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95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952화(952/1120)
952화 너무 많은데? (2)
강혁의 상상은 당연히 그저 망상으로 끝날 뿐이었다.
이미 죽었을뿐더러, 강혁이 죽기 직전까지 패면 그 사람 상태가 원래 어땠건 간에 그냥 죽었다.
“저기, 저기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강혁의 속풀이일 뿐이었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그야말로 의미 없는 짓일 뿐이지만.
누구라도 이런 현장에 와서 본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대체 어떤 이유를 대야 이토록 무참한 결과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서 희생당한 이들은 대개 그들이 말하는 죄를 짓지도 않은 이였다.
지금 눈앞에 놓인 환자도 그랬다.
“머리가…….”
“병력은 자세히 청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겠지.”
머리가 드문드문 빠져 있었는데, 아예 싹 밀어 버린 상황이었다.
그 말은 곧 항암 치료 중인 환자란 얘기였다.
아무리 항암제의 콘셉트가 점점 암에만 특정하도록 바뀌어 가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전통적인 항암제가 쓰이고 있지 않나.
아마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암 환자의 이미지가 바뀌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이런 제기랄.”
강혁은 암 환자, 그것도 지금 당장 항암 사이클을 돌리고 있는 환자가 다쳤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동시에 불안해졌다.
딱 보니 무균실에 있었던 거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 해도 면역력은 크게 떨어져 있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이 사람이 과연 살 수 있을까.
‘검정…….’
강혁은 저도 모르게 트라이지 쪽을 바라보았다.
주인을 기다리는, 네 가지 색상의 스티커가 보였다.
그중 유독 눈에 밟히는 색이 있다면 역시나 붉은색과 검은색이었다.
나머지 초록색과 노란색은 별로 기준이 변하지 않는 편이었다.
애초에 초록색은 경상자고 노란색은 나중에 치료해도 별일 없을 거란 판단이지 않은가.
하지만 붉은색과 검은색은 누가 보느냐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제아무리 경험이 많은 의사라 해도 고민이 되었다.
자기 결정이 누군가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순간이었기에 그랬다.
“다른 환자는 더 없나?”
“아직…… 구조는 계속되고 있는데, 아예 경상이거나 아니면.”
“아, 그렇구나.”
강혁은 과연 아까보다 더 무너져 내린 모습을 하고 있는 병원을 돌아보았다.
가뜩이나 약해져 있기에 소방관들도 물 뿌리는 걸 저어하고 있었다.
덕분에 여전히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지옥을 연상케 했다.
그 뒤로 뿌옇게 보이는, 원래는 흰 건물이었으나 연기에 바래 회색빛이 된 건물은 거대한 무덤처럼 보였고.
“그럼 하여간 환자는 없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그럼 안으로.”
“아, 네.”
암 환자라는 꼬리표만 떼고 보면 상처 자체는 포기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해서 강혁은 환자를 끌고 안으로 향했다.
“으…….”
다만 환자 상태가 원래도 좋지 못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컨디션은 딱 죽기 직전으로 보였다.
아마 실제로도 그럴 터였다.
이렇게만 봐서는 무슨 암인지도 모르고, 병기도 모르겠지만 죽음에 한발 디딘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강혁은 자신의 손이 한 번이라도 닿은 사람이라면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아플 거예요. 참을 수 있어요?”
“으, 네……. 살려 주세요.”
게다가 이 환자도 자신의 삶을 아직 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비쩍 마른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강한 강력으로 강혁의 손을 쥐었다.
눈에도 생기가 돌았는데, 이렇게 되면 더더욱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해서 강혁은 다시 한번 안심을 시킨 후, 라인부터 잡았다.
혹 다른 환자가 오지는 않는지 천막 밖을 연신 힐끔거리면서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큰일이라고 해야 할지 구조 작업은 어째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뎌져만 가고 있었다.
지익.
