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709)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709화(709/1120)
709화 강혁은 (3)
한유림은 돌멩이에서 힘겹게 시선을 떼어냈다.
‘어휴. 저걸 뽑아?’
뽑아야 되긴 할 터였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해서 그냥 노가다를 뛰기로 했다.
“샘, 일단 발부터 좀 닦을까?”
“아, 네. 그리고 이거 들면 되나요?”
“어. 들면 내가 다 닦고 다시 들 테니까, 그때 드랩 쳐 줘.”
“알겠습니다.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샘은 한유림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백강혁 따라다니면서 운동을 하는 거 같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예순 넘은 노인 아닌가.
어디 군에 있었던 사람도 아니고, 평생을 의사만 했던 사람이었다.
힘이 좋을 거라 기대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응? 아, 이거? 괜찮아. 괜찮아. 저기보단 나아.”
“음, 뭐. 알겠습니다. 힘들 거 같으면 카심이라도 부를게요.”
“어……. 뭐, 그래.”
한유림은 샘의 팔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만 봐도 나이 말고는 부심 부릴 게 없어 보이는 팔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에 있었으니 보통 사람보다야 나을 테지만.
글쎄, 한유림은 강혁과 밤낮없이 부대끼는 사람이었다.
강혁 절반쯤 되면 인간 레벨이었고, 자신보다 약하면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이었다.
여담으로 리처드는 간신히 인간 레벨을 유지하고 있었다.
“흐음.”
한편 강혁은 얼굴 쪽에 서 있었다.
환자의 얼굴을 소독해야 하기 때문에 양측 눈을 테이프로 강제로 당겨 감겨 주면서였다.
소독약을 잘못 고르면 이렇게 해도 실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지만.
의외로 베타딘은 순한 약이었다.
균에게는 강하지만 내 몸에는 따뜻한 약이라고 할까.
슥슥.
강혁은 베타딘을 잔뜩 적신 솜으로 환자의 얼굴을 문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한쪽 얼굴이 아예 박살이 난 상황이다 보니 생각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이라면야 재건이라고 해 봐야 별거 아닐 수도 있을 테지만.
얼굴은 그 기능이 너무 많은 데다가, 지나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눈, 코, 입도 아닌 뺨인데도 그랬다.
‘위로는 눈……. 바닥이 아예 내려앉았지. 이대로 두면 절대 안 돼.’
사람 몸은 저절로 수복되려는 성질이 있지 않은가.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트롤처럼 제대로 고쳐지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눈이 내려앉은 상황에서 어설프게 상처가 회복된다면 환자는 영영 물체를 둘로 봐야 할 터였다.
그 말은 차라리 왼쪽 눈을 포기하느니만 못한 상황이 벌어질 거란 얘기이기도 했다.
‘이건 밑에서 받쳐 줘야지. 근데…… 받쳐 줄 만한 뼈가 있으려나? 다 깨진 거 같은데.’
뼈가 살짝 망가진 상황이라면 그 망가진 부위에만 뭘 끼워 넣는 방식으로 눈알을 받쳐 줄 수 있었다.
눈알이 생각보다 무겁긴 하지만, 인간의 지혜는 놀라운 것이어서 이미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해 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엉망으로 망가져 버리면 절대 무리였다.
‘그럼 덩어리로 재건해야 한다는 건데…….’
그건 쉽냐고 한다면 당연히 아니었다.
일단 돌멩이가 와측 뺨 살을 죄 찢어 내고 안으로 틀어박혀 있었다.
봉합한다고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찢어 냈다는 말도 순화한 표현이었으니까.
뭉개져 있다고 봐야 옳았다.
‘오케이. 이것저것 재지 말고……. 허벅지 살 이용해서 통짜 재건으로 가자.’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할 만하건만.
강혁은 막판에 웃으며 소독을 끝마쳤다.
아무래도 그 범위나 어려움이 말도 못 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에 샘과 한유림은 여전히 다리를 든 채 낑낑거리고 있었다.
“야, 좀 똑바로 들어.”
“지금 발가락만 잡아서 들고 있거든요?”
“그게 무슨 핑계가 되지?”
“무겁…… 무겁다고요.”
