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766)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766화(766/1120)
766화 리처드! (1)
“아, 잘 놀았네.”
강혁은 아까 한껏 씹었던 양고기를 떠올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한유림도 츠요시도 샘도 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끼들.’
처음에 양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지었던 표정을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냄새 나는 걸 어떻게 먹냐는 둥 해가면서 아주 지랄발광을 했더랬다.
그중에서도 제일 이상한 건 역시나 샘이었다.
그래도 파키스탄에 파견된 지 1, 2년은 된 녀석 아닌가?
그럼 이 지방에서 제일 흔하게 먹는 고기는 먹어 봤어야 할 거 같은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으아, 안…… 안 먹는다고요! 난 소 말고는…… 돼지랑 닭만 먹어요!’
생각해 보니 미군이었던 데다가, 이후엔 대사관에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거 같긴 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보급이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 아닌가.
정신력이니 뭐니 운운하기 전에 밥부터 먹이고 본다 이 얘기였다.
아마 굳이 원하는 사람 아니고서는 그 어떤 오지를 가도 현지식을 먹을 일은 없었을 거라고 봐야 했다.
“맛있지?”
“네? 아, 네. 와……. 저는 그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이에요.”
그게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굉장히 많겠지만.
어떻게 보면 또 다양한 경험을 제한하는 면으로 작용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뭐……. 미국인들은 평생 미국 여행이나 다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미국인의 해외여행 경험 비율이 대한민국보다 훨씬 낫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
어찌 보면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로서 관용의 대명사를 자처하는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 대한 배타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양고기도 잘하는 곳에서 먹으면 끝내준다니까. 원래 현지에서는 현지식이 제일 맛있는 법이지.”
“어……. 저도 진짜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한구 돌아가면 좀 열심히 먹어 볼라고요.”
“그래, 인마. 나 따라다니니까 새롭게 배우는 게 많지?”
“어…….”
“뭐.”
“아뇨. 아뇨. 감사…… 감사하죠.”
예전의 샘이었다면 앞에서 괜히 입바른 소리 더 하다가 혼났을 텐데.
이제는 아니었다.
강혁을 상대할 때만큼은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게 낫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시발.’
대신 속으로 이 말만 되뇌면 마음이 훨씬 나아졌다.
‘고맙다……. 리처드.’
약쟁이인 줄 알았던 리처드가 실제로 약이나 해 볼 생각으로 찾아간 샘에게 알려 준 마법 같은 단어였다.
당시 삶이 피폐해져 있던 샘은 이 새끼가 미쳤나 싶었으나.
몇 번 단어를 되뇌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게 어쩌면 우리 미국에 만연한 마약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되지 않을까?’
삶이 엿 같을 땐 약 대신 찰진 한국 욕을 해 보세요.
샘은 혹 이번에 이 파견이 끝나고 대사관 일도 끝나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이런 사업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따르릉.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누구의 개인 핸드폰도 아니었다.
그저 앰뷸런스에 설치된 전화기였다.
“잉.”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나 강혁이었다.
철든 후의 인생 대부분을 외과 의사로 살아온 그는 늘상 응급과 가까이 있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장 전화기를 집어 들진 않았다.
순간 납득이 잘 가지 않았기에 그랬다.
“환자 떴나?”
한유림 또한 손을 뻗는 대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처드 있을 텐데?”
그의 말에 강혁이 대꾸했다.
여전히 전화는 받지 않은 채였다.
“그러니까. 리처드 이제 어지간한 응급에는 대응 가능하잖아.”
“더블인가?”
“아, 더블? 음. 그럼 뭐……. 가능하겠네. 아직 리처드는 몸을 두 쪽으로 나누진 못하니까.”
이렇게 말하면 누군 두 쪽으로 나눌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한유림은 강혁이라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믿고 있었다.
실제로 수술 시간이 남들 절반이 채 안 되다 보니 다른 상황이라면 더블이 될 경우에도 혼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대응하고 있지 않은가.
하여간 강혁은 더블이라는 말을 꺼내고 나서야 전화가 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백강혁입니다.”
해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이는 장이었다.
“아, 네. 교수님! 환자가…….”
“어, 환자겠지. 이 전화에 뭐 사적으로 통화하겠어.”
앰뷸런스에 달린 전화기로 사적인 통화를 하려고 든다면 그건 좀 문제 있는 일 아닐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강혁은 저 멀리 인도나 두바이 근처에 있을 정신과 의사를 불러들일 용의도 있었다.
“어떤 환자야. 지금 왔나? 아니면 오고 있나?”
“아. 왔습니다. 온 지는 한참 됐어요. 쌓아 놓은 벽돌이 무너지면서 다친 환잔데……. 한참 됐습니다. 거의 2시간? 3시간?”
“한참……?”
“네. 지금 수술 중이에요.”
“수술……?”
대화를 하다 보니 강혁은 뭐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혁의 묘하게 끝을 말아 올리는 말투를 들은 데니스는 그저 말없이 속도를 높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갈림길에서 한구 로드로 접어든 마당 아닌가.
여기서부터는 조금만 과속한다면 20분이면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로 사정이 허락한다는 전제하에 그렇단 얘긴데, 다행히 아직 주말에 통행량은 극도로 적은 편이었다.
도시가 개발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사람들이 막 어디 놀러 갈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진 못한 탓이었다.
“네. 수술 중인데…….”
“리처드가 집도하고 있는데 뭔 문제지?”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출혈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 출혈 부위를 못 찾았고요.”
“아니, 이런 병신이.”
장은 강혁의 욕설을 들으면서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남의 나라 와서 주말까지 반납해 가면 수술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욕이라니.
