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화(6/1120)
6화 미친개 (4)
지이익.
강혁은 메스로 환자의 가슴골을 따라 그대로 살가죽을 그었다.
가슴골은 살가죽이 아주 얇은 곳이었기 때문에 단숨에 뼈가 닿는 곳까지 그을 수 있었다.
“흠.”
강혁은 갈라진 틈새로 드러난 새하얀 뼈를 확인하고는 메스를 내려놓았다.
“전기칼.”
“여깄습니다.”
“칼끝, 뭉툭한 거로.”
“아, 네. 교체하겠습니다.”
강혁은 간호사가 칼끝을 보다 뭉툭한 팁으로 교체하는 사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절개 틈새를 손가락으로 슥 훑었다.
옆에서 보기엔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짓에 불과할 테지만.
강혁은 이제 어디를 어떻게 가르고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여기, 다 됐습니다.”
“좋아.”
강혁은 칼끝이 뭉툭한 전기칼을 아까 만들어 놓은 절개면 사이로 집어넣었다.
타다다다닥.
타는 소리와 함께 절개 면이 더 넓어졌다.
어차피 안쪽으로는 단단한 뼈가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땐 괜히 얇고 뾰족한 팁을 이용해 가르는 것보다 이렇게 한 번에 태우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했다.
“됐고……. 야, 항문.”
“네.”
이제 재원은 항문이라는 호칭에 완전히 적응한 지 오래였다.
답하는 데 1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남았지?”
“이제…… 3분의 1 정도 했습니다.”
“흠. 좀 더 서둘러. 가슴 가르고 나면, 보조가 필요하니까.”
“네, 네. 근데 정말 혼자서…….”
“넌 네 일이나 신경 써. 난 무조건 할 수 있어.”
“네…….”
재원은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저 혼자 가슴뼈를 가르겠다는데.
해서 일단 하던 일에나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타다다닥.
강혁은 다시 전기칼을 이용해 절개 면을 조금 더 넓히고 있었다.
가슴골 쪽은 이미 완료가 되었던 터라, 이젠 가슴골 위쪽을 가르는 중이었다.
타다다다닥.
이쪽은 아래에 뼈가 없어서 어느 순간 밑으로 빈 공간이 훌러덩 하고 나왔다.
이때 경험이 부족하거나, 수술 시 부주의한 집도의라면 아래 조직에 상처를 내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아까부터 아래쪽을 훤히 보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절묘한 시점에 전기칼의 스위치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리곤 검지를 절개 틈새로 집어넣어 안쪽의 공간을 확인하는 동시에 넓혔다.
투두두둑.
워낙 완벽하게 절개했던 덕에 살가죽과 아래 조직 사이를 이어주던 결체 조직은 매우 쉽게 제거되었다.
“됐어. 철판.”
“네, 선생님.”
강혁은 간호사에게 얇은 철판 하나를 건네받았다.
그리곤 방금 자신이 손가락을 집어넣었던 곳으로 쑥 하고 밀어 넣었다.
철판은 정확히 가슴골 뼈와 그 아래 있는 조직 사이에 자리했다.
“이제 톱.”
“네. rpm은 어떻게 맞출까요?”
“25,000.”
“네.”
강혁은 전기톱을 받아 들자마자 발판을 밟아 작동부터 시켜 보았다.
위이이잉.
강혁은 동그란 톱이 돌아가면서 나는 섬뜩한 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씨익 웃었다.
“안 쓰는 수술방이라고 들었는데, 제품은 좋은 걸 들여놨네.”
간호사도 재원도 ‘소리만 듣고 그걸 어찌 아느냐’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적어도 수술실 안에서는 집도의가 왕이었으니까.
게다가 재원은 수술실 밖이라 해도 눈앞에 있는 강혁에게 감히 거스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자, 그럼 가슴뼈 절개합니다.”
“네.”
강혁의 말에 마취과 의사가 답했다.
그리곤 마취 심도를 조금 더 올렸다.
이렇게 하면 혈압이 조금 더 떨어지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뼈를 가르는 통증은 무의식중에서도 어마어마할 테니까.
