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3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35화(635/1120)
635화 부상자 (1)
“자, 그럼 나갑시다.”
곧 한유림은 모든 상처를 봉합하고, 심지어 장루까지 뺀 후 츠요시를 바라보았다.
츠요시는 강혁과 같이 있는 시간 동안에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장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네! 깨우지 않고 나가겠습니다!”
“그래. 바로 중환자실로 가자고.”
한유림은 츠요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부정맥이 왔을 때만 해도 죽을 게 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숨을 쌔근쌔근 쉬고 있었다.
물론 본인이 쉬는 건 아니고, 기계 호흡이긴 했지만.
얼굴만 보고 있으면 꽤 평안해 보였다.
‘부어서 그런가…… 원래보다도 좀 젊어 뵈는 거 같기도 하고?’
경황이 없을 때야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지만.
수술이 끝나고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 후라 그런지 비로소 얼굴이 보였다.
분명히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언제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어도 확실히 기억났다.
‘뭐……. 이맘이라니까 어디서라도 봤겠지.’
이를테면 지역에서 제일 끗발 날리는 유지라고 보면 되지 않겠는가.
처음 제인이 병원을 열었을 땐, 이 사람 말 한마디에 병원을 열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기도 했다고 들었다.
기분이 나쁘면 그날은 진료가 없어지기도 했다던가.
애초에 현대 의학에도 호감이 없을뿐더러, 미국인인 제인에게는 악감정마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여기 누웠다, 이거지.’
본인의 의사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상처로 미루어 볼 때, 아마 그 즉시 정신을 잃었을 테니까.
하지만 뭐가 되었건 이맘의 몸에 칼을 대게끔 해 준 것이 시장과 사제라는 건 정말이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벌커덕.
한유림은 이런저런 생각을 해 가면서 상처에 드레싱을 했다.
드레싱이 끝난 것을 확인한 츠요시는 기계 호흡을 중단하고 앰부로 갈아탔다.
그러자 보조에 나섰던 간호사는 즉시 문을 열고 침대를 밖으로 끌었다.
덩치가 산만 한 사람이라 그런지, 실제로 끄는 건 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별문제 없어 보였다.
물론 최근 침대를 싹 새것으로 바꾼 것도 한몫했다.
“어어, 괜찮으신 건가?”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시장이었다.
이전에 심근 경색으로 실려 왔던 노인도 발꿈치를 든 채 환자를 바라보았다.
“이맘…….”
자신의 스승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사람이 누워 있어서 그런가 아주 걱정스러워 보였다.
한유림은 잠시 그 노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장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저 노인은 영어를 못 알아듣지 않겠는가.
“일단 지금은 괜찮아요.”
“괜찮다고요?”
시장은 설명에 나선 것이 강혁이 아니라 한유림이라는 것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왜 당신이 입을 여냐고 따져 묻지는 않았다.
이미 한유림의 신분이 어떠한지 익히 알고 있기도 했거니와.
그동안 한유림이 고쳐 온 환자들을 보아온 경험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네, 괜찮아요.”
“아까……. 아까 난리 난 거 같던데?”
“아…… 그거요? 뭐, 어떻게 잘 넘어갔습니다.”
“허…….”
잘 넘어갔다라.
다른 놈이 이런 말을 했더라면 절대 믿지 않았을 텐데.
상대가 한구 병원이라 그런가 신뢰감이 팍팍 들었다.
다른 외국 놈들이 죄 사기꾼이라도 해도, 여기 사람들만은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 고령인 데다가…… 원체 건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한유림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시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수술장에서 보았던 환자의 근육 두께 및 혈관 상태를 떠올리면서였다.
뭐 여러 가지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요약하자면 근육은 얇고, 혈관은 두꺼워져 있었다.
한마디로 ‘노쇠했다’라는 말이 딱 어울릴 모양새였다.
“그렇군요. 음.”
“그래서 잘 봐야 합니다. 다만…… 상처는 일단 잘 봉합했어요. 출혈도 거의 없고.”
“아……. 허, 대단하십니다.”
