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88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882화(882/1120)
882화 내놔 (1)
미군 부대는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가뜩이나 그렇게 큰 부대도 아닌데 스무 명이 넘는 죄수들이 끌려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석준 가둬 두는 용도로 지어 놨던 시설을 최대한 활용했음에도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어쩌죠?”
병사 하나가 순박한 얼굴로 물었다.
과밀 수용소가 되어 버린 건물을 돌아보면서였다.
널찍한 미국에서 살아온 그에게 저만한 건물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건 낯설다 못해 미안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어쩌긴, 그냥 둬.”
반면 라인 상사는 단호한 어투로 고개를 저었다.
저놈들 따위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란 투였다.
“네? 저렇게 두면 아플 수도 있을 텐데요?”
“아파도 싸, 저 새끼들은. 얘기 못 들었어?”
“자세한 인계는 못 받았습니다. 여기 현지인들하고 일부 영국인들이라고…….”
“저 새끼들 우리한테 총 쐈어.”
“네? 아니, 이 미친놈들이?”
“그러니까 그냥 둬.”
“아, 알겠습니다.”
병사는 총 쐈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까 짓던 표정에서 180도 변해서 건물 쪽으로 돌아갔다.
거의 무슨 괴물이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군인들에게 전우애란 그런 것이었다.
“다니엘이 어떻게 나올까요?”
병사들 통솔은 라인에게 맡긴 채 뒤로 빠져 있던 리처드가 물었다.
대상은 당연하게도 강혁이었다.
군부대라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지역이지만 강혁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어떻게 나올 거 같아?”
“저 같으면 이제 납작 엎드려야죠.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민간인이 타국 군부대에 총질을 했는데……. 게다가 학생들 위협도 하고요. 액션캠 확인했는데, 진짜 잘 잡혔어요.”
“그놈이 제정신이면 그렇게 나오겠지. 근데 그랬으면 오늘 이런 짓을 했을까?”
“음.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정상인이었다면 오늘 과연 학생들을 몇 죽이겠다고 나섰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미군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대응 사격이 있기 전까지는 마구 총질을 해 댄 놈들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라는 뜻이었고, 동시에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단 얘기가 되었다.
“잠만 있어 봐. 내가 감이 딱 왔거든.”
“감이요? 여기서 더 무슨…….”
리처드는 질렸다는 얼굴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오늘 밤 벌어진 일은 거의 강혁의 작품이라고 보면 되었다.
어지간한 공작꾼이라 자처하던 데니스조차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CIA에 들어갔다지만, 여전히 뼛속까지 군인이고 동시에 의사인 리처드가 보기엔 더더욱 놀라웠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라니.
디디디.
그때 강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새벽 3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강혁은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올 줄 알았다는 기색이 역력해서 리처드 또한 자신도 모르게 전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 어떻게 됐어?”
“말씀대로 여기로 왔어요.”
“직접?”
“네. 지금 누굴 기다리고 있는데…….”
“아마 서장급이겠지.”
“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고 싶은데.”
“글쎄요. 원하시면 서장이 못 가게 할 수는 있죠.”
데니스는 간만에 이런 일을 하게 되어 조금은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강혁의 명에 의해 하루 종일 움직인 마당에 지금도 또 밖에 나가 있으면서도 의욕이 넘쳤다.
‘원한다면 서장이 못 가게 한다라.’
강혁은 데니스가 무슨 수를 쓸 수 있을지 생각했다.
서장이 있는 곳은 호텔 단지 가까이에 위치한, 누와라엘리야에 몇 없는 고급 주택 단지에 사는 놈이지 않은가.
그쪽에서 경찰서로 가려면 필연적으로 지나쳐야 하는 도로가 있는데 사정이 당연하게도 별로였다.
기사가 꽤 운전을 잘하는 편이겠지만 거기서 돌발 변수가 뜬다면 대응은 불가능할 터였다.
