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863)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863화(863/1120)
863화 면회 (4)
박성민 대통령은 그야말로 흡족한 식사를 마치고 곧장 병실로 향했다.
어떻게 아픈 사람을 두고 밥부터 먹을 수 있느냔 말도 나올 수 있겠으나, 환자가 일반 병실에 있지 않고 중환자실에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의료진을 제외한 모두는 정해진 면회 시간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애초에 환자들이 어디 싸우다 온 병사들이나 현지인들이라 면회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인 누와라엘리야 병원이긴 했으나,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것이 강혁의 의견이었다.
“네? 아유,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박성민 또한 있는 규칙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의전을 받아야 하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기에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
“자, 이쪽으로요.”
강혁은 2층 중환자실로 박성민 대통령을 안내했다.
‘허.’
숙소동을 지나 병원 1층에 들어섰을 때부터 오묘해졌던 박성민 대통령의 얼굴에 감탄이 서렸다.
이 병원이 어떤 식으로 지어졌는지 자초지종을 다 알고 있어서였다.
특히 강혁이 사비를 털어 이 병원을 지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렇긴 해도 자기 돈 들여 짓는 것이니 최대한 아끼지 않았을까 했다.
기껏해야 한구에서 봤던 그 병원 수준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얘기.
하지만 직접 본 병원은 으리으리하진 않아도 있을 건 다 갖춘 내실 있는 병원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시설이 되게 좋네요? 돈 많이 들었을 거 같은데요?”
“많이 들었죠. 그러니까 많이 살려야 해.”
“하.”
이럴 때 다른 사람들 같으면 많이 벌어야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확실히 백강혁은 삶의 초점이 엇나가 있었다.
좋은 일이었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엄한 데 꽂혀 있었다면 세상에 누를 끼쳤을 수도 있었을 테니.
“그냥 들어가면 됩니까?”
“마스크랑 모자면 충분해요. 여기 뭐 격리 환자 같은 건 없으니까.”
“그렇군요. 음.”
박성민 대통령은 경호원도 없이 촬영 감독만 대동한 채 강혁과 장미를 따라 중환자실로 향했다.
격리 환자가 없다고는 하지만 뭐가 되었건 중환자실에 여러 사람 들어가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여기서 뭔 일 날 리도 없지 않은가.
‘여차하면 백 교수가 어떻게 해 주겠지.’
게다가 박성민은 한유림을 통해 강혁에 대한 무용담을 여럿 전해 들은 참이었다.
그중 몇몇은, 그러니까 파키스탄 정보국 사람들을 맨손으로 마구 제압했다거나 하는 것들은 믿기 어려웠지만.
하여간 리처드를 비롯한 미군 장교들과 자웅을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믿어 줄 만했다.
유튜브에도 운동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물어보니 경호원들 중에서도 저만큼 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했다.
“여기 계십니다.”
“아.”
잠시 딴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환자 앞이었다.
“아…….”
많이 다쳤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역시 얼굴이었다.
붙어 있는 거즈를 차마 떼어 보기 무섭다고나 할까.
지금도 보기가 그런데 그 밑에는 과연 어떤 모습이 숨겨져 있을지 두려웠다.
촬영 감독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카메라로 어중간한 곳을 비추고 있었다.
“눈이 없어요.”
“아.”
물론 그건 박성민이나 촬영 감독 같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강혁은 도리어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된 위문이 될 거라 생각하는 위인이었다.
해서 딱 보자마자 우선 거즈부터 뗐다.
다행히 동공이 비어 있다거나 하는 몰골을 보게 되지는 않았다.
강혁이 감염 방지를 위해 그리고 환자가 깼을 때 환자에게 주어질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눈꺼풀을 꿰매 놓았기에 그랬다.
“아.”
그럼에도 박성민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 정도만 해도 일반인이 보기엔 충분히 끔찍한 탓이었다.