그 때문에 혈압이 올라가거나 심장박동 수가 올라가면 지금 환자처럼 심낭 압전 등, 심장에 이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었다.
“흠.”
강혁은 그런 마취과 의사의 움직임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톱을 가슴골 뼈 위에 갖다 대었다.
보통 두 손으로 잡기 마련인데, 강혁은 그저 한 손으로만 쥐고 있었다.
다른 한 손은 가슴골 뼈 밑으로 들어가 있는 철판을 쥐고 있었다.
“여기 물만 좀 뿌려줘.”
“아, 네.”
보조를 서던 간호사는 생리 식염수가 가득 든 큼지막한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좋아. 내가 시작하면 계속 뿌려.”
“뼛가루 쌓여도……. 계속해서 뿌리나요?”
제아무리 전기톱이라고 해도, 날에 다이아몬드가 달려 있다고 해도 두꺼운 성인 남자의 가슴뼈를 두부 자르듯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자를 수 있도록 만들지도 않았다.
그렇게까지 날카롭고, 절삭력이 좋게 만들었다가는 밑에 있는 구조물이 다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물에 젖은 뼛가루가 쌓이기 마련이었는데, 이게 시야를 무척 방해했다.
그래서 가슴뼈를 자르는 과정은 톱을 돌리다가 안 보이면 멈추어서 가루를 치우고, 또다시 돌리고 하는 힘든 작업의 연속이라고 보면 되었다.
“흉부외과 수술방에 있었나? 그런 걸 알게?”
“네. 5년 정도…….”
“훌륭하네. 어쩐지 보조가 좋더라니. 그런데 나는 필요 없어. 그냥 계속 뿌리면 돼.”
“아, 네. 알겠습니다.”
강혁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발판을 밟아 톱을 돌렸다.
위이이잉.
아까와 정확히 똑같은 소리를 내며 톱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강혁은 그 톱을 천천히 가슴뼈 쪽으로 밀어 넣었다.
가가가가가각.
톱날이 단단한 가슴뼈를 갈아 들어가면서 내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물 뿌려!”
“네!”
강혁이 호통을 치자 간호사가 세차게 생리 식염수를 뿌렸다.
이 행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나마 쌓이는 뼛가루의 양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톱질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마찰열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물을 뿌리지 않고 그냥 톱질하다 보면 뼈가 타버리는데, 그럼 나중에 뼈가 잘 이어 붙지 못했다.
가가가가가각.
강혁은 한 손으로도 전기톱을 전혀 흔들림 없이 잡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아주 정확하게 일직선을 긋고 있었다.
사람 뼈라는 게 아무래도 어느 한 곳은 더 단단하기도 하고, 어느 한 곳을 더 무르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때문에 미세한 틀어짐 정도는 늘 있는 일이라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강혁의 톱질에는 그러한 것이 전혀 없었다.
마치 기계가 긋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가가가가각.
아무래도 시행착오가 전혀 없는 톱질이다 보니, 천천히 긋는 것 같은데도 절대적인 시간은 적게 걸렸다.
“절개 끝. 야, 항문.”
“네네.”
“봉합은? 끝났어?”
“아, 아직입니다. 거의 다 되긴 했는데…….”
“손이 느린 편이구나, 너.”
“아뇨, 그렇진 않은데…….”
재원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반 외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세부 전공은 다름 아닌 항문외과였다.
다른 세부 전공과는 달리 응급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대학 병원 밖으로 나가도 배운 것을 고대로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환자까지 많으니 수입 면에서도 괜찮지 않은가.
그렇다는 것은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이 되었고, 자연히 외과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분과란 얘기가 되었다.
즉 재원은 시험만 잘 본 게 아니라 실력도 꽤 좋은 외과 의사란 얘기였다.
‘내가 봉합 꽤 빠른 편인데…….’
재원은 이미 훤하니 열려 버린 가슴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뭐야.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심지어 정확하기까지 했다.
보통 가슴골 밑에 대는 철판에 작은 흠집이라도 남기 마련이거늘.
이번에 강혁이 대어 놓은 철판은 그저 새것이었다.
