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90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904화(904/1120)
904화 단기 노예들 (3)
마취과 군의관은 강혁이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술 다 끝났는데 왜 갑자기 다시 뛰어가라고 하는 걸까?
다른 놈 같았으면 확 무시하겠는데, 방금 강혁이 해낸 수술을 본 참이라 그러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강혁은 자신이 수술한 환자가 아니라, 한참 전에 수술 끝내고 누워 있는 미군 환자를 보고 있었다.
‘설마 그냥 이렇게 본 것만으로 뭘 알아냈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미군 환자를 돌아보고 있으려니, 강혁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어.”
“어어.”
“어어어?”
주변에 있던 모두가, 정말 모두가 당황한 얼굴이 되고야 말았다.
잭은 물론이거니와 파키스탄에서 함께 작전에 나섰던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멱살이라니?
군대라고 하면 폭력적인 집단 같아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특히 군의관 같은 특수 직군에 계급도 위관급의 장교라면 더더욱 익숙할 수가 없었다.
“가라면 가. 환자 죽어.”
“아니, 무슨 환자가…….”
“저 환자. 머리만 덜렁 해 놨지? 영상은 찍었어?”
강혁은 머릿속으로 남은 시간을 가늠하면서, 다행히 조금은 더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물었다.
마취과 군의관은 이 새끼가 왜 수술한 사람한테 안 그러고 나한테 이러나 싶었지만, 일단 타깃이 된 게 자신인 데다가 전적으로 협조하라는 말까지 들은 참이라 일단 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잘못한 건 없었다.
오히려 과하게 검사한 덕에 머리 수술도 빨리할 수 있었던 케이스였다.
“단순 뇌진탕으로 신고됐던 환자입니다. 어지럼증도 있어서…… 담당 군의관이 CT 찍도록 본선에 이송했고 그 덕에 뇌출혈 발견해서 급히 수술했습니다.”
“머리 말고, 딴 데는?”
“딴 데는…… 엑스레이는 찍었죠.”
전신마취를 하려면 흉부 엑스레이 정도는 찍어 봐야 했다.
혹 폐렴이 있거나, 다른 문제가 있는 경우엔 커다란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였다.
일반적인 케이스에서는 그것만 해도 충분할 터였다.
설마하니 다른 문제가 더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외상은 절대로 만만히 여기면 안 됐다.
인체는 생각보다 강하지만, 또 어이없을 정도로 연약하기도 했다.
“흉부?”
“네.”
“지금 다시 찍어 보면 그런 말 안 나올걸.”
“무슨…….”
“이제 시간 더 없어졌어. 저 환자 복부 천공이야. 부딪치면서 구멍 났다고.”
“네? 천공이면…… 흉부 엑스레이서도 확인이 되는데요?”
마취과 의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특히 서서 찍게 되면 공기가 복강의 상부로 올라오면서 원래 보여야 한 간을 아래로 밀어 내리는 것이 흉부 엑스레이의 하부에서 확인되었다.
하지만 천공이 일어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거나, 장간막이 구멍을 교묘히 틀어막은 상황에서는 이러한 소견이 확실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확신할 수는 없지. 장간막이 괜히 있어?”
“그…….”
마취과 의사 또한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해서 강혁이 장간막을 언급하자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게다가 그 순간 환자의 바이털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심장박동 수가…… 오릅니다.”
누가 건드리거나 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머리 수술하고 재워 둔 환자를 누가 건든단 말인가.
아마 후려치는 수준이 아니고서야 건든다고 해도 변화도 없을 터였다.
“천공만 있는 게 아냐. 출혈도 있어. 구멍이 그냥 나진 않으니까. 이래도 여기 서 있고 싶냐?”
“아……. 가, 가겠습니다.”
“그래. 바로 수술 준비해. 담당 간호사! 나랑 같이 환자 옮기자고! 잭, 너도 멍하니 있지 말고 일로와!”
“네, 네!”
백 마디 말보단 모니터의 알람 소리가 병원에서는 훨씬 위력이 강한 법이었다.
복강 내부의 상태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갔는지, 심장박동 수가 오른다 싶더니만 곧 혈압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모니터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느슨해져 있던 중환자실 공기가 팽팽히 당겨졌다.
그나마 강혁이 아까부터 수술 타령을 해 댄 덕에 얼 타는 인간은 없었다.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이들이라서 더더욱 그랬다.
드드드.
곧 담당 간호 장교는 환자의 모니터링 기기를 휴대용으로 갈아 끼웠고, 덕분에 강혁은 침대를 끌고 방금 걸어왔던 복도를 따라 달릴 수 있었다.
복도가 워낙 좁아서 마음이 더 급했다.
여기서 일이 벌어진다면, 대응이 어려울 테니까.
“잠깐!”
나쁜 생각은 잘 빗나가지 않는 법이었다.
특히 환자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환자의 다리 쪽에서 침대를 밀던 강혁은 인상을 쓰며 발을 멈추었다.
“엇.”
가공할 만큼의 완력을 소유자 아닌가.
그 순간 침대 전체가 멈췄다.
앰부를 짜고 있는 잭과 간호 장교 둘이 침대 앞쪽에 있었음에도 그랬다.
“왜, 왜 그러세요?”
잭의 물음에 강혁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주사기를 꺼내며 답했다.
다른 손은 환자의 발등 쪽에 가 있었다.
“다리 쪽 혈류가 줄어들었어.”
“네? 혈압은…….”
“혈압 다리로 재고 있냐? 지금 이 환자 피 어디서 나?”
“아…….”
“그렇다고 해서 이만큼이나 복압이 올라가는 건 이상한 일인데.”
강혁은 이불과 함께 환자복을 들췄다.
그러자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가 눈에 들어왔다.
