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50)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50화(650/1120)
650화 로지스티션 드니스 (2)
리처드는 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진 눈길에 잠시 당황했다.
예전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상하게 여길 만한 장면이었다.
원래 리처드는 이런 식의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미식축구부 주장에 성적도 톱, 외모 준수.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기가 많았고, 대학 가서는 더했던 그였으니까.
‘뭐지, 뭘 잘못했나?’
하지만 강혁과 함께 지낸 지 몇 달 만에 사람이 조금 변해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
그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 강혁이 껄껄 웃으며 다가갔다.
뒤에 있던 츠요시는 자신에게 온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뒤로 살짝 물러섰다.
“으아.”
계단이 있던 지라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한유림이 막아 주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가면서였다.
‘얘가 요새 좀 심하게 당하긴 했지.’
처음엔 그저 깨소금이긴 했다.
솔직히 너무 망나니 아니었던가.
한유림이나 리처드나 이런 놈은 좀 패서라도 바꿔야 된다고 생각했다.
“가, 감사합니다.”
“어. 어, 울지 말고. 왜 또 눈물이야.”
“이상하게 요새 눈물이 많아져서.”
“그…… 그래.”
하지만 이 정도까지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애가 변해 있었다.
이쯤 되면 강혁도 한 번쯤은 측은지심으로 츠요시를 바라봐 줄 법도 한데.
그는 역시나 별 관심이 없었다.
“리처드, 너 데니스 전화번호 알지?”
그저 자신의 용무에만 관심을 보일 따름이었다.
츠요시에게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리처드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뭐가 어찌 되었건 자신이 뭘 잘못해서 다가온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
“네? 어…… 알죠. 근데 그건 교수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 새끼 요새 내 전화 안 받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아…….”
그 이유를 정말 모르시려나.
리처드는 농담처럼 여기고 웃으려 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강혁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이 인간은 지 유리한 방향으로만 눈치가 빠른 사람이지 않은가.
그 외에는 세상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둔한 모습만 보여 주었다.
“전화해 봐. 이리로 오라고.”
“왜…… 왜요?”
“야, 넌 왜 이렇게 인정이 없니. 돼지 이거 우리가 다 먹을 수 있어? 걔도 여기 온 이후론 한 번도 못 먹었을 거 아냐.”
“아……. 네, 네. 알겠습니다.”
리처드는 그래도 강혁이 양심이 있긴 하구나 싶었다.
‘하긴 데니스 챙겨야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건물을 돈 받고 빌려준 것도 모자라 청소에 리모델링까지 시키고.
심지어 데니스가 거기 있는 덕분에 이 주변에 대한 CIA 측 경비도 더 철저해져 있었다.
돈 들여서 하려면 가능한 것은 둘째 치고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야 하는 일을 돈 받고 해 버렸단 얘기였다.
“어, 데니스.”
강혁 전화는 죽어도 안 받던 데니스가 재까닥 전화를 받았다.
그에게 리처드는 이 삭막한 도시에서 유일한 아군으로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리처드에게 데니스 또한 비슷한 느낌인지라, 둘 사이는 각별했다.
‘정말 돼지 먹으러 오라는 거 맞나?’
한편 한유림은 의심의 눈초리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강혁이 잔정 많은 성격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건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이런 일상적인 나눔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카슈미르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었잖아.’
세상에 카슈미르라니.
거기에 대면 한구는 안전지대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저기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거나, 아니면 전투기 떨어지는 정도의 뉴스만 났겠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훨씬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들 중에 좋은 소식은 거의 없었다.
‘이웃 데니스가 아니라 CIA 데니스를 부르는 느낌인데.’
이제 거의 백강혁 전문가라고 해도 좋을 한유림의 머릿속으로 아주 현명한 판단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내진 못했다.
“조용하고, 와서 고기나 구웁시다.”
강혁이 껄껄 웃으며 한유림을 잡아끌었기 때문이었다.
“어…….”
“이것도 다 수련의 일환이에요. 알죠? 고기 굽는 거 얼마나 세심할 수 있는 작업인지.”
