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86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864화(864/1120)
864화 할 수 있는 건 다 할 거야 (1)
강혁과 장미는 박성민 대통령을 중환자실 한켠에 마련된 휴게실 안으로 데리고 갔다.
자연히 카메라는 꺼졌다.
무언가 심각한 얘기를 나누게 된 것이라 짐작한 촬영 감독은 아예 뒤로 빠졌다.
워낙에 박성민 대통령을 오래 따라다니다 보니 감이 생긴 덕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많이 내리는 사람이니만큼 비밀도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됨됨이가 훌륭하고 말고를 떠나서 하는 일의 크기와 성격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 한 장관님 이쪽에 계셨어요?”
물론 생각만큼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애초에 한국대학교 병원 중증외상센터와 박성민 대통령 간의 인연이 가볍지가 않아서였다.
일단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강혁과 한유림까지 해서 무려 둘이나 되었다.
“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어려운 얘기라.”
“그래 보이네요. 음.”
박성민은 뒤편을 돌아보았다.
커튼에 가려져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여전히 아까 보았던 상처가 눈에 선했다.
어디 크게 다쳤거나 한 줄 알았는데 고작 탈장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앞으로도 쉬이 잊힐 거 같지 않았다.
심지어 강혁이 오기 전에는 저만한 질환으로 많이들 죽었다지 않는가.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아, 여기 제 조칸데, 외교부 측에서 파견해 주어서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착잡한 얼굴의 박성민에게 한유림이 한석준을 소개시켜 주었다.
일개 4급 공무원으로 대통령과 마주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한석준은 어버버 거리고만 있었다.
“반갑습니다. 나랏일 하시는 분이 또 계시네.”
“네, 네. 감사합니다.”
박성민이 넉살 좋게 인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조차 내뱉지 못할 지경이었다.
덩달아 부끄러워진 한유림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석준입니다. 허우대는 큰데 겁이 많아요. 얼마 전에도 일 하나 같이 했는데 어찌나 소리를 질렀는지. 그래도 어떻게 잘 해낸 게 다행입니다.”
“다, 당숙. 그건 그럴 만한 일…….”
“자세한 소리는 하지 말고.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한 자린 줄 알아?”
“아, 네. 죄송…… 죄송합니다.”
한유림이 부탁받은 대로 한석준 어필을 자연스레 하고 나자, 강혁이 입을 열었다.
나름 보은은 하고 부려 먹는단 철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물론 4급 공무원의 앞길과 대통령과의 연관성이 크면 얼마나 크겠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하여간 할 일 했다는 생각 정도는 들었다.
“스리랑카랑 경협도 추진 중이시니까, 대강은 알고 계시죠?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아……. 네. 시기리야 쪽하고 더불어 대표적인 관광단지라고 들었습니다. 원래 여기도 태화 물산에서 개발 입찰 넣으려고 했다가……. 보니까 이게 정부에서 뭘 해 볼 만한 땅이 없더라고요? 죄 사유지라고 들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들이 소유한 땅이죠. 차밭도 그렇고 호텔도 그렇고.”
“금싸라기 땅인데……. 여기는 아무래도 영국이 패전국이 아니었어서 청산이 더 안 된 모양입니다.”
스리랑카와 대한민국의 역사는 고대부터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대한민국이 바로 옆에 중국이라는 대국을 끼고 있었던 것처럼 스리랑카는 인도를 끼고 있지 않았던가.
인도가 통일만 되면 어찌나 스리랑카에 쳐들어오는지 숱한 전쟁을 겪어야만 했다.
그 후로는 중세 열강의 식민지를 거쳐 독립 이후로는 내전까지 겪은 바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스리랑카를 식민지화했던 영국이 패하지 않고 승전국으로서 ‘스스로’ 물러났다는 데 있었다.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도 청산이 제대로 안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겠는가.
아무래도 곳곳에 잔재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네, 뭐……. 돈은 그대로 들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여기 끌려온 타밀족에 대해서는 시민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네. 이건…… 사실 우리들만 있어서 될 게 아닙니다.”
“그렇겠네요.”
시민권 부여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제아무리 강혁이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이건 안 될 터였다.
“지금 한석준이 외교부 통해서 이런저런 민원을 넣고는 있어요. 실제로 스리랑카 정부에서도 문제점을 인식해서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시민권을 부여하겠다는 의견도 남겨 왔고요.”
“아, 그래요? 그럼 된 거 아닙니까?”
“근데 그게 홍보가 전혀 안 됩니다. 차밭 소유자들이야 당연히 협조가 안 되고요. 일일이 찾아가서 알려야 되는데……. 외국인이 저희가 하는 건 이상한 일이잖아요? 저희가 소유하게 된 차밭의 노동자들이야 뭐 등록 절차를 밟고 있지만……. 이건 그야말로 전체 인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아하.”
박성민은 알아들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늉은 아닐 터였다.
이 양반은 머리 회전이 아주 빠른 데다가, 힘 있는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아는 사람이니까.
“홍보와 가가호호 방문 정도는 제가 이끌어 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근데…… 아무래도 그냥 요청하는 건 좀 문제가 있어요. 최근 스리랑카와 돈독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방적으로 요구를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닙니다.”
“그렇죠, 그렇죠. 이런 걸 내걸면 어떨까요?”
“어떤……?”
박성민은 강혁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고는 귀를 기울였다.
얼굴만 봐서는 무슨 역적모의라도 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분위기도 그랬지만.
하여간 강혁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땐 뭔가 유용한 것이 나오기 마련이었기에 그랬다.
“이제 차차 우리가 소유하는 차밭이 늘어날 겁니다.”
