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861)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861화(861/1120)
861화 면회 (2)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성민 대통령은 강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어지간하면 들어줄 생각이었으나, 듣다 보니 과연 그럴싸해서였다.
“확실히 제 이미지가 일 잘하는 쪽으로만 굳어져 가고 있기는 하죠.”
“네,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저도 그렇잖아요?”
“음.”
“근데 저랑 똑같은 이미지로 가고 싶습니까?”
“음.”
강혁과의 대화를 요약하면 너랑 내 이미지가 비슷해지고 있는 거 같다 정도였다.
임기 초기라면 뛸 듯이 기뻐했을 터였다.
강혁이라고 하면 세간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환자를 위해 바치고 있는, 그야말로 헌신 된 의사로 알려져 있지 않던가.
거기에 더해 실력까지 세계 최고였으니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지인들이 조심하고 있다고 해도 흘러나가는 말을 온전히 틀어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너무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간미가 좀 없다더라.’
‘인간미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싸가지도 없다더라.’
‘사람 살리는 깡패라더라.’
뭐 이런 종류의 말들이 여기저기 새어 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정치하는 백강혁이라고?’
강혁에 대해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한 평가는 박성민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혁이 박성민에게 관심을 두는 것보다도 오히려 박성민이 강혁에게 더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십분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해서 그냥 두고 있었다.
확실히 백강혁이라는 사람이 딱히 성격이 좋다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은가.
근데 그게 나랑 같다고?
‘안 되지, 안 돼.’
박성민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정치에 입문했고 또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된 몸 아닌가.
퇴임이 인생 끝이 아니라 2막이 되어야만 했다.
대통령으로서의 박성민이 나라를 위해 커다란 봉사를 했다면, 2막은 이제 더 작은 일을 위해 직접 두 손으로 뛰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한데 백강혁 같은 이미지로 그게 될까?
실제로 강혁이야 그런 이미지로 잘만 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백강혁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럴 때 인간적인 모습을 좀 보여라 이겁니다. 연기라도 하세요. 저처럼 진짜 무대뽀로 일처리할 거 아니면.”
“연기라뇨……. 저는 정말 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죽다 살아난 사람 면회도 안…와요?”
“시간이…….”
“시간이 일하느라 없는 거잖아요. 그게 백강혁이지 뭐.”
“허.”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욕을 자기에 빗대어 할까?
설령 있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아야 정상일 터였다.
누구라도 자기 자신에 관한 얘기를 할 때는 조금이라도 더 관대해지니까.
‘근데 기분이 되게 나쁘네.’
하지만 강혁은 역시나 난 놈이었다.
이럴 때조차 뭔가 달랐다.
“그리고 일 얘기도 좀 하죠.”
“아니, 저는 일만 얘기하는 게…….”
“아뇨. 대통령은 저랑 비슷한 사람이에요. 애초에 그래서 잘 맞았던 거고.”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 사람이?”
생전 화를 내지 않아 비서진들 사이에서 별명이 돌부처일 지경인 박성민이었다.
“무, 무슨 일 있으십니까?”
“괜찮습니까?”
한데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고 방에 들어가더니만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자연히 비서들이나 경호원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아니, 아닐세.”
그제야 평정을 되찾은 박성민은 문틈을 통해 자신의 안전을 전했다.
그 틈을 틈타 강혁을 계속 말을 이었다.
“앞으로 스리랑카의 중요성은 점점 더해 갈 거예요. 알죠? 지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나면 그나마 기항할 만한 항이 인도 아니면 스리랑카에나 있는 거.”
“그…… 그렇죠. 근데 나는 정말 백…….”
물론 박성민의 저항이 끝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강혁의 이어지는 말이 꽤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날카로운 구석이 있어 잠자코 귀를 열어 두는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그 주변으로는 예멘, 오만, 소말리아, 이란같이 빡센 국가들밖에 없어요. 불안해서 케이프타운 돌아가는 배도 요새 엄청 늘었고.”
“그건…… 그렇습니다.”
확실히 일개 의사의, 그것도 오지에 나가 있는 의사의 시야는 벗어나 있었다.
꾸준히 세계정세를 살피고 있는 모양이었다.
‘투자의 귀재라고 하더니.’
이렇게 끊임없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어 그럴까?
약간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는 최고 권력자 자리에 있으면서도 재산이 줄줄 줄어만 가는데 누구는 오지에 나가 있으면서도 재산이 팍팍 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인도 측 항에 기항하게 되면……. 사실 돌아가는 거거든요. 인도랑 무역할 게 아니면 별로야, 그게. 그래서 스리랑카가 주목받는 거죠. 중국이 이쪽 항구에 욕심내는 것도 그거 때문이고요.”
“맞습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나라랑 스리랑카는 분위기가 좋잖아요. 이때 기습 순방하시죠. 면회라는 명분이 생겼으니……. 여기서는 좋아할걸요.”
“그럴까요? 분위기가 좋은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순방 명단에서 빠지긴 했어서요.”
“그거야 지금 순방이 인도차이나반도 쪽이니까 그렇죠. 여기는 엄밀히 말하면 남아시아니까 동남아랑은 거리가 있죠.”
“음.”
박성민은 지금 자신이 백강혁이랑 대화하는 건지, 아니면 참모진이랑 대화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만큼 강혁의 말에는 흡입력이 있었다.
“여기가 우리나라랑 역사도 비스므리 하잖아요. 그런 거 얘기하면서 우리나라만큼 잘살게 될 수 있다는 걸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해 봐요. 뒤집어질걸. 그럼 여기를 필두로 해서 인도 시장도 뚫을 수 있고. 가뜩이나 요새 파키스탄이랑 경협 추진하면서 인도랑은 약간…… 응? 그렇잖아요.”
