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90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902화(902/1120)
902화 단기 노예들 (1)
잭은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일단 비행기 타고 출장 수술을 온 거부터가 이상한 일 아닌가.
아니, 아주 이상한 일이 아니긴 했다.
아무리 미군이 군의관 수준을 올리려고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금전적 보상이 훨씬 더 큰 미국에서 민간 의사의 수준을 따라잡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로봇 수술이 그래서 만들어진 거긴 하지.’
문제는 민간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기에 미군이 주로 작전을 펼치는 곳이 너무 멀다는 점이었다.
원격 의료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로봇 수술이 바로 이것 때문에 시도되었다.
민간의 우수한 의사가 본토에서 멀리 있는 로봇을 이용해 집도를 한다는 개념이었다.
같은 병원 내에서 실험했을 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물론 직접 수술하는 게 아니라, 로봇을 통해 수술하는 것이다 보니 촉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는 했으나 적응하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시야가 좋아 유리한 점도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걸 못 해서…… 역량 키우기에 집중하고 있는 건데…….’
실제 먼 거리에 두고 사용을 해 보니 인터넷 속도가 문제였다.
계속 끊겨서, 수 초간의 딜레이가 생겼다.
외상 외과의 수술을 하기엔 너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도시 내라면 별 상관없었을 터였다.
광랜을 깔면 되니까.
하지만 제아무리 미군이 돈이 많다고 해도, 모든 격전지에 랜을 깔 수는 없지 않겠는가.
기왕 큰돈 들여 만든 거 어떻게든 살려 보고자 여러 방법을 동원했으나 다 소용없었다.
해서 이제는 민간에서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수술법으로 변모하여 쓰이고 있었다.
야전에서는 결국, 군의관 역량을 높이는 방법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원정 수술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 줄이야.’
잭은 손을 박박 닦으면서 옆에 있는 강혁을 올려다보았다.
강혁이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각도가 묘했다.
보통 이러면 못생겨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실력에 인성에 외모까지……. 미쳤네.’
강혁은 잭이 이런저런 생각을 돌고 돌아 강혁에 대한 끝없는 감탄을 이어 나가고 있는 동안, 계획을 완전히 정리했다.
아까 사진으로 본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정보가 좀 부족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던 것이 방금 확인한 수술 장면을 통해 완성됐다.
“좋아.”
해서 강혁은 여느 때처럼 미소를 지은 채 수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드르륵.
그와 동시에 안에 있던 군의관과 간호 장교가 수술실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간호 장교의 눈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왜 저러나 했더니만, 언젠가 한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바로 파키스탄 과다르에서였다.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아……. 오랜만이네. 맞아, 여기 소속이라고 했지.”
“네. 그래도 빨리 오셔서 다행입니다.”
“빨리? 아, 다치자마자 연락한 거구나.”
“네, 요새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간호 장교는 이제 환자가 살겠거니 하는 투였다.
옆에 있던 군의관은 황당하다는 얼굴이었으나,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강혁이 말도 안 되는 수술을 했던 것이 눈에 선해서였다.
심지어 과다르의 유지에 대한 수술도 우수했는데, 그 후에 이어진 부상 당한 미군에 대한 수술은 더하지 않았나.
그날 강혁은 그가 아니면 죽었을 두 사람을 살린 셈이었다.
아마 간호 장교는 죽을 때까지 그날을 잊지 못하리라.
“하여간, 거기 계속 눌러봐.”
강혁은 대화를 나누면서 동시에 가우닝을 마치고 환부에 더 가까이 갔다.
아직 배가 열려 있지는 않았다.
보아하니 최대한 강혁이 올 때까지 신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버티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이었다.
현명하다 할 수 있었다.
괜히 설 건드린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았으니까.
뭐가 되었건 수술이란 결국, 몸에 칼을 대는 것이라 상처만 늘리는 경우도 많아서였다.
“아, 네.”
군의관은 강혁의 실력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일단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다.
워낙 들은 게 있어서였다.
특히 여기 있는 간호 장교의 말만 들어 보면 괴물 수준이었다.
