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74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742화(742/1120)
742화 괌 그리고 (2)
“우리 비행기 괌 국제공항, 앤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에 곧 착륙합니다. 기체가 흔들릴 수 있으니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차고 계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읽는 소리에 한유림은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을 완전히 떴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먹다 남은 캐비어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것만 먹었냐고 한다면 절대로 아니올시다였다.
‘사육당했군…….’
자리가 어찌나 좋은지 작은 원룸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오버라고 생각한다면 한번 데려오고도 싶었다.
좌석이 아니라 따로 침대가 있을 줄이야.
물론 비행 시간이 좀 애매해서 잠을 청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누워서 뒹굴거리며, 무려 와이파이가 되는 스마트폰질을 하며 올 수 있었더랬다.
‘어우 배불러…….’
밥은 또 어찌나 잘 나오던지.
기내식이 코스로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배운 참이었다.
특히 중간에 나온 양고기 볶음밥인지 뭔지는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았다.
백강혁도 그렇겠지 하고 몰래 엿봤는데, 역시나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앞에서나 이런 서비스가 익숙한 척하지, 실은 지도 처음인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뻔히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데 그렇게 있는 척을 하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한국대학교 병원에 오기 전에야 뭐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그 이후로는 그야말로 고생 아니, 개고생만 해 온 인생이었다.
남들 같았으면야 몰래 어디 가서 호강한 거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겠지만.
상대가 백강혁 아닌가.
저 인간은 그럴 시간 있으면 수술이나 하나 더 할 위인이었다.
지금 이렇게 대놓고 휴가를 간다는 게 믿기지 않은 일이다, 이 말이었다.
‘가만…….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왜 저놈이 돈을 다 대 가면서……. 여행을 가자고 했을까?
핑계는 좋았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가서 좀 즐기라는 말을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실제로 한유림은 정말 고생 많이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가, 강혁의 말이 어찌나 달콤했는지 몰랐다.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라는 말은 아마 그럴 때 써야 될 거 같았다.
‘악마는 아름다운 말로 다가온다는데…….’
그런데 막상 괌에 내릴 때가 되니 출처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아마 강혁이 한유림의 이런 변화를 보았다면, 본능이라고 말해 주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한유림은 아직도 순진한 사람이었다.
‘비행기가 좀 흔들려서 그런가……. 놀러 왔는데 뭔 걱정이냐. 대체. 여기서 수술할 것도 아닐 텐데.’
근거도 확실하게 있지 않은가.
괌은 일단 미국이었고, 심지어 괌 북부에는 상당히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강박에 가까운 나라이니만큼 우수한 병원 또한 당연히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인 고 하면 연수를 원하면 충분히 갈 만한 병원일 지경이었다.
미 본토에서 수련받은 의사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심지어 주기적으로 로테이션까지 하고 있었다.
즉 괌에서 봉사할 일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았다.
드드드드드.
한유림이 억지로 불안감을 털어 내는 동안 비행기는 천천히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비행기가 고급인 것과는 별개로 착륙은 그리 조용하지 못했다.
“내가 더 잘하겠네.”
아니나 다를까 옆 방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남들 같으면 개소리라고 치부하겠지만 상대가 강혁이다 보니 그러기도 어려웠다.
어쩐지 저놈이라면 정말 기장보다 운전을 잘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못 하는 게 없는 게 아니라, 뭐든지 잘하는 놈이었으니까.
“자, 갑시다.”
덜컹거리긴 했지만.
아무튼 간에 안전한 착륙이었다.
강혁과 한유림은 일등석이었기에 남들보다 훨씬 먼저 내려서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어. 야……. 근데 정말 너무 좋네. 이제 이코노미 어떻게 타나…….”
“지금까지 잘만 타고 다녔으면서 뭘.”
