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90)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90화(690/1120)
690화 장 원장 출격 (2)
“아, 네……. 그…… 백 교수님이랑 계시는 분이시라고요.”
장규선이 자신의 생각이 착각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은 딱 한국대학교 병원 외상센터 입구에 들어선 직후였다.
길고 긴 여정이지 않았던가.
육로로 하늘로, 심지어 비행기도 갈아타면서 와야만 했던 길.
딱 하루 인천 공항 근처에서 쉬고 온 터라 엄청 피곤했는데, 떨떠름한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더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일단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저희 수간호사 선생님 모셔 올게요.”
지영은, 그러니까 이미 외상센터에 합류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강혁에게는 신규라 불리는 지영은 부리나케 안쪽으로 달려 나갔다.
‘혹시 돌아온다는 건가? 선봉장으로 보낸 건가?’
이런 생각을 해 가면서였다.
솔직히 강혁이 돌아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떠올려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였다.
물론 이제 양재원이나 이동주, 사대진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그냥 사람 아닌가.
괴물이 와야 살릴 수 있는 환자는 어찌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당연한 얘기지만, 그 생각이 오래 간 적은 추호도 없었다.
강혁은 본인뿐만이 아니라 주변인들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사람이니까.
아마 계속 강혁이 여기 있었다면, 오히려 센터가 지금처럼 부흥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도망가는 사람이 워낙에 많았을 테니까.
‘음……. 도망가는 느낌인데?’
한편 장규선은 지영이 앉으라고 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채 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내과 의사인데 잠시 시간 괜찮겠냐는 말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더없이 친절했더랬다.
친절하기만 한 게 아니라 능숙하기까지 했다.
워낙에 다른 단체에서 견학을 많이 오기 때문일 터였다.
이제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는 단지 이곳에 오는 환자들만 살리는 기관이 아니라, 전 세계 의료인들을 육성하는 교육 기관이기도 했다.
‘근데 너무 빨리 뛰잖아?’
이런 대단한 기관에 있는 사람이 백강혁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혼비백산하는 꼴이라니.
환영할 거라고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장규선이라고 팡파르 울려 가면서 행사가 열릴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것보단 나을 거라 생각했다.
“음.”
아무튼, 물 마셔 가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누가 봐도 높아 보이는 사람 하나가 다가왔다.
명찰을 슥 하고 훑어보니 중증외상센터 수간호사 백장미라는 적지 않은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백장미입니다.”
“아, 네. 장규선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구 병원에 중단기 봉사 중입니다.”
“네, 한구. 음.”
장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구 병원을 떠올렸다.
처음 중증외상센터로 끌려왔을 때도 열악하다 싶었는데.
그곳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 곳이었다.
아직도 강혁이 왜 그 실력을 가지고 거기에 갔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제아무리 백강혁이라고 해도 자기 역량을 온전히 펼쳐 내긴 어려울 터였다.
“듣자니, 선생님도 오신 적이 있다고 하던데요?”
“아……. 백 교수님이 그러셨나요?”
“아뇨, 간호사님들이.”
“아……. 네. 하하.”
좋은 얘기가 나오진 않았겠군 하면서 장규선의 눈치를 살피니 과연 빠르게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거기선 좀 무리를 하긴 했지.’
설마하니 장미가 밑에 사람들을 늘 쥐 잡듯이 잡겠는가.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중증외상센터에 지원하는 신규 간호사들이 넘쳐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한구는 사정이 많이 다른 상황이었다.
일단 사람들 태도 자체가 개판이었고, 실력도 그랬다.
‘그러고 나서 좀 나아졌으려나?’
확인하려면 다시 가야 할 텐데.
그러긴 싫었다.
해서 궁금증 자체를 지워야겠다 하고 있으려니 장규선이 말을 이었다.
“제가 여기 온 건……. 뭐 별건 아니고요. 백 교수님이 자기 소식 좀 전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주 좋아하실 거라고.”
