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61)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61화(661/1120)
661화 대사관 (3)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뭐 하고 섰어? 빨리 닦으라고. 여기 다시 소독하고 있을 테니까.”
“아, 네.”
요한슨은 하릴없이 손을 닦으면서도 조금 이상했다.
분명 강혁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요청하기는 했다.
세계 최고의 의사에게 배운다니.
흔치 않은 일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모자라게 대해 줬나 하면 그건 아니었다.
‘수술장에 의료진 인력에……. 아마 병실도 여기 쓸 거 같은데.’
심지어 수술 후 관리도 이쪽에서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강혁이나 츠요시는 각각 외과 의사, 마취과 의사지, 내과 의사는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중환자 의학에 있어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럼 지금까지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받을 게 많다는 뜻인데.
‘근데 이렇게 바로 하대를 해?’
불현듯 미국 본토에 있는, 아까 통화를 나누었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강혁이 대사관 의료 장비 이용을 요청했다는 말을 했을 땐, 만장일치로 해 주라고 했다.
그 양반이 말이나 행동이 거칠어서 그렇지 의외로 도움이 된다고, 또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
딱히 그들이 해 줄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어차피 강혁에게 대사관 시설 오픈은 위에서 허가된 사항이었으니까.
‘수술을 들어가겠다고? 미쳤냐?’
‘굳이…… 왜…….’
‘도망가, 너 죽어.’
하지만 이왕 오는 거 수술 배우러 들어가겠다고 하자마자 반응들이 아주 격렬해졌다.
누군가는 자신이 강혁에게 당했던 일화들을 낱낱이 고하기도 했다.
솔직히 요한슨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 더 많았다.
에이, 설마.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백강혁은 봉사 단체에 속한, 그것도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사람 아닌가.
“야, 빨리해. 뭐 하냐? 오는 내내 쉬었잖아.”
“네? 아니, 저…… 저 진짜 최선을 다해서…….”
“어쭈, 누가 보면 아주 네가 살려서 온 줄 알겠어?”
“저…… 제가 살렸다고 해도……. 50% 정도는…….”
“메스라도 휘둘렀냐? 그랬나 봐? 나는 못 봤는데.”
“아니…….”
“됐고, 빨랑 해. 왜 마취가 안 돼.”
“죄송…… 합니다.”
요한슨은 눈앞에서 츠요시가 당하는 걸 보면서도 장밋빛 생각을 완전히 접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친일파라거나, 매국노라거나 하는 것들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정말 단 하나도 몰랐는데.
강혁이 가끔 해 오는 전화에서 하도 떠들어 대는 통에 강제적으로 주입 당했다.
“베타딘.”
“아, 네.”
“많이 필요할 거예요. 아예 소독액을 따로 희석해서 준비해요. 데워도 주시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혁은 마취가 제대로 되기도 전부터 드니스의 배를 베타딘으로 다시 닦기 시작했다.
아까 수술을 한 번 하기는 했지만, 풀밭에서 이루어진 참 아니던가.
상처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이 일단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더러운 것들을 방치했다가는 추후에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주르르륵.
해서 강혁은 그저 베타딘으로 배를 문질러 닦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희석액을 통째로 들이부었다.
순식간에 드니스의 등판에 묻어 있던 진흙과 피 그리고 오물 등이 수술실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늘 깨끗한 것을 넘어 멸균 상태로 유지되는 수술실 바닥이 순식간에 오염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관리를 맡은 간호사는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베타딘을 다시 건네주었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막가위도 가리키면서였다.
“바지도 자르실 거죠? 소변줄…… 해야 할 거 같은데.”
“오, 해야죠. 안 그래도 이제 슬슬 폐에 물 찰 타이밍인데, 역시. 달라.”
강혁은 그 막가위를 받은 후 드니스의 바지를 서걱 소리와 함께 잘라 냈다.
사고 당시 흘러나왔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소변과 함께 악취가 번졌다.
간호사는 아주 능숙하게 베타딘액을 들이부었고, 강혁은 장갑 낀 손으로 대강 닦아 내어 바닥으로 흘려 냈다.
바닥은 다른 간호사 하나가 다급히 달려와 걸레와 청소기로 밀었다.
“에이.”
강혁은 이제 이만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도 싫은 이 광경을 보며 장갑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이제 소변줄을 꽂을 텐데 오물이 묻은 상태로 하는 건 미친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오염된 줄을 꽂아서 수술은 잘됐는데 신우신염으로 패혈증까지 오게 되었다는 케이스 리포트를 읽은 기억마저 있었다.
적어도 수술실에서는 단 한시도 방심해선 안 됐다.
“자, 여기요.”
간호사도 그런 강혁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행동이 무척 빨랐다.
어찌나 빨랐는지 강혁은 이런 생각까지 했다.
‘데려갈까.’
동시에 포식자의 눈을 했는데, 간호사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서야만 했다.
“뭐, 뭐예요.”
“아니에요. 하하. 줘요.”
하지만 강혁도 상식이 있는 인간이었다.
멀쩡히 대사관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간호사를 빼 가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공무원 아닌가.
그것도 이런 오지까지 파견된.
돌아가면 꽤 탄탄한 장래가 보장되어 있을 터였다.
그런 사람을 한구 병원에 꽂아?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게 뻔했다.
‘단기는…… 어떨까? 교육 목적으로.’
그러나 짧은 기간 빌려오는 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와서 장미가 그랬던 것처럼은 아니더라도, 교육을 해 주면 크나큰 도움이 되어 줄 터였다.
카심이 고군분투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지 않은가.
배움은 끝이 없고, 언제라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슥슥.
강혁은 음흉한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았다.
장갑을 새로 낀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고.