개수작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마냥 개소리도 아니었다.
강혁이 구운 고기는 정말 어디가 달라도 달랐다.
고기 굽는 데 있어서는 천재라 자평하는 경원도 강혁은 특별하다고 했을 정도였다.
“자, 보라고. 일단은 불.”
심지어 이젠 숙소동 설비도 좋아져서 불 세기 조절도 미세하게 할 수 있었다.
“음…….”
“색을 봐. 눈 풀지 말고. 왜 자꾸 셀프로 최면에 걸려?”
“아니, 빛 흔들리는 거 보면 이렇게 된다고. 너도 나이 들어 봐라. 어지럽지.”
“불리할 때만 노인 코스프레야, 아주.”
“코, 코스프레라니!”
“소리 지르지 말고. 미유키 상이 보고 있는데.”
“하.”
여기서 미유키를 들먹일 줄이야.
솔직히 지금도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처음보단 열정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호감의 표시라고 생각했던 것이 죄다 예의 바른 것이었다는 걸 알고 난 후의 일이었다.
해서 구라겠거니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진짜로 미유키가 눈을 빛내며 한유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헐……. 역시 우리 통한 건가.’
실상은 여기 와서 통 맛보지 못한 돼지고기를 향한 눈빛이었지만.
한유림의 심장은 또다시 사춘기 소년의 그것처럼 달떴다.
“집중할게.”
“뭐여, 갑자기.”
“아, 굽자고.”
“알았어요. 자, 그래. 이때. 이거야. 보여요? 프라이팬 달궈지는 거?”
“음.”
사람 눈이 무슨 적외선 판별기도 아니고.
어떻게 쇠를 보고 온도를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엔 정말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치이익.
물 한 방울 정도 떨어뜨려 보면 기화되는 속도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적당해졌네.”
“그래. 자 그럼 고기 구워야지. 보라고. 결이 어떻게 변하는지. 육즙이 어떻게 갇히는지.”
“어…….”
이게 이렇게까지 진지할 일인가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수술에도 도움이 된다는데.
솔직히 개소리로 치부하고 구워진 거 먹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튼 간에 강혁은 세계 최고의 의사 아니던가.
그 사람이 말하는 수련법을 허튼수작으로 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햐, 냄새 봐라.”
게다가 아까운 돼지고기를 그냥 막 구워 재끼기도 싫었다.
확실히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고기는 노릇하게 잘 구워졌고, 맛은 더 기가 막혔다.
그렇게 맛있는 냄새가 공간을 가득 메워 갈 때쯤, 데니스가 올라왔다.
“와, 이거 무슨 냄새예요?”
코를 벌름거리면서였다.
리처드는 그런 데니스의 어깨를 꽉 잡으면서 눈빛을 보냈다.
“어, 잘 왔어. 우리 돼지고기 들어와서. 지금 굽고 있어.”
“오……. 돼지…….”
사실 돼지는 미국에 있을 때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도 아니었는데.
못 먹게 되니까 어찌나 생각이 나던지.
침이 절로 넘어갔다.
강혁은 이미 구워진 고기 중 지방과 근육 비율이 제일 적절한 것으로 골라 집어 들었다.
그리곤 데니스에게 다가갔다.
“야, 요새 고생 많지? 이거 하나 먹어라.”
“엇……. 감사합니다.”
원래 맨날 잘해 주던 분이 잘해 주는 건 미안하지만 그렇게까지 임팩트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혁 같은 새끼 아니, 놈이 잘해 주는 건 의외이니만큼 의미가 있었다.
“와…….”
게다가 고기가 이렇게까지 맛있다면 의미가 더욱 대단해지는 법이었다.
세상에 어지간한 스테이크 전문점에서도 못 먹어 볼 법한 맛이 입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적당한 기름기에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는 불맛 그리고 고유의 육즙까지.
“잘 먹네. 하나 더 먹어.”
“네, 네.”
“한 교수님 그거 저기 식탁에도 좀 놔요. 나는 얘랑 여기서 알아서 먹을 테니까.”
“응? 어, 응.”
“미유키 옆 비었네.”
