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850)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850화(850/1120)
850화 보도 (3)
크리스토퍼는 곧 전화를 걸었다.
명함을 건네주었던 사내는 전화벨이 채 세 번도 울리기 전에 받았다.
“네, 무슨 일이시죠?”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를 달라고 하셨어서요.”
“그럴 거 같더군요. 백강혁…… 이 사람이 뭘 하려고 하고 있나 했더니만 다국적 기업을 건드릴 줄이야.”
지금 다니엘 러셀이 움직인 힘은 여상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 최대 홍차 회사인 리프조차 자기업으로 두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 ‘더 원’이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기업의 목표는 독과점에 있었는데 실제 여러 분야에서 이를 이루고 있었다.
“언론사까지 움직일 정도의 기업입니다. 솔직히…… 리암 씨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크리스토퍼도 취재하면서 비참한 차 밭 너머에 있는 기업이 무엇인지 알아본 바 있었더랬다.
그 실체가 더 원이라는 걸 알아냈을 땐, 차라리 속이 시원했을 정도였다.
이만한 기업이 관여한 일이라면 지금껏 어디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만도 했다.
더 원은 세계 여러 NGO 단체들의 후원 기업으로서 그들의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힘이 있었으니까.
한때 해가 지지 않았던 나라 영국이 가장 강성했을 때 설립된 이 회사는 정작 영국은 많은 힘을 잃어 가는 동안에도 움켜쥔 것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역시 그렇군요.”
때문에 MI6 요원 리암의 입에서 단호한 대답이 나왔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다.
역사 앞에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가.
광기에 휩싸였던 20세기 동안 충분히 배운 바 있었다.
“아,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네?”
하지만 아직 리암의 말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크리스토퍼가 의아함에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리암이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크리스토퍼 씨와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백 교수?”
“네. 백강혁. 그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많죠.”
“그런가요?”
“두고 보십시오. 백강혁이 움직이면…… 저도 기자님도 할 일이 생길 테니까요.”
“음…….”
리암은 어떤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전화상이니만큼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하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강혁은 분명 대단한 의사였다.
하지만 상대는 다국적 기업이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보다도 위에 있는 강자였다.
“우선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시죠. 집에 가세요.”
“그리고 그냥 대기합니까?”
“아뇨. 영상은 계속 만드세요. 업로드할 곳이 생길 겁니다.”
“음.”
이 사람은 대체 강혁의 어떤 모습을 봤길래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달리 할 일도 없었다.
편집장의 뜻은 명백하지 않던가.
우선 짐을 싸서 집으로 가야 했다.
이럴 땐 퓰리처상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아무리 위대한 개인도 진짜 강력한 집단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법이었다.
“환자를 안 보내겠다고?”
그 시각, 강혁 또한 별로 반갑지 않은 말을 전해 들었다.
“네. 아무래도 그 보도가 화근인 거 같은데…….”
데니스 또한 미간에 내 천 자를 그린 채 걱정을 보태었다.
반면 강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어찌나 시큰둥한지 나와 다른 말을 들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뭐 이럴 줄 알았지.”
“근데 어떻게 하죠? 환자를 보내지 않으면……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그 말에 재원이 나섰다.
누가 수제자 아니랄까 봐 가장 빠르게 누와라엘리야 현지인들의 사정에 공감하고 있던 탓이었다.
녀석은 지금 개인 시간을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환자들에게 할애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런 얘기를 들었으니, 심정이 어떻겠는가.
청천벽력과 다름이 없을 터였다.
“계속 치료해야지.”
“농장주가 환자를 안 보내면…… 방법이 없을 텐데요? 농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잖아요.”
사실이었다.
농장은 철저히 사유지로서 스리랑카 공권력마저 침입이 어려웠다.
확실한 혐의가 없다면 구속 영장도 나오지 않는 까닭이었는데, 적어도 스리랑카에 있는 판사 중엔 감히 영국인 소유의 농장에 구속 영장을 낼 만큼 배짱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문에 저들이 더더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어 대고 있는 것도 있었다.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강혁은 걱정이 가득한 재원을 보며 드론을 내보였다.
한구에서부터 강혁이 애지중지 갖고 놀았던 바로 그 드론이었다.
겉모양만 봐서는 딱히 다른 드론과 차이점을 찾기 어렵겠지만, 한 가지 아주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이 드론은 군부대에서조차 날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모든 드론은 자체 코드 때문에 군부대에서는 자동으로 운행이 중단되는데, 이건 아니란 얘기였다.
“응……?”
재원이야 그런 내막을 모르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의 주요 실행인이라 할 수 있는 데니스는 그렇지 않았다.
“시기가 조금 빠르지 않을까요? 원래 계획은…….”
다만 우려를 표시하기는 했다.
작전의 내용보다는 시기에 대한 문제였다.
“와서 보니까 기다릴 수가 없겠어. 생각보다 더 개새끼들이고, 현지인들 사정이 생각보다 더 열악해.”
“그건…… 그건 그래요.”
한구에서 온 몸들이다 보니 다들 가슴 한켠에는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더랬다.
아무리 그래도 한구보다는 낫지 않을까?
거긴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를테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이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누와라엘리야는 기후부터가 달랐다.
이곳은 세계적은 휴양지 중 하나이며, 특히 영국인들과 북유럽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사정은 더더욱 열악했다.
한구의 사람들은 최소한 노예는 아니었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반쯤 노예 취급을 받고 있는 탓이었다.
“그러니까, 실행하자고.”
“알겠습니다. 리처드 중령, 들었죠?”
