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938)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938화(938/1120)
938화 호우 경보 (3)
“어후…….”
강혁은 8시가 넘어가서야 눈을 떴다.
그러고도 한참을 이불 속에 꼼지락거려야만 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피로했다.
‘어제 진짜 개무리하기는 했나 보다…….’
강혁은 베개에 머리를 파묻으며 어제의 수술을 복기했다.
아니, 복기하려 했다가 포기했다.
단지 시도한 것만으로도 또다시 두통이 몰려와서였다.
해서 다시 고개를 돌려 발가락으로 커튼을 쳤다.
그러자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제 비가 좀 온다 싶더니만 하늘이 맑게 갠 모양이었다.
‘하긴 여기야…… 공기는 언제나 좋지.’
스리랑카가 이제 막 경기가 좀 좋아지고 있다고 해도 일단 돌아가는 공장이 그리 많지 않던가.
물론 새 차 비율보다 중고차 비율이 더 높은 나라인 데다가, 중고차라는 게 대한민국에서 흔히 떠올리는 중고차도 아니었다.
여기선 10년 탔다고 하면 현역을 넘어 젊은 차에 속했다.
20년은 넘어가야 아 이 형 차 적당히 타네 수준이라고 할까?
개인적으로만 보면 알뜰한 느낌도 들겠지만 아주 잘 관리된 것도 아닌데 20년 넘어가는 차량들이 길바닥에 즐비한 상황은 환경적으로는 재해였다.
그럼에도 공기가 좋은 건 섬이라서 그랬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바람이 매연도 이리저리 흩어 주었다.
그만큼 천해의 자연을 자랑하고 있고,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끝내준다는 뜻이었다.
‘여기가 진짜 이쁜…… 이쁜…… 뭐야 이거.’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보려는데, 뭔가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산 모양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약간 무너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서 쏟아진 잔해들이 길까지 닿아 있었는데, 다행히 여긴 일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데다가 다들 봉사 정신이 투철하기까지 해서 대강 치워진 느낌이었다.
‘어제 비가 진짜 많이 내렸구나?’
아차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밖으로 향했다.
씻지도 않았고, 츄리닝 차림이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힘쓰러 가는 길이니까.
“어, 일어났네?”
딱 나가자마자 강성지가 반겨 주었다.
녀석도 잘 잤는지 얼굴이 땡땡 부어 있었다.
“어. 언제부터 이런 거야?”
“7시? 비가 엄청 와서…… 사실 나는 제대로 못 잤어.”
“노인네는?”
“뻗었지. 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이제 곧 70이야.”
“하긴…… 어제 무리하긴 했지.”
강혁은 끙 하고 소리를 내고는 다시금 앞에 나와 있는 면면을 살폈다.
리처드와 재원 그리고 한유림이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어…… 닥터…….”
“노예입니다!”
“어, 응. 그래요…….”
해서 화를 내려는데, 노아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방금 소개한 것처럼 노예의 몰골을 하고서였다.
이 느낌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후줄근한 것이 어째 진짜 노예 같았다.
‘으음.’
황당한 마음에 화가 가라앉은 강혁은 우선 다들 모여 낑낑대고 있던 돌덩이를 밀어 치워 주고는 물었다.
“근데 리처드랑 1…… 닥터 양, 닥터 한은 어디 갔지?”
습관대로 부르면 못 알아들을 사람이 수두룩했다.
점점 병원 식구들이 늘고 있지 않은가.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별명으로 부르면 못 알아먹을 게 뻔했다.
“아, 네. 지금 자고 있을 겁니다.”
강혁의 말에 말 그대로 피곤에 절어 버린 사내 하나가 답을 해 주었다.
현지인이었는데 다행히 강혁이 아는 얼굴이었다.
트럭 기사 중에서 그나마 영어를 해서 로지스티션으로 뽑은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요?”
로지스티션은 팔뚝부터 걷는 강혁을 보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지도 지금 일어나서 나온 주제에 이렇게 성급하다니.
