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972)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972화(972/1120)
972화 누와라엘리야에서는 (2)
부우웅.
샘과 최윤섭을 실은 앰뷸런스는 곧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애초에 병원이 꽤 고지대에 위치한 데다가 딱히 높은 건물이 없는 곳이다 보니 얼마 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태화 물산에서 건설 중인 호텔이 보였다.
한참 기초 공사하고 있을 땐 대체 저게 언제 지어질까 싶더니만 어느새 5층까지 올라가 있었다.
원래 한국 기업들이 일을 빨리하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으나, 스리랑카 정부에서 적극 협조하고 있는 것 또한 한 가지 이유였다.
게다가 수도 콜롬보 주변에 이미 태화 물산이 진출한 지 오래다 보니 각종 자재나 중장비 수급도 편했다.
“와……. 벌써 저렇게?”
“여긴 진짜 날마다 달라지네요.”
최윤섭과 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에 딱 붙어서 호텔 쪽을 바라보았다.
저기서 사고가 난 상황이라면 이런 식의 대화가 부적절할 수 있겠지만, 다행히도 아니었다.
호텔 건설이라는 건 설계도면대로 딱딱 맞춰서 지어야 하는 일 아닌가.
숙련 노동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었다.
물론 저기도 스리랑카 현지인들이 깨나 들어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다치거나 공정에 방해가 될 만한 곳에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나름 주변이랑 잘 어우러지게 짓는다더니…… 확실히 그러네.”
“그러니까요. 서울 갔을 때 봤던 것처럼 그냥 반짝반짝하게 지으면 어쩌나 했는데.”
덕분에 최윤섭도 샘도 호텔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본 구조야 당연히 철근 콘크리트이긴 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스리랑카 전통 가옥 느낌이 물씬 나는 느낌이었다.
일부 구조는 아예 목조로 대체해 버려서 더더욱 그랬는데, 그 때문에 이국적인 느낌이 진했다.
스리랑카에서 스리랑카 전통 가옥처럼 짓는데 왜 그런 느낌이 오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저 건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호텔이 근대 유럽풍의 건물임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우웅.
그렇게 구경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기사는 재빨리 차를 몰아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사람 다쳤다는데 의료진이란 사람들이 한가하네 뭐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게 이들 나름의 긴장을 푸는 방식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저기…… 저긴가 보네요.”
사고는 도로포장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참이었다.
그저 아스팔트만 까는 게 아니라, 도로 자체를 넓히는 공정까지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쉬운 공사는 아니었다.
여기가 평지이기는커녕 아예 산이지 않나.
원래 있던 도로도 산을 깎아 만든 도로인데 그걸 넓힌다는 건 결국, 더 많은 산을 깎아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꽤 몰려 있는데…….”
“멀리서 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까이 가 봐야 알겠어요.”
이제 백강혁 제자 다 된 지 오래인 샘은 적극적으로 현장을 살폈다.
원래 대사관에서 편하게 일하던 엘리트 직원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스스로는 그걸 자각도 못 했으니, 옆에 있던 최윤섭도 그저 샘이 늘 이런 곳에서만 일했던 이라 여기고 있었다.
“내릴까.”
“네.”
해서 아주 자연스레 현장 사람처럼 대하면서 현장에 다가갔다.
“여기 어떻게 좀!”
“저거…… 저거 어째.”
“아이고……. 일도 못 하는 양반이 저길 왜…….”
“또 술 먹고 간 거지?”
여느 현장과 마찬가지로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일반적인 현장과는 약간 분위기가 달랐다.
노동자들이 하나같이 한마디씩 보태고 있었는데, 말투가 어째 아주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최윤섭이나 샘에 대해서 그렇다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납득할 만할 터였다.
원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유대감이 남다른 법이라, 다른 이들에게는 배타적인 될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게 아무리 의료진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구해 준 직후라면 모를까, 이제 막 도착한 상황에서는 이유 없는 적대감에 시달릴 때도 있었다.