“운동 좀 해.”
“이 노인네가. 이따가 봅시다. 얼마나 무거운데.”
“그러든가 말든가.”
정정하자면 샘이 낑낑거리고 있었고, 한유림은 투덜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늑장 부리는 것처럼도 보이긴 했지만, 강혁은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재건에 제대로 들어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까.
게다가 이미 상처 부위는 돌멩이로 인한 감염 위험이 올라간 상황이지 않은가.
소독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그 위험도를 조금이라도 줄여야만 했다.
“좋아. 흠…….”
해서 강혁은 혼자 손을 닦고는, 간호사에게 가운과 장갑을 받아 끼고는 환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환자를 움직이고 어쩌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돌멩이는 딱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마구 뽑아내자면 자칫 안구에 손상이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혁은 평소처럼 메스로 틈새를 더 늘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 하나를 환자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곤 돌멩이의 끝을 톡 하고 밀었다.
“오케이.”
강혁은 그렇게 조금 더 빠져나온 돌멩이를 놀라운 악력으로 잡아서 밖으로 당겨 뽑았다.
덜그럭.
피에 젖은 돌멩이가 수술대 위에 나뒹굴었다.
그것도 꽤나 시선을 끄는 장면이었겠지만, 그 누구도 그쪽을 보고 있진 않았다.
뻥 하고 구멍이 뚫린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리처드가 잘해 준 덕에 엄청 커다란 출혈은 없었다.
‘좋아.’
그저 새어 나오는 출혈이 있을 따름이었는데.
이거야 피부나 결체조직에서 나오는 것들이라 별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몇 번 전기 소작기를 만지작거리자 모조리 멈춰 버렸다.
이것도 그리 쉬운 재주는 아니었지만.
강혁에게는 일도 아닌 수준이었다.
주변 조직에는 전혀 상처를 주지 않은 채, 딱 피만 멈추게 했음에도 그랬다.
“음.”
강혁은 그렇게 더 깨끗한 시야를 만들고 난 후, 손가락으로 자꾸만 아래로 쳐지는 눈동자를 밀어 올렸다.
대략 1cm를 밀어 올리고 나서야 우측과 높이가 맞을 정도로 심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허.”
그 모습을 같이 보고 있던 츠요시와 간호사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지나친 반응은 아니었다.
안구가 대롱거리는 모습은 공포 영화에서조차 쉽사리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지 않은가.
설마하니 파키스탄까지 봉사 와서 이런 걸 보게 될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을 터였다.
심지어 이 자리에서 강혁을 제외하면 제일 경험이 많은 한유림조차 의식적으로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가벼운데? 나는 가벼운데?”
“어, 어떻게…….”
괴로운 심정을 샘을 갈굼으로써 승화시키면서였다.
이제야 강혁이 왜 자신이나 재원 또는 리처드를 그토록 갈구면서 충전이라는 소름 끼치는 단어를 썼는지 알 거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놀리니까 훨씬 나아……. 안 돼, 내가 이런 인간이라고?’
다른 의미로 소름이 끼쳤지만 이미 늦은 마당이었다.
“이게 무겁다고? 삼십 대 아냐? 내 나이 반이나 드셨나?”
“아니, 어떻게…….”
놀릴수록 물리적인 힘까지 난다는 걸 실험을 통해 몸소 입증하고 있는 마당 아닌가.
의학자, 즉 과학자로서 그냥 간과할 수는 없었다.
“아……. 이거 역시 걸 곳이 없네.”
반면 강혁만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체념한 얼굴도 아니었다.
예상을 했다는 건 대비도 했다는 뜻이니까.
“일단 티타늄 메쉬 좀 줘 볼까?”
“네?”
“아, 뭔지 모르려나.”
강혁은 자신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장미가 다녀간 이후 태도가 바뀌었고, 샘이 충원되면서 나름 교육이라는 게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당연히 한국대학교에서 볼 수 있던, 이른바 엘리트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다 가르쳐야만 했다.
“다른 간호사 하나만 불러 봐요. 어차피 밖에 이제 거의 소강상태일걸.”
“네, 백 교수님.”
해서 보조 간호사를 부른 후, 턱으로 티타늄 메쉬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었다.
