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821)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821화(821/1120)
821화 이제 시작인데 (2)
열 개의 손가락이 접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 모두 숙소로 돌아갔다.
오늘만 날이 아니지 않은가.
당장 내일도 다른 농장이 예약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차 밭이 천 개 이상 갈라져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내일은…… 좀 작은 농장이라고 했지.’
강혁은 침대에 홀로 누운 채, 아직 커튼을 치지 않아 무엇하나 가리는 것이 없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로등 불빛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라 그런지 별이 많았다.
‘고작해야 200명짜리 농장이라. 음.’
그렇다면 오후에 다른 농장을 수배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오늘은 어떻게 넘어가긴 했으나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병원이지 않은가.
아무리 다들 베테랑들이라 해도 합을 맞춰 보는 건 또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게다가 누와라엘리야에 대한 봉사는 마라톤보다도 더 긴 장거리 달리기가 될 터였다.
초장에 모든 힘을 소진할 필요는 전혀 없을 터였다.
‘좋아, 잘까.’
해서 강혁은 아쉬움을 애써 뒤로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는 1인씩 각방을 쓰게 된, 옆 방에 있던 한유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힘들었다……. 외래만 줄창 보는 거……. 이거 만만히 볼 일이 아니네…….’
아니, 모든 이들이 그랬다.
원래 현장에서의 첫날밤에 바로 잠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혁이나 한유림은 이미 한구에서의 혹독한 수련을 받았음에도 이러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화석처럼 굳기 전까지는 그랬다.
“주, 중령…… 중령…… 중령님…….”
자신을 존경해 마지않는다고 했던 운전병이었다.
“뭐, 뭐야!”
리처드는 일단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물었다.
운전병은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뭐냐고? 내가 할 말인데요?’
마법의 주문이라도 알았다면 속으로 이 황당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운전병에게는 한국인 친구가 없었다.
물론 리처드가 몇 번인가 강혁과 통화하면서 시발 거리긴 했지만.
이게 감정이 통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 아니던가.
해서 그저 당황한 얼굴로 갈 곳 잃은 눈동자만 굴려 대고 있었다.
“뭐, 뭐냐고.”
그사이 어느 정도 진정한 리처드가 다시 물었다.
속옷을 입은 후였는데, 사실 이제 와 무게를 잡아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가장 부끄러울 만한 모습을 보여 준 참 아니던가.
리처드의 나이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 출동 명령입니다.”
하지만 운전병은 불타는 애국심으로 감정을 추슬렀다.
“응? 출동?”
어렵게 꺼낸 그 말에 리처드는 아까보다도 더 놀란 얼굴이 되었다.
출동이라니.
작전이 있으면 먼저 이곳으로 알려 주기로 하지 않았던가.
아니, 애초에 아직 수련 받기로 한 군의관도 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세한 것은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령님하고 백강혁 교수님 두 분을 호출해 달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지금쯤 백 교수님도…….”
여전히 자리에 누워 출동이라고?만 몇 번인가 되뇌고 있으려니, 강혁이 병사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 새끼 이거, 출동이라는데 군인이라는 새끼가 쳐 누워 있네.”
역시나 리처드를 갈구기 위함이었다.
오늘 하루 정말 힘들었을 텐데.
방금 리처드를 갈궈서 그런가 기운이 넘쳐 보였다.
“아니, 교수님. 이상하잖아요. 갑자기 출동이라니?”
“응급이 원래 그렇지. 아 오늘 이상한데, 이러다가 사고 나냐?”
“작전 시 발생하는 부상에만 투입되는 거 아니에요?”
“아냐, 인마. 그런 조건으로 이런 병원이 가능하겠냐? 숙소동만 봐도 얼마나 좋냐. 멍청아, 달라는 대로 다 줬어.”
“저도 당사자인데, 저는 모르게요?”
“넌 미군이잖아. 미군 쪽에서 얘기 못 들었어? 왜 한국인인 나한테 그래.”
“아.”
듣고 보니 역시나 맞는 말이었다.
말을 꺼낸 놈이 강혁이 아니라 다른 놈이었다면 그냥 맞는 말이 아니라 처맞는 말이 되었을 텐데.
하필 눈앞에 있는 게 백강혁이라는 게 문제였다.
“안 일어나냐?”
“일어, 일어났습니다.”
“다른 게 먼저 일어났는데? 이상한데? 호르몬 레벨이…… 네가 이럴 정도가 아닌데? 잘 때는 그냥 죽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네? 아, 이거요. 하하.”
리처드는 즉시 몸을 일으키고는 강혁의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다시 허리를 숙였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강혁의 날카로운 눈은 온도조차 가늠할 수 있었다.
“태블릿 PC 화면만 꺼졌네? 소리는 나는 거 같은데. 환자가 내는 신음 같지는 않고…….”
귀도 밝았다.
리처드로서는 발가벗겨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애초에 벌거벗은 영상을 보고 있었으니 억울할 것도 없다 싶기도 했다.
“미친놈이 첫날부터 이 지랄이네. 넌 그냥 남들이랑 같은 방 써. 샘이라도 불러다 써. 이게 뭐야, 이게. 주체가 안 되니?”
“저, 병사도 듣고 있는데…….”
“병사는 듣는 게 아니라 본 거 같구만, 뭐.”
“그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리처드는 이런 면에서는 또 양심이 있는 편이라 차마 뭐라 변명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대신 이 순간을 빨리 모면하기 위해 옷부터 입었다.
