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1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12화(612/1120)
612화 무엇을 얻었나 (2)
재원이 나이에 안 맞게 맹장염으로 수술실로 실려 갔을 무렵, 강혁은 여전히 과다르에 있었다.
일정 일찍 끝났다고 일찍 돌아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파키스탄 정부의 양해를 받아 수행한 작전이니만큼, 그들의 일정에 충실히 따라야만 했다.
“감사합니다, 닥터 백.”
로먼 준장은 이제 막 수술복을 벗고, 말끔히 씻고 나온 강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같은 소속인 다른 의사들이 외면할 때 손 내밀어 준 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준장씩이나 돼서……. 되게 감성적이네.’
보통 조직에서 이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이렇지 않던데.
낯선 기분이었다.
물론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실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좋아했으니까.
“아뇨,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죠.”
준장은 그런 말을 하면서, 죽어 간 수많은 부하들을 떠올렸다.
조국이 그들에게 영웅 칭호를 달아 준 것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가 아니었다.
군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정말로 했기 때문이었다.
군인뿐만이 아니라, 의사도 그렇지 않을까.
“뭐……. 그렇게 적지는 않죠.”
“의사는 그렇습니까?”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래요.”
“그거 좋은 일이군요.”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로먼에게서 시선을 돌려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연이은 수술에 상당히 지쳤는지, 머리도 못 말린 채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잠이 오진 않는 모양이었다.
눈이 벌게진 주제에 감지는 못하고 있었다.
“넌 괜찮냐?”
“네? 아, 네.”
“임무 잘 마쳤잖아. 승진하는 거 아니냐?”
“이게 승진까지……. 음. 모르겠네요.”
리처드는 작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려다가 모르쇠를 쳤다.
거실에 둘만 있는 게 아니라 로먼이나 캠 심지어 이름도 모를 이들이 꽤 있다는 걸 떠올린 덕이었다.
‘재선 어쩌구 했다간…….’
워낙에 예민한 사항이지 않은가.
혹 그런 게 아닐지라도 군인이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거 자체가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저 백강혁도 말을 아끼고 있었다.
저 인간이 조심하고 있을 정도라면 이 일의 중차대함은 더 언급해 봐야 입만 아팠다.
“아, 로먼 준장.”
한참을 앉아 쉬던 강혁이 로먼을 불렀다.
로먼은 지금 당장이라면 강혁이 뭔 일을 시켜도 다 해 줄 용의가 있었기에 즉시 답해 주었다.
“네, 닥터 백.”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을까요?”
“어디로 쓸 건지 여쭤봐도 좋겠습니까?”
혹 파키스탄 내로 걸 거라면 좀 곤란했다.
설마 강혁이 작전에 대해 떠들어 댈 리는 없겠지만.
여지를 주는 것도 조심스러웠으니까.
물론 강혁도 이러한 점은 다 알고 있었다.
“한국이요. 내 제자.”
“제자……?”
“네, 워낙 친해서.”
“알겠습니다.”
제자랑 사귀나?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까지 와서 전화 걸 일이 있나?
로먼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화기를 넘겨 주었다.
사생활의 영역 아닌가.
부하 목숨 살려 줬는데 이 정도야 뭐 얼마든지 눈 감아 줄 수 있었다.
띠리링.
물론 강혁이 전화를 건 대상은 애인 같은 게 아니라 재원이었다.
유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얼마나 샀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여보세요?”
“잉.”
“누구세요.”
“신규야?”
“신규……? 백 교수님?”
의외로 전화를 받은 것은 재원이 아니라 지민이었다.
지민은 너무도 오랜만에 들어 보는 신규란 말에 상대가 강혁이란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했다.
오히려 말문이 막힌 것은 강혁이었다.
‘이 자식이 주변에서 찾으라니까……. 신규를 꼬셨나……?’
그게 아니라면 왜 지민이 전화를 받는단 말인가.
시차 보면 정규 근무 시간도 아닌데.
“백 교수님 맞아요?”
강혁이 말없이 있자 지민이 물어 왔다.
