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71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716화(716/1120)
716화 삶의 질 (2)
점검을 상당히 꼼꼼하게 했기에 강혁이 거주하고 있는 숙소동 3층에 올라갔을 땐 이미 7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워낙에 일찍 일과를 시작하는 한구 병원 사람들답게 죄 식당에 모여 있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슬라마바드에서 온 김영수 사장이었다.
덕분에 식탁 위에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라고 할 만한 음식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이거…… 이거 육회야?”
심지어 본래 식탐이 아주 심하지 않은 강혁조차 눈이 돌아가게 만드는 음식들도 있었다.
“백 교수, 그거뿐만이 아냐. 이거 봐. 게장이야. 게장.”
2주간의 풀당으로 지칠 대로 지친 한유림도 지금은 생기가 좀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구에 아니, 파키스탄에 온 이후로는 아예 처음 보는 음식들이 한가득했다.
“어떻게 이런 걸 다 가지고 온 거야?”
“아……. 이번에 교수님이 선불로 다 주셨잖아요. 너무 많이 주셨길래…….”
주는 사람 입이 아니라 받는 사람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정말 많이 주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의외라고 여기진 않았다.
강혁은 부릴 때는 정말 혹독하지만, 부리고 나서는 또 후하게 대우해 주는 인간이지 않은가.
생각보다 잔정 많고 마음 약한 사람이라는 거 정도는 이제 한구에 있는 사람이라면 거즘 다 알고 있었다.
“아예 한국 가서 제대로 해 왔죠.”
“통과가 되나?”
“그건 대사관에서 해 주겠다고 먼저 연락이 오더라고요.”
“아……. 일 잘하네, 대사님. 그래, 봉사가 다 국격 높이는 일인데……. 이런 거 신경 써 줘야지.”
그간의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인지라 강혁의 말이 딱히 갑질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한유림은 대사가 이런 일이 있으면 직접 와서 인사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있었다.
강혁과 한유림 덕에 대사가 아주 큰 공을 세운 마당 아니던가.
세상에 인구 2억짜리 나라와 경협이라니.
가뜩이나 만성적인 실업률을 자랑하는 나라라 노동력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예전과는 달리 석유를 제외하면 그 어떤 자원보다 노동 자원이 중요해진 시대에 파키스탄의 가치는 상당하다고 봐야 했다.
“아무튼, 먹자고. 잘 먹어야 때깔이 좋지. 지역 기자들뿐 아니라……. 제인이 외신 기자들 몇 명도 불렀다고 하니까 사진 많이 찍힐 거야. 힘내자고.”
“네.”
“그럼 빨리 먹읍시다.”
일행은 대사와 김영수 사장이 합작해서 이루어 낸 진수성찬을 빠르게 없애곤, 급히 내려가 외래 설비 및 버스가 설 수 있도록 마련해 둔 공간을 두루 살폈다.
워낙 커다란 행사 같은 것이 되어 놔서 그런지 시장도 와 있었다.
“음. 그래서 버스가 두 대가 온다고?”
“네. 시장님. 하나는 안과, 하나는 치과입니다.”
“인도에…… 있던?”
“인도 소유는 전혀 아닙니다. 그냥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차량이에요.”
“뭐, 그거야 나도 알고 있는데. 주민들이 알게 하면 안 되는 건 알고 있지?”
“그럼요. 저야 분쟁 있을 때도 여기 있었는데요.”
제인은 1년 전 카슈미르에서 떨어진 파키스탄 전투기를 떠올렸다.
인도에서 격추했던 것인데, 그땐 진짜 전쟁이라도 나는 줄 알았더랬다.
그나마 한구는 인도에서 꽤 떨어져 있음에도 그랬다.
“그래. 뭐 닥터 제인이라면 내 걱정 안 하지.”
“시장님은 뭐 치과 검진이나 안과 검진 생각 없으세요?”
“아……. 나 받아야지. 당뇨 있다며?”
“네. 뭐 약은 드리고 있지만, 그래도 검진받는 게 좋아요. 특히 안과는 눈 문제니까요.”
