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76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762화(762/1120)
762화 파견 (3)
한스의 도저히 못 들어 주겠는 강혁에 대한 자랑을 참고 견디다 보니 어느새 한구 병원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게 병원인지 뭔지 모르겠는 삭막한 건물들이었으나.
강혁이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돈으로 겉면에 페인트칠을 해 놓은 참이었다.
당시 제인은 그보다는 좀 더 유용한 곳에 돈을 쓰고자 했으나, 강혁으로서는 드물게 제인의 의견에 반하는 말을 했었다.
‘누가 봐도 병원 같아야 더 오지 않을까? 그렇잖아. 아플 때……. 병원 표시가 보이면 저도 모르게 거기로 가게 된다고.’
말을 듣고 보니까 또 그렇기는 해서 제인도 허락을 해 주었고, 그 덕에 한구 병원은 제법 병원 태가 나는 병원이 될 수 있었다.
“후.”
복잡한 연유로 탈바꿈한 병원을 본 마르크 대위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겨우 한스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를 담아서였다.
한편으로는 한창 작전 도중 시답잖은 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한심함 또한 담겨 있었다.
“자, 오늘은 늦었으니 숙소동에서 내려 주지.”
한스는 그런 마르크를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돌아보며 숙소동 쪽을 가리켰다.
감히 백강혁 교수를 만나러 온 마당에 저따위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딱히 지적을 하진 않았다.
어차피 어떤 표정을 하고 왔건 간에 백강혁을 한번 만나고 나면 정신 못 차리게 되어 있지 않던가.
‘혹시 도망이라도 가면 그게 문제지, 오히려.’
간혹 강혁이 직접 조련에 나서기 전에 다른 놈들이 먼저 입방정을 떠는 경우가 있었다.
일전에 대사관에서 파견 온 바 있는 샘이란 친구가 그랬다.
리처드인지 나발인지 하는 영 못 미더운 신임 소령이 어찌나 강혁에 대해 오해할 수 있는 말을 해 놨는지, 정말 벌벌 떨면서 도망쳐 나왔더랬다.
‘그거야 내가 잡으면 될 일이고.’
하지만 강혁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혹 그런 일이 있을까 봐 한스에게 미리 명을 내려놓지 않았던가.
오늘은 좀 바쁜지 그런 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놓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벌써 한구에서 밖으로 향하는 주요 도로엔 한스의 입김이 닿는 부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설마하니 군인이 명령에 반하는 선택을 할 거 같진 않았지만.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 말이었다.
“여기군요.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에 반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 마르크는 차에서 내린 채 숙소동을 올려다보았다.
고작해야 3층 높이밖에 안 되는 건물이었기에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힐 필요도 없었다.
‘허름한데……. 그래도 깨끗하네.’
마르크는 처음 시리아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불과 십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행자들의 성지라 불리던 알레포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파키스탄도 이름이 비슷한 느낌이라 그냥 그럴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도시도 썩 분위기가 좋았고, 무엇보다 숙소동은 아주 잘 관리가 되어 있었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어. 백강혁 교수님이 오고 나서 이렇게 된 거지.”
한스는 마르크의 애매한 칭찬이 있자마자 바로 훅 치고 들어왔다.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지만, 한스가 소령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있던 덕에 욕설이 튀어 나가진 않았다.
“아, 한스. 이분이…… 파견된 분인가요?”
그렇게 잠시 인내하고 있으려니 숙소동 안쪽에서 몇몇이 나타났다.
인종이 굉장히 다양해서 순간 죄 미군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원래도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미국이지만, 미군은 그보다 더 정도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처럼 시민권을 원하는 이민자들은 몇 년간의 수고와 심지어 목숨에 대한 위험까지도 기꺼이 감수했다.
“네. 마르크입니다. 인사하지. 이쪽은 닥터 제인. 한구 병원의 팀장이셔.”
