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718)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718화(718/1120)
718화 삶의 질 (4)
“하하.”
최지예는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웃음을 한동안 더 이어 나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말도 안 되는 얘기 아니던가.
세상에 외과 의사한테 백내장이냐니.
아무리 안과에서 백내장이 기본 수술 중 하나라지만, 그건 안과 의사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얘기였다.
눈의 해부학적 구조 및 기능에 대해 통달한 상태가 아닌데 기본이니 뭐니 했다가는 뺨 싸대기를 날려도 무죄란 생각도 들었다.
“음.”
그런데 반응들이 어째 좀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왜 그러세요? 제가 실언한 거 같은데.”
“아냐, 아니에요. 해 보긴 했거든요.”
“네? 해 봤다고요?”
“아……. 물론 사람한테 한 건 아니고. 돼지.”
“아……. 잉.”
사람한테 한 건 아니라는 말에 불현듯 납득하려고 했지만.
뒤에 이어지는 말이 좀 이상했다.
“돼지? 돼지한테는 왜…… 대체 왜 하신 거예요?”
애초에 외과 의사들이 백내장 수술을 어떤 대상에게라도 해 보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
게다가 그 대상이 된 게 돼지라니?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었다.
“어차피 먹을 녀석들이었기도 하고……. 그래서 했죠.”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왜 하셨냐고 묻는 거예요, 교수님.”
“아……. 언젠가 써먹을 일이 있지 않나 했죠.”
“아……. 그렇구나. 음.”
최지예는 역시 백강혁 교수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비록 자기가 수련받을 때 있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 아니던가.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뛰어나면, 또는 얼마나 이상하면 건너 건너 이미 로컬에 나와 있는 사람에게까지 들려올까 싶었는데.
이제 보니 역시는 역시였다.
‘가만있자……. 해 봤다, 이거지?’
돼지 눈알은 사람보다 훨씬 크지 않은가.
때문에 실제로 안과에서도 수술 연습하거나 할 때 돼지 눈알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최지예 또한 일 년 차 때 태화 의료원 근처 돼지 도매 시장에 가서 눈알만 사 온 기억이 있었다.
‘손이 워낙에 좋다고 듣긴 했는데. 그래도 막 시킬 수는 없어.’
하지만 시킬 수만 있다고 한다면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긴 할 터였다.
정 어려우면 전신마취로 시켜도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설비가 있는 병원이니까.
그렇게 하루 서너 건이라도 해 주면, 그래도 가져온 300개의 렌즈를 소비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거…… 이것도 진짜 어렵게 후원받긴 한 거잖아.’
원래 최지예가 생각했던 수량은 대략 50개 정도였다.
그것도 엄청난 수였다.
아마 최지예 병원이 잘되는 병원이 아니었다면 회사에서 절대 후원해 주지 않았을 양이었다.
그러던 것이 300개로 늘어난 것은 익명의 후원자 덕분이었다.
한구 병원으로 가는 단기 팀을 콕 집어서 렌즈 200개를 현찰로 계산해서 보내 준 사람이 있었다.
거기에 자극받은 회사가 50개 분량을 더 추가해 주는 바람에 300개가 되었다.
대신 다 못 쓰면 회수하겠다는 조건을 달았기에 필사적으로 다 소모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 단기 팀의 의견이었다.
“그때 녹화했던 영상이 혹시 있나요? 어느 정도 수준이신지 모르니까요.”
“아……. 있죠. 보여 드릴까요?”
“일단…… 일단은 진료하고, 점심에 볼게요.”
“아, 그게 좋겠네. 그러죠. 그럼 이 두 분은?”
“수술해야 될 거 같습니다. 오후 외래를 몇 시까지 잡아 두신 거죠?”
“원래는 6시인데 일찍 오셔서……. 3시면 마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3시 이후에 수술할 수 있도록 준비만 해 주세요. 국소마취긴 하지만 그래도 검사는 필요할 테니까요. 이 버스가 간단한 검사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네, 그렇게 전달하죠.”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자 둘을 한유림 편에 들려 보냈다.
한유림은 밖에 있던 카심에게 환자를 인계했고, 곧 요다를 중심으로 해서 수술 전 검사가 시작되었다.
