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18)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18화(618/1120)
618화 안녕? 노예들 (3)
“파키스탄에 대해 들어 보신 분 계십니까?”
지부장은 본부에 돌아오자마자 모든 인원을 방으로 불렀다.
그리곤 짤막한 질문을 던졌다.
파키스탄에 오는 모든 봉사자에게 으레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들어 봤죠. 일본이나……. 한국에도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들이 꽤 많습니다.”
셋 중 답을 한 것은 장규선이었다.
미유키는 일단 오늘은 듣기만 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였고, 츠요시는 아예 관심이 없어 보였다.
비서란 사람은 없는 사람 취급해 달라고 하더니, 정말 없는 사람처럼 행세했다.
‘그래, 한 명이라도 답해 주면 그걸로 됐지.’
지부장은 장규선의 서글서글한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파키스탄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고 있나요?”
“어…….”
인구라.
장규선은 쉬이 답을 하진 못했다.
요다에게 들었던 내용 말고는 딱히 기억하고 있는 게 없어서였다.
‘아프리카보다는 훨씬 수월하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날씨도 여름엔 덥지만, 또 다른 계절은 서늘하다고 했고.
한때는 위험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 했다.
‘한심하네, 이거야 원.’
장규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단기 봉사만 올 작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봉사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원래 이게 보통이었으니까.
그 증거로 지부장은 아주 익숙하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2억입니다, 2억.”
“2억…… 이요? 되게 많네요?”
“네. 땅덩이도 커요. 지도를 보시면……. 여기가 파키스탄입니다. 뭐 오시면서 봤겠지만, 지구본에서 보면 또 느낌이 다르죠.”
“흠.”
2억이라는 숫자가 주는 임팩트 때문일까.
영 관심이 없어 보이던 츠요시 마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아시죠? 그 나라가 파키스탄 북쪽에 있고, 이란이 서쪽, 인도가 남쪽, 중국이 동쪽에 있습니다.”
“오…….”
사실 인구가 2억이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동서남북을 에워싸고 있는 나라들이 참으로 기가 막히지 않는가.
대한민국도 그런 상황이긴 하지만 파키스탄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데다가……. 원래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한 나라가 아니었어요. 강제로 병합된 지역이 좀 많아요. 그래서 분리주의 운동이 상당히 활발합니다. 다행히 여러분이 가는 지역이 그렇지는 않고요.”
지부장은 이외에도 한구 지역의 종교성 특성 및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어 댔다.
뭐 이런 말까지 안 해도 가서 현장을 보면 알아서 조심하겠단 생각이 들긴 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니던가.
누군가는 경거망동해서 지금까지 제인과 강혁 등이 쌓아 놓은 모든 업적을 물거품화 시켜 버릴 수도 있었다.
“뭐, 지내시는 동안 자연스레 알게 될 것들이 대부분입니다만……. 그래도 노파심에 드린 말씀입니다. 오시는 길에 고생하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이제 쉬시죠.”
해서 지부장의 교육은 대략 1시간가량이나 이어졌다.
그의 말마따나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직항도 아니고 돌아온 길이었으니까.
“아뇨, 아닙니다.”
“다 저희 도움 되라고 하신 말씀인데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물론 장규선과 미유키 둘은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겼다.
잘 모르던 얘기를 들었다는 거 자체가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얘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 다 끝난 거죠? 그럼 밖에 좀 나가도 되나?”
다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지구본 돌릴 때 잠깐 흥미를 보이다 이내 턱을 괴고 있던 츠요시는 벌써 몸을 일으킨 후였다.
비서에게 건네주었던 얇은 재킷을 받아 든 채였다.
“지금 시간이 꽤 늦었는데요?”
“한잔하려고요. 아까 보니까 숙소……. 그렇게 좋아 보이지도 않던데. 술기운이라도 빌려서 자야지, 안 그러면 안 되겠어.”
“아…….”
지부장은 바로 저 침대에서 전 장관도 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사람이 불만을 토해 냈던가?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한구 사람들을 결코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여기보다도 더 열악한 곳으로 가겠다고 열변을 토했었다.
너무 진지해서 좀 웃기긴 했지만.
아무튼, 한유림은 눈앞의 철부지보다 훨씬 높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더없이 겸손한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그러다 보니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슬라마바드에 온 사람이라면 당장 잘랐을 터였다.
‘후.’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한구에서 요청해서 온 사람인데.
일단 잘릴 때 잘리더라도 거기까진 가서 잘려야 했다.
“잠시만요.”
해서 지부장은 일단 당장 나가려는 츠요시를 말리고 밖으로 향했다.
그리곤 이제 오늘 할 일 다 끝났다는 생각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드니스를 불렀다.
“드니스?”
딱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드니스는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워낙에 집이 개판인지라 방음이라곤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
“한숨 쉬지 말고. 안내해 드려. 자주 가는 곳 있잖아?”
“지부장님은 뭐 하시고요.”
“나? 나 술 끊었잖아. 몰랐어?”
“몰랐는데.”
“혼자 결심했어. 진짜야. 고지혈증이 있더라고.”
“지부장님이요?”
드니스는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지부장이 나이야 고지혈증이고 뭐고 다 걸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긴 했지만.
하도 고생을 해서 그런가 배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차라리 드니스가 있으면 있었지, 지부장은 아닐 거 같았다.
“그렇다니까, 진짜야. 검사 결과 보여 줘?”
하지만 드니스는 지부장에게 감히 검사지를 요구할 만큼의 후레자식은 아니었다.