강혁은 우선 부분 마취부터 한 후, 환자의 상처를 조금 연장했다.
그 덕에 잔뜩 찢겨 있던 다리가 더 열렸는데, 그 밑으로 스파게티 면처럼 풀려 버린 근육 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이걸 다 맞춰 주면 나중에 걷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강혁은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그럼 난 오늘 끝이야.’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해서 강혁은 조금은 미안해하는 얼굴로 환자를 바라보고는 우선 환자의 상처에 생리 식염수를 부었다.
“으, 으으.”
아무리 내부 감각이 피부보다 둔감하다지만 열린 상처에 그대로 물을 붓는데 통증이 없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이 환자는 암 환자다 보니 어지간한 마약성 진통제에는 내성이 생긴 상태였다.
때문에 반쯤 마취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주입하고 있는 페티딘도 그닥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금만 참아요.”
강혁은 사시나무 떨듯 하는 환자를 다독이며 물을 더 부었다.
그리곤 장갑 낀 손으로 상처를 닦아 내었다.
“으, 으으.”
통증도 통증이겠지만 느낌도 이상할 터였다.
누군가 자기 살이 아니라, 근육 쪽을 문지르고 있으니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생소한 통증에 이제 아픔이라면 신물이 날 만큼 겪어 봤다 여겼던 암 환자의 눈에서조차 눈물이 조르르 떨어질 지경이었다.
“좋아.”
강혁은 그와는 상반되는 반응을 보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좋다고 말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안쪽을 후벼 보니 생각보다는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아서였다.
해서 강혁은 베타딘 소독액으로 한 번 더 닦기만 한 후, 평소보다 거친 봉합을 이용해 상처를 빠르게 닫아 갔다.
“항생제 들어가죠?”
“네.”
예방적으로 항생제와 파상풍 주사까지 놓고서였다.
일반인들도 더러운 물체에 의해 상처를 입으면 위험할 수 있는데, 암 환자는 어떻겠는가.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걱정이네.’
최선을 다한 참이었지만, 강혁은 미간에 잡힌 주름을 풀지 못했다.
이 환자야말로 수술이 다가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간호사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확실히 한구에서도 느낀 건데, 이 양반의 실력은 괴물이었다.
본인은 간단하다 생각한 모양이었으나 이만한 상처 치료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근데 순식간에 끝냈으니 어찌 보면 표정이 밝아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그때 누군가 구조 현장에서 소리를 질렀다.
초조한 얼굴이었는데, 얼핏 봐서는 하얗게 질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 있다!”
옆에 있던 이도 소리를 질렀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지금 이들이 제일 애타게 찾고 있던 이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럼 분명 좋은 일일 텐데 왜 저리 얼굴이 좋지 못할까.
강혁은 잠시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다른 환자 없냐, 뭐 이런 얼굴이었다.
“없어요, 지금은.”
“잠깐 갈게요.”
“네, 교수님.”
할 일이 끊겼다는 걸 확인한 강혁은 곧장 현장으로 가는 대신, 우선 천막부터 돌았다.
다른 놈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를 보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구조하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굳이 먼저 가 있어 봐야 방해만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강혁 정도 되는 피지컬의 소유자라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공산이 크긴 했으나 그래도 전문가가 괜히 있는 건 아니었다.
힘이 센 것과 효율적으로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어때?”
“아, 괜찮습니다.”
“너는?”
“쉬운 케이스는 아닌데…… 그래도 저희 팀이 실력이 좋은 편이라서요.”
해서 리처드와 마틴을 각각 찾아갔는데 둘 다 꽤 잘해 내고 있었다.
일단 마틴의 말대로 국경없는의사회 측 팀원들의 실력이 썩 좋았다.
‘하긴 당연한가?’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조직이긴 했다.
일종의 군대 조직처럼 꽤 엄하게 굴러가는 곳 아닌가.
