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6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66화(566/1120)
566화 이 정도라고? (1)
강혁의 놀람은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미 대사관 지하에 위치한 병원에는 심지어 MRI까지 있었으니까.
거기에 수술실은 물론이고, 외래 진료실도 두 개에 병실은 무려 20병상이 넘게 마련되어 있었다.
평상시에는 거의 놀려 둘 것을 감안한다면,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투자였다.
‘역시……. 미국이 돈이 많긴 많구나.’
강혁은 순수하게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리처드는 왜인지 우쭐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후후 하고 웃었다.
“환자 이쪽으로!”
그사이에도 대사관 측에 준비하고 있던 의료진들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간호사 넷은 벌써 환자에게 붙어서 활력징후 및 부상 그리고 처치 수준을 파악했고.
또 수액과 약은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혈액 검사도 나갔다.
의사들 또한 바쁘긴 매한가지였다.
‘처치를 했으면 얼마나 했겠어…….’
그중에서도 특히 외과 의사로서 현 상황에 관한 책임자이기도 한 닥터 요한슨은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져 있었다.
아마 미리 강혁이 수술에 나섰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면야 그나마 조금 걱정을 덜 수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랭리는 이 작전에 관한 전반적인 사안을 대사관에도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때문에 요인이 누군지, 누가 이 작전을 수행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들은 것은 반드시 살려 낼 것, 이 명령 한 줄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빨리! 빨리 이쪽으로!”
요한슨은 폭력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랭리의 명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이런 작전에 있어서 CIA의 권한은 외교부의 그것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그 작전 전달을 남아시아 및 중동 아시아 지부장인 스미스가 아닌, 랭리에 있는 국장이 직접 했다면 대부분 그러하다고 보면 되었다.
“네, 네!”
요한슨의 말에 간호사들과 병사들의 발걸음이 더 분주해졌다.
덕분에 요인과 톨레도는 순식간에 처치실 내부에 있는 각각의 침대 쪽으로 옮겨졌다.
요한슨은 애초에 명령받은 대로, 우선 요인에게로 향했다.
‘부상병이 발생한다고 해도, 요인이 최우선이야. 그 외에는 죽어도 어쩔 수 없네.’
대사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당연히 대사도 외교부가 아닌 CIA가 지휘봉을 쥔 작금의 현실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국장이 나섰다는 얘기는 곧 백악관이 뒤에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협력을 약속한 상황이었다.
“혈압은!”
“110에 80입니다!”
“응?”
당연히 엉망이겠거니 하고 있던 요한슨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빛이 스쳤다.
혈압이 정상이라고?
분명히 잡혀간 지 2주가 넘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탈레반에게 잡혀가지 않았던가.
녀석들은 포로에 대한 예우 따위는 알지 못하는 놈들이었다.
분명히 무차별적인 고문을 가하고 또 제대로 된 처치도 안 했을 텐데.
요한슨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다음 질문을 던졌다.
“심장박동 수는?”
“82회입니다!”
“호흡수 아니, 이건 뭐 기계 호흡이었고. 에이, 비켜 봐.”
심장박동 수도 정상이자, 요한슨은 더는 못 참겠다는 얼굴을 하고선 요인에게 달려들었다.
오면서 환자 상태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담요 따위는 덮고 있지도 않았다.
따라서 요한슨은 수술한 부위를 고스란히 바라볼 수 있었다.
‘우측 하지 부분 절단술에……. 좌측은…… 좌측은 이게 뭐지?’
우측 다리가 잘려 나갔다는 것 정도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동 중에 이만한 수술을 했는지가 궁금했지만, 그래, 이건 그래도 어찌어찌 가능하다고 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좌측은 뭐지?
‘이거…… 이거 국소 피판인가?’
보면서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수술실에서도 이만한 피판을 돌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대부분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게 뻔했다.
