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693)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693화(693/1120)
693화 in 한구 (3)
츠요시는 아무 처치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곧장 근무에 투입되었다.
관장까지 한 데다 잠도 제대로 못 잔 탓에 엄청난 피로를 호소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이러라고 비수면으로 하는 건데 쉬면 왜 개고생을 했냐는 등의 비난만 들었을 뿐이었다.
“하아.”
츠요시를 더 힘들게 하는 건, 강혁의 말이 맞았다는 점이었다.
제아무리 수면 내시경에서 쓰이는 미다졸람의 반감기가 짧아 금방 잠에서 깬다 해도, 예민한 사람은 반나절에서 한나절까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이었다.
반면 비수면으로 했더니 스트레스 호르몬이 쏟아져 나와서 그런 건지 뭔지 하나도 졸리지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몸이 좀 가벼운 게 개운한 기분까지 들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다음 환자분 보죠.”
덕분에 외래 보는 일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아마 수술실에 끌려 들어갔다면 당연히 지쳤을 텐데.
오늘은 애초에 수술 스케줄이 없이 응급 대기만 있었을뿐더러, 강혁이 다 내시경 스케줄에 맞춰서 일정을 조정해 둔 참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대뽀 같은데, 또 어떻게 보면 세심한 인간이었다.
‘대단하긴…… 하지.’
생각해 보면 애초에 세심하지 못한 인간이 그렇게까지 수술을 잘할 수는 없을 터였다.
오늘도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지 않았다.
아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겪기까지 했더랬다.
‘비수면 후기를 보면……. 진짜 죽기보다 힘들다고들 하던데…….’
처음 가스 들어가서 아플 때 말고는 거의 위기가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검사하는 것까지는 워낙에 손이 좋으니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문제는 한유림에게 시행한 내시경 하 점막 절제술이었다.
세상에 난생처음 하는 시술일 것이 분명한데 그렇게까지 능숙하게 해낼 줄이야.
‘괜찮으시겠지? 괜찮을 거 같은데.’
츠요시는 이제 슬슬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감기 환자로 채워져 가고 있는 외래 진료실 천장 쪽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이 위 어딘가에 한유림이 누워 있을 터였다.
예상이 맞다면 죽는소리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알고 지낸 지가 아주 오래되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시간의 밀도가 어마어마한 데다가, 강혁이라는 공통의 적이 있기에 아주 끈끈한 우정을 일궈 낼 수 있었다.
“아유유…….”
한유림은 아랫배를 움켜쥔 채 앓는 소리를 냈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내는 진짜 신음은 아니었다.
두 눈은 맞은편에 무심한 얼굴로 앉아 있는 강혁의 얼굴에 똑바로 박혀 있었다.
“엄살은…….”
“엄살? 엄살이라고? 아까 생살을 쥐어뜯었는데!”
“장기 감각을 어떻게 느끼냐고. 돌연변이라도 되셔?”
“야, 인마……. 너 떼 봤냐? 폴립 떼 봤어?”
“있어야 떼지. 난 없더만, 하나도.”
“안 떼 봤으면 말을 말어. 진짜 아파.”
“나 원참.”
살다 살다 폴립 뗀 것으로 유세 떠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강혁은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슬슬 노인네 엄살 듣기도 귀찮아졌으니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였다.
한유림하고 리처드가 미친 듯이 치질 수술을 한 덕에 예약 수술도 없으니, 응급만 안 터지면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럴 시간이 있으면 옆집 가서 데니스 놀리는 게 더 생산성이 있을 거 같았다.
그것도 질리면 닥터프렌즈나 보던지.
“어어, 잠깐. 잠깐 어디 가.”
문제는 한유림도 이제는 강혁의 얼굴만 봐도 속마음을 대강 읽어 낸다는 점이었다.
귀신같이 강혁의 손목을 잡았다.
이제 나름 3대 500 드는 노인네가 된 터라 아귀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 봐야 강혁이 뿌리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아예 던져 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참았다.
