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905)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905화(905/1120)
905화 단기 노예들 (4)
강혁은 잭과 함께 수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갈색 베타딘 소독액으로 급히 닦은 환자의 몸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그나마 아까 튜브를 바꿔 낀 데다가 강혁이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 둬서 그런가 배가 더 부풀어 오르진 않았다.
다만 주삿바늘을 통해 검불은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당연히 좋은 소견은 아니었다.
“위치가 이런데 피가 나온다라…….”
“아주 적은 출혈은 아닌 모양인데요?”
“원래 장기가 터지거나 하면 그럴 수 있지. 게다가 구멍 난 곳에서 위액이 흘러나오면 더 나빠질 테고.”
“그럼…….”
“뭐가 됐건 빨리 열어야 해.”
“네.”
해서 강혁은 급히 드랩을 마치고 손을 내밀었다.
아까부터 함께 수술실에 있던 간호 장교가 메스를 건네주었다.
안정적이었던 환자가 갑자기 안 좋아진 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침착해 보였다.
배 타면서 워낙 이런저런 꼴을 많이 보기도 했겠거니와, 애초에 파병 오기 전에도 험한 병원에 있던 덕일 터였다.
원래 외상 외과 측 간호사들은 어지간한 거로는 눈도 깜짝 안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산전수전 다 겪었단 얘기였다.
지이익.
강혁은 그렇게 받은 메스로 환자의 배를 슥 하고 그었다.
아까와는 달리 정중앙에 그었다.
배꼽을 휘돌아 아래로 향하는 꽤나 긴 절개였다.
외상에서 어디에 구멍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야 자연스러운 절개였지만, 아마 강혁을 잘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왜 저러나 싶었을 터였다.
강혁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 절개를 선호했으니까.
자기 실력에 대한 확신 덕이기도 했거니와, 항상 수술 후의 환자 삶을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기 손상이 문제야. 구멍이야……. 십이지장하고…… 위. 이 두 군데에 있을 거고.’
십이지장이야 장이니 터질 수 있다고 하지만 위는 꽤 두꺼운 장기 아니던가.
해부하다가 위를 보면 여기에 어떻게 구멍이 나고 또 터지기까지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위는 다른 복강 내 장기에 비해 안에 든 내용물이 공기를 포함해 꽤 많은 편이었다.
때문에 외부에서 둔탁한 충격이 갑자기 가해질 경우 손상을 받기도 더 쉬웠다.
거기에 위액이라는 산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만큼 손상이 발생하고 나면 더 커다란 손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당겨.”
“네.”
게다가 강혁은 가공할 정도로 예민한 눈과 손의 감각으로 위 근처에서 꾸룩 거리는 공기 움직임을 감지한 참이었다.
대체 언제 그랬냐고 한다면, 바로 튜브가 터지면서 갑자기 공기가 구멍 사이로 뿜어져 나올 때였다.
실제로 배를 열고 난 후, 구멍 난 곳을 찾을 때 쓰는 방법이기도 했다.
복강을 물로 채우고 공기를 주입하면 구멍 난 곳에서 공기 방울이 보글거렸다.
“거기, 거기 더 당겨 봐.”
“네.”
그러니 문제는 구멍의 위치가 아니라 지금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출혈의 원인이 되는 광범위한 장기 손상이었다.
그것만큼은 강혁도 어디가 어떻게 되었을 거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어려웠다.
해서 배를 쭉 갈라 연 것이었다.
덕분에 시야는 시원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마침 잭도 강혁에게 경도된 데다가,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오히려 머리가 활성화되어 평소보다 더 좋은 기량을 발휘하고 있어 더더욱 그랬다.
슈우욱.
전문의답게 말도 없었는데 이미 석션으로 기왕에 흘러나온 피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당연히 장기 손상은 최대한 피하면서였다.
좀 애매한 부위는 젖은 거즈로 살며시 눌러 닦아 시야를 계속해서 확보해 주었다.
강혁으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일단 간…… 간이 약간 찢겼네.”
“봉합할 정도는…….”
“응. 눌러 두자.”
“네.”
우선 확인해야 하는 장기는 간이었다.
핏덩이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장기인 데다가, 단단한 장기라 타박상에 의해 찢어지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이번에도 그렇지 않은가.
대략 3cm가량이 찢겨 있었다.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었다.
간은 회복력이 강할뿐더러, 이런 종류의 출혈은 혈관 손상이 아니라 그저 눌러 두는 것만으로 충분히 회복될 가능성이 컸다.
복강 안에 피가 차면 어쩌냔 질문도 필요 없었다.
어지간한 양의 출혈은 배액관을 통해 빼낼 수 있었고, 또 복강 내에서 자연히 흡수되기도 하니까.
“일단 여기가 주된 출혈 부위였네.”
“네.”
강혁은 젖은 거즈로 눌러 주자마자 출혈량이 현격히 주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잭 또한 눈이 없는 게 아니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강혁의 손은 십이지장 쪽으로 이동했다.
예상대로 작지 않은 구멍이 나 있었다.
단면을 살펴보니, 원래도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수병으로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배 위에서 생활하는 건 제아무리 건장한 청년에게라도 고된 일이었다.
오죽하면 원양어선 한번 타면 떼돈 번다는 말이 있겠는가.
워낙에 힘든 데다가, 이처럼 자칫 잘못하면 사고가 나기도 했다.
배가 군대 중에서도 규율이 가장 엄격한 곳이 되는 게 그리 무리스러운 일이 아니란 얘기였다.
나이에 비해 심각한 위궤양을 앓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강혁은 잠시 환자의 기저 질환을 생각하다가, 이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실.”
“아, 네.”
간호 장교도 스트레스 상황 때문에 확 각성이 된 참이라 요구에 즉각 응할 수 있었다.
