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58)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58화(658/1120)
658화 구출 (3)
부우웅.
미군에서 준비해 준 앰뷸런스는 성능이 어마어마한 녀석이었다.
단순히 4륜인 것을 떠나 8기통 엔진인 덕에 어디에서건 쭉쭉 나갔다.
그만큼 기름을 어마어마하게 먹는 건 단점이었지만.
그건 총리선에서 보내 주는 기름으로 충분히 충당이 가능했다.
“오.”
데니스는 제아무리 오면서 대강의 정리를 했다곤 해도 여전히 엉망인 길을 잘만 따라오고 있는 앰뷸런스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저게 저렇게 올 수 있을 줄 알았으면 그냥 타고 오면 안 됐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차를 타고 왔으면 아마도 지나쳤을 가능성이 컸다.
장애물이 있을 때마다 내려서 밀다가 자칫 타이어라도 어디 빠졌으면 또 하나의 조난객만 생기는 셈이었을 테고.
“저, 저기!”
차 안에 타고 있던 마이클과 마지드는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 데니스를 가리키며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타이어엔 이미 진창의 진흙이 잔뜩 끼어 있었다.
덕분에 멈춰 서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중 하나는 아예 걸레짝이 되어 있었는데, 오래 버티긴 무리 같았다.
‘돌아가기 전에 타이어 싹 갈아야겠네.’
데니스는 앰뷸런스 뒤편은 물론이고, 위에도 스페어타이어가 있었다는 걸 떠올리며 다가갔다.
마지드와 마이클은 데니스가 완전히 다가오기도 전에 차에서 내렸다.
거의 뭐 떨어져 내리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두르고 있었다.
“차, 찾았습니까?”
통신기를 가져오긴 했지만, 완벽한 형태의 수신이 되진 않았을 터였다.
좌표 하나 보내는 것도 어려웠으니까.
때문에 둘은 드니스의 상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문제가 있다면 데니스도 사실 지금 드니스가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는 모른다는 점이었다.
“어……. 살아는 있는데.”
“곧 죽어요?”
“그, 수술은 했어요.”
“수술을? 여기서? 아이고.”
해서 대강 설명을 했으나 어쩐 일인지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전달되었다.
아무래도 마이클이나 마지드 둘 다 희망이 많이 옅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종되자마자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다들 거절하는 통에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지 않았던가.
탄식하는 마이클을 안타깝게 여긴 정부 관계자가 강혁에게 연락을 해 보라고, 잘은 모르지만, 그냥 의사는 아닌 거 같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강혁을 불렀지만.
거절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무려 카슈미르까지 앰뷸런스를 끌고 와 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드니스가 생환할 거란 생각은 너무 말도 안 되는 상상 같았다.
“네, 일단 들것을…… 들고 가죠.”
“아. 네.”
“그…… 그래요.”
해서 둘은 데니스가 서두르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도 못한 채 뒷문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으으으으음.”
뒷문을 열자 여전히 뻗어 있는 츠요시가 눈에 들어왔다.
멀미에 안정제까지 맞아서 그런가, 아예 정신을 놓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누군 배낭 메고 여기까지 왔는데 누군 처자네.’
데니스는 순간 빡쳤지만 참기로 했다.
어차피 저놈은 당할 테니까.
강혁에게.
‘호되게…… 호되게 다뤄 주세요.’
데니스는 신이 아닌 강혁에게 기도를 드린 후, 옆에 놓인 간이 들것을 끌어 내렸다.
외상 환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고정 설비가 다 되어 있는 들것이었다.
그럼에도 무게는 어지간한 국군 군용 들것보다 훨씬 가벼웠다.
더 놀라운 점은 가격은 오히려 그쪽이 더 비싸게 측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데니스나 마이클, 마지드는 그러한 것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었기에 그저 들것을 들고 뛰기만 했다.
“어, 어디로 가요?”
“그냥 나 따라 뛰어요. 왼발에 구호 넣고. 하나, 하나, 하나.”
