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7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75화(575/1120)
575화 심근경색 (3)
“어, 어디 가!”
물론 그건 강혁 혼자만의 생각일 따름이었다.
제아무리 한유림이 실력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강혁도 없이 이런 수술을 마무리할 자신이 샘솟지는 않았다.
방금 그가 해낸, 그야말로 업적이라고 할만한 수술 또한 강혁이 보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아, 왜……. 나 힘들어.”
“힘, 힘들긴! 지금 수술 누가 다 했는데!”
한유림은 나름 회심의 일격이라 생각하며 내질렀다.
아마 이 자리에 재원이나, 하다못해 리처드라도 있었으면 그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무래도 한유림의 강혁에 관한 이해도, 특히 개기는 것에 관한 이해도는 그 둘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오? 맞아, 혼자 다 하셨지, 참.”
당연하게도 강혁은 한유림의 말꼬리를 딱 잡았다.
확 늘어지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유림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봐야 뭐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아니, 아니! 아냐! 방금 말은!”
옛 강태공의 아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바닥을 몇 번인가 허우적거려 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이야……. 수술을 혼자 다 하셨구나. 내가 또 미처 이런 분을! 몰라뵙고!”
“아니, 이 새꺄!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냥 지켜보기만 하고 있으면 된다고!”
원래 강혁 정도 되면 중간중간 넌지시 찔러 주듯 던지는 조언만 잘 받아먹어도 큰 도움이 되기 마련이었다.
방금도 몇 번 그러지 않았던가.
‘아니, 사람 죽이려고 환장했나.’
‘가만 보면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으셔, 아주?’
쓸데없이 사람 상처 주는 사족이 섞여 들어가 있기는 해도.
실질적으로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조언들이었다.
해서 매달려 보았으나, 이미 강혁은 온갖 심술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야아……. 죽으라고 심장 쥐어짜서 억지로 죽은 사람 되살려 놨더니, 이렇게 괄시하네…….”
강혁은 뒷걸음질을 통해 수술실 문을 향해 아주 빠르게 이동했다.
그 모습이 흡사 한유림의 전성기 시절 유행했던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연상케 했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더 열이 오르게 만드는 포인트가 있었다.
「백강혁의 진수는 수술이 아니라 사람 약 올리는 데 있다.
-재원」
언젠가 재원이 마치 명언처럼 자기 캐비닛에 적어 두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찌나 얄밉게 움직이는지, 당사자가 아닌 댄이나 카심 심지어 굉장히 마음이 넓은 편에 속하는 제인까지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수술이 정말 잘 됐구나.’
‘이제 한고비 넘기긴 했지.’
‘곧 끝이야, 정말…… 기적 같은 수술이었어.’
강혁이란 인간이 개차반이기는 해도, 진짜 위급한 환자 앞에서 장난치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저 사람이 저 난리를 피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가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또 저 사람만의 착각이라는 걱정도 들 수 있겠으나.
적어도 강혁의 판단은 믿을 만했다.
‘방금도…… 결국 맞았지.’
제인은 이제 문워크로 문까지 열어 버린 강혁을 보며 아까의 논쟁 아닌 논쟁을 떠올렸다.
좌전하행동맥이 막혔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부위까지 정확히 언급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초였다.
가슴을 열고 아주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그 짧은 사이에 이리도 정확한 진단을 맨눈으로 해낼 줄이야.
‘경험으로 설명될 일이 아닌데…….’
아마 그게 재능일 터였다.
그야말로 천재.
하늘이 내린 재능.
“그럼 우리 60대 천대 의사 한유림 씨,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혼자 마무리 자알 부탁드립니다아.”
무려 엠디 앤더슨의 유망주였던 제인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천재.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싶은 백강혁이란 천재는 콧소리가 섞인, 다소 방정맞은 목소리를 내고는 수술방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저, 저 개새끼.”
한유림은 그렇게 간절하게 미안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가 버린 강혁의 뒷모습을 향해 적나라한 욕설을 내뱉었다.