“아, 네. 안녕하십니까, 마르크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르크는 그중 맨 앞에선 제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다음은 리처드, 카심, 미유키, 장규선, 댄 순서였다.
‘이상한데?’
어디에도 강혁은 없었다.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눈치 빠른 제인이 나섰다.
“아……. 백강혁 교수님은 오늘 페샤와르에서 수술 관련 요청이 있어서 그쪽으로 갔습니다. 케이스가 꽤 복잡한 모양이에요. 아직도 안 오시는 것을 보면.”
“그렇군요. 주말인데도 파견을 갑니까?”
“흔한 일은 아닌데……. 간혹 이럴 때도 있습니다.”
“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페샤와르라는 지명을 떠올렸다.
파키스탄 북부에 위치한 페샤와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과 하이웨이로 연결되어 있었다.
엄연히 나라는 다르긴 했지만 아무래도 파키스탄 중부에 비하면 강성 무슬림들이 많은 지역이기도 해서 파키스탄으로 오기 전 주의하라는 지침까지 받은 바 있었다.
‘뭐……. 한국인이라면 우리와 같은 이유로 위험할 일은 없겠지.’
다만 동양인은 무슬림들에게 그리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특히 최근 k-pop 열풍을 타고 있는 이곳 중앙아시아 부근에서 한국인의 위력은 대단했다.
“자, 안으로 들어가죠. 일단 안내도 좀 받아야 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제인 바로 옆에 서 있던 사내가 살가운 얼굴로 다가와 마르크를 안으로 잡아끌었다.
최근 강혁의 수제자를 자처하고 있는 리처드였다.
이미 스리랑카행마저 확정된 지 오래인 그는 오직 파견 올 군의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지…….’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리처드라고 해서 맨날 당하고만 살겠는가.
계급도 실력도 아래인 놈들이 와야 좀 숨을 쉴 거 같았다.
“아, 네.”
물론 마르크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계급이야 뭐 어떨지 몰라도, 실력이 처져?
백강혁만 해도 소문이 사실일지 아닐지 모르겠는데 그 밑에 있는 사람보다 처져?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마르크가 받은 수련 또한 만만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1층에 여기는 교육관이에요. 뭐 주로 산모 교육을 하는데……. 우리도 다쳤을 때 소독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일반적인 외과적 상식에 대해 교육을 해요.”
“아…….”
“데니…… 아니, 박창수 사장은 영어랑 한글도 가르치는데 그렇게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이 제법 있어요. 그 사람들이 보내 주는 돈이 여기 기준으로는 꽤 커서……. 오다 봤는지 모르겠는데 건물 새로 짓는 곳이 많죠?”
“아, 네. 봤습니다.”
“그거 다 그쪽에서 보내 준 돈으로 집 새로 짓고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점점 더 한국어나 영어 배우려고 사람들이 몰리지.”
리처드가 보기에 데니스는 진짜 대단한 놈이었다.
그렇게 교육을 시켜서 외국으로 보낼 때도 적지만 어찌 되었건 돈을 받지 않는가.
게다가 그들이 외국에서 일한 돈을 보내와 새로 집을 짓게 되면, 그 건축 또한 데니스가 소유한 회사에서 도맡았다.
뭐가 어찌 되었건 이곳 한구에서 도는 돈 대부분이 데니스의 손을 거쳐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으음, 그렇군요.”
물론 마르크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비참한 고향에서 태어나 그 고향을 되살리는 대신, 미국인이 되는 길을 택한 사람 아닌가.
이름도 낯선 산간벽지가 빠르게 개선되어 있다는 소식은 그에게 별반 위로가 되지 못했다.
“여기는 2층. 원래는 비어 있다가 이제는 숙소로 쓰이고 있어요. 이 중 방 하나를 쓰시면 돼요.”
“아……. 그럼 여기는 제가 혼자 쓰는 겁니까?”
“지금은요. 한구 병원 팀원들은 다 위에 있어요.”