작전에 나서면 설마 이따위 얘기가 안 나오지 않겠나 싶어서였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밖으로 나가자 라인 상사가 서 있었다.
어지간한 중령보다 귀하다는 미군 상사는, 뒤편에 대기 중인 지프차를 가리켰다.
온통 진창이나 다름없는 누와라엘리야의 일반적인 도로와는 달리,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쭉 뻗은 도로 위에 서 있었다.
미군이 작전 수행을 위해 만든 비행장으로 통하는 도로였다.
“아뇨, 약속된 사항인데요. 근데 환자는 어떤 환자입니까?”
역시나 작전에 임하자, 강혁은 리처드에 관한 관심을 거두었다.
대신 환자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라인 상사는 자연스레 강혁과 리처드를 차량에 탑승시킨 후, 자신도 조수석에 오른 채 입을 열었다.
“지금 모가디슈 인근 해역이 개판인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아, 그때.”
강혁은 시에라리온 광산 이권을 두고 소말리아 해적 탈을 쓴 국정 불명의 PMC가 끼여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강혁 입장에서 보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그 해역 인근에서는 그보다 중요한 사건도 드물었다.
아마 시에라리온이 아프리카 대륙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 있었다면 전쟁이라도 벌어졌을 만큼이나 그랬다.
모든 개발에서 소외되고 있는 아프리카는 한 줌도 안 되는 관광 수요와 광산을 제외하면 그리 돈 될 만한 것이 없는 땅이지 않은가.
그중 근간이 되는 광산이 흔들렸으니, 그 와중에 미군과 한국군 등 연합군의 일원들이 죽거나 다쳤으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대대적인 해적 소탕 작전이 진행 중입니다.”
“상대가 되지 않을 텐데.”
강혁은 누와라엘리야까지 올라오던 길에 비하면 너무나 평탄해서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하단 느낌을 받으며 질문을 이었다.
“그 와중에 반격이 있었나?”
“네. 말씀하신 대로 대부분은 초계함조차 버티지 못합니다. 아무리…… 해적들이 군벌들의 후원을 받거나 혹은 군벌 그 자체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소말리아의 군벌에게 무기를 넘기는 사람들이 미국인들이거나 미군 기업에서 무기를 사서 넘기는 중개인들 아니던가.
그렇게 넘어가는 무기는 다들 구형 무기였다.
아무리 무기 제조업체들이 국회에 로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신형 무기를 정부의 승인도 없이 제3 세계로 넘기는 것은 중범죄였다.
온갖 신형 무기로 떡칠한 미군 함대와 구형 무기, 그것도 한정된 수량만 가지고 있는 해적들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게다가 미군의 보복은 혹독하지 않은가.
그것이 두려워서라도 알아서 기었다.
“근데 어떤 미친놈이 덤비지?”
“알샤바브입니다.”
“아.”
알샤바브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아프리카 동부를 주요 활동 무대로 삼는 이슬람 무장 단체.
광신주의만 해도 모든 것을 무릅쓰게 만드는 데 족함이 없는데, 이들은 거기에 더해 마약까지 쓰는 이들이었다.
마약에 취한 채 자동소총이나 RPG-7 등을 쏘아 대는 이들은 미군 입장에서도 충분히 골칫거리가 될 만했다.
보복을 하려 해도 쉽지가 않았다.
종교가 섞여 들어간 집단은 민간인들과 무장한 적들이 쉬이 분간이 되질 않아서였다.
천진무구한 얼굴을 한 어린아이가 폭탄 조끼를 입고 달려드는 일은 이제 미군 교범에도 쓰여 있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다쳤지?”
“배에서 다친 건 아닙니다.”
“그렇겠지.”
미친놈들이 쏘는 총탄이라고 해서 위력이 올라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달리는 배 위에서 갈기는 눈먼 총탄에 마구 다칠 정도로 기강이 해이한 군대도 아니었고.
“모가디슈 항에 기함한 상태에서 당했습니다. 거기 국경없는의사회도 있는데…….”
“NGO 단체도 건드렸다고?”
“그런걸 신경 쓰는 놈들인가요?”
“아니지.”
자기네 나라 사람들 고쳐 주러 온 사람들의 목을 자르고, 돈을 요구하는 놈들이었다.
그나마 유서 깊은 NGO 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조심을 하는 데다가, 용병도 고용하고 또 생각이 트인 군벌에게 보호를 받지만.
미친놈들의 방식은 일반인들로서는 예상이 어려웠다.
작정하고 덤벼들었다면 방법이 별로 없었을 터였다.
“폭탄이 터지고 2차로 총격이 있었습니다.”
이제 일행은 비행기에 타 있었다.
에어 앰뷸런스였는데, 당연하게도 최신 기종이었다.
의료진 이송에도 꽤 신경을 썼기에 나일론 시트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환자는 어떻게 다친 거지?”
“폭탄에 휩쓸린 이들은 전멸입니다. 총격에 휘말린 사람들은 치료 중입니다. 함대 군의관들과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이들이 모두 동원되었는데, 국경없는의사회 측도 부상자가 많아서 치료가 더딥니다.”
“그럼 우리 행선지는?”
“모가디슈에서 남남동으로 50km가량 떨어진 곳에 정지 기동하고 있는 함선입니다. 거기에 환자가 있습니다.”
“오케이.”
강혁의 답을 신호라고 여겼는지, 기장은 곧장 비행기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