“보통 뼈는 재건하기가 골 때리거든. 특히 눈알 감싸고 있는 근육은 얇아서 어디서 떼어내기가 어려워. 턱이야 뭐……. 가능할지 몰라도, 이런 데는 안 된다고. 여기 뼈 들어가겠어?”
이미 수술에 들어와 있던 간호사에게는 티타늄 메쉬를 언제 어떻게 쓰는지 알려 주면서였다.
“안…… 들어가나요?”
“응? 당연히 안 들어가지. 여기 뭐 공간 있다고 해 봐야……. 보라고. 물 얼마나 들어가나. 기껏해야 10에서 15ml 정도라고.”
“아…….”
주사기로 피 뽑을 때 보면 어쩐지 많은 양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물로 치환하면 10g에서 15g 정도밖에 안 되는 양이었다.
이비인후과는 고작해야 고만한 공간에 들이차는 염증 가지고 평생을 쩔쩔매는 셈이었다.
이런 말 이비인후과 의사가 듣는다면 가만 안 놔두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실인데.
“그래서 이런 걸 그물처럼 펴서 넣는 거야. 잘 봐.”
“오…….”
“티탸늄이다 보니 얇아도 진짜 단단해. 엄청 잘 버텨. 봐 봐. 나 지금 손가락으로 눈알 부분 안 누르고 있거든? 근데 어때.”
“안 내려가요. 이럼 된 건가요?”
“아니.”
강혁은 간호사의 흥분을 단숨에 가라앉게 만드는 말을 하면서 티타늄 메쉬 가장자리를 누르고 있던 손가락에 힘을 뺐다.
그러자 눈알이 다시 내려앉는 정도를 넘어 아예 티타늄 메쉬가 상악동 공간 뒤편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뼈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이거 끼워 넣으면 바로 재건이 돼. 내가 아는 이비인후과 선생 중에는 그냥 내시경으로 하는 양반도 있는데……. 이 환자는 그게 안 된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다리는 괜히 닦겠냐. 앞에 살 재건하면서 이거 고정시키면 돼.”
“아…….”
“그래서 말인데. 이제 다 닦은 거지?”
강혁은 시선을 다리 쪽으로 아예 돌렸다.
기대했던 대로 환자의 다리는 다 닦인 것으로도 모자라 드랩까지 싹 되어 있었다.
바로 칼을 대면 될 수준이라 이 말이었다.
“응, 아……. 샘이 약골이라 좀 걸렸는데. 그래도 내가 힘이 세서 다행이지 뭐야.”
“샘…….”
강혁은 다리 쪽으로 이동하며 샘을 바라보았다.
강혁 특유의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눈을 하고서였다.
당연하게도 샘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아니, 저는……. 저는…….”
“군인 출신이라고 해서 놔뒀는데……. 안 되겠어.”
“네?”
“오늘부터 일과 끝나면 너도 옥상으로 따라와.”
“어…….”
“지옥 훈련이다.”
강혁은 누군가의 삶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내뱉고는 환자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날벼락을 맞은 샘이 뭐라 중얼거리려 했으나, 손사래를 침으로써 제지하면서였다.
“시끄럽고. 디자인해야 되니까……. 다들 조용히 해 봐.”
“어…….”
“쉿.”
“네.”
그리곤 다리를 주물거리며 환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깥으로는 대략 4x3cm 정도의 상처가 있으니까……. 거긴 살로 메우고. 안쪽으로는 흠……. 부피 14cm^3가량…….’
이것만 해도 충분히 복잡한 계산인데, 변수는 하나 더 있었다.
‘실제로 유리 피판술을 하고 나면 근육은 쪼그라들게 되어 있어. 대략 20% 정도 쪼그라든다고 보면…….’
바로 근육의 변화였다.
우리 몸의 근육은 생각보다 변화무쌍한 조직이라, 이식을 해 주면 그 자리에 맞게 화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강혁은 그거까지 다 머릿속에 욱여넣고 계산을 마쳤다.
이렇게 보면 꽤 걸렸을 거 같지만, 남들이 볼 때는 찰나였다.
“좋아. 계산 끝. 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