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81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814화(814/1120)
814화 버림받은 자들 (1)
누와라엘리야 병원은 한구 병원의 거의 2배가 넘는 규모를 자랑했다.
응급실의 천막을 제외하고서도 그러했는데, 덕분에 진료실도 무려 5개가 구비되어 있었다.
물론 그만한 설비를 다 돌리려면 지금보다 의료진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할 테지만.
누구도 걱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백 교수가 알아서 하겠지.’
‘교수님이 알아서 하겠지…….’
그저 강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쯤 되면 부담이 될 만도 할 텐데.
강혁은 그저 담담하게 그 기대를 받아 내고 있었다.
너무 오래전부터 홀로 지탱해 온 탓에 힘들어하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더군다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감히 비교도 하기 어려울 만큼이나 상황이 좋아진 마당이었다.
‘한 교수님이랑 리처드, 샘, 데니스는 알아서 하겠지.’
우선 한구에서부터 따라온 팀원들은 정말이지 딱 보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인간들이었다.
‘재원이는 벌써 감 잡은 거 같고……. 장미야 워낙에 똑 부러지는 애니까 됐고. 의외로 경원이가 좀 허당인데. 중증외상센터 짬밥 어디 안 갈 거야.’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온 사람들이라 해서 어디가 좀 처지거나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수술 실력만 놓고 본다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특히 재원은 그간 강혁에게 배운 한유림이나 리처드보다도 더 나을 터였다.
그저 예상이 아니었다.
‘그때…… 단기로 왔을 때만 해도 그래. 확실히 재원이 실력이 더 좋아. 아무리 늘었다 해 봐야……. 그 정도는 안 돼.’
강혁이 한없이 냉정한 기준으로 팀원들의 실력을 재평가하고 있을 때쯤, 부르릉 소리와 함께 미니 버스 세 대가 병원 앞마당으로 들어왔다.
앞마당이라고 해 봐야 제인처럼 가드닝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저 공터라 해도 족할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을 때보다 오히려 미니 버스 세 대가 들이찬 이후가 더 볼만할 지경이었다.
“왔네요.”
물끄러미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장미가 말을 걸어왔다.
이미 다 약속이 된 마당이었기에 놀라움은 없었다.
수술이 생기면 장미가 들어가겠지만, 그 전까지는 한석준, 데니스, 미군 측에서 파견 나와 준 간호 장교들 그리고 병사들과 함께 환자 정리를 맡아줄 터였다.
장미가 올라운더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응. 근데 저거 한 차에 얼마나 타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차가 기우뚱거려. 분명히 멈췄는데.”
“네? 아……. 그러고 보니까 저거…… 20인 승이라고 들었는데?”
20인 승이라고 하는 것도 가운데 보조 의사를 다 펴서 앉았을 경우를 뜻하는 것이었다.
쾌적한 승차감을 원한다면 14명 정도만 타야 했다.
그나마도 워낙 작게 나온 모델이다 보니 사실 14명이 탄다 해도 힘들 게 뻔했다.
그런데 저 버스 안에 탄 인원은 20명도 훌쩍 넘어 보였다.
“와……. 무슨 기네스 기록 세우려고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한 차에서 내린 인원만 물경 35명을 헤아렸다.
대체 어떻게 낑겨서 왔는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단기가 아닌 장기 봉사는 처음이라 긴장하고 있던 재원의 입에서 헐이란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만큼 절실한 거야. 아픈 데가 얼마나 많겠냐.”
강혁은 그런 재원의 어깨를 탁 치고서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버스라고 저거보다 적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건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오전에만 앞으로 적으면 한 번, 많으면 두 번 더 왕복해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여기 있는 강혁, 재원, 한유림, 리처드, 박경원이 300명도 넘는 환자를 봐야 했다.
문제는 수술이라도 터지면 최소 두 명은 빠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빨리 많은 인원을 효율적으로 봐야만 했다.
“자, 다들 주목.”
해서 강혁은 모두들 바로 각자 배정된 진료실로 보내는 대신, 복도에 불러 모았다.
“네.”
“응, 백 교수.”
다들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 저 작은 버스들에서 몰려나온 사람들을 봤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다 해결해 주려고 하지 마. 오늘은 통계를 보는 거야. 다들 알다시피 여기는 대체 무슨 병이 호발하는지, 주로 어디를 어떻게 아파하는지도 알려진 것이 없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땅이었다.
리프를 위시한 여러 다국적 기업들의 로비를 통해 스리랑카는 국제사회에 이들의 비극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아니, 숨기고 있다기보다 방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차피 여기서 생산되는 차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돈은 스리랑카로 스며들기에 그랬다.
스리랑카 사람도 아니고 인도 타밀들이지 않았다.
내전은 끝났지만, 여전히 종족 간 갈등이 첨예하게 남아 있는 상황에서 다수당인 싱할라가 이들을 신경 쓰길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였다.
“그러니까 일단 검진을 철저히 해. 아프다고 하는 곳만 딱 보지 말고. 예를 들어 눈을 본다, 그러면 황달이 있는지 봐. 예방접종이고 나발이고 없는 곳이야. 만성 간염 쌔고 쌨을 걸.”
“그, 그렇겠지.”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사항이기는 했다.
하지만 워낙에 중요한 얘기였기에 반복해서 들어도 딱히 지겹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백내장. 지내면서 보니까…… 낮에는 해가 꽤 따갑던데. 아무도 선글라스 끼는 사람이 없더라고. 뭐 관광객들이나 서양인들은 다들 끼고 있는데……. 노동자들 얘기니까, 지금은.”
“확실히 그렇더라고. 선글라스로 구분이 될 정도야.”