“아…….”
“특히 양재원 선생님 있으면 꼭 좀 부르라고 하던데요.”
“그……. 네. 지금 오고 있을 거예요. 아까 처치실에서 환자 보고 있느라……. 아, 저기 오네요.”
장미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의사 하나가 비척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듣기론 꽤나 얌전하게 생겼다고 하더니, 수염을 길러서 그런가 지저분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장규선 선생님.”
다만 사람 본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 말투는 나긋하기만 했다.
지나치게 지쳐 보인다는 것만 빼면, 가까이에서 본 인상도 썩 괜찮은 편이었다.
‘여자친구 없다고 했지?’
직업도 번듯하고, 실력도 좋고, 인상도 괜찮은데 왜 없을까?
장규선은 궁금증을 뒤로하고 강혁이 전달하라고 한 서류 봉투를 꺼내 들었다.
“안녕하세요. 이게 백 교수님이 전하라고 한 건데…….”
“이걸요?”
“이게 뭔데요?”
“저도 잘 모릅니다. 열어 보진 않아서요.”
“아.”
그렇다면 지금 열어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투두둑.
마감이 뭐 단단하게 되어 있지는 않아서 뜯는 게 어렵진 않았다.
“사진이네요.”
“셀카도 있네. 뭔 생각이야, 이거.”
“그러게, 셀카는 왜 보내신 거야.”
안에는 사진이 가득 들어 있었다.
요즘엔 보기 드문 필름 인화 사진이었다.
재원의 말대로 셀카도 드문드문 끼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환자 사진들이었다.
아니, 현장 사진이라고 하는 게 옳을 터였다.
거기엔 외상을 입고 실려오는 환자들 사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산부인과 교육을 받고 있는 히잡 쓴 여인들, 눈이 하얗게 변색 되어 버린 노인, 벽돌을 나르고 있는 아이 등등.
한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오……. 이거…… 이걸 교수님이 찍으셨나?”
“사진을 원래 찍던가요? 너무 잘 찍었는데.”
“그 양반은 원래 도깨비 같은 사람이잖아. 그냥 며칠 뚝딱 배우면 이 정도는 찍을 수도 있어.”
“아……. 하긴. 괴물이지, 괴물.”
장규선은 눈앞에서 스승에게 패드립을 늘어놓는 둘을 잠시 바라보았다.
기묘한 기분이었다.
나이도 지긋한 데다가, 수술실에 들어갈 일도 없어서 강혁에게 당한 적이 없기 떄문이었다.
그저 강혁이 이룩한 결과만을 보았을 뿐이라 존경심만 그득그득 쌓였다.
“근데 이걸로 뭘 어쩌…… 아, 편지가 있네.”
“뭐라고 썼…… 아. 이걸 올리라고. 아니, 자기가 좀……. 아, 한국대학교 SNS에 이걸 올리라고…….”
“후원금 목적인가? 그때 분명히 돈이 아니라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었…… 아, 동문회에도 올리라고…….”
“그뿐이 아닌데요? 한국대학교 병원 정기 봉사 일정에 어떻게든 낑겨 보래요.”
“아니, 이게 말이 되나. 거길 어떻게 가……. 지금 가는 데도 겨우 가는데.”
“안 하면 뒤진다는데요?”
“힉.”
그저 글로 적힌 걸 장미가 읽었을 뿐인데,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재원은 오돌토돌해진 팔뚝을 쓸어내리며 장미에게 물었다.
설마 뭐가 더 남았나 싶은 얼굴을 하고서였다.
“이게 끝이지?”
“아……. 아뇨. 제일 중요한 내용은 밑에 있네요.”
“뭐, 뭐래?”
“초대하신대요.”
“한구? 안 가……. 나 그때 휴가 써서 간 거라고……. 너도 그렇지 않았어?”
강혁은 파키스탄이 분명히 휴가 써서 올 만한 곳이라고 했었다.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엔 어느 정도 구경할 만한 거리가 있긴 했지만.