“하나, 하나, 하나.”
이게 한국인이었다면 일이 훨씬 수월했을 터였다.
다들 군대를 다녀오기에 군대식 제식 훈련에 익숙하지 않은가.
하지만 마이클이나 마지드는 그게 아니어서 한동안 구령을 넣어 주는 데도 삐걱거렸다.
심지어 진창이 군데군데 있어서 마지드는 한번 넘어지기까지 했다.
“얼씨구.”
마침 대강의 봉합을 마무리하고 기다리고 있던 강혁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흙투성이가 된 채 뛰어오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찡한 장면이기도 했다.
‘살아 있을 거라곤 기대도 안 하고 있을 텐데.’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터였다.
사고 당시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았다 해도 야생에서 48시간 이상 방치당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혹했다.
쇠약해진 인간에게 자연이 얼마나 잔인한지에 대해 둘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드니스!”
“살아 있어요?”
하지만 저 둘은 진심을 다해 달려오고 있었다.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딱히 의미 없는 짓이란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그랬다.
‘48시간 지난 마당에 몇 초 빨리 오는 게 뭐 중하다고.’
잠시 시니컬한 생각이 들었지만.
강혁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런 종류의 인간들, 그러니까 바보들이 싫지 않았으니까.
“살아 있어! 급하지 않으니까 천천히 와! 괜히 넘어져서 환자 더 만들지 말고.”
“아.”
“살아…… 살아 있구나!”
강혁은 그들의 희망에 재 뿌리고 싶지 않아서 ‘아직은’이라는 단어는 뺐다.
‘여기선 절대 무리야.’
환자 치료에 수술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직 애송이 의사라는 증거였다.
경험에 경험이 쌓이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환자를 떠나보내는 쓰라림이 더해지고 나면 알게 되었다.
수술은 수많은 치료의 한 단계일 뿐이라는 걸.
모든 케이스에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 이 드니스에게는 그랬다.
‘통신 되는 곳으로 가자마자 미국 대사관에 연락해야 해.’
연락해서 부탁을 해 봐야 했다.
아니라면 스미스에게라도 줄을 대 봐야 했다.
앰뷸런스에서 깨작이는 것으로는 절대 무리였다.
지금 한 수술도 응급 처치에 불과할 뿐, 이대로 두면 드니스는 죽고 말 터였다.
앞으로 적어도 한 번, 어쩌면 두 번, 세 번의 수술이 더 필요할 수 있었다.
‘감염은…… 건들지도 못했어.’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이 다치게 되면, 그게 적절히 치료받지 못한 경우라면 감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런 야생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어쩌면 미지의 세균에 당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항생제가 들어가고 있긴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이미 썩은 부위는 잘라 내야 할 수도 있었다.
그게 강혁이 봉합을 대강 해 둔 이유였다.
“드니스!”
“자, 들것으로 옮겨!”
“네!”
강혁은 이러한 의학적이면서도 어두운 얘기는 굳이 이들에게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아까 본 구호소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 이유가 아주 명확해졌다.
이들이 잃은 건 비단 드니스뿐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호우는 지난 1년간 기울였던 노력도 얼마간 앗아 간 참이었다.
이제 다시 구호소를 정비하고 끊어진 마을 간의 도로를 이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더 소요될지 알 수 없었다.
‘힘든 사람들 더 힘들게 할 필요는 없겠지.’
해서 강혁은 그 든든한 팔로 들것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예민한 눈으로 디뎌도 좋을 곳을 골라 발을 옮겼다.
“내가 밟은 곳만 밟아.”
언제 들어도 믿음이 가는 말을 하면서였다.
덕분에 마지드는 이번엔 넘어지지 않고 차량까지 올 수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진흙을 밟지도 않았다.
조금만 차분한 상황이었다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았을 테지만.
마지드나 마이클이나 모두 별 관심이 없었다.
“드니스!”
“드니스, 내 말 들려!”
기절해 있는 드니스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강혁은 그런 둘을 말렸다.