단 한 번도 톱이 철판에 닿지도 않았다는 얘기였다.
‘흉부외과 출신…… 인가?’
재원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봉합을 해 나가는 동안 강혁은 갈라놓은 가슴뼈를 좌우로 쭉 벌렸다.
그리곤 아이언 인턴(Iron intern: 절단면을 벌리고 고정하는 기구)을 이용하여 고정했다.
그러자 펄떡거리고 있는 심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아직 그렇게 많이 피가 차진 않았네.”
강혁은 펄떡대는 심장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고는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심낭 압전이 생길 정도의 상처가 있었던 데다가, 승압제까지 맞은 탓에 어느 정도는 피가 다시 차 올라 있었다.
다만 강혁이 너무 빨리 움직인 덕에 그게 심장을 누르고 있진 못했다.
“항문, 이제 슬슬 올라와.”
“네. 다 끝났습니다.”
“대충대충 한 건 아니지? 네 살 아니라고.”
“아, 아닙니다.”
“이따 보면 알겠지. 아무튼, 이 핀셋 잡아.”
강혁은 핀셋으로 귀신같이 심장 외막을 집은 채 재원을 돌아보았다.
재원은 부리나케 강혁의 맞은편에 선 후 그 핀셋을 받아 들었다.
“이거 놓치지 마. 그럼 귀찮으니까.”
“네.”
“너 심낭 압전 있던 환자의 경우 뭔 수술 하는지는 알고 있지?”
“어……. 네. 알고는 있습니다.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럼 좀 낫겠네. 딱 잡아.”
“네.”
강혁은 그렇게 핀셋을 재원에게 맡긴 후 메스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외막에 살포시 절개를 넣으면서 마취과를 돌아보았다.
“마취과, 이제……. 음.”
“네?”
“아냐. 심장 박동수, 일부러 줄인 거야?”
“네. 심장에 절개 들어갈 거 같아서요.”
“흠……. 이름이 뭐지?”
“박경원입니다.”
“잘했어.”
강혁은 짤막한 칭찬을 남기고는 계속해서 메스를 움직였다.
대단히 부주의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제아무리 심장 박동 수가 줄어들었다곤 해도, 심장은 끊임없이 뛰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대고 칼질이라니.
재원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다 저렸다.
“자, 이제 핀셋 더 당겨.”
“아, 네.”
하지만 결과물은 거짓말처럼 완벽하기만 했다.
어느새 심장의 외막이 깨끗하게 벗겨져 있었고, 안쪽으로는 전혀 상처가 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원래 있던 상처만이 남아 있었다.
강혁은 심장 한가운데쯤 나 있는 상처를 가리켰다.
지금도 쫄쫄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근육이 살짝 찢겼네. 좀만 더 세게 맞았으면 심낭 압전이 아니라 심장 파열로 왔겠어.”
그는 그리 말하면서 상처를 봉합해 주었다.
그러자 피가 멎어 버렸다.
“됐어. 이제 닫자.”
“와…….”
“왜.”
“아뇨. 이게 원래 이렇게 빨리 끝나는 수술인가 싶어서요.”
재원은 수술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시간 반 정도밖에 안 된 것을 상기했다.
“그게 불만이냐?”
“아뇨, 아닙니다.”
“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해. 아이언 인턴 빼고, 가슴뼈 딱 잡아.”
“네.”
“드릴이랑 철사도 주고.”
“네, 선생님.”
강혁은 간호사에게 드릴을 건네받은 후 좌우로 벌어진 가슴뼈 각각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
그리곤 철사를 봉합실 삼아서 꽉 묶어 버렸다.
그러자 한껏 벌어져 있던 가슴뼈가 단단히 닫혔다.
거의 죽음이 확실했던 환자가 살아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강혁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까먹은 거 같아서.”
“네? 설마!”
재원은 사색이 되어 수술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보조를 서던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닫혀 버린 가슴뼈 안에 혹시 두고 나온 기구가 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강혁은 그런 종류의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 맞다.”
“뭐, 뭡니까.”
“나 오늘 교수 취임식 있는데.”
“언젠데요?”
“10분 전에 시작했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