아마 말하는 사람이 미군 장교가 아니었다면 반도 믿기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도 잘 버텼네. 소변량이 줄기는 했어도……. 아직 나오고 있고. 마취과가 누구지?”
“아, 접니다.”
“잘하네. 잘해 줬어.”
강혁은 진심을 담아 칭찬을 해 주었다.
지혈 정도는 하긴 했으나, 그것 말고는 딱히 한 게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지금까지 이승에 붙잡아 둔 것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 비킬까.”
강혁은 엉덩이로 툭 하고 군의관을 밀었다.
군의관은 여전히 환자의 총상을 두 손으로 꽉 누르고 있었다.
아무리 강혁이 우수한 의사라 한들, 지혈하고 있던 것을 함부로 멈출 수는 없어서였다.
“손도 줘.”
강혁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군의관의 손마저 잡아다 옆으로 비키게 했다.
상처 안쪽으로는 서지셀과 타코콤을 비롯한 여러 지혈용 소모품들이 들어가 있었다.
까맣게 변해 있었는데, 이미 피에 젖으면서 이런저런 화학 작용들이 일어났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떼자마자 피가 왈칵하고 새어 나왔다.
“으.”
군의관은 피에 젖은 장갑을 잠시 내려다보다, 피가 나오는 것을 보고 움찔했다.
아무리 피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총알이 박힌 자리에서 튀어나오는 막대한 양의 출혈을 보면 초조해지기 마련이었다.
이것마저 극복하려면 정말이지 수없이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반대로 말하면 강혁은 가능하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이제 알았다. 자, 네가 눌러. 이렇게.”
강혁은 흘러나오는 피의 패턴을 보고는 이 구멍 어디쯤에 총알이 있을지 완벽하게 파악했다.
그에 따라 완성했던 계획도 조금 조정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강혁의 우수한 머리는 금세 미세한 조정을 해내었다.
손으로는 잭의 손가락 위치 및 모양까지 교정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상처를 누를 수 있게 해 주면서였다.
“메스.”
“네!”
그리곤 손을 내밀어 칼을 받아 들었다.
지이익.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절개가 들어갔다.
두 개의 총알과 약간 떨어진 부위였는데, 당연하게도 일상적인 절개 방향이나 위치하고는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잭과 다른 군의관은 절개가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렇게 들어가야지. 음?’
‘어……. 원래 이렇게 하는 건가?’
둘이 자신들의 느낌에 당황하는 사이, 강혁은 벌써 근육을 가르고 복막마저 가른 채 복강 안으로 진입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칼이 아니라 보비를 들고 있었다.
혈압도 낮긴 했으나, 상처 부위에서의 출혈이 이상할 정도로 적었다.
그 말은 곧 수술 시야가 더럽혀질 가능성이 적다는 얘기가 되었다.
‘일단 하나.’
강혁은 빠르게 총알이 박힌 곳을 확인했다.
여기 오기 전부터 예상했던 것과 같이 총알 하나는 대동맥에서 위로 올라가는 혈관 다발에 틀어박혀 있었다.
동맥이니만큼 피를 엄청나게 많이 흘려보냈을 터였다.
심지어 지혈제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흘러나오고 있을 지경이었다.
“핀셋.”
“아, 네.”
강혁은 아직 총알이 보이지도 않은데 핀셋부터 받았다.
‘뭐지?’
‘뭐여.’
군의관 둘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절개가 왜 거기였는지는 좀 의아했어도 어찌 되었건 지금까지 이루어진 술기는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살려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핀셋?
대체 왜?
설마 지금 들어가 있는 지혈제, 그러니까 그나마 출혈을 절반 이상 줄이고 있는 지혈제를 냅다 빼고 시야를 확보하려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죽을 텐데…….’
‘그거 하기 싫어서 당신 부른 거라고…….’
현재 미 함대 그리고 국군 함대에서 백강혁 호출 프로토콜의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부상 당시 현장에 있던 요원 또는 가장 먼저 환자를 상태를 확인한 의사의 판단상 지금 당장 죽지는 않았으나 현대 의학의 한계로 죽을 수밖에 없을 거 같을 경우, 별도의 처치를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강혁을 부를 수 있었다.