상대는 노인이고, 또 환자니까.
“아, 왜요.”
“얘기해 줘야지.”
“뭘.”
“나 나쁜 거 아니지? 그렇지?”
“아……. 몇 번을 말해. 조직검사 봐야 된다고.”
“솔직히 알잖아, 백 교수는. 종양 있는 것도 알았는데 그게 뭔지는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사실은 말이 되었다.
영상 검사를 통해 종양이 있다는 걸 인지한 후, 왜 조직검사를 하겠는가.
보는 것만으로는 그게 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백 교수는 괴물이잖아.’
하지만 한유림의 생각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다.
아마 강혁을 일정 기간 이상 겪어 본 위인이라면 다들 동의할 터였다.
“나도 진짜 모르겠다니까? 몇 번을 말해.”
“거짓말하지 말고. 나 불안에 떨게 하려고 이러는 거지?”
“내가 노인네 불안에 떨게 하면 무슨 유익이 있는데.”
“그……. 음.”
생각해 보니까 없긴 했다.
적어도 합리적인 이유는 없었다.
강혁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는 한유림의 눈동자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하긴 노인네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긴 하겠어.’
나이 60 넘어서 생면부지의 땅에 와서 개고생하고 있는데 대장에 용종까지 발견되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강혁 딴에는 그 어떤 검진 시스템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제거해 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참이었지만.
왜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종종 강혁의 선의를 오해하곤 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했다.
‘말로 좀 풀어 줄까.’
해서 강혁은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세 치 혀에 시동을 걸었다.
이게 또 잘 안 써서 그렇지, 한번 쓰면 기가 막히지 않던가.
강혁의 감언이설에 속아 신세 조진 놈이 이 병원에도 있을 지경이었다.
“거 일단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돼.”
“양성…… 양성이지?”
“생긴 거 보면 모르나. 딱 봐도 양성이지. 엄청 이쁘게 생겼잖아.”
“이쁘…… 지는 않지. 무슨 놈의 용종이 이쁠 수가 있어.”
“악성에 비하면 이쁘지.”
“그야…… 그렇지. 악성은…….”
악성이란 말은 암이란 뜻인데.
사람 몸에 있는 조직 중에 암보다 안 이쁜 놈이 어디 있겠는가.
잠시 말을 이상하게 한다는 불만이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튼 악성은 아니란 얘기이긴 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강혁은 그런 한유림의 미소를 가만히 보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이게 또…….”
“또 뭐 인마.”
한유림의 미소를 순식간에 일그러뜨리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평소 강혁의 인성을 생각하면 오해하기 딱 좋은 대목이긴 했지만.
강혁은 진심으로 꼭 해야 하는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부숴진 거잖아, 애초에. 나는 변에 묻은 조각을 본 거라고.”
“그…… 아니다, 계속 해 봐.”
그걸 대체 어떻게 봤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말해 준다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지 않겠는가.
한유림은 이제 강혁의 능력 일부에 대해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한 참이었다.
재원이나 리처드가 여전히 그걸 어떻게든 파악해서 배우려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우주의 신비도 있는 법이라는 마음 반, 이미 나이도 들 만큼 들었는데 더 배워 뭐 하냐는 마음 반에서 내린 결정이었는데, 이게 오히려 최근 한유림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어 주고 있었다.
불가해한 영역의 강혁의 술기 대신 본인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술기만 배우고 나머지는 한유림식으로 채워 나가는 것이 일종의 해답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래서 한 교수님을 얼마나 아끼는데. 은혜도 모르고 말야.’
강혁은 얼마 전 한유림이 해 놓았던 수술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늘 그렇듯 얼굴에는 속내를 하나도 드러내지 않은 채였다.
“알다시피 양성 조직은 잘 안 부서져. 자라는 게 보통 느리니까……. 단단하다고. 괴사도 잘 안 일으키고.”
“어…….”
“반면 악성은 부서지기도 하지. 노상 보지 않았어요? 한국대학교 병원 있을 때?”