“진정하세요. 한 교수님.”
제인은 그런 한유림을 말렸다.
한유림은 진중한, 이 병원의 팀장 제인을 돌아보았다.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는데, 아마도 그 걱정의 태반은 자신을 향하고 있는 거 같았다.
하긴, 최근 들어 심심하면 욕설을 지껄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내가…… 내가 누구한테 이런 일로 걱정 끼쳤던 사람은 아닌데…….’
생각해 보면 한때나마 인덕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불렸던 그이지 않았던가.
심지어 한국대학교 병원 외과 과장으로 있을 때도 레지던트의 대다수는 그를 지지했더랬다.
한유림은 적어도 면전에다 대고 쌍욕을 하거나 때리는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강혁과 지지고 볶으며 지낸 지 석 달도 안 되어서 이렇게 변해 버린 셈이었다.
“한 교수님, 그래도 혼자 하실 수 있죠?”
제인은 먼눈을 하고 회상에 빠진 듯한 한유림을 향해 말을 이었다.
‘내가 왜 한국 욕을 이렇게 잘 알아듣게 된 걸까’라는 회의에 빠지면서였다.
“어? 어, 네. 네, 팀장님. 당연하죠. 닫는 거야 뭐…….”
“그럼 빨리하죠. 아무리 안정이 됐다고 해도, 시간 끄는 건 위험해요. 게다가…….”
제인은 잠시 수술실 문을 돌아보았다.
시선이 닿은 것이야 당연히 닫힌 문이었지만, 보고자 했던 것은 강혁이었다.
‘그 사람 혼자 저 밖에 계속 두는 건 위험해…….’
하필이면 머리까지 좋아서 우르드어를 익히지 않았던가.
보호자한테 가서 무슨 실례를 범할지 예측조차 잘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야 어떻게 어떻게 반 사기식으로 잘 끌어오긴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 통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 어! 그렇네! 빨리할게.”
제인은 자신의 이러한 속내를 단 한 번도 입으로 토해 내지 않았건만.
한유림은 제인의 눈빛만 보고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마 본인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어서였을 터였다.
“네, 부탁드립니다. 뭐, 문제가 생길 거 같진 않은데……. 그래도 마취가 길어지면 환자에게 부담이 가니까요.”
댄은 아무래도 강혁과 수술로 부딪치거나 하진 않아서 강혁에 관해 이 둘에 비하면 이해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환자 때문에라도 수술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했다.
“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카심이야 한유림이나 제인과 같은 이유로 채근했고.
“어딨다고?”
그렇게 수술실이 분주해진 동안, 강혁은 어슬렁거리며 병원 복도를 헤맸다.
아까 처치실에서부터 강혁을 도와 환자를 수술실 안으로 넣는데 일조했던 간호사를 붙잡고서였다.
‘안 되는데…….’
간호사는 얼마 전 아니, 거의 몇 주 전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뭐야, 왜 갑자기 떨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지는 그런 기억이었다.
‘우리 간호사분들 아직 정신 못 차리셨나 본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다 못 외우면 여기서 못 나간다고.’
장미라고 했던가?
꽃 이름이랑 같은 이름이던데.
세상에 어떤 꽃이 그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을까.
여기 있는 이 간호사를 비롯해 병원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는 수준으로 변화될 정도의 고난이지 않았던가.
때문에 간호사들은 ‘장미’라는 꽃이 아마도 한국이라는 나라 설화에 나오는 지옥과 관련된 꽃이 아닐까 하고 추정 중이었다.
‘옛날보다는 많이 좋아졌어, 좋아졌는데. 그래도 백 교수님……. 절대 혼자 보호자한테 보내진 마. 말릴 수 있는 누군가를 같이 보내.’
아무튼, 그렇게 혹독한 가르침을 받은 덕에 그때 들었던 것은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지침 중에서도 꽤 주요한 것들은 메모까지 해 두었는데.
지금 강혁이 요구하는 것이 그중 하나였다.
