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58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582화(582/1120)
582화 축하할 일 (2)
“저 새끼는 꼭 나를 물고 넘어지더라?”
한유림은 이미 방문 닫고 나가 버린 강혁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못생긴 노인네라니, 거 말이 해도 해도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나 정도면 그래도…….’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조금은 납득이 가긴 했다.
‘뭐…… 맨날 지 얼굴 보고 살다가 나 보면 깜짝 놀라기는 할 거야?’
방금 자신도 그러지 않았던가.
내내 설득에 나선, 그러니까 퍽 멋진 표정을 하고 있던 강혁을 보고 있다가 거울을 보니까 흠칫 놀라고야 말았다.
“영감님, 그래도 역시 백 교수님이 틀린 소리를 하진…… 억. 왜 때려요.”
“너가 더 나쁜 새끼야.”
물론 위로랍시고 시비만 걸고 있는 리처드를 그냥 두진 않았다.
정강이 정도는 후려치고야 말았다.
이제 한유림의 완력도 꽤 강력해진 마당인지라, 리처드는 한참 동안 펄쩍 뛰고 있어야만 했다.
“근데, 한 교수님. 리처드.”
그런 둘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제인이 입을 열었다.
댄은 자고 있고, 요다는 다시 심장 환자를 보러 간 뒤라 이곳에는 이 둘밖에 없었다.
둘 중 리처드는 지금 당장은 입을 열어 봐야 신음밖에 더 나올 것이 없는 상황이었고.
해서 대답은 자연스레 한유림의 몫이 되었다.
“음, 닥터 제인. 무슨 할 말이라도?”
“따라가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백 교수님…… 뭔 짓 할지 모르는데.”
“아.”
정말이지 백강혁만큼 뭔 짓 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인간이 있을까?
그제야 한유림은 못생긴 노인네라는 다소 충격적인 언사에서 벗어나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손전등을 비춘 채 앞으로 나아가는 건장한 체격의 둘이 한눈에 들어왔다.
물어볼 것도 없이 백강혁 그리고 데니스였다.
“따라갑시다.”
“네, 리처드도 오세요.”
“으, 네.”
해서 제인은 한유림과 리처드를 대동한 채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어차피 강혁이라고 해서 매사 다 서두르는 건 아니었기에 따라잡을 수는 있을 터였다.
그때까지 통제에 벗어난 저 인간이 무슨 말을 하는가는 다른 문제였지만.
“여기가 1층. 어때? 불도 들어와. 우리 총리님이 여기도 따로 발전기 달게 해 줬거든. 뭐, 계속 돌리려면 기름이야 너네 돈으로 써야겠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전기가 들어온다고.”
“음…… 그건 확실히 장점이네요. 어차피…… 야근까지 시킬 생각은 없지만.”
강혁은 무슨 복덕방 아저씨라도 빙의한 듯 청산유수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게 가능한 것은 한유림의 예상대로 벌써 오래전부터 이 건물을 데니스에게 맡길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야근 안 시킨다는 건 지금 생각이지. 어? 평소에야 그럴 수 있지. 나도 알아. 공정 거래 좋은 사업이니까. 근데…… 납기일이 뭐 항상 그렇게 딱딱 맞춰서 돌아오나? 사업 확 커 가는데 물량 달리면 어쩔래?”
“그…… 음.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그래, 돈 안 주는 야근이 나쁜 거지. 두둑이 챙겨 주고 또 가끔 하는 야근은 괜찮다고. 안 그래?”
“그렇긴 하죠. 근데 좀 지저분하네요?”
“아무도 안 쓴다는 증거지! 새 건물!”
“아, 네…….”
세상에 어떤 새 건물이 이렇게 낡았나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데니스는 일단 참기로 했다.
‘이 사람…… 원래 분위기가 이랬나?’
그동안은 항상 병원에서만 봐서 몰랐는데.
거의 폐가 수준인 집에 와서 보니까 뭔가 좀 달랐다.
“자자, 일단 올라오라고. 2층은 더 좋아.”
“네, 백 교수님. 음.”
말투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데, 건드리면 뒤질 거 같은 느낌이 일었다.