반면 시장은 현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맘이 귀갓길에 피습당했다는 말에 황망한 얼굴로 달려갔던 곳.
평소 이맘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놈이 숨을 몰아쉬며, 피범벅이 된 손을 부여잡고 있던 곳.
그곳에 이맘은 모로 누운 채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눈은 반쯤 뜬 채였는데, 그렇다고 뭘 보고 있는 거 같진 않았다.
‘빨리 사람 막고! 한구, 한구 병원에 연락해!’
그걸 본 시장은 자신도 모르게 한구 병원을 외쳐 댔다.
나중에 들려오기 시작한 사이렌 소리를 듣고 놀랐을 정도였다.
내가 이만큼이나 한구 병원에 의존하고 있었나?
도시의 또 다른 지도자라고 해도 좋을 만한 사람이 쓰러졌을 때 불현듯 떠올릴 만큼?
혹 자신의 신앙심에 어떤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는데.
평안한 이맘의 얼굴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띵.
한유림이나 시장이나 회상에서 깨어난 것은 엘리베이터가 울리고 난 다음이었다.
“자, 탑시다!”
내내 앰부를 쥐어짜고 있던 츠요시가 제일 먼저 외쳤다.
그 말에 한유림도 시장도 침대를 끌고 있던 간호사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심근 경색으로 수술받았던 이도 탈까 고민하더니 이내 계단으로 향했다.
이제 어느 정도 회복된 모양이었다.
“후.”
그 모습을 수술실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혁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면서였다.
어찌 된 게 두 손 모두 화상 비스무리한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각기 기전은 달랐지만.
아무튼, 아픈 정도는 비슷했다.
‘이런 제기랄.’
화학적 화상에 감전이라.
생각해 보니까 기가 찼다.
전쟁터에서도 이런 부상을 당해 본 적은 없었는데.
‘지미가 이랬던가?’
이 비슷한 부상을 본 경험이라면야 얼마든지 있기는 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들 모두 퇴역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것 정도?
‘아프네, 이거…….’
감전당한 쪽은 뭐 그냥 두면 낫기는 할 터였다.
어찌 되었건 딴 데로 흐른 건 아니니까.
통증이 좀 있기는 했지만.
따로 복잡한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니란 얘기.
하지만 위산에 당한 쪽은 얘기가 좀 달랐다.
“혼자 뭐 해요?”
“응?”
드레싱은 한 손으로 해야 되나 어째야 되나 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걸걸한 목소리.
리처드였다.
“뭐야, 너. 왜 안 자고 왔어.”
“닥터 제인이 말해 줬어요. 스승님 다쳤다고.”
“아, 제인이…… 음.”
“튀겼다면서요? 돌았어요?”
리처드는 사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제인이 처음 와서 백강혁이 스스로를 튀겼다고 했을 땐 제인이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리처드가 보기에 그 모든 영예를 내려놓고 이런 곳을 전전하는 제인은 반쯤 미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놀라진 않았다.
‘아,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뭐 이런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카심까지 합세해서 정말 튀겼다고 하니까 좀 헷갈렸다.
‘둘 다 미친 걸까? 아니면 백강혁이 미친 걸까.’
스승 된 입장에서 듣기엔 많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리처드는 그렇다면 역시 백강혁이 혼자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제인이 반쯤 미친 사람이라면 강혁은 사실 이미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혹시나 해서 와 본 자리에서 강혁은 넋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돌았다니, 뒤질래?”
“손도 성치 않으면서 성질은. 지금 붙으면 내가 이길 거 같은데. 어떻게 계급장 떼고 붙어요?”
그렇다고 성질이 어디 가진 않은 모양이었다.
돌았냐는 말에 대번에 콧김을 내뿜는 것을 보면.
하지만 리처드는 방금 말한 것처럼 지금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간 강혁 밑에서 배운 게 의학뿐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죽도록 헬스를 해서 그런가 체격이 훨씬 좋아져 있었다.
데니스에게 이제 그만 처맞고 다니라는 뜻으로 격투를 배우기도 했고.