대한민국도 아직 선글라스가 보편화되진 않은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한국은 선글라스 대신 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애초에 야외 활동 자체를 많이 하는 사람도 적었고.
오죽하면 비타민 D가 어부, 농부 그리고 군인을 제외한 모든 직업군에서 부족하게 나오겠는가.
하지만 여긴 달랐다.
모든 노동자들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밖으로 내몰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일해야만 했다.
“내 생각인데 마흔부터는 거의 다 백내장 있을걸. 실제로 50만 넘으면 차밭 노동자로 쓰이지도 못한다고 들었어.”
대한민국에서라면 은퇴를 의미하겠으나, 여기서 쓸모를 다한 몸뚱어리는 그저 폐품 취급만 받을 뿐이었다.
젊은 사람들조차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실정 아닌가.
누군가를, 그것도 이제 늙어 죽을 날이 가까워 오는 사람을 챙기는 것은 만용이었다.
제대로 된 통계는 없으나, 일부 뜻 있는 소수 봉사자들이 예측하기로 이곳에 사는 타밀족의 평균 수명이 50세 부근에 그치는 것이 우연은 아닐 터였다.
“소리도 잘 봐. 보청기는 워낙 고가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봐. 일단 아프다는 건 당연히 해결해 주고, 만성 질환 위주로 진찰하라는 얘기야.”
“네.”
“뭐…… 다들 프로니까 알아서 잘하리라 믿고……. 그럼 점심때 보자고.”
“네!”
강혁은 며칠째 반복해서 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끝마친 후에야 진료실로 들어섰다.
일부러 창을 마당 쪽으로 내어두었기에 한눈에 환자 대기 상태를 알 수 있었다.
100명을 훌쩍 넘는 환자가 보였다.
“자, 이쪽. 이쪽으로요!”
주로 환자들과 직접 의사소통하는 것은 스리랑카 대사관에서 나온 직원들이었다.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 통치를 꽤 오래 받아 온 탓에 영어가 기본적으로 잘 통하는 국가지만, 이들에게만큼은 예외였기에 그랬다.
오랫동안 해발 1800미터 산지에 영국인들에 의해 고립된 채 지내 온 이들은 여전히 남인도 부근에 살던 때 사용하던 타밀어를 썼다.
“자, 줄 서요. 20명씩! 20명!”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이 또 남의 말을 듣는 데 있어 굉장히 익숙하다는 점이었다.
아니,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굴종적이었다.
이미 식민 통치는 끝났지만, 산 위의 왕들은 그 누구도 떠나지 않고 여전히 군림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안된 일이었으나 통제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편하기는 했다.
금세 분위기를 읽은 환자들은 강혁이 이끄는 팀이 외치는 한국말을 듣고서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자, 여기 문진표 있어요. 최대한 자세하게 체크해야 합니다!”
스리랑카 대사관은 대한민국 정부가 베푸는 호의에 최대한 성의를 표하고 있었다.
강혁이 영어로 작성해 준 문진표를 직접 타밀어로 번역했을뿐더러, 문진표 작성을 도와줄 대학생 봉사자들까지 지원해 주었다.
듣자니 매번 이렇게까지 인력을 동원하긴 어렵겠지만, 드문드문이라도 보낼 거 같았다.
‘돈이 무섭긴 무서워.’
강혁이 스리랑카 정부라 해도 다른 수가 없었을 거 같기는 했다.
인프라를 깔아 주고 있는 사람 말을 들어야지, 어쩌겠는가.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때문에 위태롭게 된 지금에 와서는 더더욱 남의 도움이 절실해진 마당이었다.
‘중국이 여기 기지 세우려고 아주 난리도 아니던데.’
중국이야 근처 나라들하고 죄 사이가 안 좋은 나라 아닌가.
동쪽에 위치한 대한민국 입장에서야 당연히 중국과 외국과의 관계 하면 미국이나 대한민국, 미국, 러시아, 북한만 떠올릴 것이고 또 이쪽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지만.
사실 서쪽으로 가면 더더욱 골치가 아팠다.
파키스탄, 인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등등 인구 많고 핵까지 보유한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심지어 분쟁까지 벌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골칫거리라 하면 당연히 인도인데 하필 스리랑카가 인도에 딱 붙은 섬이지 않은가.
‘이제 겨우 내전 끝나고, 쓰나미 극복하고 발전하냐 마냐 기로에 있는 나란데 여기 기지 생기면…….’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인구 10억이 넘는 대국 인도와 각을 세우게 생긴 마당이었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급한 와중에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대한민국이다, 이 말이었다.
“자, 그럼 들어갑시다. 번호표 드렸죠? 각 조마다 1번 나와서 1조는 1번 방, 2조는 2번 방, 3조 3번, 4조 4번, 5조 5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맙고 귀한 인연으로 느껴지겠는가.
최선을 다해 돕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들어갑니다, 교수님.”
“네, 들어오세요.”
강혁은 그런 생각을 잠시 머리 저편으로 치워 두었다.
윗선에서야 그런 정치공학적 계산이 당연히 들어갔겠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마저 똑같이 행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음.”
문이 열리고 환자 하나가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자 환자였다.
‘이건 다행이네.’
파키스탄이었으면, 그러니까 무슬림이었다면 아무리 세속주의 이슬람이라 해도 이렇게 남녀가 마주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그에 비하면 스리랑카의 주류를 이루는 불교나 힌두는 참 자유로운 편이었다.
심지어 이 나라의 무슬림들도 그쪽 같지는 않았다.
“어디 좀 볼까요?”
강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진표를 받아 들었다.
어차피 말로 물어봐야 원하는 답을 얻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낭비할 시간에 정성껏 작성했을 문진표나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게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흠…….’
문진표를 보던 강혁의 눈썹이 휘어졌다.
‘나이가 38살…… 동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