확실히 성질이 더럽긴 했다.
어떻게 봉사할 생각을 하고 실제로 실행까지 하고 있나 싶었다.
하여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것부터 막아야 했다.
“어어. 그게 어제 새벽까지 환자 봤어요.”
“새벽에? 내가 나올 때 환자 없던데.”
“현장에 있었잖아요. 저랑 같이…….”
“아, 1호랑 변…… 아니, 리처드.”
“네, 일단 수술은 거기서 했는데……. 비가 너무 와서요.”
해서 로지스티션은 어제 있던 일을 대강 설명했다.
덕분에 강혁은 화를 내는 대신 병원으로 향했다.
대체 병원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해져서였다.
“아이고…….”
딱 들어가자마자 우선 천막 쪽이 어수선했다.
환자 대기실로 만든 거라 얼기설기 만들어 둔 곳인데 여기서 밤을 새운 듯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미안한 마음이 드는 찰나에 강혁의 얼굴을 본 노동자들이 죄다 이런 식으로 인사를 건네 왔다.
강혁에게야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이들에게는 어찌 되었건 하룻밤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곳이지 않은가.
병원에는 환자나 직원들을 위한 난방 용품까지 있어, 천막 안은 훈훈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식의 대우가 온당한 것은 아니었다.
‘아……. 빨리 숙소도 새로 지어야 하는데…….’
그렇다 보니 강혁의 머릿속이 대번에 복잡해졌다.
‘내 돈을 더 태워? 아니, 아냐. 시드가 적어지면…….’
당장 든 생각은 역시나 기부였다.
하지만 강혁은 꾸준한 봉사를 원했다.
혼자만의 봉사가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할 수 있길 원했다.
특히 한유림처럼 온몸으로 따르고 있는 이의 노후는 책임져 줄 참이었다.
그러자면 어찌 되었건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누구한테 더 뜯지?’
보통 이렇게 좋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튀기가 어려운 법인데.
강혁은 여기서 누군가를 뜯기로 결심했다.
대상만 결정되면 망설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 근데 낼 만한 놈들은 벌써 냈는데…….’
하지만 태화니 정부니 하는 굵직한 곳들은 후원금을 다 낸 참이었다.
직접 돈으로 태우지 않았다면 공사비로 태우고 있었다.
거기서 더 내라고 해?
한두 푼이야 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관계가 이상해질 터였다.
강혁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별로 수혜도 못 받는 사람에게 막무가내로 돈을 뜯어내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서 우러난다면 또 다른 얘기가 되기야 하겠지만.
그치들이 또 마음을 우릴 거 같지는 않았다.
‘사골도 아니고……. 유튜브 통한 후원금도 이제 거의 한계치인 거 같은데.’
어쩐다 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다가왔다.
돈 줄 사람은 아니었지만, 용무가 급한 사람이기는 했다.
“아……. 어제, 그.”
“네,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심현익이라고 합니다. 이 근처에서 아이들 축구 가르치고 있어요.”
“네, 그러고 보니 얘기 들은 거 같긴 합니다. 사싯 때문에 여기서 계속 기다린 겁니까?”
“네.”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대를 살폈다.
이렇게 딱 보기만 해도 강혁은 상대의 상태를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잠을 아예 안 잤나? 아니, 쪽잠은 잔 거 같은데…….’
하여간 사싯에 대한 걱정은 진짜인 듯했다.
봉사자들이니 당연하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현지인을 사랑한다고 해도 이렇게 가족처럼 사랑하게 되는 건 드문 일이니까.
“아이 부모님은 어딨나요?”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부모 생각이 났다.
강혁이 기억하기로 사싯은 어제 이 감독 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았더랬다.
“아……. 그게, 부모님이 없습니다.”
“아, 그래요? 음.”
이상하다 싶더니만 고아인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 보면 더없이 커다란 비극이지만, 이 지역에 한정하면 그리 드문 비극은 아니었다.