“따로 해도 괜찮겠지?”
다시 말하자면 나는 기다리기 싫으니 특혜를 달라는 뜻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불법 진료 청탁으로 걸리는 일이었고, 어지간한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장은 아마 이게 잘못이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하고 있을 터였다.
다른 지역 같았으면 이 정도가 아니라, 진료하고 싶으면 돈을 주거나 약을 주라는 말을 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 사람 정도면 말이 잘 통하는 편이지.’
제인은 그런 시장에게 원칙이니 뭐니 얘기할 생각일랑 없었다.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네, 물론이죠. 당연히 그렇게 해 드려야죠.”
“고맙네. 아, 그리고…….”
시장은 대화를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은 병원 안쪽에 환자 대기 용도로 새로 쳐 둔 천막이었다.
단기 팀이 온 기간에는 병원 안 대기실도 다 진료용으로 쓰기 위함이었는데, 지금 천막에는 죄 노인만 와 있었다.
“저분들은 그럼 언제 진료가 가능합니까?”
“원래 예정되었던 시간은 오후 2신데…….”
제인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9시.
무려 5시간을 일찍 와 있는 셈이었다.
‘하여간 요새 한국 사람들이라고 하면 다들 난리도 아니구나.’
수도에 있는 젊은이들은 BTS에 열광하고 있다고 들었더랬다.
그건 납득이 갔다.
본국에 있는 친구들도 BTS 얘기를 심심치 않게 하곤 했으니까.
오죽하면 제인의 재생 목록에도 BTS 노래가 들어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곳의 유행은 조금 달랐다.
‘이맘을 살려 주고, 채석장 사고를 비롯한 여러 사고들에서 활약하고……. 또 데니스도 대외적으론 한국인인데 정말 양심적으로……. 아니지, 퍼 준다는 느낌이 들게끔 일하고 있으니까.’
BTS의 영향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특히 지금 저기 모여 있는 노인들 중에는 아마 BTS를 아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을 터였다.
그저 강혁과 한유림, 데니스 그리고 저번에 와 주었던 단기 팀의 위력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4시 좀 넘어서 출발했다고 들었…… 아, 저기 오는 거 같은데요?”
제인은 잠시 노인을 둘러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다 다시 입을 다물었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차량 일행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층 더 건조해진 한구인지라 흙먼지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일었다.
“아, 버스라 그런지 역시 어마어마하구만.”
“네.”
그렇게 흙먼지 바람과 함께 다가온 차량은 병원 안쪽으로 하나하나 차례로 들어섰다.
“어, 이쪽! 이쪽으로! 이거 안과야, 치과야?”
“안과요!”
“그럼 더 들어와요! 동선이 그래야 잘 빠져! 이쪽은 거의 수술방 아냐?”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오케이! 이리로!”
안내에 나선 것은 강혁이었다.
장규선과의 커뮤니케이션부터 해서 단기 팀 조직 및 일정까지 거의 전반에 걸쳐 관여한 것이 그였기 때문이었다.
‘저런 거 보면 또 세심하단 말야?’
한유림은 옆에서 고성과 함께 손짓하고 있는 강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술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을 무대뽀로 처리하는 것이 바로 백강혁 아니던가.
사람 끌어들이거나 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기 팀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고 있었다.
‘이따 왜 그러는지 좀 물어봐야겠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묻고 싶지만, 그건 무리였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치과?”
“네!”
“이쪽으로. 옳지. 좀 바짝 붙여요. 입구만 막지 않게. 여기가 좀 협소해요. 환자는 많은데 아직 작아서.”
“아……. 이거 박겠는데?”
“박으면 내가 펴 줄게. 더 와요.”
“아니…….”
일단 버스들부터 제자리에 세워야 했다.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그다음은 단기 팀 환영이 있었다.
제일 먼저 다가온 것은 역시나 최지예였다.
“아이고, 학생 때랑 변한 게 없네?”
“무슨 소리세요. 그러는 교수님은 더 젊어진 거 같은데요?”