저렇게까지 싫다는 데 강권할 만큼 나쁜 사람도 아니었고.
“에이……. 알았어요. 근데 저 사람 영 별론데…….”
“조용히 말해. 너무 티 내지 말고. 어차피 여기 지낼 사람도 아니잖아.”
“안 그래도 아까부터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약 지부에서 계속 마주쳐야 한다면 어떨까.
‘와……. 병으로 내리칠 거 같은데.’
그 거만한 태도라니.
누가 보면 봉사하러 온 게 아니라 봉사 받으러 온 줄 알았을 터였다.
“아, 닥터 츠요시?”
하지만 드니스는 지부장의 말을 상당히 잘 듣는 편이었다.
지부장 또한 로지스티션 출신이라서는 아니었다.
지부장이 그 로지스티션에서 은퇴해야만 했던 사건 때문이었다.
‘시에라리온에서 총까지 맞은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 그 사건이 눈에 선했다.
아직 햇병아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렸던 그를 살린 게 바로 지부장이었다.
“얘기 끝났나?”
“네, 닥터 츠요시.”
“근데 꼭 같이 가야 되나?”
“네……. 이 근처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긴 하지만, 그래도 외국인한테는 위험할 수 있어서요.”
“흠…….”
츠요시는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비서의 눈짓을 받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지. 그럼 안내해 줘요.”
“네, 따라오시죠.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습니다.”
“걸어가야 된다고?”
“차로 이동하면 돌아올 때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여긴 대리 같은 거 없어요.”
“대리가 왜 필요해? 얘 있는데. 마실 거 아니잖아. 그치?”
츠요시는 그리 말하면서 비서를 바라보았다.
‘아…….’
그제야 드니스는 츠요시가 비서를 데리고 나가는 게 그저 말동무 삼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인간은 비서란 사람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제아무리 돈 주는 입장이라곤 하지만 이런 태도라니.
제삼자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래도 되나 싶을 지경이었다.
“아, 네. 도련님. 물론입니다.”
하지만 드니스의 생각과는 달리 비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찌나 공손하면서도 칼같이 숙이는지 이게 일본에서 말하는 사무라이 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죠.”
“아……. 네.”
아무튼, 드니스는 그렇게 츠요시와 비서 둘을 데리고 술집으로 향했다.
츠요시는 그동안에도 불만 털어놓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일본어로 하고 있다는 거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사람이 불평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다 알 만큼이나 노골적이라는 건 불행이었다.
“이게 수도라고? 어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2년만……. 윽.”
“나도 아는 얘기 자꾸 하지 말라고.”
“죄송합니다.”
“불평도 못 해? 내가 그런 사람이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뒷자리에 앉아서 비서를 패고 있으니 대화 내용을 짐작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아니겠는가.
‘아이고…….’
보면 볼수록 태산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 여자 나오는 데는 없나?”
하지만 태산이라는 생각은 너무 이른 것이었다.
술을 먹여 보니 더 가관이었다.
세상에 여자 나오는 데라니!
적어도 드니스는 봉사 다닌 이후론 아예 처음 들어 보는 일이었다.
만약 요다를 알지 않았다면 일본 놈들은 다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이봐, 드니스. 진짜 없어? 솔직히 얘기해도 돼. 내가 쏠게. 너도 남자잖아?”
아무래도 이놈이 알고 있는 남자라는 단어 뜻과 전반적으로 통용되는 남자 뜻이 다른 모양이었다.
“한숨 쉬지 말고. 뭐, 내가 우습냐? 감히 한숨을 쉬어?”
“저, 도련님……. 취하셨어요. 이제 그만……. 억.”
“너도 내가 우습냐? 그래, 차남이다 이거지. 형님은 봉사가 다 뭐야, 온갖 개짓거리 하고도 물려받는데……. 나는 이 정도는 해야 준다는 거잖아.”
“아니……. 제가 어떻게 도련님을…….”
“그럼 행동거지 조심해. 거슬려, 너.”
“죄송합니다.”
드니스는 잠시 츠요시를 그냥 두고 갈까 하는 충동이 일었다.
‘그럼 어떻게 될까.’
일본은 술주정에 관대할는지 모르겠지만.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에 해당하는 사고였다.
여기야 외국인들만 드나드는 펍이니 이 안에선 안전하겠지만.
저 상태로 길거리로 나가는 순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고……. 하…….’
하지만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초빙한 사람이 잘못되는 건 정말이지 큰일이었다.
만약 그렇게 책임감 없는 조직이었다면 지금처럼 오지에 사람들을 두루두루 보낼 수도 없을 터 아니겠는가.
그 시발점이 될 만한 사건을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이 직접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또 이놈을 멀쩡하게 두기는 싫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냥 봉사자였다면야 너그럽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드니스는 심심하면 불법도 자행해야 하는 거친 사람이었다.
머리를 마구 굴리다 보니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닥터 백한테 맡기자.’
결심한 드니스는 일단 몰래 영상을 찍었다.
마침 츠요시는 비서의 정강이를 신나게 까는 중이었다.
어찌나 성의있게 쥐어박는지 바로 옆에서 찍고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띠링.
영상은 잠시 후 강혁에게 전달되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뭐 재밌는 거라도 왔어요?”
“그러게, 사람 불안하게 왜 저래?”
그의 미소를 본 리처드와 한유림 모두 흠칫 놀라며 물어 왔다.
강혁은 그런 둘을 돌아보며 대꾸했다.
“죽일 놈 하나 온대서.”
“네?”
“오면 알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