“인마. 하지 마.”
강혁은 자연스럽게 한유림을 식탁으로 보냈다.
싫은 척했지만, 미유키 얘기를 꺼내자마자 날아가다시피 해서 사라졌다.
덕분에 강혁은 데니스와 단둘이 남았고, 구워지는 족족 녀석의 입 안에 고기를 처넣을 수 있었다.
속도가 꽤 빨랐지만, 데니스는 벅차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기가 줄어들고 있어서 초조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생전 처음이야…….’
없이 산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식탐을 부리고 있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강혁의 건네는 고기는 악마의 유혹처럼 아주 달콤했다.
“많이 먹었냐?”
그리고 끊기는 것도 갑작스러웠다.
“네?”
“많이 먹었냐고. 너 혼자 거의 1.5kg은 먹은 거 같은데. 더 먹을 거야?”
“아…… 어우, 그러고 보니.”
세상에 1.5kg을 먹었다고?
한창 대학교에서 럭비 할 때도 1kg 정도가 한계였는데.
아래를 슬며시 내려다보니 배가 불룩 나와 있었다.
평소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더 나왔을 터였다.
“소화도 시킬 겸 드라이브나 갈까?”
“네?”
“어이, 츠요시. 너도 많이 먹었지? 일로 와 봐.”
“네, 네!”
강혁의 말에 츠요시는 먹던 것을 즉시 멈추고 뛰어왔다.
그 모습을 본 강혁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야, 뭘 그렇게 쫄고 그래. 고기 더 먹고 싶으면 이거 챙겨. 내가 구운 고기는 식어도 맛있어. 그래, 옳지.”
그리곤 얼마간 위로를 해 주었다.
데니스는 그런 강혁을 향해 물었다.
슬슬 아까 먹은 고기가 얹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였다.
“드라…… 이브요? 이 야밤에?”
“어, 뭐. 왜? 눈 어두워? 백내장이라도 있어?”
“아뇨, 그건 아니지만……. 좀 뜬금없어서.”
“너 어차피 한동안 여기 일 없잖아. 송장 다 보냈고. 커피 농장에서 커피 보내 오려면 시간 걸리지 않아?”
“그걸…… 그걸 어떻게…….”
최근 전화도 안 받고 온다는 얘기 들으면 위층으로 도망갔었는데.
어찌 속사정까지 다 알고 있단 말인가.
‘이걸 얘기한 사람은 스미스하고 리처드, 리처드 너 이 새끼?’
고개를 돌려 보니 리처드는 이미 아예 몸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맛있는 돼지고기를 꾸역꾸역 처먹으면서.
“어디 봐?”
“아, 아뇨. 근데 저희 차가…… 차가 좀 문제가…….”
“아, 괜찮아. 우리 차 타고 갈 거야.”
“우리 차요? 한구 병원 차라면…….”
“앰뷸런스.”
“앰뷸런스를 왜…… 앰뷸런스로 무슨 드라이브를 나가요.”
앰뷸런스라는 물건을 단 한 번이라도 타 본 사람이라면 알 터였다.
이건 드라이브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사용자를 편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오로지 조그마한 공간 속에 되도록 많은 기능을 쑤셔 넣는 차량 아니던가.
이제 데니스는 내가 체했구나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왜? 우리 차 되게 좋아. 오프로드 기능도 있어. 저기 뭐야, 하이웨이도 막 달린다니까? 자, 가 보자고. 츠요시, 넌 가면서 좀 자게, 뒷자리에 누워.”
“자요? 그 정도로 오래 간다고요?”
“많이 먹었잖아. 하하. 뭐 몇 시간 다니는 건 일도 아니지.”
“아니……. 저기…… 어딜…… 어디 가려고.”
“응? 아, 못 가 봤겠다, 참. 경치 좋은 데 있대. 근처에.”
“어디요. 페샤와르?”
페샤와르만 해도 많이 쓴 것이었다.
거기도 어마어마하게 먼 도시니까.
하지만 강혁은 발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기 말고.”
묘한 운율이 사람 기분을 참으로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어, 어딘데요.”
“카슈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