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851)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851화(851/1120)
851화 마약이라고요? (1)
관리자는 잠시 머리가 하얘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저 새끼는 누구란 말인가.
그뿐만 아니라 여러 관리인들의 시선이 한석준을 향해 꽂혔다.
누와라엘리야에서는 보기 드문 동양인인 데다가 체격이 남다른 편이라 그렇지 않아도 딱 눈에 띄는 편이지 않은가.
근데 중국어를 하고 있으니 시선을 아니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지?”
미군들도 한석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총구를 겨누고 있었기에 한석준의 이마에서는 아주 자연스레 땀방울이 맺혔다.
‘진짜 쏘는 건 아니겠지?’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긴 했다.
강혁과 리처드의 주선으로 벌써 몇 번이나 미팅하지 않았던가.
주스리랑카 대한민국 대사관의 누와라엘리야 영사 직원으로서 이 지역 동맹군인 미군들과의 관계는 당연히 좋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사라 해 봐야 직원이 꼴랑 한석준 하나뿐인 상황이긴 했지만.
강혁과 리처드의 인맥은 모든 것을 극복하게끔 하고 있었다.
“워…… 워 쉬 중구어뤈.”
“통역해 봐.”
“중국인이라는데요?”
“역시.”
하여간 한석준은 몇 번인가 말을 맞췄던 대로만 지껄이기로 작정했다.
그 말은 곧 중국어만 중얼거리겠다, 이 뜻이었다.
그럼 저쪽에서 알아서 통역을 해 줄 터였다.
엉터리 통역이란 반발은 없을 거라 확신해도 좋았다.
이곳 관리인들이 중국어를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까.
“주, 중국인? 중국인이 왜 우리 농장에…….”
“넌 가만히 있어. 계속 말해 봐.”
미군 중위는 총구도 들이밀지 않은 채 눈빛만으로 관리인을 제압했다.
관리인이 몸을 움츠린 채 뒤로 숨어드는 사이, 한석준은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죄다 중국어였는데, 제대로 통역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백강혁 이 자라 같은 놈……. 사람을 사지로 내몰고 말이야……. 내가 대한민국 4급 공무원인데 여기 와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하지만 통역병을 자처하고 나선 미군은 전혀 엉뚱한 소리만 해 댔다.
“우리 레이더 기지를 염탐하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자금 조달 목적으로 여기서 마약 재배를 하고 있었다는데요? 뭐라고? 아, 코카인.”
“코카인?”
“코카인이라고?”
중위뿐 아니라 관리인의 눈도 동그래졌다.
코카인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외치려는데, 어디선가 미군이 생전 처음 보는 나뭇가지를 들고 나타났다.
“찾았습니다. 코카인이 있습니다.”
“이런 개새끼들.”
“아니……. 아니, 저희는…….”
“이 새끼들 싹 다 잡아 처넣어. 국제법 위반에 마약 사범이야. 농장주는 어디 소속이지?”
“리프입니다.”
“그럼 거기도 엮어.”
“아…… 아니…….”
얼핏 듣기에도 심각해 보이는 사안이지 않은가.
국제법 위반에 마약 사범이라니.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 스리랑카도 마약에 있어서만큼은 엄중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중국처럼 목을 뎅겅 자르진 않겠지만 열악하기 그지없는 감옥에 처박히게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중위가 마지막에 입에 올린 회사는 본사이지 않은가.
‘어…….. 거기가 엮이면…….’
관리인 입장에서는 스리랑카 정부나 미군보다 더 두려운 존재였다.
적어도 이곳 누와라엘리야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자들 아닌가.
일이 틀어졌을 경우 관리인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조차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자, 잠깐만요!”
“왜 이놈이 아직도 내 앞에서 얼쩡거려?”
“죄송합니다. 연행하겠습니다.”
“아니, 이거 뭔가 착오가!”
“아직도 저 소리네. 미친놈이.”
“조용히 해, 이 새끼야.”
하지만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중위가 눈앞에서 관리인을 치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실 시간이 있었다 해도 별반 달라지는 건 없었을 터였다.
어차피 죄다 조작이었으니까.
“저기…… 몇몇 빠져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냅둬. 누구한테 갈지는 뻔한 거 아냐?”
“네, 그렇습니다.”
“연락이 오겠지.”
중위는 이미 관리인 쪽이 아니라 농장의 뒷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사의 보고대로 몇몇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빠져나가고 있었다.
일부러 경계를 하지 않았던 곳이었고, 그 말은 곧 의도한 대로 움직여 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만 정말로 생각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했다.
-어떻습니까? 진행 방향은?”
해서 무전을 넣었다.
답변은 즉시 들을 수 있었다.
“저 길로 가면 뭐…… 딱 가버너 하우스 말고는 없지. 다니엘한테 가는 거 같은데.”
-그렇군요. 잘됐습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잘해 줄 수 있겠지?”
-저희 작전 캠으로 모두 찍어 놨습니다. 중간에 중국어 이상한 소리 한 거 있습니까? 그러면 잘라야 합니다.
“나한테 자라 같은 새끼네 뭐네 한 게 있는데 그건 잘라 줘.”
-자라요?
“중국에서는 아주 심한 욕으로 통용되는 말이야. 한석준한테 전해 줘. 뒤질 준비 하라고.
-아, 네. 아무튼, 그렇게 하겠습니다.
“확인.”
강혁은 그렇게 들어온 무전에 친절히 답을 해 준 후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농장에서 빠져나온 일련의 오토바이 무리가 산길을 따라 가버너 하우스로 향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이곳을 무력으로 통치했던 자들의 거처였고, 지금은 금권으로 지배하는 이의 거처였다.
“들어간다. 오케이, 일단 성공이야.”