모르긴 해도 여기 있는 이들 대부분 여기가 처음 겪는 현장은 아닐 터였다.
이보다 더한 곳도 가 본 적이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지금 이 병원처럼 위태로운 현장은 거의 없기는 하겠지만.
“오케이, 좋아. 그럼 나는 잠깐 저기 간다.”
“네? 위험합니다!”
“위험하긴, 다 가 있는데.”
“그, 그래도…… 또 붕괴 되면…….”
“저기서 뭐가 더 무너질 수 있는데.”
강혁은 이미 돌무더기 폐허가 되어 버린 외래 쪽을 가리켰다.
말 그대로 다 무너져 버려서 이제는 붕괴 위험은 없어 보였다.
퍽 긍정적인 감상이라 할 수 있었는데, 사실이라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그건…… 그래도 조심하세요.”
마틴은 그래도 노파심에 주의 주는 말을 남겼다.
강혁은 그 말을 대강 넘기곤 현장으로 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뒤에서 대기 중이던 정부 측 인원들까지 우르르 몰려가 있어서 무척 붐볐다.
“잠깐 지나갑시다.”
“어어, 내가 누군 줄 알고.”
“넌 내가 누군 줄 아냐?”
“아…….”
그 사이사이에는 나름 수도에서 방귀 깨나 뀌는 사람도 있었으나, 강혁의 눈빛을 받고도 자기 배경이 생각나는 인간은 없었다.
그렇게 강혁은 무인지경으로 만든 후 환자에 닿았다.
맨 끝에는 처음 강혁을 이곳으로 안내했던 인도 측 사람이 서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서였다.
‘이미 죽었나.’
강혁은 아직 환자를 보지 못했지만, 다른 이들의 얼굴은 실컷 본 참이었다.
죄다 우거지 죽상인 걸로 봐서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거 같았다.
‘열여섯 살이라고 했나.’
안타까운 일이란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젓고 있으려니, 그제야 인도 정부 측 사람이 강혁이 온 것을 확인했다.
“아, 그렇지 않아도 찾았습니다. 교수님.”
“음. 좀 어때요?”
“직접 보셔야 될 거 같습니다.”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구조용 헤드라이트를 강혁에게 건네며 자리를 비켜섰다.
그럼에도 강혁의 눈에 우선 들어온 것은, 기중기라도 동원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치울 방법이 없어 보이는 돌덩이뿐이었다.
“어디로 봤어요?”
해서 물으니, 상대가 역시나 어두운 얼굴로 손이나 겨우 들어갈 거 같은 구멍 하나를 가리켰다.
이 밑에 깔려 있는 모양이었다.
“음.”
강혁은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안에는 빛이 하나도 없어서 칠흑같이 어두웠으나 헤드라이트의 빛이 강해서 그런가. 안쪽을 확인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아이고.”
그렇게 환자를 확인한 강혁은 탄식부터 흘렸다.
철근에 배가 찢겼는지, 안쪽 장기가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피도 어찌나 많이 흘렸는지 주변에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살아 있기는 한데, 이대로 두었다가는 불과 1시간도 버티기 어려울 거 같았다.
그럼 1시간 안에 구조를 하면 되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미 소방관들과 폭파 전문가들이 가까이 와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자칫하면 그대로 돌덩이에 깔릴 수 있는 상황이라 섣불리 접근하기도 어렵다 했다.
강혁이 보기에도 그랬다.
“어쩌죠.”
“총리님한테 이걸 어찌 보여 드려.”
소방관들 및 고위 공직자들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천막 쪽을 힐끔거렸다.
강혁도 따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당장 오고 싶은데 신분 때문에 조심해야 해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표정만은 총리라기보다 아버지의 그것을 하고 있었다.
강혁은 그 얼굴을 기억한 채, 다시 환자를 돌아보았다.
명백히 죽어 가고 있었다.
그것도 꽤 빠르게.
‘흐음……. 어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