마치 한창 랭리에서 구를 때 마주한 교관들이 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상한 일…… 음?’
그런 생각을 하고 따라가고 있으려니, 강혁이 계단 중간쯤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왜…… 왜 그래요?”
그것도 어마어마한 살기를 내뿜으면서였는데, 천하의 CIA 요원 데니스가 다 말을 더듬을 지경이었다.
“아니, 아냐. 아무것도.”
하지만 고개를 돌린 강혁은 웃고 있었다.
그사이에 손이 엄청 빨리 움직인 거 같긴 했는데, 워낙 빠르기도 했고 또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허미 시벌, 이게 뭐여.”
대신 뒤따라오던 한유림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무언가에 맞아 떨어진 쥐새끼 때문이었다.
“한 교수님 이거…….”
그나마 리처드는 한유림보다는 좀 나아서 바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리 봐도 이놈이 떨어지는 모양새가 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간에 박힌 무언가를 곧장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주사기였다.
10cc짜리.
“뭐야……. 그게?”
“백 교수님이 던진 거 아닐까요?”
“주사기를 던져서 쥐를 잡는다고? 말이 되나?”
“백 교수님이 하는 짓이 언제는 말이 됐나요?”
“그건…… 그건 그렇긴 해.”
괴물이긴 하지 않은가.
한유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대고는 제인을 돌아보았다.
“좀 더 서두르는 게 좋겠는데.”
“왜요?”
“수틀려서 이걸 데니스한테 던지면 어떡해?”
“아.”
설마 그럴 리가요 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어쩐지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렇게 제인 일행이 뒤쫓아 오는 동안에도 강혁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봐 봐. 2층은 거실이 되게 넓지. 여기를 메인 작업장으로 쓰거나 해도 되지 않겠어?”
“음…… 탁 트였네요. 근데…….”
“근데 뭐.”
“유리창이 없는 거 아니에요?”
교육동과는 달리, 이 건물은 빈 채로 좀 방치된 상황이었다.
한구 병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돈 될 만한 것은 지역 주민들이 다 뜯어 갔는데, 그중에는 유리창도 있었다.
굉장히 예리한 지적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강혁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아, 그거? 일단 철거했지.”
“왜, 왜요?”
“여기 뭘 달지 알고 오래된 유리창을 남겨 둬? 그때 가서 떼려고 하면 그게 또 다 돈이야, 돈. 미리 뗐지.”
“음.”
암만 봐도 개소리였지만.
‘그럴싸한가’라는 생각을 하고 들으면 또 그럴싸했다.
“여기 3층이 진짜야.”
강혁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데니스를 끌고 맨 꼭대기 층, 그러니까 3층으로 향했다.
그나마 1, 2층은 쓰레기가 좀 치워져 있었지만 3층은 그런 조치도 취해져 있지 않았다.
제아무리 강혁이나 한유림이 괴물 같은 체력을 자랑한다 해도, 매일 격무에 시달리고 난 후 청소까지 빠르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미 교육동 1층에서는 진짜 교육이 시작된 마당이라 대부분의 노력은 교육동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가 본격적으로 보일 거라는 뜻의 진짜인가?’
데니스는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이는 3층을 보며 입을 벌렸다.
여기서 다치면 강혁이 천재라 해도 못 살릴 거 같았다.
바로 이름도 모르는 세균에 감염될 테니까.
“걸리적거리는 게 좀 있긴 한데. 구조를 보라고 구조를. 방이 네 개야, 무려. 한국인 직원이 세 명이 되어도 각방을 쓸 수 있다 이 말이지. 화장실도 두 개나 있어서 불편할 일도 없고.”
“물이…… 물이 나오나요?”
“지금은 수도 잠가 놔서 안 나오는데, 틀면 당연히 나오지.”
‘음…….”
“아, 전기가 들어오잖아. 용량도 꽤 커, 이거. 병원에다 단 거랑 똑같은 거라고. 알지? 요새 병원 에어컨에 냉장고까지 팍팍 도는 거.”
“그건 그렇죠.”