만약 요한슨이 이 수술실에서 처음 이 환자를 받았다면 주저 없이 발가락을 잘랐을 터였다.
성공할지 아닐지 장담할 수 없는 피판을 돌리진 않았을 거란 얘기.
하지만 지금 종아리에서 환자 발가락 세 개로 향하고 있는 피판은 그저 완벽했다.
“키퍼…… 중령님. 환자 구출하자마자 온 거 맞습니까?”
혼란스러워진 요한슨은 키퍼를 향해 물었다.
키퍼는 혹 상태가 너무 나빠서 그런가 하는 얼굴로 강혁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요한슨을 향해 답했다.
“네. 구출하자마자 앰뷸런스로 이송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병원에 들렀다 온 게 아니란 거죠?”
“네. 12시에 구출 작전 돌입하여, 31분경 구출에 성공했고, 바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모든 처치는 앰뷸런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허.”
요한슨은 기가 찬다는 얼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건 그냥 완벽한 수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 앰뷸런스에서 가능하다고?
무슨 버스라도 타고 오셨나?
아니, 대체 어떤 의사가 처치한 걸까?
한참을 고민하던 요한슨은 그제야 누가 이걸 해냈는지가 궁금해졌다.
나름 실력 있다고 자부하는 자신은 절대 불가능할 수술이었다.
“그……. 키퍼 중령님. 작전에 참여한 의료진이 누구죠?”
“아…….”
키퍼는 즉시 답하는 대신, 이 명단이 기밀 사항이었는지 여부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곧 대사관 내에서는 언급이 가능하다는 발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리처드 소령과 닥터 백입니다.”
“닥터…… 백?”
“네. 백강혁입니다.”
“백강혁…… 백강혁……. 응? 설마? 외상 외과 백강혁?”
요한슨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아직도 학회에서 들었던 강혁의 강의가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관용성이, 즉 모든 사람이 하기엔 부적절한 술기라는 이유로 교과서에 실리진 못했지만.
그만큼 대단한 실력을 소유한 사람이 바로 백강혁이었다.
그 사람이 여기 와 있다니.
“네, 맞습니다. 백강혁 교수입니다.”
“그 사람이 왜 파키스탄에 있죠? 설마…….”
CIA에서 고용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CIA라면……. 최고의 조건을 제시했을 테지.’
어떤 걸 요구해도 들어줄 수 있을 터였다.
최고의 병원, 최고의 숙소, 최고의 연봉 등등.
그만한 가치가 있냐고?
차 안에서 이런 수술이 가능한 사람을 딱 한 사람이라도 더 데려온다면 그때 가서 말하고 싶었다.
“아, 아뇨. 이번 작전에만 참여했습니다.”
“허. 혹시 지금 있나요?”
“네. 그런데……. 닥터 요한슨. 요인 상태에 관해 아직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키퍼는 톨레도 상사의 목숨보다도 이번 작전 성공을 위에 두고 있지 않았던가.
당연히 이러한 잡담만으로 넘어가는 걸 원치는 않았다.
요한슨 또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즉시 답변에 들어갔다.
“아. 네. 지금 약으로 재워 놔서 그렇지, 시간 지나면 깨어날 겁니다. 더 뭘 할 필욘 없어요. 그냥…… 내과적인 처치……. 아니, 관리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럼……. 살아난다는 겁니까?”
“네. 백 퍼센트 확신합니다.”
“아.”
그제야 키퍼 중령의 얼굴에 한 줄기 미소가 피어났다.
뭐가 어찌 되었건 이 지독한 하루의 끝이 성공으로 끝났다는 소리였으니.
그와 동시에 톨레도에 관한 걱정이 물밀 듯 차올랐다.
타고난 군인 정신으로 애써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었다.
“그, 그럼. 다른 부상병은 어떻습니까?”
“아, 잠시만.”
요한슨 또한 키퍼의 말을 듣는 즉시 톨레도에게로 향했다.