워낙에 근육질이었던 터라 풍선만 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한눈에 배가 퉁퉁해졌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결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이만큼 출혈이 있었으면…… 혈압이 이 정도로 유지될 수 없어.’
배가 부풀어 오를 정도의 내출혈이라면 일단 여기 있는 의료진들이 놓쳤을 리도 없었다.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빡빡하게 규정을 따르는 집단이지 않은가.
시간에 맞춰서 혈액검사니 뭐니 다 나갔을 텐데, 이걸 놓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뭘까.
“잭!”
“네, 네!”
“튜브, 발루닝(Ballooning)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해!”
“네? 아, 네! 어……. 아, 이거.”
“터진 거야? 아니면 바람만 빠졌어?”
“일단 바람 넣어 보겠습니다!”
“빨리해!”
“네!”
기관 삽관을 할 때 튜브에 풍선이 없으면 밖에서 넣어 주는 공기 중 상당량이 튜브와 기도 사이의 공간을 통해 밖으로 다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풍선을 다는데, 풍선에 바람을 가득 채우는 걸 발루닝이라 했다.
이렇게 하면 기계 호흡을 통해 공기를 마구 집어넣어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오로지 의료진이 타깃으로 하는 폐로만 공기가 가기 마련이었다.
이처럼 중요한 물건이기에 튜브의 풍선은 꽤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그렇다고 항상 완벽한 건 아니었다.
불량품이 있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삽관 과정에서 환자의 이나 아니면 후두경 등에 걸려 찢기거나 약해지는 수도 있었다.
뭐가 되었건 지금은 그게 찢어지면서 새어 나온 공기가 위로 넘어가고, 위로 넘어간 공기가 이미 있는 천공을 통해 복강을 채우는 상황이 의심되었다.
“이런, 바람이 안 들어갑니다!”
“그럼 갈아끼워!”
“네, 네! 튜브…… 튜브 줘요.”
잭은 마취과를 불러야 된다는 둥의 한심한 소리를 하진 않았다.
외상 외과 전문의로서 삽관 정도는 많이 해 보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여차하면 목을 째는 기관 절개술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 튜브가 없다는 점이었다.
“가, 가져오겠습니다!”
담당 간호사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수술실을 향해 달렸다.
그사이 강혁은 주삿바늘로 환자의 복강을 푹 하고 찔렀다.
저러다 내부 장기, 특히 배를 채우고 있는 소장 같은 것들이 다치면 어쩌나 싶겠지만.
이미 공기 등 이물질이 채우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극히 적었다.
게다가 장은 가만히 있는 장기가 아니라 움직이는 장기 아닌가.
바늘 끝에 닿더라도 알아서 도망가기 마련이었다.
이걸 찔러서 구멍을 내려면 어지간히 재수가 없든지, 아니면 의도가 있든지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했다.
슈우우욱,
그렇게 복강에 구멍이 나자마자 공기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창백해져 가고 있던 환자의 발등의 색도 돌아왔다.
확실히 출혈 때문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출혈이었다면, 이 복도에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을 테니까.
아무리 강혁이 이 자리에 있다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후.”
“휴.”
잭은 강혁의 뒤를 따라 한숨을 쉬고는, 헐레벌떡 뛰어갔다 온 담당 간호사에게 튜브를 받아다 환자 목에 꽂았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군인, 그중에서도 현재 작전 중인 지역에 파병 나온 군인이지 않은가.
살집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 다시 가자.”
“네!”
덕분에 강혁과 일행은 빠른 시간 내에 재정비를 마치고 수술실로 향할 수 있었다.
수술실에 있던 마취과 의사는 서둘러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이털이 흔들리는 걸 본 참이지 않았나.
거기에 더해 담당 간호 장교가 혼비백산해서 뛰어오는 꼴을 보고 있자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 옮기자.”
“네.”
해서 강혁은 준비가 한창인 수술실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수술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바로 걸어.”
“네.”
강혁은 환자를 수술대 위로 옮기자마자 마취과 의사를 돌아보았다.
마취과 의사는 아까 강혁의 말을 안 믿으려고 했던 원죄가 있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정말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오기까지 했다.
“잭, 너는 손 닦고.”
“네, 네. 저, 근데…….”
“근데 뭐.”
잭은 손 닦으러 다시금 수술실 밖으로 향하는 강혁을 불렀다.
마침 급한 상황은 넘긴 참이었던지라, 강혁은 화를 내는 대신 잭을 돌아보았다.
잠시 친절한 의사를 연기하겠다는 다짐을 잊어서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이미 잭은 강혁에게 어느 정도 경도된 참이었다.
‘이 와중에도 질문은 다 받아 주시는구나.’
잭은 제멋대로 좋게 해석한 후, 말을 이었다.
“영상 검사는 안 해도 될까요? 구멍이…… 출혈이랑 어디서 나는지 대강이라도.”
“아, 영상. 도움은 되겠지. 근데 그렇게 도움이 될까? 이 비슷한 케이스 겪어 봤을 거 아냐. 도움이 되던?”
“딱히 그렇지는 않았죠.”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 출혈이 있는지 없는지 애매한 상황에서는 분명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영상 의학적 검사가 만능처럼 쓰이는 시절이 왔지만, 사실 영상 검사라는 게 우리 몸의 그림자를 보는 거 아닌가.
한계는 명확했다.
“그래, 이미 우리는 공기가 마구 새고 있다는 걸 확인했어. 이 상황에서 습관대로 영상 찍는 건 시간 낭비야.”
“아…….”
“그 시간 동안에도 환자는 죽어 간다고. 명색이 외상 외과 의사고, 군의관인데 그래서야 되겠어? 이 환자들 놀다가 다친 것도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흰소리 그만하고 따라 들어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