“맞는 말입니다. 생각보다 감정이 더 안 좋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현황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 내고 있었다.
실제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사이는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이웃 나라끼리의 반목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인도와의 분쟁 때문에 파키스탄이 종종 비행기 길을 닫아 버릴 지경 아닌가.
그나마 현 총리가 집권하고부터는 어느 정도 유화 정책을 펴고 있다지만 그것도 이전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일 뿐, 절대적으로 보면 여전히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스리랑카도 인도랑 아주 사이가 좋진 않지만……. 이건 뭐라고 해야 되나. 사이 나쁜 형제격이지, 절대 원수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면 화낼 정도의 사이 아닐까요?”
“말이 그렇다 이 말이죠. 왜 갑자기 멍청한 척을 하실까?”
“음.”
“게다가 여기다 중국에서 해군 기지 짓는 거….… 그거 우리가 반대하는 거 뻔히 알 거 아닙니까? 중국이랑 인도 사이하면 또 말 다 한 셈이죠.”
“그렇죠.”
원래 인접한 국가끼리 사이가 좋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중국처럼 죄다 사이가 나쁜 나라는 드물지 않을까?
인도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아주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국경 지대에서 군인들끼리 싸움이 붙어 죽고 죽이기까지 했을 지경이었다.
괜히 중국이 전 군의 70% 이상을 서쪽에 보내 놓은 것이 아니란 얘기였다.
“여러모로 이득이 될 겁니다, 대통령 각하.”
“안 어울리게 각하라고 하지 마세요. 이름이나 턱턱 부르면서.”
“친구끼리 그러면 안 됩니까?”
“그건 아니죠. 음……. 아무튼, 잘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가 보도록 하죠. 간만에 한 장관님 얼굴도 좀 보고요.”
“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강혁이 말한 것처럼 레임덕이 왔었다면야 당연히 해외 순방 스케줄 변경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였다.
하지만 박성민 대통령은 전례 없는 지지도와 성과를 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레임덕은커녕 여전히 그의 말은 청와대 내에서뿐 아니라 초당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라, 일하다 다친 공무원을 위로하러 가는 길 아닌가.
거기에 더해 치밀한 정치적 계산까지 있었으니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었다.
<속보입니다. 스리랑카 수도인 콜롬보 인근 칠성 물산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윤성종 외교부 차관이 입원한 누와라엘리야 병원 담당 의사가 백강혁 교수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입니다.>
<박성민 대통령의 태국 순방이 당초 예정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정도 하루 일찍 끝나게 되었는데요, 청와대에서는 이를 현재 스리랑카 누와라엘리야에 입원 중인 윤성종 외교부 차관의 면회를 위한 것이라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박성민 대통령은 공무를 위하다 다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의 소임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면회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이와 동시에 윤성종 차관과 더불어 그가 입원해 있는 누와라엘리야 병원까지 주목받기 시작했다.
역사상 가장 인기 많은 대통령이 간다지 않는가.
지지자들의 관심이 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와……. 교수님. 미쳤어요. 하루 만에 구독자 30만 늘었어요.”
“그래? 잘됐네.”
“아뇨, 아뇨. 이럴 때가 아니죠.”
“뭔……. 왜 그래.”
그렇다 보니 유튜브 구독자 및 조회 수도 폭발하고 있었다.
애초에 백강혁이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지 않던가.
여러 동영상이 이를 입증하고 있었고, 장미의 편집에 힘입어 도리어 한층 더 빛나게까지 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다소 약해져 있었던 강혁에 대한 팬심과 관심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왜긴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아니……. 카메라는 좀 두고 말해.”
“유튜브 해야 되는데 카메라를 어떻게 둬요.”
“환자도 없는데 뭘 찍으려고.”
“브이로그 갑시다.”
“뭔 브이로그…….”
그렇다고 모든 게 다 좋지만은 못했다.
강혁은 장미에게 쫓기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장미와 카메라를 든 데니스에게서였다.
둘 다 묘하게 신나 있었는데, 장미는 취미 생활을 하게 되어서였고 데니스는 그저 강혁이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다.
“이거 어때요?”
“뭐가 어때!”
“대통령 오시면 여기 음식을 교수님이 직접 해 주시는 거예요.”
“뭔 미친 소리야……. 나 음식 잘 못 해.”
“안 하시는 거지 못하진 않죠. 아예 모르잖아요, 어떤지.”
“아니……. 내가 왜…… 내가 왜 음식을 해…….”
강혁은 그렇지 않냐는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대통령이 올 거라는 소식에 모든 인원이 다 모여 있는 상황인지라 고개를 한번 돌린 것만으로도 병원 사람 전부를 볼 수 있었다.
“괜찮은 생각 같은데요?”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강혁은 마치 최후의 만찬에서의 예수님이 된 심정이었다.
‘유다는 누구냐?’
물론 예수님처럼 평화롭게 해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해서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발언자를 찾았는데, 의외로 박경원이었다.
“미친놈이, 뭐가 괜찮어?”
“우리 영상들 보면 맨날 진료하는 건데 새로운 거 보여 줄 때 됐죠.”
“야……. 나 유튜브 하러 온 게 아니라 봉사하러 온 거야. 봉사하는…….”
“근데 유튜브 커지면 도움이 될 거라면서요. 그래서 대통령도 부르고 어그로 끄신 거 아니에요?”
“뭔그로 인마?”
“하여간 괜찮을 거 같아요.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