“어?”
최윤섭이야 딱히 그런 분위기에 휩쓸릴 만한 사람도 아니고 그럴 만한 짬밥도 아닌지라 별 신경 안 쓰고 앞으로만 내달렸다.
그렇게 달린 그의 눈에 우선 띈 것은 도로 넓힐 지점을 폭파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작은 산사태였다.
“아?”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그렇게 밀려 내려온 흙과 모래 그리고 나무 돌 등에 깔린 한 남자였다.
특이하게 백인이었는데, 당연히 최윤섭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샘은 달랐다.
“다니엘……?”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아니, 본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한동안 매일같이 봤던 얼굴이었다.
한때 강혁이 자기 방을 무슨 요원들 방처럼 꾸미고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칠판에 저 사람 얼굴이 붙어 있어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워낙에 얼굴이 상한 탓에 지금처럼 단박에 알아보지 못했을 터였다.
“아는 얼굴이야? 그럼 좋지 않은데. 친해?”
최윤섭은 단박에 달려들어 환자를 구조하는 대신 아는 체를 하는 샘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지금 당장 구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서였다.
‘태화 물산에서 중장비 보낸다고 했으니까 그때까지는 기다려야겠는데.’
장비가 와야 어떻게 할 수 있지 않겠나.
괴물 같은 제자 강혁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 냈을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다고 하기는 뭐해도 여기 있는 이들은 다 일반인들이었다.
“네? 그…….”
샘도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우선 최윤섭이 던진 질문에 답했다.
아니, 답을 하려 했는데 뭔가 좀 애매해서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친한 건 아니지.’
아는 얼굴이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친구보다는 원수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강혁은 저 사람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았다.
심지어 총 들고 온 다니엘을 차로 친 적도 있었다.
다치게 하고 살려 주긴 했지만, 하여간 죽일 기세였다.
‘더 괴롭힐 거라고 하기는 했는데……. 여기서 부려 먹고 있었구나.’
샘은 자신도 모르게 모래와 돌덩이 그리고 나무 밑에 깔린 채 신음하고 있는 다니엘에게 다가갔다.
샘이 가까이 가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통증 때문이었다.
덕분에 샘은 아주 가까이서 다니엘의 얼굴을 살필 수 있었는데, 사람 인상이 이렇게까지도 변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수척해진 정도가 아니라 얼굴에 품고 있었던 거만한 기운이 죄 사라져 있었다.
“친한가 본데? 너무 안타까워해. 그럼 술기에 방해될 텐데.”
최윤섭이야 원래 다니엘 얼굴을 모르니, 그저 샘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슬픈 얘긴데 외상 외과 의사로 오래 일하다 보면 사람 표정 읽어 내는 데 능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상실에 관한 표정이라면 도가 텄다.
워낙 많이 봐 와서 그랬다.
“아, 아닙니다. 괜찮아요.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
“그런 얼굴이 아닌데.”
“아뇨. 아는 사이일 뿐이에요. 이 사람…….”
“누군데?”
“다니엘 러셀입니다. 들으신 적 있으실 텐데.”
“다니엘 러셀……?”
해서 위로의 말과 함께, 힘들 거 같으면 뒤로 빠지라는 말을 하려 했는데 샘이 그러는 대신 어쩐지 익숙한 이름을 댔다.
어디서 들었더라.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중장비 소리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강혁에게 들었다.
“이게 그 새끼라고?”
“네? 아, 네. 그 새끼…… 맞죠.”
어찌나 개새끼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지 심지어 환자로 마주하고 있는데도 욕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과하단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보통 개새끼가 아니지 않나.
이 자식이 이곳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다른 곳에서의 도움의 손길을 어떻게 물렸는지 알게 되면 동정의 여지가 생길 수가 없었다.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관광…… 관광 다니는 거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동정심이 들려고 했다.