강혁은 담장 안쪽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리처드 또한 그런 강혁을 보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어떻게 나올까요?”
“어떻게 나오긴. 혼비백산하겠지.”
“제가 겪어 봐서 아는데……. 그런 캐릭터는 아니던데…….”
“그래 봐야 우물 안 개구리야. 고작해야 누와라엘리야에서나 왕 노릇 하던 놈이…… 미군을 어떻게 상대해. 게다가 증거도 있는데.”
“우리가 조작한 증거잖아요. 제대로 파헤치면…….”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 거 같냐? 저 농장이 어떤 곳인데.”
강혁은 이제 고개를 돌려 오토바이가 빠져나왔던 쪽을 바라보았다.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농장은 언제나 그러하듯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이면은 어떠한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현장이었다.
리프가 회사 매출 규모에 비해, 제조업임에도 불구하고 순수익이 그토록 높은 이유는 바로 거기 있었다.
일개 홍차 회사를 다국적 기업의 캐시 카우로 일구어 낸 것은 오로지 노동자의 피와 땀이었다.
“하긴……. 비리의 온상이죠. 저건…… 제대로 파면 난리가 나겠죠.”
“그래. 유야무야 덮고 싶은 건 피차 마찬가지야.”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계획이 빈틈없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돌아가 봐.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고하고.”
“아, 네. 근데 한석준은 언제 빼죠?”
“아, 그 새끼.”
원래 같으면 다니엘이 육안으로 확인하자마자 빼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라 같은 놈이라는 욕을 듣고 나서도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미군의 작전 캠이 미니버스에 연결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 그러니까 강혁이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지껄인 말이긴 하겠지만.
하여간 기분이 그랬다.
강혁은 늘 자기 기분에 대해서만큼은 솔직한 편이지 않은가.
“며칠 두지 뭐.”
“네? 진짜 감옥이긴 할 텐데요? 간이라 시설도 구리고.”
“그래야 더 속지.”
“음……. 대질 심문이야 하루면 끝날 텐데.”
“아, 그냥 좀 시키는 대로 하자. 네가 갇힐래? 모르지? 누와라엘리야 병원에도 비밀 시설 있어.”
“허.”
병원에 설마 그런 게 있을라고?
뭐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상대가 백강혁이지 않은가.
이놈은 한구에서 딱 의료 봉사만 하고 온 사람이 아니었다.
지역 사회에 만연해 있던 폭력 사태를 해결하고, 심지어 탈레반을 위압하기까지 했더랬다.
“그러니까 가.”
“알겠…… 알겠습니다.”
해서 리처드는 고개를 숙인 후, 미리 대기 중이던 험비를 타고 기지로 복귀했다.
강혁의 예상대로 다니엘이 직접 와 있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무척 초조해하는 얼굴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다니엘.”
리처드는 강혁의 예상대로인 것에 감탄하며, 일부러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니엘은 그런 리처드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안심하는 듯한 얼굴이 되었다.
미군 중 그나마 아는 사람이 리처드뿐이었기에 그랬다.
“아, 중령님.”
말투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공손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비굴하다고 해야 할까.
언제고 콧대 높은 귀족 행세를 하던 인간이 이런 작은 사건 하나에 발발 떨기 시작하다니.
그러면서도 애써 자신의 긴장을 숨기려 애쓰는 모습이 더더욱 우스웠다.
리처드는 하마터면 코앞에 대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정말 우물 안 개구리로구나.’
리처드는 표정 관리에 자신이 없어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너무 무표정한 얼굴을 하려 애써서 그런가, 도리어 조금 무서운 표정이 되어 있었다.
의도와는 관계없이 다니엘은 그런 리처드에게 압도되고 말았다.
“다니엘. 보통 일이 아닙니다. 당신 농장에서 스파이가 나왔고, 첩보 활동에 쓰일 자금을 변통하기 위해 마약을 재배했다는 증거까지 나왔어요.”
“아니…….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몰랐다는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로…….”
“일단 조사는 받으셔야 할 겁니다.”
“음.”
조사란 말에 다니엘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대동하고 온 사람을 돌아보았다.
점잖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변호사였다.
“리처드 중령, 다니엘은 민간인입니다. 이런 식으로 구속될 수는 없어요. 당신들은 미군이지, 스리랑카 사법 기관도 아니지 않습니까?”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여기는 미국령입니다.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어요. 즉 불법 행위는 미국 땅에서 벌어졌다는 얘기입니다. 기소권도 수사권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속 영장도 다 받았습니다.”
애초에 미리 다 준비를 하고 시작한 작전 아닌가.
워낙에 사이즈가 큰 작전에 강혁이 협조하는 조건으로 건 일이라, 미군 측에서도 빈틈이 없었다.
서류가 죄 준비되어 있었다.
“아니, 언제 여기가…….”
“그러니까 다니엘. 협조하십쇼. 저희도 설마 다니엘이 중국 스파이와 협조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부디 제가 끝까지 이 생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시죠. 그러지 않는다면…….”
“협박하는 겁니까?”
“설명하는 겁니다. 앞으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리처드의 말투는 담담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다니엘은 변호사를 돌아보았고,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내 가능한 조건이라면 협조하라는 뜻이었다.
하여간 미군이랑 법적으로 엮이게 되면 좋은 꼴을 보기 힘들지 않은가.
게다가 들어 보니, 딱히 계약인 그러니까 다니엘에게 해가 될 거 같지는 않았다.
리처드 중령은 선을 지키고자 하고 있는 듯했다.
“협조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을 말하죠.”
리처드는 미미한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사실 백강혁이 하는 말이지.’
다니엘과 변호사가 명백한 착오를 범하고 말았단 생각과 함께였다.
이제 이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파멸까지는 시간문제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