“그……. 보기는 봤지.”
생명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중증외상센터도 물론 그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절대 중증외상센터만 거기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도리어 암 환자를 돌보는 과들이 관여하는 생명의 수가 훨씬 많았다.
한유림은 그런 병원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고 커다란 병원인 한국대학교 병원 외과 과장으로 있던 만큼 암 환자를 정말 많이 접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 신생 혈관 만들고 난리 치니까. 출혈도 많고, 부서진다고. 뭐……. 한 교수님 용종은 출혈이 있진 않았는데, 부서진 게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그 덕분에 진단이 되긴 한건데. 원래 병이란 건 진단되는 것도 다행이지만 아예 없는 게 제일 좋잖아?”
“그…… 나 그럼 암이야?”
“아니,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양성 같은데 부서진 게 마음에 걸린다 이 정도지.”
“남 일이라고 너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할래?”
“와……. 또 사람 섭섭하게 해. 내가 이거 때문에 닥터 요한슨한테 전화까지 해서 아마 지금 교수님 폴립 괌으로 날아가고 있을 텐데. 대강 내일이면 동결 절편은 나오고, 3일 안에 리포트 준대요.”
“오……. 백 교수……. 고마워. 내 마음 알지?”
“거…….”
강혁은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휙휙 변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나이가 들어서나 사람이 원래 얄팍해서 등등 여러 후보가 둥둥 떠올랐다.
하지만 결론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이었다.
‘모로 가든 열심히 일만 하면 되지.’
모름지기 노예는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노예가 최고 아니겠는가.
사람이 좀 얄팍한 건 문제가 되질 않았다.
태도의 문제는 얼마든지 교정해 줄 수 있었으니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시니컬하게 말하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도 강혁이랑 며칠 심도 있고 또 강도 높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많이 바뀔 터였다.
강혁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건 수술이 아니라, 놀랍게도 이쪽이지 않은가.
“아무튼, 뭐 먹지 말고 있어요. 난 좀 가 볼게.”
“어, 어디 가는데. 나 심심해.”
“바람 좀 쐬게. 아침부터 두 사람 똥꼬 후볐더니 텁텁해.”
“아……. 그, 그래.”
더 잡고 싶었지만, 텁텁하다는 것의 이유를 듣고 나자 더 그러기도 좀 어려웠다.
해서 쓸쓸한 표정으로 배웅하고 있으려니, 방을 막 빠져나가려던 강혁이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잊고 있었단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 맞아.”
“뭐, 뭐.”
한유림은 당연히 자기 몸 얘기인 줄 알고 귀를 기울였다.
딱히 낑낑거리는 기색도 없었다.
앓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사실 아픈 구석이 있기는커녕 개운하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기운이 없는 건 뭘 먹지 못한 채 싸서이지, 손상이 생겨서는 아니었다.
“아까 보니까, 미유키 씨가 문안 온다던데.”
“어, 어?”
“요새 얘기도 잘 안 하는 거 같던데……. 잘해 봐요.”
“야, 뭘 잘해……. 여기서……. 야……. 나 머리 좀 만져…… 갔네.”
암을 의심했던 때에 비하면 비교적 차분해졌던 한유림의 마음이 금세 부산스러워졌다.
목숨보다 더 사랑했지만, 너무 빨리 떠나 버린 아내.
그 아내를 꼭 닮은 사람이 온다니.
한유림은 강혁 앞에서 아픈 척하던 것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분연히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다른 환자가 흠칫 놀랐지만 한유림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 여기…… 여기 이렇게 하니까 머리가 좀 더……. 아니지, 이럴 게 아니라 팔굽혀펴기라도 좀 할까.”
무리하는 바람에 진짜 배가 아파질 무렵에 이르러서야 미유키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거의 모든 한구 의료진, 그리고 한구 시장 및 데니스와 함께였다.
시장은 실망감과 통증에 바닥에 널브러진 한유림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이구, 수술하셨다더니 진짜 아프신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