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917)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917화(917/1120)
917화 공사 시작합니다 (3)
“아, 아아아!”
쇼 닥터 얘기를 꺼냈던 데니스는 양쪽 관자놀이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강혁이 그의 단단한 두 주먹으로 꾹꾹 눌러 재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태화 측 인원과 공무원들은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와……. 다 커서 저런 걸 당하네.’
‘근데 진짜 아프겠다…….’
‘그렇게 왜 쇼닥 같은 단어를 입에 담냐고.’
‘그런다고 사람을 저렇게 패? 의사가?’
‘백 교수 성질 알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는 유명하잖아요.’
‘헛소문이라고도 들었는데…….’
‘그거야…… 언론 플레이 하신 거고.’
‘진짜 쇼닥은 쇼닥이네.’
심지어 이렇게 대화를 나눌 동안에도 데니스는 강혁의 손아귀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밥 왔습…… 뭐지.”
그를 구원한 것은 한석준이었다.
그는 근처 식당에서 제일 한국인 입맛에 맞는, 그러니까 익숙할 법한 음식을 양손 가득 쥐고 있었다.
케밥이었다.
한식 비슷한 것은 때려죽여도 먹을 수가 없고, 다른 식당에서는 무조건 카레를 먹어야 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다들 여기 온 지 며칠은 지난 참이라 카레는 제발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던 중이었다.
“아, 왔네. 먹으면서 하죠.”
강혁은 그런 한석준을 보고 나서야 데니스를 풀어 주었다.
그럼에도 데니스는 잠시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음.”
태화 측 임원이 그 모습을 잠시 더 보고 있다가, 아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백 교수님.”
“왜요.”
“홍차에 대한 이점도 설명해 주실 거라 했는데……. 그럼 뭐 홈쇼핑 같은 곳에 나가실 거라 이건가요?”
“한국 갈 일이 없을 텐데 어떻게 나가요.”
“그럼……?”
“그냥 식당 가서 얘기해 주지 뭐.”
“식당……?”
임원은 물산 사람이기는 하지만, 마케팅 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인간이었다.
애초에 태화에서 사장단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키운 진짜배기 임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화는 사장으로 점 찍은 사람인 경우엔 부서마다 돌리면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게 만들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혹독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익숙해지려나 싶으면 새로운 업무를 배워야 했으니.
하지만 그게 다 끝나고 나면 비로소 시야가 넓고 대강의 업무에 이해도가 높은 인재가 탄생했다.
“그럼 그 식당 예능…… 예능이 되겠죠.”
“그렇죠. 맨날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거.”
“자주 보십니까?”
“자주 볼 수는 없는데…… 쉴 때는 가끔 보죠.”
“거기에 아예 백 교수님이 하루나 이틀 나와 주시면 어떻습니까? 전에 보니까 제육볶음도 정말 잘하시던데.”
“음?”
요리를 하라고?
쇼닥이라고 불렸을 때처럼 화를 내야 하나.
강혁은 잠시 고민했다.
임원은 그런 강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처럼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어차피 저희 호텔 태화의 수익금 일부는 병원에 기부할 예정입니다. 알고 계시죠?”
“그거야, 뭐……그렇죠.”
“만약 이 예능이 터지면 확실히 관광객이 늘 겁니다. 홍차에 대한 바이럴도 가능하겠죠.”
“네, 저도 그거 생각하고 꺼낸 말이긴 한데. 그 피디 양반이 여길 와 주냐는 다른 얘기겠지만.”
“저희가 스폰 하고, 백 교수님이 나와 준다고 하면 100% 성사됩니다.”
“100%?”
기업 하는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임원은 원래 장담하지 않는 법이었다.
임원 회의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본 사람은 알 터였다.
이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얼마나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는지.
강혁은 그 비슷한 경험을 병원 과장 회의에서 겪은 바 있었다.
또 한유림을 통해 책임질 일이 많은 사람들이 대개 어떻게 행동하는지 들은 바 있었다.