“어, 어. 맞는데……. 왜 너가……. 받지?”
그럼에도 강혁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어렵게 물었다.
둘이 사귀어요! 이런 말이 나오면 어쩌나 하면서였다.
“아, 양 선생님 지금 수술방 갔어요.”
“수술해? 근데 왜 너가 받아? 너 중환자실 아냐? 조폭이 또 멀티플레이어 하라고 해?”
“아……. 아뇨. 양 선생님이 수술을 받아요. 가운 벗어 놓고 가셔서, 그냥 제가 받았어요.”
“수술? 노예가 수술을 받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전에 여기 왔을 때 재원의 몰골을 떠올려 보니, 점점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 새끼……. 비실비실해 가지고.’
어찌 된 놈이 한유림보다도 몸이 약해 보였다.
그런 놈이 수술받는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났다.
“아, 맹장이에요.”
“맹장? 별거 아니네?”
“네.”
물론 병명을 듣고 나니 안도감이 확 들었다.
‘새끼 걱정시키고, 말야. 그냥 국소 마취로 하고 전화는 받지.’
심지어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당사자인 재원이 들었다면 욕이 절로 나왔겠지만.
어쩌겠는가.
전신 마취하고 수술 들어간 참인데.
“그럼 나오면……. 아니다. 이 번호는 전화 안 될 텐데. 에이……. 알았어. 내가 다시 걸게.”
“네, 교수님. 잘 지내시는 거죠?”
“나? 어어. 잘 지내지, 뭐. 겨울쯤 한번 들어갈 거야. 그때 얼굴 보자고. 밥 맛있는 거 사 줄게.”
“아, 겨울에…… 오세요?”
“목소리가 어째 떨떠름하다?”
“아뇨, 아뇨. 너무 좋아요. 이게 음질이 후지네.”
지민은 옆에 서서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방금 수술실에서 나온 사대진을 향해 목을 그어 보였다.
입으로 백강혁 온다고 말해 주면서였다.
“아이고.”
그와 동시에 사대진, 그러니까 5호의 입에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양 선배 나오면 바로 말해 줘야겠네…….’
나이 들면 다 부드러워지는 법이라고 했던 재원은 파키스탄에서 돌아오자마자 한 일주일간 백강혁 얘기만 했었다.
아주 가끔 강혁이 마지막에 했다던 ‘고맙다’에 대한 발언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이었다.
“아무튼, 끊는다.”
“네, 교수님.”
“겨울에 봐.”
“네…….”
강혁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반가움과 절망을 동시에 남겨 줄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죄다 한국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로먼이나 나머지 사람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리처드만은 조금 알아들었는데, 반강제적으로 강혁과 한유림에게 말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수술? 양 선생님 수술받아요?”
“어? 어. 맹장이래.”
“아……. 근데 왜……. 전화까지 주세요?”
“시킨 거 있어서. 그건 그렇고…….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는 거지?”
강혁은 석유 샀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아서 대강 대화를 마무리하고, 화제를 돌렸다.
여전히 군복을 벗지 않고 있던 로먼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도 모릅니다만 아마 이틀 내에 떠나게 될 겁니다.”
이틀이라.
지겹겠구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미 주변에 돌아볼 곳은 다 돌아보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젠 어디 나갈 수도 없었다.
이란을 들쑤셔 놓은 탓에 어마어마하게 예민해져 있었다.
심지어 퇴각하는 도중에 우연히 마주친 중대 하나를 전멸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저 환자 치료 못 했으면 죄다 넘겨질 뻔했지.’
과연 이 지역의 왕이란 것이 과장은 아니었다.
온전히 치료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발뺌하기 시작하는데, 지역 주민들마저 나돌아다니는 일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대신 AK로 중무장한 경비병들이 거리를 채웠다.
아마 일행이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이 일에 대해 떠드는 일은 없을 터였다.
「유가 상승에 따른 다우 지수 회복에 대한 분석!」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얼마나 갈까.」
그렇게 강혁이 발목이 잡힌 동안 연일 신문과 뉴스에서는 최근 일어난 유가 폭등을 떠들어 댔다.