당연히 처치를 하던 도중 해당 의료진들의 역량을 벗어났다고 판단이 될 때도 그랬다.
지금 이 환자의 경우엔 전자에 해당했다.
아무래도 현장 의사가 보기에 죽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된 케이스이기에 사망 확률이 더 높았다.
‘모, 못 보겠는데.’
‘애초에 이 사람도 사람인데 기적을 바란 게 이상한 일이지…….’
둘은 두 눈을 저도 모르게 질끈 감았다.
기적은 둘이 완전히 믿음을 잃었을 때 일어났다.
강혁은 핀셋을 든 손 말고, 나머지 손을 이용해 켜켜이 쌓여 있던 지혈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지혈제에 의해 조금 위치가 틀어진 총알 끝이 보였다.
물론 총알이라고 생각하고 봐야 총알인 것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미세한 크기만이 보일 정도였다.
톡.
강혁은 그걸 잡아 빼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고 있던 지혈제의 위치를 변경해, 총알이 빠져나오면서 생긴 틈을 메웠다.
그 때문에 눈을 감았다 뜬 사람들로서는 뭐가 바뀐 건지 즉시 눈치채지 못했을 지경이었다.
‘뭐야.’
‘뭐 한 거야.’
‘아……. 그냥 눌러 봤나?’
‘근데…… 저건 뭐지.’
아무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총알만 하나 덜렁 튀어나와 있었다.
쨍.
그마저도 강혁이 쇠로 된 바구니에 총알을 떨어뜨려서 눈치챈 상황이었다.
소리가 아니었다면 아마 뭐가 변했는지 이 둘은 인지하지 못했을 터였다.
“어?”
“어…….”
“쉿. 이제부터가 더 중요해.”
“아, 네. 죄송…….”
쇳소리에 놀란 둘이 눈을 크게 뜨자, 강혁은 손을 흔들어 조용히 시켰다.
그리곤 모스키토를 집어 들었다.
‘다친 혈관은 두 개. 위는…… 부분 절제술 들어가야 해.’
아직 빠져나오지 않은 총알은 위를 반파시킨 마당이었다.
사실 전투 손상에 있어서 그리 흔한 부위는 아니었다.
갱끼리의 전투였다면야 몰라도, 작전 중인 용병이나 군인들은 다 방탄조끼를 입고 있기에 그랬다.
강혁은 아마 RPG로 인한 화상으로 인해 방탄조끼를 벗어 던진 까닭일 거라 판단했다.
어차피 불붙은 방탄조끼는 방탄 능력을 상실할뿐더러, 불에 타기 시작하는 순간 화상의 원인이 되어 벗어 던지는 것이 원칙이기에 그랬다.
하여간 방탄조끼로 괜히 복부를 가리는 게 아닌 만큼, 환자의 부상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모스키토 하나 들고 대기. 내가 손 내밀면 바로 줘.”
“아, 네.”
해서 강혁은 그로서는 드물게 심호흡을 한 후, 심지어 간호 장교에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움직였다.
혈관 다발을 붙잡기 위해, 지혈제를 치우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왈칵.
지혈제의 위치가 무너지자 곧장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잘려 나간 혈관은 이래서 무서웠다.
장기 같은 경우는 그래도 지혈제를 쏟아부으면 어느 정도 멈추기도 하지만, 혈관은 그렇지가 않았다.
혈액이 흐르는 길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끼리릭.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관 하나는 순조롭게 잡혔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현저히 줄었는데, 그 순간 실수가 있었다.
“아.”
위에서 상처를 누르던 잭의 손에 힘이 좀 과도하게 들어가면서, 지혈제의 위치가 한 번 더 흔들린 것.
“아, 이런 시발.”
덕분에 강혁은 바로 다른 혈관을 잡으려고 집어 들었던 모스키토를 내려놓아야만 했다.
이제부터 다시 혈관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