그래서 놀라웠다.
‘이 양반 봐라? 나도 아직 이건 그냥 해 본 얘기였는데?’
계획이 다 있는 건 맞았다.
하지만 100% 확신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강혁은 누군갈 무너뜨리는 건 자신이 있어도, 무언가 만들어 내는 건 좀 자신 없었으니까.
의사가 할 소린가 싶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혁의 본성과 연관된 일이었다.
“어떻습니까? 제가…… 이런 말 하면 자랑 같지만 태화 물산이 지금처럼 고급 건설사 이미지를 얻게 된 건 거의 제 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맞습니다, 교수님. 신 이사님 마케팅 실력은…….”
“자네는 가만히 있고.”
“아, 네.”
신 이사는 놀라고 있는 강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게 자기 어필까지 하고서였다.
“그런 제가 듣기에도 그 방송, 괜찮아 보입니다. 나 피디 연출력이야……. 자타공인하는 것이고, 중요한 건 출연진인데 거기에 백 교수님까지 나와 주시면 뭐 화룡점정이죠.”
“그렇습니까?”
“네. 아마 방송 직후 바로 적자에서 흑자 전환도 가능할 겁니다. 실제로 그 방송 이후로 방송에 나왔던 지역으로 관광이 크게 늘었다는 통계도 있어요. 이건 비단 우리나라뿐만의 얘기가 아니라……. 한류가 통하는 전 지역에 해당하는 얘깁니다.”
“흠.”
잠시 홍차 얘기는 괜히 했나 싶었다.
의사가 되어 가지고 방송에 나간다니.
그것도 명의 같은 다큐가 아니라 예능이라니.
아마 옛날의 강혁이었다면 단숨에 거절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강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유연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절박해져서였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입소문은 날 거야. 하지만…….’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이곳 사람들은 이미 100년간 고통받았다.
여기서 더 기다리라는 말을 하는 게 온당할까?
강혁은 하루빨리 이들에게 다른 삶을 선사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소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해 리프를 내쫓지 않았나.
그런데 고작해야 방송 출연이 부담돼서 고사를 한다니, 앞뒤가 안 맞는 얘기였다.
“나가죠.”
“아, 이렇게 바로요?”
“네. 더 질질 끌 거 있습니까?”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바로 추진하죠. 호텔 완공되면 바로 방송 나갈 수 있게…….”
“완공에는 얼마나 걸릴까요?”
“최신 공법을 이용할 예정입니다. 넉넉잡아도 3개월이면 됩니다.”
“그만한 장비는 있고요?”
“바로 이 근처에서 태화 물산이 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 그렇지. 맞네.”
강혁은 신도시 부지를 떠올렸다.
국내 유수의 건설사들은 다 나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규모의 개발이었고, 그걸 따내서 지지율이 더 오른 것이 박성민 대통령이었다.
하여간에 먹거리 찾는 데는 도가 튼 대통령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덕분에 중국의 일대일로에 거슬리는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그건 또 알아서 잘 처신했을 터였다.
‘중국은 큰 나라죠. 너무 가까이하는 것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리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은 아닙니다.’
한유림이 장관 시절 이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들었다.
‘뭐……. 내가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지.’
강혁이 거의 유일하게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박성민이지 않은가.
그에게는 아직 하자가 보이지 않았다.
강혁처럼 날카로운 사람에게 이만한 평가를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알겠습니다. 바빠지겠군요.”
해서 강혁은 흔쾌히 웃으며 케밥을 마저 해치울 수 있었다.
꽤 맛있었기에 한석준에게 칭찬까지 건네주었다.
한석준은 대한민국 외교부 4급 공무원이 고작 밥 잘 시켜서 잘했단 칭찬을 들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뿌듯했다.
상대가 백강혁이어서였다.
‘아냐, 아냐. 이러다 한유림 꼴 난다.’