하지만 정작 이란이 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는지에 대한 보도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저 그 결과에 관해서만 얘기할 따름이었다.
「미 대통령 재선 가능성 다우 지수 개선에 따라 폭등」
경제 활황을 이어가는 것만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또 있을까.
아마 어지간한 부정에 의한 스캔들이 아닌 이상에는 없을 터였다.
미국도 크게 다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설마…….’
기껏해야 맹장 아닌가.
금세 몸을 놀릴 만큼 회복된 재원은 신문을 내려놓으면서 강혁을 떠올렸다.
국제 정세란을 보며 파키스탄에 있는 의사를 떠올린다는 것이 정말 이상한 일이긴 했다.
아마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이제 양재원 큰일 났구나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합리적인 의심 같았다.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닌 강혁이었으니까.
따르릉.
그때 재원의 전화가 울렸다.
병원 전화는 아닐 터였다.
병원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재원이 쓰러졌다는 말에 원장이 한달음에 달려와 신신당부했으니까.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진 아무도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재원이 더 안 좋아졌다간 여론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
“뭐야.”
혹시 엄만가,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든 재원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임에 인상을 썼다.
그러다 강혁이 얼마 전 전화를 걸었었다는 걸 떠올렸다.
이 비슷한 번호였다.
“여보세요?”
“어, 수술 잘됐냐?”
역시나 백강혁이었다.
“잘됐죠. 맹장인데요, 뭐.”
“거 몸 관리 좀 하지.”
“맹장이랑 몸이랑 뭔 상관이에요…….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지.”
“아무튼, 석유 샀지? 이제 다 던져.”
“어……. 샀기는 샀는데.”
“그럼 던지라고.”
강혁의 목소리는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재원은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이 인간이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길래 이런 걸 다 알까.
“근데 어떻게 안 거예요? 유가 오를지?”
“그게 중요하냐? 돈 번 게 중요하지. 한 20~30억 벌었지?”
“지금 던지면…… 그렇죠. 근데 돈은 또 왜 이렇게 욕심을 내요? 잘 쓰지도 않는 양반이.”
강혁은 한국에 있을 때도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입이 워낙 고급이라 가끔 비싼 식당에 가기는 했지만.
정말 가끔이었다.
대부분은 병원 식당에서 먹었다.
그 정도로만 쓴다고 생각하면, 아마 강혁은 지금 모아 둔 돈으로 천 년도 살 수 있을 터였다.
“아, 내가 말 안 했나?”
“말 안 했어요. 맨날 어디 투자해라, 뭐 사 둬라. 이제 팔아라 이런 것만 얘기하고.”
“너도 나 따라 해서 좀 벌지 않았냐?”
“그렇긴 하죠.”
“근데 뭔 불만이여.”
“벌면 뭐해요. 쓸 곳도 없는데. 애초에 교수님 10분지 1도 안 돼요, 그리고. 굴린 돈 다 해 봐야.”
“쓸 곳이 없긴, 다 있지. 내가 다 정해 놨어. 넌 벌기만 해.”
“네?”
아니, 이 양반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내 돈 쓸 곳을 정해 놨다고?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으려니 강혁이 말을 이었다.
“솔직히 너 뭐 결혼도 생각 없지?”
“그…….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지 마요.”
“아냐, 내가 알어. 나도 관심 없거든.”
“아니…….”
“병원이나 하나 짓자. 환자 돌보면서 살자고, 평생.”
“설마 한구에요?”
“한구? 거긴 병원 있는데 뭘 지어?”
한구도 아냐?
재원은 맹장이 재발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배가 아파 왔다.
“그럼 어디……. 어디에요.”
“몰라 나도. 봉사 다니다 보면 어디 보이겠지. 한구보다 열악한 곳.”
“거길……. 같이 가자고?”
“당장은 아냐. 센터장 해야지. 근데 몸 비실비실해 가지고 너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걱정이네. 운동 좀 해 인마. 실력 아까워. 그럼 끊는다. 아, 석유 팔고.”
“아니, 잠깐. 잠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