“지금까지는 이렇게 좋은 좌석이 있는지 몰랐으니까 그렇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이 무슨 철없는 소린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원래 한번 어떤 선을 넘어가 버린 소비행태는 되돌아오기가 어려운 법이었다.
경제학적으로 톱니바퀴 효과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거꾸로는 돌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소비 또한 한번 늘면 다시 줄이기란 엄청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렇겠지. 당연히 그렇지.’
정확히 강혁이 노린 바이기도 했다.
아주 경제 쪽으로 밝은 사람이라고 보긴 어려워도, 의사 중에서는 머리가 깬 사람이지 않은가.
특히 나쁜 쪽으로 굴릴 때만큼은 세상에 다시 없을 천재 수준이었다.
“내가 이따금씩 태워 드릴게.”
해서 강혁은 비열함을 감춘 채 착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누구라도 속을 미소였기에 그 미소를 접한 공항 직원마저 즐거운 여행 되시라고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을 지경이었다.
불친절하기로 소문난 미 공공기관 직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저 놀라운 일이었다.
미소의 위력은 한유림에게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오……. 정말?
“그렇다니까. 그렇게 해 줄게. 옆에만 있으라니까. 나 돈 많아.”
“오…….”
한유림은 아까 착륙 즈음에 들었던 불안감은 다 잊은 채 그저 웃기만 했다.
“아, 교수님!”
“아빠!”
그렇게 짐을 찾고 밖으로 나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모두 파키스탄에서도 본 얼굴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반가움이 희석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원래 좋은 사람들은 맨날 봐도 아쉽지 않던가.
특히 강혁과 홀로 남아 분투하고 있는 한유림에게는 그립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어, 지영아! 양 선생. 박 선생……. 오, 우리 수간호사님.”
한유림은 짐을 내팽개쳐 둔 채 앞으로 달려나가 지영부터 얼싸안고는 나머지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몸종이지, 아주.”
강혁은 그 짐까지 챙긴 다음에야 일행 앞에 섰다.
아주 괌에 놀러 온다고 티를 팡팡 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죄다 꽃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관광객으로만 보일 게 뻔했다.
여기서 지영을 제외한 5명이 대한민국 중증외상 의료 체계를 바꾼 장본인들이라는 걸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이제 뭐……. 슬슬 다른 데도 신경 쓸 때 되지 않았나?’
강혁은 그 다섯을 보며 최근 한국에 잇따르고 있는 보도를 떠올렸다.
이미 강혁이 키운 제자들뿐 아니라 재원이 키운 제자들의 수준 또한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원래 대한민국 사람들이 손재주도 좋고 또 꼼꼼하고 똑똑하지 않던가.
판만 깔아 주면 세상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들이라 이건데, 역시나 중증외상센터에서도 같았다.
인프라가 깔리고, 교수 자리를 보장해 주는 동시에 다른 인력들까지 충원해 주자, 여기저기서 센터들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대체가 가능해졌잖아?’
그 말은 곧 이 인원들이 잠시 뒤로 빠져도 된다는 뜻이었다.
얼마 전 강혁이 그랬던 것처럼.
“자자, 반가운 건 알겠는데……. 일단 호텔로 가자. 짐 풀고 얘기하자고.”
물론 강혁은 그런 말을 덥석 던지지 않았다.
대신 웃으면서 일행을 밖으로 끌었다.
“아, 네. 교수님!”
“그럴까요? 와 호텔도 엄청 좋은 곳 같던데!”
“그러니까 말야. 백 교수가 원래 화통한 면이 있잖아.”
한유림, 양재원, 박경원은 그런 강혁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못했다.
재원, 경원이야 한동안 떨어져 지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한유림마저 그런 것은 한심한 일이었다.
백강혁의 됨됨이를 아직도 잘 모른다는 얘기가 되지 않던가.
‘화통이라…….’
오직 장미만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장미 또한 괌으로 가는 일등석과 스위트에 혹해서 오기는 했지만.
숨은 동기가 있을 거라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던 것.