애초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단기 팀 설계를 해 놓은 덕이었다.
“기다리셔야 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환자들의 대기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와서 줄 선 덕에 일찍 진료 볼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수술받으려면 또 3시까지 기다리라니.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병원 천막이라도 한번 두드려 봄 직한 얘기 아니겠는가.
하지만 노인들의 인내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오늘 안에는 되나?”
“아……. 그럼요. 3시에요, 3시.”
“그럼 됐지. 밥은 먹을 수 있나?”
“수술받아야 돼서 좀 어려워요. 괜찮아요?”
“참아야지, 뭐.”
“네, 감사합니다.”
거의 오늘 안에만 되면 다 참아 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보통 노인이 되면 참을성이 늘어나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카심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건 시장과 제인 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백내장? 이거 수술이 진짜 신기하던데.”
“영상 보여 주신 거죠?”
“응? 그럼. 애초에 저거 때문에 온 사람들이 태반인데. 닥터 제인이 보내 준 영상 보니까 나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데.”
“검사해 봐야겠지만……. 아마 시장님은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
시 차원에서 단기 팀에 진료받을 인원을 모집할 때, 백내장 및 틀니, 임플란트의 효과 및 효능에 대해 미리 영상을 보여 준 참이었다.
무턱대고 영상만 보여 줬다면 서양 문물에 대한 두려움과 적개심을 표출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제인은 영리한 사람이었다.
얼마 전 강혁이 살려 준 이맘을 적극 활용했다.
이맘도 생명의 은인에 대해서만큼은 종교를 뛰어넘은 보은을 생각하고 있었더랬다.
심지어 알아서 이런 문구까지 외쳐 주었다.
‘한구 병원에는 알라께서 보낸 천사가 거주한다!’
아마도 난폭한 천사라는 강혁의 별명을 이용한 말이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어……. 네, 그럼 기다리고 계셔요.”
“그럼, 그럼. 얼마든지 기다리지.”
덕분에 카심은 아주 수월하게 환자들을 대기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게 진료 보는 인원 거의 대부분이 백내장 환자라 대기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음에도 다들 납득을 아주아주 잘해 주었다.
“자, 이제 점심 먹고 합시다!”
해서 일행은 오전 진료를 나름 수월하게 마치고 숙소동에 모일 수 있었다.
“와.”
“이게 다 뭐야.”
그렇지 않아도 새벽 비행기를 타고 수도에 도착하고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버스에 올라 이곳까지 온 사람들 아니던가.
심지어 버스가 어디 멀리 갈 때 타라고 만든 게 아니다 보니 제대로 잠자면서 온 사람들이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순간적으로나마 힘이 난다고 느껴질 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오전 진료 보는 동안 수고한 사람이 의료진뿐만은 아니었던 것.
“이거 먹고 힘내십쇼.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영수 사장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식탁을 가리켰다.
그저 한식만 한 게 아니라 나름 파키스탄 음식이나, 가까운 인도 음식도 놓여 있었다.
강혁만 김영수 사장을 도우려고 애쓴 게 아니라, 김영수 사장 또한 강혁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와, 이거 제대로네. 야……. 그래, 인도 커리에는 소고기가 들어가야 제맛이지.”
마틴 또한 아주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난을 찢어다가 커리를 찍어 먹었다.
커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인도에서 방금 온 주제에 커리에 목말랐다는 얼굴을 한 채였다.
하지만 인도에 가 본 사람이라면 이놈이 왜 이러는지 아마 잘 알 수 있을 터였다.
정작 인도 커리에는 소고기가 들어가지 않으니까.
“와……. 커리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오전 내내 치과 진료 보느라 지친 해리 또한 감탄을 연발했다.
대체 왜 인도에서는 이런 커리를 사 주지 않았냐는 눈빛을 마틴을 향해 사정없이 쏴 대면서였다.
“이것도 드셔 봐. 갈비라는 건데. 먹다 하나 뒤져도 몰라.”
강혁은 그런 해리를 향해 LA 갈비를 하나 던져 주었다.
처음 이거 먹을 땐, LA 스타일이라 그런가 싶어서 제인에게 물었는데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해서 여전히 이게 대체 어디서 어떻게 유래한 이름인지는 강혁도 알지 못했다.