벌써 데니스의 음경을 깔끔하게 소독하고, 소변줄을 꽂아 넣고 있었다.
뭔가 덜컥하는 느낌과 함께 방광 안에 줄을 거치시키자마자 소변이 콸콸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방광이 꽉 차서 신장에 대미지를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꽂아 넣은 건 좋은 선택이었다.
‘탐나는데.’
그럴수록 간호사가 욕심났다.
이 사람을 데려가려면 누구에게 줄을 대어야 할까.
‘저놈이겠지?’
강혁은 이제 막 손 닦고 돌아오는 요한슨을 바라보았다.
아까 강혁이 거칠게 몰아세워서 그런가, 조금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저 얼굴이 이제 질린 얼굴이 되었겠지만.
강혁은 다른 목적이 있을 땐 자신을 숨길 줄도 아는 위인이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까, 이 인간한테는 앞으로도 도움받을 일이 수두룩 빽빽이지 않은가.
해서 강혁은 그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닥터 요한슨, 여긴 내가 다 했으니까. 일단 드랩만 하고 있어요.”
“어……. 네.”
요한슨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아까 분명 두 번 정도 엄청나게 몰아붙이지 않았나?
근데 또 지금은 웃고 있고.
지킬과 하이드를 보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그냥 너무 긴장해서 이러는 건지 헷갈렸다.
“어유, 드랩도 잘 치시네. 역시.”
“아, 그렇습니까?”
“근데 범위가 조금 좁아요. 1차 수술은 이렇게 했지만……. 2차는 좀 크게 째야 해요. 아깐 감염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길…… 이렇게.”
“아……. 그렇군요.”
“감염이 있거든요. 절제하고 세척하고 하려면 이거론 안 되죠.”
“네네.”
그러다 강혁이 계속 친절하게 대해 주니 비로소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새끼들…… 이런 좋은 스승을 지들끼리만 공유하려고. 친구도 아니다, 진짜.’
그리곤 진심으로 자기를 걱정해 주었던, 진짜 친구들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들었다면 정말 억울해서 환장해 돌아가실 지경이 되었겠지만.
요한슨으로서는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이익.
강혁은 메스를 그을 때도, 상처를 벌릴 때도 시종일관 입을 쉬지 않았다.
“잘 봐요. 아까 수술해 놓은 부분이 이제 잘 보이죠?”
요한슨이 보기엔 절개도 단순 절개로만 보기 좀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어쩜 저리 자로 잰 듯이 그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피는 적게 나고.
메스로 그은 부분엔 혈관이 없나 싶을 지경이었다.
“아……. 이게…….”
하지만 진짜는 아까 1차로 해 놓았다던 부분이었다.
드문드문 난 절개 틈새로 뭔가 했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완전한 수술이 되어 있을 줄이야.
‘앰뷸런스에 복강경이 있나……?’
어찌나 놀랐는지 말도 안 되는 상상마저 들 지경이었다.
“임기응변인데. 저 두 개의 절개 틈새로 빛을 쏴 주고, 여길 통해서 보면서 수술하는 거예요. 간이랑 비장 부분마다 세 개의 절개 면이 있고 가운데 하나 있죠?”
“복강경의 원리인가요?”
“음, 비슷한데. 그것보다는 갑상선 내시경 수술에서 힌트를 얻은 거죠.”
“갑상선……?”
요한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예전에 배웠던 갑상선 수술을 떠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목에 직접적인 절개를 넣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최근엔 로봇을 이용해서 최소 침습 절개인지 나발인지도 나왔다고 듣긴 했지만.
이 비슷한 술기가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더랬다.
강혁은 대강 봉합해 둔 것을 풀고, 감염이 일어난 곳을 절제하면서 말을 이었다.
“원래 갑상선 내시경 수술이…… 겨드랑이 쪽에서 파고 들어가잖아요. 흉터 안 남기겠다고.”
“아……. 아, 네.”
듣다 보니 학회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렇게 하면 목에 아예 흉터가 없다고.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있었다.
“근데 그러면 솔직히 수술 부위랑 절개 부위랑 너무 멀거든. 게다가 가슴 쪽 살이 분리되었다가 내려와서 해당 부위 감각이 떨어지기도 하고.”
“음, 그렇겠네요. 삶의 질이나 수술 후 통증에 있어서는 별로겠는데요?”
“그래서 유럽에서 시도되고 있는 게 있는데. 거긴 목 가장자리 네 군데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더라고. 그럼 흉터는 여전히 잘 안 보이는데 절대 부위랑 수술 부위가 가깝지.”
“아하……. 이것도 그럼?”
“거기서 힌트를 얻은 건데. 맨눈, 맨손으로 한 게 차이죠.”
“오호…….”
이걸 맨손, 맨눈으로 했다라.
요한슨은 이제 배운다는 기분이라기보다는 구경하는 기분이 더 들었다.
아니,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다 배우려고 하기보다는 배울 수 있는 것만 배우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건 아무리 배워 봐야 따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치지직.
강혁은 그런 와중에도 계속 절제술을 이어 나갔다.
전기칼로 톡톡 점을 찍는가 싶더니 그대로 그어 나가는데 수술적 해부학 구조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수술이라기보다는 마법 같았다.
“어유, 석션 좋아요. 지금. 그렇게 하니까 시야가 좋네.”
“아, 네. 뭐…….”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중간중간 칭찬이랍시고 해 오는 게 어쩐지 놀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조금이라도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반드시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터였다.
하지만 강혁의 수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정신이 휘딱 나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피가 안 나……. 근데 간은 나와…….’
감염이 심한 부분은 어김없이 잘려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피는 거의 안 나왔다.
그래서 그런가 츠요시는 여유로웠고.
구경하는 요한슨은 정신이 나갈 거 같았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