“그리고 광대가 무너져서 재건해 줬고……. 여기 피부는 좀 다르죠? 허벅지 살을 붙인 겁니다.”
“아.”
설명이 이어질수록 박성민도 촬영 감독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특히 훈훈한 장면을 연출할 생각이었던 촬영 감독의 얼굴은 자못 심각하기까지 했다.
‘통으로 날려야 될 수도……?’
그 와중에도 강혁은 입을 쉬지 않고 놀렸다.
“그리고 여기. 간이 찢어졌었어요. 허벅지도 터졌고. 다행히 지금은 다 제대로 회복 중입니다.”
“아……. 근데 의식은, 의식은 없는 건가요?”
“아뇨. 약 쓰고 있으면 벤틸레이터 써야죠.”
“벤 뭐요?”
“공부 안 하시네.”
“저는 대통령이지, 의사는 아니니까요.”
강혁은 박성민의 대꾸에 잠시 멈추어 섰다가, 다행히 답변이 그럴싸하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 하여간 깼어요.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주무시는 거지, 깨울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죠. 내가 뭐라고. 아무튼, 괜찮은 거죠?”
“네. 회복 중입니다. 후유증이 있긴 하겠…… 어, 깼다.”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했나.”
“낮이니까 깰 때 됐죠. 너무 자면 오히려 회복에 방해돼요. 말이라도 해야 좋지.”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백강혁이 아니라 다른 의료진이었다면 대통령 앞이라고 입에 발린 소리 한다는 생각도 들었을 테지만.
강혁은 누구 앞이라도 그러지 않을 위인이지 않은가.
해서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다.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단 뜻이었고, 촬영 감독 또한 드디어 원했던 장면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단 뜻이었다.
“어…….”
환자는 한쪽만 남은 눈을 연신 끔뻑거렸다.
강혁이나 장미야 노상 보던 얼굴이니 놀랄 일이 없는데, 뭔가 낯설면서도 낯익은 사람이 하나 껴 있어서였다.
내가 이 사람을 언제 봤더라.
차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박성민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음, 너무 놀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박성민 또한 박성민대로 차관을 마주 본 채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대뜸 ‘대통령입니다’ 하는 것도 우습기도 하고, 그렇다고 모른 척하고 있자니 무슨 몰래카메라 같기도 하고.
“환자분, 좀 어떠세요?”
“아……. 괜찮습니다. 깜빡 잤네요. 계속 졸려서요.”
“이거 들어가는 덴 괜찮고요?”
“아, 네. 괜찮습니다. 조금 성가시긴 한데…….”
다행히 강혁이 아주 자연스럽게 진료를 시작했다.
매일 하던 일이니만큼 비몽사몽 간인 환자 또한 자연스레 답변하기 시작했다.
강혁은 방금 가리켰던, 환자의 중심 정맥관으로 들어가는 비경구영양액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 갔다.
시선은 환자의 얼굴, 더 정확히 말하면 환자의 상처 부위를 향한 채였다.
“아 해 보세요.”
“네.”
“음. 자리는 잘 잡고 있는데……. 숨쉬기 불편하지는 않아요?”
“네, 괜찮습니다. 부은 느낌만 있어요. 마취된 느낌도 있고.”
“새로 이식해 준 부위가 감각이 없어서 그래요. 생각보다 감각 신경은 재생이 되는 편이라 지금보단 나아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강혁은 그렇게 환자의 상처를 살피다 비로소 박성민을 가리켰다.
“여기 면회객이 오셨어요.”
“네? 여기가…… 여기 스리랑칸데. 대체 누가.”
“자세히 보세요. 아시는 분일 텐데.”
“어……. 어?”
차관은 강혁의 말에 다시 한번 박성민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 박성민을 보았는지 알아차렸다.
스리랑카 개발 관련 회의에 들어갔을 때였다.
“대, 대통령님?”
“어휴, 몸 일으키지 마시고요. 너무 많이 다치셨어요.”