“에이, 내가 예순이 넘었는데.”
“아니에요. 진짜 그런데. 몸이 원래 이렇게 다부지셨었나?”
서울시 여성 의사회 부회장이자 이번 단기 팀의 팀장을 맡은 최지예는 한유림의 걷어 올린 소매 때문에 드러난 팔뚝을 보며 놀랐다.
한유림 하면 차 좋아하고, 학벌 따지고, 위아래 엄청 따져서 아랫사람한테는 좀 편하게 대하고 윗사람한테는 엄청 쩔쩔매는 샌님 아니었던가.
지도 학생에게는 진짜 잘해 주었기에 좋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학생 시절 한유림 하면 돌았던 소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 그건 저기 백 교수 때문에.”
한유림은 턱으로 강혁을 가리켰다.
강혁은 지금 막 버스에서 내린 마틴과 대화 중이었다.
“먼 길 고생했습니다.”
“아뇨, 마침 저희도 좀 시간이 나서요. 차 놀려서 뭐 합니까. 봉사할 수 있으면 봉사해야지. 게다가…….”
“게다가요?”
“여기 요새 엄청 잘하고 있잖아요. 노하우라도 배워 보려고 왔습니다.”
“아하.”
강혁은 다른 말보다도 배워 보려고 왔다는 말에 집중했다.
‘공짜로 배울 수는 없지.’
어차피 부려 먹으려고 하긴 했지만.
좀 더 마음 놓고 부려 먹어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병원이…… 작긴 한데, 숙소동도 최근 따로 잡았다고요?”
“아, 네.”
강혁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마틴은 그저 주변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마치 새로운 장난감이라도 받은 어린아이 같았다.
이건 비단 강혁만의 착각이나 억측은 아니었다.
실제로 마틴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현장에서 10년 넘게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이티를 제외하면 전부 인도에서 보냈기 때문이었다.
‘여긴……. 풍광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구나.’
인도에도 무슬림들이 있기는 하지만 느낌이 많이 달랐다.
분명 같은 아리안계 인종일텐 데도 그랬다.
아마도 공유하는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더 험하다고 들었는데…….’
인도도 물론 조심하지 않으면 충분히 위험할 수 있는 나라긴 했다.
하지만 이쪽처럼 본격적으로 위험해질 가능성은 적었다.
적어도 탈레반을 비롯한 이슬람 무장 단체들은 없었으니까.
‘여긴 그런 느낌이 전혀 없네.’
현장을 전전하다 보니 사람 보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오래였다.
여기서 사람이란 비단 인종이나 생김새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말투는 어떠한지 등등 아주 다양한 것을 살피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이 사람들의 정서나 분위기를 자연스레 읽을 수 있었다.
‘안전하고……. 무엇보다 밝아. 아주 좋은 곳이군.’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구 하면 일종의 기피 지역이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었을까.
마틴은 다른 이들을 안내하고 있는 닥터 제인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주 훌륭한 사람이기는 했다.
아마 국경없는의사회의 기라성 같은 긴급구호팀 팀장들을 쭉 줄 세워 놓는다고 해도 앞에 위치할 터였다.
하지만 이만한 변화를 일으킨 건 제인이 아니라 강혁이었다.
‘이 사람을 좀 따라다녀야겠어. 어차피 외과기도 하고.’
그렇게 마틴이 아주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동안 제일 먼저 들어왔던 치프에서 내린 사내 하나가 달려왔다.
하마드였다.
“닥터 백. 일단 보안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누구지?”
“그……. 하마드요.”
“하마드?”
“그…… 전에 전화 주셨던…… 그…….”
“아……. 아! 맞아. 아 왔구나. 하하. 왔어.”
강혁은 뭘 왔다고 하는 건가 하는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하마드를 보며 한 번 더 웃었다.
“잘 왔어. 잘.”
전에 한 번 겪어 보니 아주 만만한 녀석 아니었던가.
보안뿐 아니라 이거저거 좀 시켜 볼 요량이었다.
데니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