“와 있을 텐데.”
강혁은 그런 일행을 끌고 공항 밖으로 향했다.
딱 나가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그들을 반겼는데, 서울의 찬 바람을 맞기 시작했던 이들에게는 그저 좋을 뿐이었다.
“저깄네.”
강혁이 손가락질을 하자 곧 대기 중이던 커다란 버스 한 대가 일행을 향해 왔다.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일행만을 위해 호텔에서 보내 준 버스였다.
전원 스위트 아니면 빌라 객실에서 묵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 정도 서비스는 당연한 일이었다.
“와, 좌석 좋은 거 봐라.”
“계속 일등석 같네.”
물론 돈 내는 사람에게만 당연한 일일 뿐 나머지에게는 놀라운 일일 따름이었다.
강혁은 물론이고 기사나 안내를 맡은 직원이 민망할 정도로 다들 좋아했다.
돈이야 어지간히 벌기야 하겠지만 그걸 즐길 시간은 없던 애들 아니던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 바로 앞에 있는 강남역도 못 나가던 사람들이 괌까지 왔으니 이 정도는 호들갑도 아니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해외여행도 아니고 호화스러운 여행이었다.
다들 눈이 돌아가 있었고, 객실에 이르러서는 더 돌아가 버렸다.
“미쳤다. 호텔 안에 빌라가 있네.”
지영과 장미는 둘이 빌라 하나를 배정받았다.
“이게 스위트 룸이란 것이로군.”
“전망 봐라……. 와…….”
“아니 방 안에 거실이 따로 있네?”
“이거……. 신발 벗나? 어떻게 해야 돼.”
재원과 경원은 이그제큐티브 스위트 룸을 배정받았고.
“좋죠? 자쿠지가 있어.”
“아니……. 어떻게 이런……. 이런 숙소가 있을 수 있지.”
강혁과 한유림 또한 빌라에 묵게 되었다.
하룻밤에 무려 200만 원을 호가하는 객실이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서비스 또한 극진했다.
조금 과할 지경이었는데, 침대 위에는 홍학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축하한다는 문구가 적혀진 케이크가 있었고.
애초에 신혼여행을 제외하고는 찾는 사람이 없는 객실이다 보니 환영 인사가 이런 모양이었다.
“사랑하라는데.”
“이런 미친.”
그렇다고 한유림이나 강혁이 좋아할 만한 서비스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짐을 풀고 방 구경을 마친 일행은 강혁이 예약해 둔 서비스를 하나하나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이와 그동안의 격무를 고려한 일정이었다.
오전에 해양 레저를 했으면 오후에는 거의 무조건 스파였다.
그 사이사이 먹는 음식도 세심하게 배려한 편이었다.
워낙 기름지고 짠 음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괌에서 강혁은 용케 파인 레스토랑을 찾아 삼시 세끼를 아주 잘 먹였다.
떠나기 전전날 밤도 그랬다.
“아……. 낼모레면 떠나야 하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어찌나 잘 놀고먹었는지 한유림은 인상마저 후덕하게 변해있었다.
“아쉬워요?”
강혁은 세상에서 제일 아쉽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한유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미 경계심은 풀어질 대로 풀어진 마당인지라 한유림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런 데서 살고 싶다 정말.”
“니들도 그러냐? 휴양지가 그렇게 좋아?”
강혁은 십분 이해한다는 얼굴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경원이나 재원이라고 한유림보다 상황 파악 능력이 낫지는 않았기에 역시나 급하게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러니까요. 날씨도 좋고. 바다 이쁘고. 음식도 맛있고……. 휴양지에서 살고 싶어요.”
“평생?”
“당연하죠. 이런 인생이 어딨겠어요.”
“으음, 그렇다 이거지.”
강혁은 이제야 비로소 만족했다는 얼굴로 허허 웃었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전에 없이 진중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다들 소원 들어줘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