“여, 여길 대체 어떻게…….”
“공무 보시다가 너무 크게 다치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습니다. 이까짓 상처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랏일 하는 사람으로서 대통령과 마주하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권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강혁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한쪽 눈이 사라지고 간이 찢기고 허벅지가 다쳤음에도 이까짓 상처라 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 정도는 지금 배울 수 있었다.
“아뇨, 아뇨. 몸조리 잘하시고……. 업무 복귀 차질 없도록 제가 잘 준비해 두겠습니다.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푹 쉬세요. 걱정 놓으시고.”
“거동 가능해지면 일해야죠……. 스리랑카 개발 건이 중요합니다.”
“개발 건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정 마음이 그러시면 전화로 하세요. 다른 분 보내시고.”
박성민 대통령은 꽤 강경해 보였다.
실제로도 강경한 편이었다.
그저 부드럽기만 해서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었을 테니.
차관 또한 눈치가 보통은 넘는 사람이라 이 사람의 뜻을 굽히는 건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다.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부디 푹 쉬세요. 수술비나 치료비는 물론이고 앞으로 재활에 필요한 비용도 다 돕겠습니다.”
“아유……. 이거…… 폐가 되는 건 아닐지.”
“아닙니다. 폐라뇨. 나랏일 하다 다친 분은 나라에서 책임져야죠.”
박성민은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그간의 행보가 없었다면 단순한 쇼잉으로 보일 수 있었겠으나, 적어도 박성민은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군 복무를 비롯해 소방, 경찰 업무 도중 상해 입은 이들의 복지 증진이었기에 그랬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들로 채워져 있던 보훈처 또한 싹 갈아엎었다.
‘확실히 훌륭한 양반이야.’
강혁은 흐뭇하게 웃다가, 이내 장미와 눈을 마주쳤다.
이만하면 훈훈한 장면은 차고 넘치게 연출한 셈이지 않은가.
어제 있었던 스리랑카 대사 앞에서의 연설은 힘이 넘치면서 동시에 공감을 이끌어 낸 바 있었으니, 박성민 대통령의 스리랑카 방문은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시작해요?’
강혁의 그런 뜻을 읽어 낸 장미가 눈으로 신호를 보냈고,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띠띠띠.
그와 동시에 중환자실 구석에서 알람이 울렸다.
귀에 가장 거슬리는 소리 중 하나였기에 모든 이의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비의료인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응?”
“아, 그제 수술한 환자분인 모양입니다.”
“그 탈장 부위 썩은 사람?”
“네.”
강혁은 미리 합을 맞춰 두었던 대로 대사를 치고는 환자에게 달려갔다.
누가 봐도 많이 아파 보이는 사람이었다.
리프 계통이 아닌 다른 농장에서 온 환자였는데, 상황이야 어디가 됐든 비슷했기에 조금만 더 늦었으면 생명이 위험할 뻔했다.
“음…….”
물론 이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강혁은 심각한 얼굴로 환자의 상처를 살폈다.
박성민과 촬영 감독 또한 뭐에 홀린 듯 가까이 왔다.
차마 상처를 제대로 볼 용기는 없었기에 강혁을 응시한 채였다.
“무슨 환자입니까?”
그나마 아까 차관에 비하면 나아 보이긴 했으나, 배에 시커멓게 변색 된 부위는 누가 봐도 심각해 보였다.
“아, 탈장입니다.”
“탈장이요? 그건…… 별거 아닌 거 아닙니까?”
“원래는 그렇죠. 근데 제대로 치료 못 받고 방치되면 이렇게 됩니다.”
“왜…… 병원이 생긴 거잖아요?”
“노동자들이 전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곳이거든요.”
“그렇…… 습니까?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박성민 대통령의 눈이 빛났다.
언제고 사회적 약자 편에 섰던 이다운 반응이었다.
정확히 강혁이 노린 반응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