“음. 그 계획은 들었습니다. 참 치밀하시던데.”
“근데 제가 보니까 차밭 중에서 생산성이 떨어지는데 억지로 낮춘 인건비 덕에 돌아가는 곳도 많거든요.”
“아……. 그럴 수 있겠네요.”
인건비라는 게 거의 숙식 제공비 정도로 해결되는 곳이 바로 누와라엘리야 아니던가.
소유주들로서는 차가 좀 덜 나는 밭이라고 해도 유지시킬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돈을 주기 시작하면 삐걱댈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런 곳은 태화 물산이나 뭐 칠성 물산 같은 곳에 개발을 시키는 거죠. 원래 호텔 단지가 있다고 해 봐야……. 아까 가 보셔서 알겠지만 진짜 낙후됐거든요. 독점이나 다름없어서 그냥 두고 있어요. 그래도 와서 돈을 쓰니까.”
“아, 새 호텔이 생기면 아무래도 경쟁력이 생길 거다?”
“네. 거기 의무적으로 현지인들 고용하게 하면 경제도 살고 우리 기업도 돈 벌고, 세금이 늘어나니 정부도 좋고. 원래 주인들 말고는 다 좋아지죠. 어차피 땅은 헐값에 살 거라.”
“허허.”
손해 볼 사람이 들으면야 눈이 뒤집어지겠지만.
강혁의 말대로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좋기만 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손해 볼 놈들에게 미안해지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오랜 시간, 너무 많은 고혈을 빨아먹은 것들이었다.
솔직히 생각 같아서는 박성민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 후려치고 싶었다.
그랬다가는 영국과 껄끄러워질 테니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어떻게……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혹시 인력 충원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뒤에서 돕는 거라면 얼마든지 가능하겠단 생각도 들었다.
해서 한석준으로서는 눈이 돌아갈 만한 제안을 했는데, 야속하게도 강혁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은 나랏일 하게 둬야죠. 한 명이면 됩니다.”
누구 마음대로! 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 중 누구 하나 한석준 입장에서는 만만한 사람이 없지 않은가.
한유림은 전 장관에 집안 어른이었고, 강혁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무서운 인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박성민은 대통령이니 이 자리에서 감히 소리 지른다는 건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지 표명을 넘어 인제 고만 살고 싶다고 복창하는 것과 거의 유사한 일이었다.
“거참 이렇게 나라 생각을 하시는 분이 왜 같이 일하자는 요청은 거부하실까.”
“제가 하는 게 결국, 나라를 위한 일 아니겠어요? 스리랑카도 어차피 대한민국 고객이 될 텐데 제가 이렇게 하면 대한민국 제품 사지, 어디 다른 나라 제품 사고 싶겠습니까.”
“하긴 뭐……. 그거야 그렇죠.”
박성민은 파키스탄 내에서 치솟아 오른 대한민국의 위상을 생각했다.
한류로 마음을 녹여 낸 찰나, 강혁의 봉사가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은 세련되면서 동시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 인식되었다.
지갑을 열 때 기왕이면 대한민국 제품으로 고르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아직 파키스탄의 경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 쪽에서의 기업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는 것 또한 얼마 전 보고 받은 바 있었다.
경제 발전을 입에 담았던 대통령으로서는 면이 사는 일이었다.
“음.”
박성민은 그렇게 흡족한 미소를 짓다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초 단위 스케줄까지는 아니지만 분 단위는 되는 그였다.
애초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바쁘기도 하거니와, 박성민은 특히 더 바쁜 사람이라 그랬다.
원체 하는 일이 많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거 아쉬워서 어쩌지. 이제 곧 가야 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전부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말이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삐 일을 해 왔으니 지금의 성과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해서 모두는 아쉬워하거나 섭섭해하는 대신 시원하게 보내 주었다.
“네, 그럼 또 보는 그날까지 건강하십쇼.”
“지금은 어떤가요?”
“아무 문제 없어 보입니다.”
“그거 다행입니다.”
강혁은 거기에 더해 지금까지 박성민을 관찰한 결과도 알려 주었다.
박성민이야 강혁의 능력을 반도 모르고 있어 그저 기분이 좋아졌을 뿐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강혁은 적잖이 안심한 얼굴이었다.
‘전에 봤을 때랑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어. 관리는 꾸준히 하고 있는 모양이지.’
이렇게 훌륭한 인간이 일하다 쓰러져 잘못되면 어쩐단 말인가.
“그럼 나중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강혁 외에도 모여 있던 모두가 인사를 건넸다.
박성민은 소탈한 사람인 만큼 손을 몇 번 휘적대고는 휙 사라져 갔다.
“자, 그럼 숙소동으로 가자.”
그는 갔지만, 아직 작당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래 일이라는 건 몰아쳐야 하는 법이지 않은가.
한꺼번에 정신없이 팰 생각이었다.
“드론으로 수집한 영상들 좀 틀어 봐.”
“아, 네.”
강혁의 말에 숙소동에서 대기하고 있던 리처드와 데니스가 움직였다.
원래 같았으면 절대 운용할 수 없었던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틀었다는 말이었다.
명목이야 미군 부대의 안전을 위해서였지만 실제로는 근처 농장들의 비인간적인 경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던 만큼 차밭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숙소도 아주 자세히 담겨 있었다.
“이거 뭐…… 편집이 필요 없을 정도네?”
“그러니까요. 원본 그대로…… 영국 기자한테 전달할까요?”
“그렇게 해. 우리 채널에 올릴 영상도 준비하고. 제목은…… 박성민 대통령이 놀란 이유? 뭐 이런 식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