴 했지만.
이곳은 아무래도 그 넓이가 달랐다.
‘이렇게 보니까 여기가 진짜 번화한 곳 같네.’
서울에 비하면 그냥 깡촌인데.
과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우웅.
그사이 차량은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들어섰다.
이곳은 워낙 여러 국가의 대사관이 있는 곳이었기에 치안이 비교적 좋은 편에 속하는 곳이었다.
덕분에 병사들 모두 긴장을 조금은 늦출 수 있었다.
그래 봐야 대사관 내로 진입할 때까지는 경계에 힘써야만 하긴 했지만.
“좋아. 요인하고……. 부상병부터 안으로 옮겨!”
키퍼 중령은 입구에 내리자마자 명령부터 내렸다.
그러자 대사관에서 대기 중이던 인원들과 작전지에서부터 함께 온 이들 모두 그의 명령에 따라 요인과 톨레도 상사를 대사관 내부로 옮겼다.
리처드와 강혁 또한 별다른 제지 없이 환자 둘과 함께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지하로!”
키퍼 중령은 계단 밑을 가리켰다.
대부분의 미 대사관이 그러하듯, 직원 및 미국 시민들을 위한 병원을 구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얘네들이 로컬 병원에 갈 리가 없지.’
미군 애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병원도 꺼려 했다지 않은가.
아무리 그래도 전반적인 의료 수준은 대한민국이 전 세계 어딜 가도 일류인데.
강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키퍼 중령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여기 왜 이렇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