윗선에는, 그러니까 작전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톨레도의 목숨은 한 줌의 모래 같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그것도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같은 무게를 가진 목숨이었기 때문이었다.
“혈압 90에 60이고……. 심장박동 수는 75회입니다. 호흡수는 일단 벤틸레이터 연결했고, 기계 호흡 세팅 마쳤습니다. 체온이 조금 낮기는 한데…… 바깥 기온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한슨이 다가가자마자, 간호사 하나가 빠르게 톨레도 상태에 대해 읊었다.
단지 활력징후에 관한 얘기뿐이긴 했지만, 요한슨은 적잖이 안심할 수 있었다.
일단 활력징후는 지극히 안정적이지 않은가.
덕분에 그는 엷은 미소까지 띤 채 환자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
“아, 우측 갈비뼈 5, 6, 7번에 골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래서……. 여기 이렇게.”
“네. 부목을 대어 두었습니다. 올 때부터 이미,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과연.”
이미 강혁이 수술했다는 사실을 들었기에, 요한슨은 아까처럼 놀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톨레도의 상처를 살필 뿐이었다.
‘우측 아랫배하고 허벅지 관통상이 있었군……. 이미 봉합까지 다 되어서 원래 얼마나 손상이 있었는지는 육안으로 파악은 안 돼.’
나중에 CT를 찍어 봐야 할 터였다.
기왕이면 MRI도.
“이 환자도 내과적 관리만 하면 충분하겠습니다.”
찬찬히 환자를 살피던 요한슨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키퍼 중령을 돌아보며 자신 있게 답했다.
키퍼는 아까보다도 더 밝은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군요.”
“그러면…… 이제 제 질문에 답해 주시죠. 혹시 닥터 백이 여기 있나요?”
“아, 네. 저기 있습니다.”
“어디, 아.”
요한슨은 조금 떨어진 곳에 졸린 눈을 하고 벽에 기대고 서 있는 강혁을 발견했다.
이미 간호사들에게 환자에 관한 인계를 마쳤기 때문에 여차하면 또 잘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혁의 바람과는 관계없이 요한슨은 강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명성보다 더한 실력을 가진 의사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 닥터 백. 요한슨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학회에서 만나 뵌 적이 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음……. 모르겠는데.”
강혁은 졸린 상태긴 했지만, 요한슨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 때문에 쏘아붙이진 않았다.
요한슨에게는 더없이 충분한 응대였다.
‘학회에서는 제자고 뭐고 두들겨 패더니. 이만하면…… 내가 잘 보인 건가?’
이미 강혁을 한 번 본 덕이었다.
“네, 백 교수님은 그때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셔서…… 이거야 원. 여기서 또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영광입니다. 혹시 악수 청해도 될까요?
“뭐, 그러죠. 요한슨이라고 했죠?”
“네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하, 이런 거 가지고 뭐.”
강혁은 요한슨이 이 의료 시설의 헤드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리고 아까 간호사에게 들었던 말 또한 떠올렸다.
‘아마 2년은 더 있을걸요? 오신 지 얼마 안 됐어요.’
그 말은 곧 이놈을 구워삶아 놓으면 언제든 쓸모가 있을 거라는 뜻이었다.
대사관 지하에도 이런 수준의 의료 시설을 들여놓을 정도로 변태 같은 놈들 아닌가.
이만하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가 되진 않을 터였다.
돈 많은 놈들 대상이니, 삥 뜯는 데 있어서도 죄책감이 덜 들 테고.
‘이 양반……. 또 뭔가 꾸미고 있구만…….’
리처드는 악수에 심지어 사진까지 같이 찍어 주는 강혁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표정과 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이러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애석하게도 요한슨은 강혁을 잘 몰랐고, 강혁은 연기력이 뛰어났다.
“와,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훌륭하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종종 연락하죠.”
“네, 물론이죠. 여기, 제 연락처입니다.”
“좋군요. 아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