‘영원히 못 가게 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물론 서장이 나쁜놈이기는 했다.
뒷돈만 받아 챙긴 게 아니라 자식 놈은 영국으로 유학도 보내지 않았나.
대가로 이 지역의 노동자들의 안위를 전부 팔아넘긴 놈이었다.
단 한 번, 그야말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수사가 없었다.
“아니, 그냥 둬. 어차피 뭐…… 걔들이 여기 와서 뭘 할 수 있겠어?”
“그건 그런데……. 그래도 현지 경찰이랑 엮이면 일이 좀 짜증 나게 될 텐데요.”
그래도 죽이는 건 아니었다.
강혁은 죽이는 것보다도 더 사람을 괴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장도 그 신세로 떨어뜨릴 자신 또한 있었다.
데니스는 못내 불안한지 급히 말을 이었다.
“폄하하는 거 같아서 좀 그렇지만……. 한구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개발도상국 경찰들은 대한민국 경찰하고는 많이 다를 겁니다.”
“다르겠지. 그래도 미군 부대 가서 뭘 할 수 있겠어.”
“그건 그런데……. 우리라고 계속 안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병원은 보호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걱정 마. 나도 연줄 있어.”
“연줄……?”
“하여간 경찰이 올 거라 이 말이지?”
“네. 아마 범죄자 인도를 요구할 겁니다.”
“알았어. 알아서 할게. 변수 있으면 그때그때 알려 줘.”
“네. 알겠습니다. 정말 처리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어, 처리는 무슨 처리야. 그냥 둬.”
강혁은 걸핏하면 사람 죽이겠다는 소리를 해 대는 데니스를 만류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여태 숨죽인 채 귀를 기울이고 있던 리처드를 돌아보았다.
“들었지?”
“네? 아, 네. 경찰 온다고. 근데 진짜 어쩌죠? 수색 영장 같은 거 들고 오면……. 안 내줄 수가 없는데.”
“수색 영장? 그게 나올 거 같냐?”
“나…… 나올 수도 있죠. 이 근처에 뭐 경찰들만 돈 먹었겠어요? 판사고 나발이고 다 먹었을 텐데.”
“상관없어. 누가 먹었건 잔챙이로는 안 돼.”
“뭔…….”
“일단 조용히 좀 해. 나 전화 더 써야 해.”
“아, 네.”
강혁은 불안한 얼굴로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한 리처드를 두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새벽 3시라 그런가 신호음이 꽤 울린 후에야 상대가 전화기를 들었다.
“누, 누구…….”
새벽에 전화 오는 게 익숙지는 않은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뭔가 억울한 듯한 투로 물어왔다.
강혁은 특유의 공감 못 하는 능력을 발휘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답했다.
“누구긴 백강혁이지.”
“아……? 교수님?”
“어, 석준아.”
“하.”
한석준은 일단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시간을 확인했다.
‘내가 진짜…… 이 새끼만 아니었으면 욕이라도 박는데.’
상대가 강혁이라 어쩔 수 없었다.
별로 무서운 거 없이 살아왔는데 강혁은 무서웠다.
일단 피지컬부터가 사람이 아닌데, 그보다도 성격이나 하여간 이런 게 그랬다.
“하?”
“아뇨. 아뇨. 졸려서 그랬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래. 너네 그 뭐야, 대사관에 전화해서 대사님 좀 깨워라.”
“네? 이 시간에요?”
“응. 급한 일이야. 아주 급한 일.”
“급한 일……?”
한석준은 급한 일을 되뇌다가 아까 강혁이 미군들과 함께 어디론가 나갔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냥 나간 게 아니라 총기류를 갖추고 있었다.
나름 카츄사에서 근무했던지라 미군 병기류는 어지간히 파악이 가능했다.
“무슨…… 아, 설마…… 오늘 뭐 사고 치셨구나! 사람 죽였죠!”
“뭔 미친 소리야, 이 새끼가.”