“그렇군요.”
아까의 말보다는 오히려 이게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 좋은 시설은 아니지만 혼자 쓸 수 있다니.
이건 정말이지 좋은 일 아닐까?
해서 씨익 웃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벨이 울렸다.
리처드의 핸드폰이었다.
“음, 리처드입니다.”
“네, 리처드. 장이에요. 환자가 온다고 해서요.”
“환자?”
“네. 건설 현장에서 쌓아 놓은 축대가 무너진 모양이에요. 인부 하나가 깔려서 지금 바로 이리로 온다고 합니다. 다행히 트럭이 있다고 해서요.”
“아니, 왜 지금 공사를 해? 깜깜한데.”
“그야…… 알 수 없죠.”
“하긴.”
리처드는 즉시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우선 발걸음부터 옮겼다.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것을 읽어 낸 마르크 또한 짐만 내려놓고 리처드를 따랐다.
‘아까…… 백강혁은 없다고 했지.’
그 말은 즉 외과 의사라고는 지금 눈앞에 있는 리처드라는 인간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인상도 그렇고 착해 보이긴 하는데 도저히 일을 잘할 거 같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이런 데 처박혔겠냐.’
같은 미군이라고 해서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위에서 정보 공유를 차단한다고 봐야 했다.
특히 한구 병원과 같이 중요한 곳일수록 더했다.
괜히 어디 잘못된 곳으로 알려지게 되면 타격이 있을 수 있었다.
덕분에 마르크는 리처드에 대해 심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근데 얼마나 다친 거지? 축대라고 하니까……. 나는 영 감이 안 와서.”
“저도 사실 건설 현장은 잘 모릅니다만……. 아무튼, 사람 하나를 깔아뭉갤 만큼 높게 쌓아 놨었나 봐요. 적지 않게 다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군……. 알았어. 그럼 바로 갈게.”
“네. 혹시 모르니 수술방도 열어 달라고 할까요?”
“그건 내가 연락할게. 마침 저 뒤에 있어서.”
“아, 네. 그럼 저는 여기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오케이.”
리처드는 마르크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전화를 끊고는 마르크와 같은 이유로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던 댄과 카심을 돌아보았다.
미유키와 제인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딘가에서 먼저 부른 모양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산모라면 얼마든지 있으니 당연했다.
“수술 필요할 수도 있겠는데. 방 좀 열어 줘요.”
“아……. 네. 어떤 종류?”
“다발성 외상. 아마도 골절이 있을 거 같고……. 심한 경우엔 열어야겠지.”
“어디를요?”
“그건 현장에서 제대로 된 보고가 안 와서 모르겠어.”
아마 대한민국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었다면 애초에 집도의에게 연락이 갈 때쯤이면 현장 요원들이 초기 처치를 마친 후였을 터였다.
그 말은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 의식은 있는지 없는지, 원래 앓고 있는 병은 무엇인지 등 치료 계획에 필요한 정보를 죄 얻을 수 있다는 뜻.
하지만 이곳에서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사치였다.
제아무리 한구 도시 재정이 좋아지고 있다고 해도, 인프라가 개선되기엔 무리였다.
“알겠습니다.”
“네.”
해서 댄과 카심은 별다른 말을 덧붙이는 대신 수술실로 향했다.
리처드는 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마르크를 불렀다.
“일단 같이 가죠? 상태 봐서 같이해야 하면 수술해야죠.”
“아……. 네.”
“첫날부터 이런 일이 터져서 좀 그렇긴 한데. 원래 좀 이래요. 여기가 권역 응급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니……. 아마 계시는 동안 꽤 바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근데 정말 환자 상태는 어디에 깔렸다, 이 정도만 파악하신 게 맞습니까?”
“응? 아, 뭐……. 여긴 현장 요원이 없어서요. 아쉬운 일인데, 어쩌겠어요. 오면 그때그때 파악해서 치료해야지.”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