“때리지 마! 미쳤어! 안 들려, 니들 말!”
“아.”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가요?”
“때리면 영영 안 좋아져. 약 줘서 그래. 약 줘서. 이거 안 보이냐?”
“아.”
마이클은 그제야 데니스가 들것 대신 다른 것을 짜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혁은 들것 가지러 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수술 마무리에 진정제도 주고 삽관도 해 둔 참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출혈이 조정됐으니 안심하고 약을 쓴 건데, 다행히 혈압은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게 언제까지 일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거야 뭐.’
강혁도 신경 쓰긴 해야겠지만.
맡아 줄 놈을 데려온 참 아닌가.
강혁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뒷문을 들여다보았다.
“드르렁.”
그러자 여전히 코 골고 뻗어 있는 츠요시가 눈에 들어왔다.
“저 새끼 아직도 자는 거야, 아니면 일어났다가 자는 거야?”
“네? 네. 오는 내내 자던데요?”
“미쳤나.”
강혁은 자신이 준 약의 종류와 용량을 분명히 기억했다.
어지럼증 있을 때 안심하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약이었다.
노인이라면야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츠요시는 어린 새끼 아닌가.
“이거 잠깐 들어 봐.”
“네.”
해서 강혁은 들것을 마이클에게 맡긴 채 안에 들어갔다.
“엇.”
마이클도 나이에 비해 꽤 체격이 다부진 편이었지만.
드니스가 워낙에 무거워서 휘청였다.
‘힘이 얼마나 센 거야?’
마이클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강혁은 어느새 츠요시 앞에 서 있었다.
말투만 봐서는 한 대 후려치려나 싶었는데.
의외로 그냥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바, 걸렸나?’
츠요시는 그런 강혁을 느끼고 있었다.
일부러 지금까지 누워 있던 건 아니었다.
약 맞은 김에 어지럽기도 하고 해서 좀 더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차가 출발했더랬다.
사람 있다고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타이밍을 놓쳤고.
급기야 출발한 지 30분이 지났을 무렵 마지드인지 나발인지 하는 현지인에게 발견되었다.
‘어, 여기 사람 있어요!’
‘못 돌아가, 지금은. 누군데?’
‘그 일본인 의사요.’
‘잘됐네. 같이 가, 그럼.’
그땐 너무 늦은 참이라 그냥 눈을 감았다.
‘그때 눈을 떴어야 했구나.’
그리고 지금은 후회 중이었다.
“야, 너 안 자지?”
해서 눈알을 굴리고 있으려니, 강혁이 말을 걸어왔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하마터면 ‘네’라고 할 뻔했다.
“네 할 뻔했지?”
그거까지 맞혔을 땐 심장이 뜨끔했다.
심지어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제야 이게 은유적 수사가 아니라 그저 묘사였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일어나면 몇 대 맞고 말고. 맞고 일어나면 뒤진다.”
“네, 일어났습니다.”
“새끼가, 봉사 와서 뺑끼를 타네?”
“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진짜…….”
“지금 패고 싶은데, 환자 봐야 되니까 봐준다. 저 환자 좀 봐.”
“어…….”
“어 하지 말고 일단 비키고. 여기 누워야 해, 환자.”
“아.”
츠요시는 강혁의 발에 밀려 일어나면서 환자를 바라보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기본은 잡힌 마취과 의사 아닌가.
게다가 여기 와서 강혁 밑에서 구르기도 해서 눈이 좋아진 참이었다.
‘갈비뼈 골절에…… 내출혈…… 감염 있을 거고, 출혈은…… 대강 잡혔는데, 고름이 있어. 하……. 이거…….’
활력징후는 그에 반해 안정적이었지만.
환자 상태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옆에 있는 이놈이 괴물 새끼라 그런 것일 터였다.
“너 뭐라고 했냐?”
“네? 아니, 아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조심해. 나 가끔 사람 마음이 읽힌다, 요새.”
“어…….”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읽으면 어쩐단 말인가.
해서 억지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최, 최선을 다해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