“뭐야, 왜 그래. 왜 떠냐고? 이상하네. 아픈 건 아닌 거 같은데……. 이거…….”
강혁은 그런 간호사를 보며 턱 밑을 긁었다.
얘가 어디 전쟁이라도 겪은 적이 있었나? 하면서였다.
‘이건 전형적인 PTSD 증상이랑 비슷해 보이는데…….’
하긴 이곳에 사는 것만으로도 PTSD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을 거 같긴 했다.
PTSD라는 게 반드시 본인이 어떤 일을 겪어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옆에서 보지 않더라도, 전해 들은 것만으로도 생길 수 있었다.
여긴 심지어 지인들이 죽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이니 가능성은 있었다.
이렇게 강혁이 그로서는 참으로 드물게 의학적인 오판을 내리고 있는 동안, 간호사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그, 맞어. 환자가 시장님 지인이잖아요.”
“그렇지. 나도 들었어. 근데 그거랑 뭔 상관이지?”
다른 사람 같으면 시장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조금은 몸가짐을 조심하긴 할 텐데.
이 인간은 역시나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차를 빌려준 거고요.”
“음. 그랬지?”
“근데 시장님도 지인분 상태를 궁금해하셔서요.”
“아,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시간 끄는 것도 아니고 뭐야 이거.”
“엇.”
이상한 데서 또 예리한 구석이 있다더니.
한순간에 정곡을 찔린 간호사는 잠시 뜨끔하다는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장미라는 인간이 여기 또 왔을 때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근데 차가 하나라, 지금 차가 돌아갔어요. 시장님 준비하고 다시 온다고…….”
“잉? 이상한데. 수술이 아무리 그래도…….”
강혁은 병원 복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간호사의 손목을 휙 하고 낚아챘다.
뭔 놈의 병원이 시계가 거의 없을까.
차라리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편이 더 빠를 지경이었다.
“그래. 1시간은 넘게 걸렸는데?”
생각해 보면 이것도 진짜 말이 안 되는 시간이었다.
개흉해서 관상동맥 우회술을 했는데 1시간이라는 단위가 나올 수 있다니.
물론 간호사는 아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수준은 아닌지라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1시간이라는 시간에 집중할 따름이었다.
“그, 네. 준비에 시간이 좀 걸립니다. 지위가 있으시다 보니…….”
“그래서 보호자가 갔다, 이 말인가?”
“네.”
“음…….”
강혁은 뭔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보았던 보호자는 걱정이 가득하다 못해 짓눌린 느낌이었는데.
그런 와중에 다시 돌아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으나 확인할 길은 없었다.
게다가 강혁은 다른 할 일이 또 있었다.
바로 요다를 잡아 오는 아니, 요다를 준비시키는 일이었다.
“알았어, 그럼. 요다는 어딨지?”
“네? 아, 닥터 요다요. 지금…… 아마 숙소에 있겠죠?”
“오케이. 그럼 따라와.”
“네, 안녕히…… 네?”
“환자 처음 봤으면 끝까지 책임져야지. 요다랑 같이 환자 봐.”
“저…… 저 심장 수술 환자 본 적 없는데요?”
“이제 있게 되겠네.”
“어…….”
“오. 나 전화할까? 화상 통화 한번 할래? 장미랑?”
“아닙니다.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강혁은 사색이 돼서 경례까지 붙이고 있는 간호사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장미를 떠올렸다.
‘대체 사람을 어떻게 잡으면 이렇게 될까.’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장미가 칠색 팔색을 했더랬다.
교수님이 그런 것도 배우게 되면 세상에 지옥이 임하게 될 거라고.
뭔 지옥씩이냐 임하냐고 하니, 재원과 강행 그리고 경언 등을 가리켰는데 어쩐지 할 말이 없었다.
돌이켜 보니 이미 강혁은 누군가에게는 잠시 지옥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따라와.”
해서 강혁은 아쉬움을 거둔 채 간호사를 거느리고 위로 향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거실에서 쉬고 있을 요다를 잡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