에어컨이랑 냉장고는 원래 돌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데니스도 이곳 한구에서 지낸 지 한 달이 넘은 참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당연하다 여기는 것이 이곳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심지어 시청 바로 옆이라 전력 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은 사무실조차 때때로 전기가 나갈 지경이지 않은가.
무언가 제작을 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치명적일 수 있었다.
“여긴 일단 전기가 끊길 일이 없어요. 프라이버시도 보장되고. 노트북 그거 충전 전압 부족해서 안 될 일도 없고. 어때.”
“음…… 근데 말이죠.”
데니스는 다시 한번 3층 전체를 둘러보았다.
강혁의 말대로 쓰레기를 걷어 내고 생각해 보면 상당히 컨디션이 괜찮은 건물이었다.
대지 면적도 이만하면 넓은 편이고.
‘이걸 통째로 빌리면 대체 얼마야?’
사무실만 해도 꽤 비싼 가격에 임대 중이었다.
월세가 300불이 넘었으니까.
세상에 한구 지역이라는 깡촌에서 무슨 놈의 월세가 300불이냐는 말을 했더니, 중개를 맡아 준 현지인 아저씨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100불은 시장님, 100불은 경찰서, 50불은 내 수고비. 이제 이해가 되시나?’
그 말은 곧 원래는 50불이면 되는 월세를 6배로 후려쳤다는 얘기가 되었다.
‘원래 이런 곳은 항상 외국인 가격이 따로 붙어 있는 법이긴 하지만…….’
그걸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하는 건 또 처음 보았다.
문제가 있다면 강혁의 눈이 그때 보았던 현지인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자, 잠깐! 지금 무슨 얘기 중이죠?”
그때, 마치 구세주처럼 제인이 등장했다.
어두운 와중에서도 열심히 뛰었는지 등이 들썩거리는 게 보였다.
“음? 아, 여기 임대에 관해서 얘기 중이지.”
“조건…… 조건 말씀드렸어요? 너무 후려치면 안 돼요! 우린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잖아요.”
제인은 불안한 마음에 강혁을 다그쳤다.
그에 반해 강혁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따름이었다.
“아니…… 내가 뭘 후려쳐. 여기 빌려주는 게 이 친구한테도 좋은 거라니까 그러네.”
“얼마에…… 얼마에 빌려주려고요?”
제인의 말에 데니스의 눈 또한 다시 제인에게서 강혁을 향했다.
‘천 불? 2천 불?’
대체 얼마를 부를까.
지금까지 입 턴 것만 보면 2천 불도 적어 보였다.
쓰레기투성이의 폐허를 보여 주는 주제에 말투는 무슨 맨해튼의 아파트먼트 소개하는 느낌이지 않았던가.
문제가 있다면 시장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의 가격이 대강 그 정도 할 거라는 점이었다.
무능하지는 몰라도 끝내주게 부패해 버린 관료들 틈바구니를 겪지 않아도 된다는 건 정말이지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일단 3개월 렌털 프리로 하지.”
“역시 2000…… 응? 렌털 프리요?”
“아니 뭘 그런 눈으로 봐? 나 좋은 사람이야. 공정 무역으로 이 지역 살리겠다는 사람 후려칠까 봐?”
“아니…… 그…….”
들은 거랑 너무 다른뎁쇼? 라는 말이 입 안에서 빙빙 맴돌았다.
데니스가 당황한 채 서 있는 동안에도 강혁의 말을 계속되었다.
“그 후에는 일단 1년은 걸릴 거 아냐, 자리 잡는데. 그동안 월세는 500불로 하자고. 어때. 제인, 이만하면 후하지?”
“어……. 그것도 좀 너무…….”
너무 싸지 않나 싶을 지경이었다.
통 건물 임대가 500불이라니.
아무리 한구라도 그렇지.
이건 건물이지 않은가.
“어때? 제인이 생각하기에도 싼 가격이야.”
강혁은 그런 제인을 애써 무시한 채 주섬주섬 품 안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자, 찍어. 지장.”
“어…….”
“에이, 속고만 사셨나. 진짜 좋은 조건이라고. 3개월 렌털 프리에, 월 500불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