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19)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19화(619/1120)
619화 진짜 죽일 놈이네 (1)
일본에서 온 일행이 한구 병원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나 지난 후였다.
사실 이틀이란 단어가 ‘이나’를 붙여도 되나 싶긴 하겠지만.
적어도 츠요시를 담당해야만 했던 드니스에게는 그랬다.
일각이 천추 같다는 말을 알았다면 아마 그 말을 인용했을 텐데.
“닥터 백. 정말……. 정말 더럽게 길더군요.”
안타깝게도 드니스는 한국 속담을 잘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의미는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강혁은 츠요시를 향하고 있는 드니스의 시선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게 별로예요?”
“어휴…….”
드니스라고 하면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한 로지스티션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냐면, 드니스야말로 온 세상의 진상이란 진상은 다 만나 봤다는 얘기였다.
어지간히 버릇없는 놈은 드니스 입장에서 진상 축에도 끼지 못했다.
수틀리면 총을 들이대거나, 시도 때도 없이 뒷돈을 요구하는 놈들, 심지어 믿었던 놈이 목숨까지 위협했던 기억이 수두룩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드니스가 한숨을 쉰다는 건 츠요시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새끼……. 걱정 마요. 2년 이미 도장 찍었더라고. 거기도 뭐……. 여기다 싶었겠지.”
강혁은 아주, 정말 아주 유명한 사람이지 않은가.
의도치 않게 일본에서도 의사로 보이지 않는 외모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기도 했다.
최 감독의 영상 덕에 이미 이 지역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게 된 참이었고.
순수한 목적이 아니라, 봉사 정신을 드러낼 심산이라고 한다면 이만한 곳이 없을 터였다.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저 인간 그래도 일본에서는 힘 깨나 쓰는 모양인데. 비서도 있고…….”
“아, 비서.”
강혁은 츠요시 옆에 있는 비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신 굽신거리고는 있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몸은 탄탄해 보였다.
고수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호신술은 익힌 모양이었다.
“뭐……. 상관없죠. 여기가 일본도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죠.”
“기대해도 좋아요.”
“그럼 소식 좀 알려 줘요.”
“응? 매주 오잖아요.”
강혁의 말에 드니스가 인상을 구겼다.
지부장이 휴가를 대체 왜 거부하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 진짜…….’
설마설마했는데 카슈미르에 가라고 할 줄이야.
이 인류애에 미친 사람들이 드디어 분쟁 지역 한복판에 사는 주민들까지 지원하기 시작했던 것.
얼마 전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싸움으로 전투기까지 떨어졌던 지역임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제아무리 강혁이라고 해도 이러한 내막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직은 태평한 얼굴이었다.
“왜 그래요?”
“그……. 제가 카슈미르로 가게 되어서요.”
“아.”
하지만 지역 이름을 듣고 나서는 더 이상 그런 표정을 짓기 어려웠다.
세상에 카슈미르라니.
거긴 그냥 전쟁터라고 봐도 무방한 곳 아니었던가.
파키스탄도, 인도도 서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두 나라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심지어 최근엔 중국도 한 다리 걸치고 나선 마당이었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 곳이 더 어지러워진 셈이었다.
“이거야 원. 그럼 언제 다시 얼굴 보려나.”
“알 수 없죠. 보급은……. 저 대신 다른 친구가 할 거예요. 사실 이제 여기 오는 길은 뭐 위험할 게 없어서.”
드니스는 조금 먼눈을 하고 있었다.
목숨 걸고 다녀야 했던 길이 조금 위험한 길로 변했고.
또 조금 위험했던 길이 안전한 길로 변했다는 걸 지금 말하면서 새삼 자각한 모양이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 강혁이 있었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게 다 닥터 백 덕이죠. 아닌가. 닥터 백 때문에 카슈미르 가게 됐으니까 불평을 해야 되는 상황인가요?”
“그건 좀 미안하네요. 다른 지역도 아니고, 카슈미르라니.”
강혁은 얼마 전 다녀온 벨라치스탄 즉 과두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는 그나마 지역 유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데다가, 미군의 도움까지 받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를 에워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살기 같은 곳이 있었다.
언제든 폭탄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분리주의자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카슈미르는 거기보다 더하겠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드니스는 베테랑이라는 말도 부족한 사람이니까.
특별한 사고만 없다면, 또 이렇게 만나서 웃을 기회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그동안 내가 버릇 잘 고쳐 주고 있을게.”
“웬만하면 영상으로 남겨서 보내 줘요. 그거라도 있어야 버티지.”
“알았어요.”
“가 보겠습니다, 닥터 백.”
드니스는 강혁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바로 떠나는 대신 제인과도 한참 떠들다가 차에 올라탔다.
저 둘은 함께 시에라리온에도 다녀온 사이니만큼 할 얘기가 아주 많을 터였다.
드니스가 그렇게 요란하지 않은 인사를 나누고 떠나는 사이, 새로 충원된 인원은 한유림과 리처드의 안내에 따라 새로이 마련된 숙소로 향했다.
“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요?”
장규선과 미유키가 상상했던 모습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한구 병원보단 훨씬 열악했던 게 분명했다.
둘은 연신 칭찬을 연발하고 있었다.
특히 미유키는 스고이와 스바라시를 연이어 내뱉었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은지 한유림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서렸다.
“최근에 리모델링 했습니다. 저희가 직접 페인트칠도 하고……. 망가진 부분은 고쳤어요.”
은근히 굵은 팔뚝을 과시하면서였다.
미유키는 그제야 한유림이 반팔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을 에는 추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쌀쌀한 수준은 되는데 왜 이런 옷을 입었을까.