장미의 보조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는 않아도 나름 굼뜬 느낌은 아니란 얘기였다.
푹.
강혁은 터진 십이지장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말이 구멍이지, 사실상 찢어진 상처라 보면 되었다.
주변이 궤양 때문에 약해져 있다는 걸 감안해서 보강하는 방식으로 봉합한다고 해도 그리 어렵진 않았다.
동시에 십이지장이 좁아지는 느낌도 없었다.
가히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간 만에 십이지장이 붙었다.
‘와……. 구멍을 한 번에 찾은 것도 신기한데…… 이렇게 빨리 봉합을 해? 이건 마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잭은 강혁이나 그가 이끄는 팀원들에 비하면야 당연히 한참 후달리는 실력이었으나, 그래도 외상 외과 전문의 중에서 상위에 걸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이 비슷한 수술을 한 적도 있고, 이런 수술이 얼마만큼의 난이도를 지니는지도 알았다.
‘마치…… 미리 보고 계획대로 하는 느낌이지 않나?’
실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렇게 자연스레 수술을 이끌어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적어도 잭이 생각하기엔 그랬다.
인간의 반사 신경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강혁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것처럼,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너무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자, 다시 실.”
심지어 십이지장에 났던 구멍을 메우자마자 위에 난 구멍을 찾았을 지경이었다.
아니, 찾았다는 말은 좀 어색했다.
단 한 번도 헤매지 않았으니까.
마치 아까 둔 물건을 한 번에 슥 하고 꺼내듯, 그러니까 당연히 거기 있을 거라는 듯 손을 움직였다.
‘뭐야? 이거 뭐야.’
강혁은 잭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상황이 급했으면 그냥 무시했을 터였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보이는 게 많았던 강혁은 무시하는 데 익숙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얼추 정리가 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워낙 빨리 수술에 들어온 참이라 환자 상태가 극악으로 치닫기 전에 미리 처리가 된 참이었다.
여유가 있다는 소리였다.
“어떻게 찾았나 그 생각하고 있지?”
“아……. 아, 네. 교수님. 고견을…….”
“별거 아냐.”
“네?”
이게 별게 아니면 세상에 특별할 일이 있을까.
잭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조아렸다.
모든 의사는 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길 꿈꾸기 마련이었다.
그만큼 노력을 기울이냐는 또 다른 얘기이지만, 하여간 잭의 위치까지 왔다면 어느 정도 노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게다가 외상 외과 의사는 눈앞에서 환자를 살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잃기도 했다.
그 순간마다 내가 실력이 좀만 더 좋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와 자책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일단 아까 배가 부풀어 오를 때, 그때가 중요해.”
“배가…… 아, 공기가 새고 있으니까…….”
“그래. 그때 소리가 어디서 나고 있는지 복강 내의 공기의 대류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들을 수 있지.”
“그게, 되나요?”
소리가 들렸던가 싶었다.
귀를 배에 대거나 청진기를 가져다 댔다면 들렸겠지만, 그럴 시간도 경황도 없었다.
복강 안의 공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대체 뭔 기구를 써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왜 그걸 못하냐고 타박했겠지만, 강혁도 이제는 다년간의 교습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깨달은 참이었다.
왜 얘기가 나 천재인 걸로 이어지나 싶겠지만, 하여간 그걸 통해 남에게 설명할 때는 참 많이 참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이는 건 어렵지. 하지만 듣는 건 청진기 늘 가지고 다니면 되잖아. 나 봐.”
강혁은 들고만 다니지 쓰지는 않는 청진기가 들어 있는, 아까 벗어 둔 가운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
“그리고 더 중요한 거.”
“네.”
잭은 잠시 뭔가 알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강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이지 금과옥조와 같은 말들이지 않은가.
이만한 대가의 말 한마디는 때에 따라 그 어떤 책이나 논문보다 더 소중했다.
잭이 보기엔 지금이 그때였다.
“내가 아까 발에 손대고 있다가 압 사라지는 거 느끼자마자 뭐 했지?”
“어……. 배를…… 배를 보셨어요.”
“그리고?”
“다른 손으로 배를…… 아.”
“그래. 배를 만져 보면 압력이 확 올라올 때 어디서 올라오는지 더 잘 느껴져. 그래서 일부러 바로 앰부 멈추라고 안 한 거야.”
“그렇군요. 아……. 그럼 그때 이미.”
“그래.”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봉합 기구를 내려놓았다.
어느새 위에 난 구멍에 대한 봉합이 끝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수술 끝이라고 하기엔, 간 말고 다른 장기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복강을 찰랑찰랑 채우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마취과 쪽, 그러니까 모니터를 바라보았는데 다행히 안정적이었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수술실로 밀고 들어온 덕이었다.
“어디서 피가 나는지 볼까.”
“네.”
덕분에 피에 젖은 장을 헤치면서도 강혁이나 잭은 여유로울 수 있었다.
일단 피가 나오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고, 바이털도 극히 안정적이어서였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천공도 다 막은 참 아닌가.
여기서 서두르는 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옳지, 여깄네.”
머지 않아 강혁은 장으로 들어가는 혈관 일부가 손상된 것을 확인했다.
크기가 크지 않아서 그대로 묶으면 될 일이었다.
“여기도…… 이건 지지고 누르겠습니다.”
“그래.”
그사이 잭도 한 건 올렸다.
그렇게 몇 개를 지지고 묶고 하다 보니 피가 어느새 거의 멎었다.
강혁은 거즈로 누르기만 한 곳에 대해서만 서지셀 등의 지혈제로 대체하고는 배를 닫았다.
하나 살리러 와서 둘을 살리게 된 순간이었다.
‘개멋지네.’
동시에 추종자 하나를 만들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