다시 보고, 두 번, 세 번 볼수록 완전 그지 꼴을 하고 있어서였다.
도저히 강혁에게 들었던 모습은 떠올릴 수가 없었다.
한때 이 지역의 왕이었다던데, 이렇게 비참한 몰골이 되었다고?
물론 아주 옛날, 그러니까 춘추 전국시대였다면 가능한 얘기긴 했다.
아무리 힘이 있었다 해도 아니, 힘이 있었던 만큼 그 힘을 잃게 되면 비참해지는 시대가 있지 않았나.
하지만 요새는 드물었다.
“백 교수님이 가진 거 다 뺏고, 소송까지 걸어서 출국 금지까지 시켰을걸요.”
“아……. 우리 강혁이가.”
“그리고 입에 풀칠이나 하게 해 주겠다고 여기 취직시켰을 거예요. 먹고 자는 돈 말고는 다 차압이긴 한데.”
“아……. 그래?”
우리 강혁이가 그랬구나.
무슨 사채업자도 아니고 차압까지 하고 있구나.
오한이 드는 느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고개를 돌려 보니 팔뚝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고 있었다.
‘하긴 옛날부터 적이라고 인식했으면 가차 없었지.’
거의 뭐 미친놈이 따로 없지 않았나.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주먹을 썼고 지금은 돈과 권력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니, 지금은 주먹도 쓸려면 쓸 놈이니 차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뭔가 더해졌다는 표현이 옳을 거 같았다.
“교수님, 잠깐 비켜 주십쇼!”
하릴없이 팔뚝에 난 소름을 쓸어내리고 있으려니, 어느새 도착한 중장비 기사가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우선 포클레인이 도착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저런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없었을 텐데, 지금은 나름 아스팔트 포장이 된 데다가 도로도 넓어졌기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밑에 사람 있으니까 조심해 주세요.”
최윤섭의 노파심 어린 말에 기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껄껄 웃었다.
“괜찮습니다. 종이도 안 찢을 자신 있어요.”
대한민국 중장비 기사가 무슨 야바위 해서 뽑는 게 아니지 않나.
그중에서도 여기까지 와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예 태화 물산의 에이스들이었다.
설계도에 만약 1m 1cm만 파 주세요라고 써 있으면 딱 그것만 한 방에 팔 수 있는 실력과 자신이 있다는 얘기였다.
팍.
기사는 곧 포클레인을 슬슬 움직여 다니엘 위에 쌓인 것들을 주변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최윤섭으로서는 포클레인이 삽이나 풀 줄 알았지, 이렇게 빗자루처럼 쓸어내리는 건 또 처음 보는 일이었다.
혹시 샘은 봤나 해서 고개를 돌려 보니 샘 또한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역시 한국 사람이 손기술이 좋아.”
“그런 거 같지?”
슥슥 소리가 몇 번 난다 싶더니만 어느새 흙이나 모래 그리고 작은 돌덩이들은 날아가 있었다.
그중 단 하나도 다니엘의 얼굴에는 떨어진 것이 없었는데, 거의 무슨 묘기라도 보는 듯했다.
‘포클레인계의 백강혁인가?’
아마 강혁이 포클레인에 진심이 된다면 당연히 더 잘하긴 하겠지만.
둘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만큼이나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마냥 입만 벌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위에 있던 돌들이 치워지면 치워질수록 환자의 부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그랬다.
“갈비뼈 다 부러졌겠네.”
“그러니까요. 숨은 어떻게 쉬고 있었지?”
“어……. 잘 못 쉬는 거 같은데? 거기 잠깐만!”
해서 최윤섭은 아직 다 치워지지 않은 잔해 틈새를 뚫고 다니엘에게 달려갔다.
칼을 쥐고서였다.
샘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백강혁이라면 이제 저기서 가타부타 말도 없이 칼로 목을 그을 터였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 이건가?’
상대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측은지심이 들었을 텐데, 다니엘이다 보니 쌤통인가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