“근데 왜 이 시간에 대사를 깨워요.”
“사람 안 죽이고 싶어서 깨우는 거야.”
“어…….”
마지막 말이 어쩐지 스산하게 들렸다.
강혁이 아니라 다른 놈이었다면 농담이겠거니 할 텐데.
절대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아, 알겠어요. 죽이지 마요.”
“그래. 최대한 빨리 깨우고, 통하는 번호 나 줘. 그리고 그거 하고 나면 바로 이쪽으로도 전화해.”
“이쪽은 어딘데요?”
“자세한 건 알 필요 없고……. 그냥 스리랑카 법무부 통제해 달라고만 해.”
“네?”
“아, 그냥 그렇게만 해.”
“어……. 알겠어요.”
한석준은 전화를 끊은 후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한국어로 이루어진 대화였는데, 알아먹기가 어려웠다.
대사를 깨우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법무부를 통제해 달라는 말은 정도를 넘어선 느낌 아닌가.
‘내가 고민할 만한 일은 아니지.’
하지만 여기 와서 지켜본 강혁을 떠올려 보면 무슨 일을 해도 다 납득할 수 있었다.
그 인간은 정말이지 미친 인간이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시상에 좋기도 했다.
괜히 그의 분노를 샀다간 좋은 일이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을 테니까.
“누구…….”
해서 대사관을 통해 대사 번호를 알아낸 후, 즉시를 전화를 걸었다.
대사는 아까의 한석준처럼 반쯤 잠긴 목소리로 누군지부터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외교부 서기관 한석준입니다. 누와라엘리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백강혁 교수님 요청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 배, 백강혁?”
그리고 한석준과 마찬가지로 강혁이라는 말에 눈을 떴다.
얼마 전 대통령이 방문해서 강혁을 콕 집어 만나고 돌아가지 않았나.
그때 대사관에도 들러서 강혁이 하는 일이 바로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니,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도우라고 했더랬다.
대사는 여기서 더 출세하고 싶은 사람인지라 그 분부를 잊지 않고 있었다.
“네.”
“어떤 요청이지?”
“깨어나시면 직접 전화 걸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하라고 전달할까요?”
“어, 어, 그래. 일단 가면서 받아야겠군.”
“네. 감사합니다.”
한석준은 대사관 내에서 대사의 지위를 떠올려 보았다.
비록 주중대사나 주미대사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한 나라의 대사라고 하면 엄청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런 대사가 강혁 이름 하나에 쩔쩔맬 줄이야.
‘유림 아저씨 말처럼……. 이 사람 끈 잘 잡고 있으면 출세하는 건가.’
하긴 한유림도 그저 그런 의대 교수였다가 종래에는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하지 않았던가.
보통 보건복지부 장관은 관심사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누가 했는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중증외상센터 정상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참이어서 주목도 많이 받았더랬다.
아마 역대 장관 중에 팬클럽이 있고 또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사람은 한유림뿐일 터였다.
“네.”
그런 생각을 하며 아까 강혁이 건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대사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이 시간에 네라니.
잠을 안 자나?
‘국제전화인가? 아씨 요금 나오는데. 아닌데? 이 번호는 국내인데……?’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려니, 상대가 재차 물었다.
“한석준 씨, 맞습니까?”
“어잇, 그건 어떻게…….”
동시에 공포감이 엄습했다.
원래 나는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아본다는 건 두려운 일인 법이었다.
상대는 이런 일이 많은 듯, 여상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백 교수님이 전화하라고 하셨죠?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그. 맞아. 스리랑카 법무부 통제해 달라고…….”
“이 시간에요?”
“네.”
“음, 알겠습니다. 일단은 걱정 말라고 전해 주세요.”
“어, 네네.”
“진행 사항은 이쪽으로 전달하면 됩니까?”
“어……. 그건 잘 모르…….”
“괜히 번호 알려 준 건 아닐 겁니다. 이쪽으로 하죠.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