게다가 리처드 정도면 꽤 훌륭한 외과 의사 아니던가.
장이야 봉사하다가 더 봉사를 잘하려고 응급구조사를 딴 사람인지라 진짜 병원에서 일한 경험이 적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을 종합해 보면 이곳 한구 병원의 의사들은 죄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 아무튼, 지금 도움이 좀 필요한가 본데……. 어디쯤이세요?”
“잠만.”
강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도로를 바라보았다.
대한민국의 도로들처럼 표지판이 많지는 않았다.
그저 허허벌판, 그리고 저 멀리 북쪽으로 위치한 칼날 같은 산맥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10분. 10분이면 가.”
“아……. 네. 그렇게 알리겠습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처음에는 강혁의 예민한 눈에도 그저 그렇게 보였더랬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나 싶더니만 이제는 대강 여기가 어딘지 정도는 파악이 가능해졌다.
“10분이요?”
강혁이 그럴 수 있다는 건 데니스가 제일 잘 알았다.
간혹 커피 농장으로 갈 때, 현장 노동자들 검진을 위해 강혁이 동행하기도 했기에 그랬다.
다른 의료진이 탄 날이야 말없이 달렸지만, 강혁이 탄 날은 달랐다.
적어도 여기가 어디고, 얼마나 더 가야 되는지 물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강혁은 기가 막히게 정확한 답을 내어주었더랬다.
오늘과는 달리.
“어, 10분.”
“이 속도로 달리면 20분은 걸릴 텐데요?”
“알아.”
“잉?”
“밟아, 새꺄.”
“아.”
해서 왜 그랬냐고 물어봤는데 바로 답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어디에 언제까지 가는가 하는 질문에 중요한 게 반드시 거리뿐만은 아니지 않은가.
속도가 있었다.
그리고 속도는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했다.
“빨랑 밟아. 안 그럼 환자 죽어.”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데요?”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음.”
세상에 뭐 이런 개 같은 답이 다 있단 말인가.
데니스는 실로 오랜만에 억눌러 놓았던 요원으로서의 살의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뭐.”
“아뇨.”
하지만 결국엔 다시 억눌러 담아야만 했다.
일단 한 가지 이유는 아까 아니, 이번 주 강혁이 베풀어 준 은혜를 떠올려서였고.
또 다른 하나는 강혁 또한 오랜만에 살의를 드러내서였다.
‘죽는다……. 진짜 죽어.’
이쪽에 권총이라도 있으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절대 무리였다.
거의 맨몸으로 호랑이랑 싸우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봐야 했다.
‘리처드 실력에…… 수술을 하다 말고 다른 사람을 부른다라.’
데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가며 앰블런스 속도의 한계점을 시험하기 시작했을 무렵, 강혁은 머릿속으로 환자의 상태를 떠올렸다.
리처드를 앞에서야 대놓고 갈구고 있긴 하지만.
강혁이 생각했을 때 현시점 리처드의 실력을 넘어설 만한 외과 의사는 많지 않았다.
강혁이 인맥이 좁아서 떠올릴 수 있는 의사가 적어서는 아니었다.
다들 알다시피 강혁은 상당히 많은 제자를 키워 낸 인물이었다.
‘지금은 4호, 5호도 간당간당할걸?’
양재원이나 이강행이라면야 근소하게나마 우위를 점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 밑으로는 조금 미심쩍었다.
그 밑이라고 하는 4호, 5호조차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을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리처드의 실력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었다.
‘그 말은……. 상황이 어려움을 만들었다고 봐야겠지?’
리처드가 살리지 못하는 환자는 아쉽지만 현대 의학의 한계점에 가까운 환자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런 환자는 그렇게 흔하게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생각보다 현대 의학은 아주 다양한 영역에서 이전의 한계점을 빠르게 돌파해 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현대 의학보다는 한구 병원의 한계 때문에 방해를 받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관점일 터였다.
‘피가 모자라나? 아니면……. 심장이 멈췄나? 벽돌이라면……. 이런 제기랄. 하필 그런 거에 깔리고 그래, 예상도 안 되게시리.’
차량 추돌이면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치였느냐에 따라 어딜 다쳤을 것인지 예측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벽돌에 깔린 환자는 그게 안 됐다.
솔직히 말하면 머리가 문제인지 아니면 배 또는 가슴이 문제일지조차 가늠이 안 될 지경이었다.
“야, 밟고 있어?”
답답해진 강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다.
바로 데니스 갈구기였다.
데니스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이미 이 커다란 차로 140을 넘게 달리고 있는데 더 밟으라고?
“밟고 있죠, 그럼!”
“왜 화를 내?”
“먼저 화를 내니까!”
“나는 너한테 내는 게 아니라, 환자 걱정돼서 화가 난 건데?”
“와, 씨 이걸 또 이렇게…… 나만 쓰레기를 만드네.”
“오,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는데. 알아서 쓰레기가 되네, 또.”
“이런 시바…….”
우거지 죽상이 된 데니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미지의 환자 때문에 굳어졌던 승모근도 풀어졌다.
‘하긴 벌써 힘 뺄 필요는 없지. 어차피……. 환자는 눈앞에 놓고 나서야 치료할 수 있으니까……. 일단은…….’
동시에 지금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야, 니들 종교 있냐?”
“네?”
“있으면 다들 기도해라. 리처드가 살릴 수 있게.”
“아…….”
“아니다, 살릴 수야 없겠지. 신한테도 무리한 부탁이야, 그런 건. 그냥 내가 갈 때까지만 살려 두라고 기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