미유키는 그 이유를 왠지 알 거 같았다.
헬스 하는 사람 중 일부는 뭐가 어찌 됐건 벗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벗으려고 하는 걸 보아 온 참이었다.
“아……. 닥터 한. 굉장히 건장하시네요.”
“네? 아, 하하. 감사합니다, 하하. 과찬이세요.”
해서 듣고 싶어 할 만한 말을 해 주었더니, 한유림의 얼굴엔 그야말로 웃음꽃이 피었다.
그가 그렇게 껄껄 웃는 동안, 장규선은 리처드의 안내를 들었다.
한유림에 비하면 무미건조한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한 건 결코 아니었다.
“왔다 갔다 하시는 거죠?”
“네? 아, 네. 운영 중인 병원이 있어서요. 제가 없다고 아예 안 돌아가는 건 아닌데……. 그래도 불안해서.”
“네. 저희는 오히려 좋습니다. 이런저런 물품 부탁드리기도 좋고요.”
로지스티션이 물품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키스탄에서 수급 가능한 물품은 한계가 명확했다.
특히 양념장이나 즉석식품 같은 것들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보면 되었다.
리처드는 언젠가 강혁이 말했던 ‘냉장고’라는 말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계속 여기서 지내는 게……. 사실 만만치는 않을 거예요. 제 입으로 하긴 뭐하지만, 꽤 힘들어서.”
“닥터 요다에게 들었어요. 혼자 엄청 고생하는 거 같던데.”
“네? 아, 뭐. 내과도 고생하긴 하죠.”
리처드는 은근히 외과 부심을 드러냈다.
장규선은 자기도 내과 의사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소한 문제라도 첫날부터 문제를 일으키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문제가 일어나긴 할 거 같지만……. 구태여 내가 보탤 필요는 없지.’
게다가 지금 이 팀에는 폭탄이 하나 끼어 있었다.
“하, 졸라 후진 거 봐라 이거. 여기서 살라고? 호텔 없어? 이 동네?”
두말할 것도 없이 츠요시였다.
녀석은 건물 밖에서부터 내내 징징거리더니, 안으로 들어와서는 숫제 땡깡을 부리고 있었다.
“도련님……. 제가 알아봤는데 호텔은 없습니다.”
“호텔도 없어?”
“민박……. 형태의 집은 있는 거 같긴 한데요.”
“그럼 거기 가 봐!”
“여기보다 못합니다, 시설이.”
“하…….”
무려 호텔 타령을 하고 있었다.
앞서가던 한유림이나 리처드는 물론,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댄, 요다에게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나섰다가 혹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는 아니었다.
‘진짜 죽이면 안 되는데.’
그들은 모두 강혁을 떠올리고 있었다.
‘진짜 죽일까?’
그리고 우려대로 강혁은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제인이 식겁하며 나설 지경이었다.
“백 교수님, 살인은 안 돼요.”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아무리 비밀이네 어쩌네 해도, 강혁이 CIA와 어떻게든 관련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아니겠는가.
게다가 강혁은 팀장에게까지 비밀이 있어선 안 된다며 듣고 싶지도 않았던 말까지 다 해 준 참이었다.
원래 알던 강혁의 모습에 더해 쓸데없는 정보까지 더해지자 상상의 나래는 더욱더 멀리 펼쳐졌다.
“응? 아니, 나 의사야. 사람 안 죽여.”
“눈에 살기는 뭔데요.”
“아, 이거. 죽이고 싶은 거랑 죽이는 건 많이 다르지.”
“그…….”
“에이, 걱정하지 마. 봉사하러 온 사람인데 내가 설마 함부로 대하겠어? 타일러서 일 시킬게.”
“그래요. 진짜 사고 치면 안 돼요.”
강혁은 제인의 걱정 어린 얼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제인만 아니었으면 한 대 정도는 후려치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뭐 이런 거지 같은 곳이 다 있냐.”
“너무 큰 소리로…… 하지는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을걸.”
“닥터 요다는…….”
“그 인간? 일본인이잖아. 감히 나한테 해코지하겠어? 아니면 미유키, 장균선? 여기서 내 말 알아들을 수 있는 놈 중에 내 위 아무도 없어.”
어떻게 보면 또 합리적인 추론이기도 했다.
합리적이라고 해서 쓰레기 같은 말이 아닌 건 또 아니었지만.
아무튼, 비서로서는 반박할 만한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논리에도 맹점은 있었다.
아니, 허점이라고 해야 할까.
바로 강혁과 한유림이었다.
‘저 미친놈이 진짜 뭐라는 거야.’
한유림은 보건복지부 장관 일을 하면서 중증외상센터 정상화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사람 아니었던가.
그중에서도 전반적인 시스템을 새로 짜기보다는 외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을 제대로 들여오는 것을 주도했었다.
대상이 되었던 국가 중 일본도 있었고, 한유림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지라 과정에서 일어도 마스터하게 된 지 오래였다.
‘하…….’
그리고 강혁은 일어 마스터 중 하나인 2호, 그러니까 이강행에게 일어를 배워 온 참이었다.
쉬느니 공부한다는 모토를 가진 인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이렇게 강혁이 한 인간에게 원한을 갖게 만들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닥터 제인. 지금 쟤가 뭐라고 한 줄 알아?”
“좋은 소리 했을 거 같진 않은데요?”
말투만 들어도 대강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던 제인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여기 거지 같대.”
“네?”
그리고 강혁보다도 더한 원한을 갖게 되었다.
목숨보다도 더 귀하게 가꿔 온 곳이지 않은가.
그런데 거지 같다니.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대 정도는 쳐도 되지?”
“네, 쳐도 돼요. 생각 같아서는 저도 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