하루면 다 보고도 시간이 남을 정도로 적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시간은 한구에서 보내지 않았던가.
오가는 길의 경치가 이쁘긴 했던 거 같은데, 허리 아팠던 기억이 더 진하게 남아 있었다.
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려니, 장미도 고개를 저었다.
“한구가 아니라, 괌으로 부르는데요?”
“응? 괌? 그…… 그 괌인가? 막 사람들 놀러 가는 곳?”
재원은 괌을 듣고 난 후에도 분명 다른 괌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어디 중앙아시아나 중동이나 아니면 아프리카에라도.
강혁이 어디 놀러 갈 줄 알던 사람이던가.
한국에 있을 때도 휴가 한 번 안 가 본 인간이었다.
심지어 점심이나 저녁에 병원 밖에서 밥 먹는 일조차 특별하다고 여길 지경이었다.
“어……. 진짜 괌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짜라니까요?”
“에이.”
“아, 내 말 안 믿나?”
“응? 왜 그렇게 노려봐. 화났어?”
물론 장미가 눈을 부라리고 난 다음에는 생각을 바로 바꿨다.
강혁이 더 무섭기야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 한구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장미를 훨씬 더 두려워해야 맞았다.
오버하는 거 아니냔 사람이 있다면 장미랑 일주일만 붙여 놓고 싶었다.
그럼 아마 바로 재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래, 괌이구나. 진짜 괌으로…… 초대한다고?”
“네. 이미 리조트까지 예약했다는데요? 비행기랑.”
“아니, 이 미친 사람이 휴가를 맘대로 정하네.”
“어차피 만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냥 오래요.”
“와…….”
뼈 때리네?
일자를 보니까 아직 몇 달 남았던데.
그때까지 생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잠시 지나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강혁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없을 테니까, 가죠? 이거 봐요. 비행기 일등석이래. 이거 언제 타 봐.”
“응? 일등석?”
“네. 호텔은 어디냐, 이게. 두지터니? 이름만 봐도 좀 있어 보이는데. 여기 스위트래요.”
“오……. 스위트…….”
“근데 오려면 후원금을 받아 내든지, 아니면 단기 팀이라도 보내라네요. 하,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이 양반.”
그럼 그렇지.
백강혁이 어떤 사람인데 공짜로 푼단 말인가.
게다가 장미가 보기에 이게 또 그렇게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신규 때야 돈이 없으니까 눈이 돌았겠지만.
이젠 어엿한 수간호사고 또 센터장이지 않은가.
안 써서 그렇지, 쓰려고만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자력으로 가능했다.
“근데 뭐 해요?”
“어? 어, 올려야지. 몇 명 보내면 된대?”
“아니……. 이걸 꼭 가고 싶은 거예요?”
“가야지! 괌인데!”
“그……. 센터장님 집도 부자잖아요…….”
“우리 엄마 아빠가 부자지, 내가 부잔가. 공짜로 갈 수 있으면 가야지. 안 갈 거야?”
“어……. 그렇게 말하니까 또 혹하기는 하는데…….”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말 잘 듣는 후배 많지 않아? 일주일만 가라고 하면 갈 거 같은데? 게다가 여기 가 봐서 알지만, 진짜 도움도 많이 되잖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음.”
지금 재원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게 한구 병원인지, 괌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장미는 재원이 이렇게 들떠 있는 거 자체가 기꺼웠다.
강혁과는 여러모로 다른 센터장 아니던가.
언제까지 짠한 이미지로 리더십을 발휘할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장 처음부터 함께했던 동료로서 지금처럼 웃는 얼굴이 조금이나마 많아졌으면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장미의 얼굴에도 어느새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백 교수님 본다니까 다들 좋아하는구먼, 허허.’
규선은 그런 둘을 보며 또다시 이상한 착각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저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아……. 네. 저희 소식도 전해 주세요. 감사했습니다.”
“네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