“어쭈?”
강혁은 그런 리처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았냐고 하더니, 돌았나?’
감히 개겨?
리처드가 미군 소령 아니, 이제 중령이라는 건 하나도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게 칼질이라도 한번 배웠던 놈이 개기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어차피 드레싱 하려면 누워야 되는데, 잘됐네!”
리처드는 황당한 얼굴이 된 강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장난이었는데.
이젠 진심이었다.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때려 보고 싶다.
인류 공통의 관심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강혁의 제자 모두의 관심사 정도는 되지 않을까.
‘때리면…… 사진으로 남겨서 가보로 물려줘야지!‘
이대로라면 물려줄 애가 없을 공산이 컸지만.
리처드는 차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미쳤나, 이놈이.”
돌진은 산불 맞은 멧돼지처럼 힘이 넘쳤다.
하지만 정작 그 대상이 된 강혁은 그저 뭐라 뭐라 꿍얼거리며 몸을 슬쩍 틀 따름이었다.
리처드가 강혁의 다리를 붙잡기 위해 펼친 손을 팔꿈치로 툭 하고 치면서였다.
“으헉.”
맞은 곳이 팔꿈치 안쪽의 신경을 지나는 곳이었기에, 리처드의 입에선 묘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새끼손가락까지 저릿한 느낌.
주먹을 쥐려 해도 쉽지 않았다.
“새끼.”
“아, 안 돼.”
겨우 앞을 돌아보았더니, 보이는 것은 발이었다.
그나마 손속에 사정을 봐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안면에 정타로 꽂힐 뻔했다.
“으어…….”
아프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다.
명치에 꽂힌 발차기는 배가 터져 나가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아마 크록스가 아니라 군화였다면 필시 그랬을 터였다.
“주짓수 배웠냐?”
강혁은 금세 바닥에 널브러진 리처드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의 말대로 주짓수를 배운 참이었기에, 당장 달려들고 싶었다.
저따위 자세라면 암만 강혁이라도 이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으…….”
말도 제대로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저 입만 뻐끔거리게 될 따름이었다.
강혁은 그런 리처드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나 드레싱 해 주러 온 거 아냐? 빨리 해 줘.”
“으…….”
“으, 뭐. 일어나, 인마.”
“방금…… 방금 패 놓고서 그런 말이 나와요?”
“네가 덤볐잖아?”
“그건…… 그건…….”
그건 지금까지 당한 것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한 일이었습니다.
이 간단한 말이 왜 나오지 않는 걸까.
주르륵.
대신 흘러나온 건 눈물이었다.
“울어?”
“뭐 들어가서 그래요!”
“아파서 우나? 하여간 미군 애들 참을성 없다니까.”
“아니라고! 뭐 해요, 지금! 사진 찍지 마! 찍지 말라고!”
“너도 나 쓰러지면 찍으려고 했잖아.”
“그건…….”
그건 내 뜻이 아니라 온 세상에 가득한 피해자들의 마음입니다.
이 말도 퍽 간단하면서 또 정당한 말인데 왜 입 밖으로 내진 못하는 걸까.
그저 눈물만 흘렀다.
벌컥.
그때 또 누군가가 수술실에 들어왔다.
이번엔 제인이었다.
“뭐…… 해요?”
그림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다쳤다던 강혁은 쪼그려 앉아서 쪼개고 있고.
치료해 준답시고 갔던 리처드는 누워서 울고 있고.
그나마 제인이 인격자이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점잖은 질문이 나가지 않았을 터였다.
“아……. 이 자식이 갑자기 누워서 우네. 스승 다친 게 그렇게 슬픈가.”
“아. 드레싱은 했어요?”
“아니. 뭐 하러 온 건지, 나원 참.”
졸지에 쓸모없는 놈이 된 리처드의 눈에선 점점 더 진한 눈물이 새어 나왔다.
“네, 뭐. 일단 상처나 볼까요?”
제인은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저 강혁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혀를 찼다.
“이거…… 하루 이틀로 되겠어요?”
그 말에 강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일주일은…… 안 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