다만 한국 음식이겠거니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오……. 이게, 오? 소고기를 이렇게도 먹는군요?”
“잘 먹네? 그럼 이것도 먹어 봐.”
“이건……. 이건 게인가요?”
“어. 외국인들한테는 좀 도전 과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저기 봐라, 저저. 손님 있는데 게걸스럽게…….”
강혁은 밥도둑이라 불리는 게장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한유림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사실 한유림보다는 옆에 있는 리처드나 데니스가 더 어이가 없었다.
쟤들은 미국인인데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정말이지 품위 없어 보이는 장면이었지만, 해리에게는 도리어 입맛을 돋우는, 일종의 먹방처럼 작용한 모양이었다.
“저도 먹어 보겠습니다.”
“응? 와…….”
해리는 미식가의 지옥이라는 영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답게 뭐든지 잘 먹었다.
게장뿐 아니라 젓갈도 잘 먹었다.
음식을 차린 입장에서 또 그 음식을 차리게 도와준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보다 보기 좋은 것도 없는 법 아니겠는가.
“잘 먹네.”
“저, 교수님?”
해서 기분 좋게 웃고 있으려니, 최지예가 말을 걸어왔다.
“응? 아, 아아.”
그제야 강혁은 최지예와 약속한 것이 있었단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다행한 것은 강혁이 의술에 관련한 자료 수집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녹화 파일을 싹 정리해서 가지고 있었는데, 백내장 수술 영상도 바로 검색해서 추려 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외장 하드가 몇 개예요?”
“아……. 이거요? 뭐, 열 개는 되나? 나머지는 딴 데 있어요.”
“아…….”
최지예도 태화에 있던 몸이라 제법 많은 자료를 보아 온 바 있었지만, 이 정도 되는 양은 처음 보는 참이었다.
해서 감탄하고 있으려니까 어느새 뒤따라와 있던 한유림이 입을 비죽거렸다.
최지예는 자신이 너무 백 교수에게만 신경을 써서 그러시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섭섭함의 대상은 강혁이었다.
“백 교수, 왜 지예한테는 존대해? 나한테는 반말 존대 섞잖아?”
“응? 아니, 지금 바빠 죽겠는데 와서 그런 말이나 해요? 입에 게장이나 닦아.”
“이봐, 이봐. 지금도 그래.”
“최 원장님은 사비 털어서 단기 팀으로 오셨잖아. 반말 찍찍하면 좋겠어?”
“계속 이러네? 일부러 이러나? 균형 맞추는 거야? 반말 존댓말?”
“아, 몰라요. 비켜.”
“와…… 이 새끼 이거 일부러…….”
강혁은 여전히 입가에 간장을 묻힌 채 투덜거리고 있는 한유림을 엉덩이로 툭 하고 밀고는 파일을 재생시켰다.
‘리처드 돼지 백내장 1’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음.”
“개판이네.”
“안 되겠는데요?”
“바로 마지막으로 가죠. 처음에는 뭐 눈알을 작살 내 놨네.”
다음은 ‘리처드 돼지 백내장 7’이었다.
이건 한결 나았지만, 그래도 바로 투입되는 건 무리였다.
“음……. 보조는 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보조하다 보면 배울 수도 있을 거 같지만……. 시간이 안 될 거 같아요.”
“한유림을 볼까요? 근데 이게 도긴개긴인데.”
“음……. 네, 그렇긴 하네요.”
최지예는 미안한 얼굴로 한유림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괜히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그는 게장에 다시 빠져 있었다.
‘원래 저랬나?’
그래도 중후한 멋이 좀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몸만 중후해졌지,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 같았다.
“아, 이건……. 이건 교수님이 하신 거네요?”
“눈알 남길래, 그냥 연습하는 김에 했죠.”
“이걸 볼까요?”
“음, 네. 뭐. 그러죠.”
최지예는 방금 본 두 외과 의사도 상당히 명망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마틴이 잠시 깨 있는 동안 설명해 준 덕이었는데, 해서 강혁에 대해서도 그리 큰 기대를 갖진 못했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분야가 다르면 한계가 있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후 최지예는 말문이 턱 막힐 수밖에 없었다.
‘후배보다 낫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