사회적 안전장치가 미비한 데다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도 지극히 제한적인 이곳에서 죽음이 뭐 그리 대수일까.
대한민국과는 달리 죽음과의 거리는 무척 짧았다.
그만큼 일상에서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럼…… 아이 생활은요?”
“원래 일 도우면서 살았는데 제가 맡은 이후론 그냥 저랑 삽니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보통 사이는 아닌 듯싶었다.
이만하면 감독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같이 살다 보면, 정이 가기 마련 아니겠는가.
아마 모르긴 해도 이 감독은 사싯을 친자식처럼 여기고 있을 가능성도 컸다.
“그럼 같이 가죠. 아이 상태를 알아야죠.”
“네네, 그럼 좋겠습니다.”
해서 강혁은 감독을 대동한 채, 위로 향했다.
그사이 역시 병동에서 밤을 지새운 듯해 보이는 바루간이 다가왔다.
“저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
처음 왔을 때보다는 강혁을 보는 눈초리가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아니, 그렇게 표현하기보다는 의심하는 기운이 빠졌다고 할까?
녀석이 어떻게 보든 간에 강혁에게는 별 영향이 없기는 했지만, 하여간 이렇게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꽤 좋았다.
“안 될 거 있나. 가자.”
“네, 교수님.”
하여 강혁은 의료인이 아닌, 그러니까 딱히 병원에서는 도움 될 일이 없는 사람 둘을 데리고 병동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어제 신환이 꽤 와서 그런지 병동은 어수선했다.
간호 장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더 정신이 없었을 터였다.
“사싯이라고 어제 다리 수술한 애 어떻죠?”
“아, 네. 바이털 안정적입니다. 드레싱 준비할까요?”
“네, 드레싱 하면서 상처를 좀 보죠.”
“네.”
강혁은 그중 하나의 안내를 받아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아이는 병동 짬밥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창가에 있었다.
멍한 얼굴로 밖을 보고 있는데, 꼭 마지막 잎새라도 바라보는 듯했다.
‘하긴 축구 선수가 꿈이라는데……. 다리가 다쳤으니.’
강혁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아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근데 온전한 다리라도 축구 선수는 어려운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 모든 일에 재능이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운동만큼 재능이 미치는 영향이 큰 영역도 드물지 않던가.
강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축구 선수 몇을 떠올렸다.
싸움은 몰라도 축구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일단 다리를 좀 볼게. 너무 상심하지는 말고. 최선을 다했거든.”
“아, 네…….”
물론 이걸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이제 강혁도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눈치를 챙길 수 있었다.
특히 환자를 대면하고 있을 땐 더더욱 그랬다.
돌돌.
그런다고 아이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지지는 않았다.
강혁은 그런 아이를 뒤로하고 드레싱 한 것을 풀어 상처를 살폈다.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 보지 못했기에 조금 급한 마음도 들었다.
혹 마음에 안 들면 미안하기는 해도 여기서 풀고 다시 닫아 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최윤섭은 아침에 뻗어 있을 자격이 있었다.
“좋은데? 벌써 안정적이에요.”
“어, 그래요? 엄청 부은 거 같은데.”
“붓기야 하죠. 부러졌는데 그럼 안 붓나. 하지만 이 정도면…… 안정적이에요. 재활만 제대로 하면 뭐.”
“그렇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감독은 강혁의 말에 몸을 휘청였다.
정말로 걱정도 많이 하고, 기대도 많이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동네 꼬마에게 뭘 그렇게 많이 걸었을까.
강혁은 그게 궁금해 병동을 빠져나오자마자 물었다.
“근데 저 애가 정말 그렇게 잘해요?”
“잘한다니까요?”
바루간이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었지만, 강혁은 무시했다.
동네 클라스로 잘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조기 축구회 일등도 물론 대단하지만, 생활을 변하게 해 주진 않지 않은가.
“너한테 안 물었어. 감독님이라고 했죠? 얼마나 잘하는지 객관적으로 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