뒤늦게 후회하긴 했지만, 이미 늦은 참이었다.
그에게 백강혁은 단순히 나쁜 놈도 아니고 단순히 뛰어난 사람도 아닌, 달리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 한석준은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강혁의 요구를 결코 거부할 수 없을 터였다.
“돌아가지.”
“네.”
마지막 회의까지 다 마친 강혁은 데니스와 함께 병원으로 돌아왔다.
해가 진 다음이었기에 환자들은 다 가고 없었다.
수가 정말 많았는데 어떻게 또 다 본 모양이었다.
마른오징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더니, 과연 한국대학교 출신들은 달라도 달랐다.
“교수님, 또 나쁜 생각 했죠.”
“뭔 소리야, 인마. 뒤질래?”
“뒤진다뇨. 왜 갑자기 급발진이에요.”
“쇼닥이라고 한 거……. 난 잊지 않는다.”
“나쁜 뜻이에요? 쇼 잘하는 의사가 나쁜가?”
“말하면서도 나빠 보이지 않냐?”
강혁은 얘를 한 대 더 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숙소동으로 향했다.
제아무리 강혁이 강철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오늘은 좀 바쁘지 않았나.
수술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술만 해도 열 개도 넘게 했을뿐더러, 그 후론 회의에도 참석했다.
수월한 회의였다고는 해도 돈 얘기가 오갔고, 그전에는 협박이 오갔다.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
해서 강혁은 한숨과 함께 숙소동에 들어섰다.
거실엔 나머지 의료진들이 다 모여 있었다.
맥주를 한 캔씩 들고서였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휴식이 고프기 마련이니까.
“어, 왔어? 어떻게 됐어?”
늘어져 있던 한유림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래도 한 나라의 장관이었어서 그런가, 진료 외적인 일에도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재원이나 장미, 경원이 그저 더 편하게 누우려고 애쓰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잘됐죠. 포장 공사도 바로 시작할 거 같은데.”
“그래? 잘됐네. 확장까지는 어렵겠지?”
“그거 하려면……. 이 나라는 기둥뿌리 뽑힐걸.”
“하긴, 굳이 필요 없겠지.”
“그렇죠, 뭐……. 얼마나 아래 내려간다고.”
한유림은 잘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여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다시 강혁을 돌아보았다.
“아, 맞아. 아까 전화 왔는데.”
“전화?”
“응. 무안대 의대 동기라던데? 동기들이랑 연락하고 살았어?”
“하기는 하죠. 거의 안 해서 그렇지.”
“하여간 전화 왔어.”
“음. 뭐지?”
“여기 번호.”
한유림은 적어 둔 번호를 강혁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자 강혁의 얼굴이 묘해졌다.
아무래도 아는 번호인 듯했다.
‘이 새끼가…… 웬일이지?’
아마 강혁을 잘 알지 못했을 때 이 얼굴을 봤다면 도망갔을 터였다.
강혁 같은 사람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정말 무서우니까.
하지만 한유림은 이제 충분한 경험이 쌓인 참이었다.
‘반가워해? 친군가?’
그렇다고 놀랍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강혁에게 여기 있는 사람 말고 또 친구가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성격이 모나도 너무 모나지 않았나.
지금이야 그나마 사회화가 조금 되었다곤 하지만 예전엔 정말 죽이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무슨 뜻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냥 싸가지가 없어서였다.
그보다 어릴 땐 더 싸가지가 없었을 텐데 친구가 있어?
‘교수님, 뭐예요, 이거.’
‘그러니까, 나도 영문을 모르겠네.’
‘엿듣죠.’
‘어떻게 엿들어 나갔는데.’
‘데니스 있잖아요.’
‘데니스……?’
‘저도 궁금하네요. 도울게요.’
단지 한유림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두가 눈치챘다.
다들 강혁에게 시달린 세월이 워낙 긴 탓이었다.
그사이 강혁은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신호가 몇 번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면서였다.
“야, 1호!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