강혁의 말에 데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있던 리처드를 바라보면서였는데, 평소와는 달리 직책을 제대로 불러 주었다.
“들었어. 원래 하기로 했던 작전이니…… 실행해야지. 근데…… 후환은 없겠죠?”
“후환이 어떻게 있어. 영국군이 쳐들어오게? 식민지였던 나라에?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하겠냐.”
“하긴 그게…… 그건 좀 말이 안 되는 일이죠.”
스리랑카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탓에 영국은 스리랑카 내부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 퍽 자유로운 편이었다.
경제, 문화 쪽으로는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군사 쪽은 반대로 절대 그렇지 못했다.
어떤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그랬다.
“그럼 하자고.”
“네.”
리처드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강혁의 말이라서는 아니었다.
위에서도 승인이 떨어진 작전이었다.
동맹국인 영국에 엿 먹이는 작전이긴 하지만,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대상이라 가능한 얘기였다.
게다가 여전히 미국 내부에서는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떻게든 그러한 역사를 상기시키는 일만큼은 달갑지가 않았다.
박살을 내고 싶다, 이 말이었다.
위이잉.
덕분에 드론이 날았다.
원래 환자를 보내기로 되어 있던, 그러나 오늘 갑작스레 환자를 보내지 않은 농장 방향에서였다.
“응? 저게 뭐야?”
“몰라. 아, 무거워…….”
“오늘따라 더 무겁네. 아픈 거 고쳐 준다더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러니까…….”
드론은 아주 높지도 낮지도 않게 날았다.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할 정도였다는 얘기.
하지만 노동자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 농장 관리인들 또한 그러했다.
“아, 거……. 안에까지는 찍지 말라니까.”
“내비 둬. 어차피 관광객들인데……. 이쁜 풍경 담고 가겠지.”
“그런 거치고는 좀 낮은데.”
“초본가 보지.”
“하긴.”
보통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이라면 숨기기 급급할 텐데.
이들은 꺼림칙함조차 느끼지 못했다.
관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비현실적인 노동량에 신음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저 일상일 뿐이었다.
으레 그래 왔던 것처럼 풍경의 한 자락으로만 생각되었다.
“좋아, 여기서 이제…… 부대로 날린다. 연락 들어갔지?”
“네. 5분 대기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석준이, 너도 준비됐어?”
강혁은 드론을 조종하다 말고 한석준을 돌아보았다.
농장 앞에 바짝 세워 둔 미니버스 안에 앉아 있던 한석준은 그런 강혁을 보며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괜찮은 거죠?”
“괜찮지, 인마.”
“하……. 내가 어쩌다…… 내가 왜 중국어를 공부했을까?”
“중국어 해서 여기로 온 거야.”
“그러니까요.”
“이거 끝나면 3급 특진이라며. 그럼 됐지.”
“하…….”
한숨을 연신 쉬어 댔는데, 그런다고 멈출 강혁이 아니었다.
그는 드론을 그대로 미군 레이더 기지 내로 돌입시켰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된 소란이 일었다.
탕.
타다당.
산중에 익숙할 리 없는 총소리가 퍼지는 것이 시작이었다.
강혁이 운전하던 드론이 박살 난 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강혁은 조종기를 한석준에게 넘겨주었다.
버스 밖으로 내몰면서였다.
“저 진짜 괜찮은 거 맞죠! 총 들고나오는 거 같은데!”
“안 쏴, 안 쏴. 다 프로야.”
“지금도 쐈는데……?”
“소리만 내는 거야. 아무튼, 우리는 간다. 농장 문은 아까 내가 따 놨으니까 안에 있다가 발각되라고.”
“하…….”
“어허. 중국말로 해. 이제부터 너는 중국인이야.”
“하…….”
한석준은 한숨을 쉬면서도 일단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강혁이 농장 문을 따 놨다기보다는 일격에 부숴 놓은 덕에 들어가는 거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들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농장 안에 있던 이들은 모두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혼비백산한 지 오래였다.
“뭐, 뭐야!”
“어……. 저기 차. 차들이.”
“미군? 저 사람들이 왜 여기로 와?”
“모, 몰라.”
게다가 저 멀리서 미군 차량들이 줄지어 오는데, 어쩐지 농장으로 향하는 거 같았다.
모두 총으로 중무장한 상태였기에 우왕좌왕하는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한석준은 정말이지 아무 방해도 없이 농장 건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려니, 나무로 만들어 놓은 농장 담장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로 냅다 밀어 버린 모양이었다.
‘나중에 일 잘 풀리면 이 농장 우리가 사야 되는데……. 너무 부수면 안 되는데. 아니지, 총 맞을 수도 있는데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미군은 차로 민 후, 도보로 진입해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노동자들의 것도 있었고, 관리인의 것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관리인들은 그나마 항의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 무슨 짓입니까?”
“농장에서 우리 기지를 염탐했다는 증거가 있어.”
“무슨 염탐을…….”
“이 드론 너네 거지?”
“아, 이거 오햅니다! 관광객 거예요.”
“웃기지 마. 무슨 관광객 드론이 해킹이 되어 있어. 방해 전파도 뚫고 들어왔는데.”
“아니…….”
“주로 중국 스파이들이 쓰는 모델이야. 어딨어? 말해.”
“뭐, 뭘 말해요.”
말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적어도 이 건에 대해서는 무고했으니까.
“아, 없다고 그런 사람!”
그래서 곧 관리인은 당당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외쳐 댔다.
딱 한석준이 나타나기 전까지였다.
조종기를 든 채 모습을 드러낸 그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워……. 워 쉬 중구어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