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Center : Golden Hour RAW novel - Chapter (984)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984화(984/1120)
984화 더 크게 가 보자 (2)
“오셨어요?”
최윤섭이 씩씩대며 외래 진료소로 향하는 사이, 강혁은 수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경원이 주변에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먼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어, 잘 있었어?”
“네, 뭐.”
“사고 친 건 없지?”
누와라엘리야에 오고 나서 조금 신뢰 관계가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경원은 강혁이 일 인분 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생각하는 녀석 아닌가.
경원도 강혁이 자신을 괜히 남긴 게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전반에 걸쳐 신경을 쓰고 있던 참이었다.
그 덕에 피부 좋은 경원으로서는 실로 드물게 뾰루지가 나기는 했지만 하여간 보람은 있었다.
“네, 지금 이 환자 말고는 다 잘 회복되어 가고 있어요.”
“그래, 며칠만 눈을 떼도 여기는 이러네.”
“워낙 사람이 많잖아요. 주변에 뭐 도와줄 만한 병원도 없고.”
“그거야…….”
강혁은 현장은 다 이렇다는 걸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경원이 진중한 얼굴이 되어 다니엘의 팔에 마취제를 주입하고 있어서였다.
마취과 의사에게 이 단계는 어찌 보면 외과의에게 있어 절개 아니겠는가.
과장 조금 보태면 외과 수술의 완성은 결국, 절개에서 끝난다는 말도 있는 마당에 방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도도 개판이더라, 경원아.’
해서 강혁은 방금 하려 했던 말을 속으로 삭였다.
인도 의료를 떠올리면서였다.
사실 가서 직접 겪기 전까지는 인도 의료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더랬다.
아무리 그래도 인도는 중산층이 나름 1억 명이 넘는 나라이지 않나.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을 대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까지 듣고 있는 데다가, 영국의 식민지였다 보니 의료 체계도 영국의 그것을 채택하고 있었다.
물론 영국 의료도 중증 외상 시스템을 제외하고 보면 대한민국 의료에 비할 수 없으리만큼 낙후됐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꽤 괜찮은 수준이었다.
‘근데 거긴……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가 아니면 인구가 많아서 그런가…….’
어쩌면 둘 다 이유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뉴델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의사라곤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지역이 태반이었다.
직접 보기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게 되지는 못했을 텐지만 강혁은 이제 나름 명사 아닌가.
가는 곳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지천에 깔려 있었다.
이번엔 마틴이 그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뉴델리만큼이나 대도시인 뭄바이는 그 안에서조차 신분에 따라 죽을 때까지 변변한 의료 서비스 한번 못 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다 됐습니다.”
“어, 어.”
인도의 빈부격차에 따른 의료 서비스 접근 차이는 그저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털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여기 오면서 내내 머릿속에 떠올렸음에도 부족했다.
사실 스리랑카에 있으면서 왜 인도를 생각하나 싶겠지만 문제는 그게 결국, 스리랑카에서도 재현될 거라는 것이었다.
두 나라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근현대사에 있어 영국의 식민 통치는 비극적 결말을 예견하고 있었다.
영국이 식민 통치했던 곳 중 대부분의 곳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미얀마가 그렇고, 팔레스타인이 그렇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그렇고, 이곳 스리랑카도 그랬다.
‘아무튼, 이따 계속 정리하지.’
하지만 마취가 된 마당에 딴생각을 계속 이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다니엘이 그 망할 영국 놈이고, 또 영국 놈 중에서도 죽일 놈에 해당하는 놈이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메스를 쥔 이상 눈앞에 있는 놈은 환자여야만 했다.
강혁은 그렇게 배웠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아왔다.
“거기, 이름이 뭐지?”
“네? 아, 그냥 노예 1호, 2호라 불러 주시면 됩니다.”
해서 강혁은 짤막한 한숨과 함께 머릿속의 잡념을 지우고 오직 다니엘의 배 속 상황만 떠올렸다.
워낙에 머리가 좋은 데다가 해부학적인 지식도 뛰어났기에 아까 중환자실에서 잠깐 봤던 CT만으로 3d로 재구현할 수 있었다.
“아……. 그래?”
그 와중에 자기소개를 노예 1, 2호로 하고 있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참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양재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이렇게 된 셈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했다.
‘아니, 본부에 나 아는 애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런 게 그냥 인계되게 둔단 말야?’
이상한 새끼들 아닌가?
강혁은 자기가 맨날 제자들에게 슬레이브니 뭐니 했던 것은 까맣게 잊은 채, 이건 다 양재원과 본부에 있는 옛 제자 새끼들이 이상한 거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뭐. 1, 2호. 둘 중에 누가 제1 보조할래. 어차피 여기 있는 동안 지겹도록 수술할 수 있을 테니까 싸울 필요는 없어.”
“아, 그럼 제가.”
“네가 1호라?”
“네.”
“음, 그래.”
물론 강혁도 호칭을 굳이 고쳐 줄 생각은 없었다.
지들이 알아서 노예 짓 하겠다는데 왜 바꿔 준단 말인가.
그런다고 계약 위반인 것도 아니었다.
강혁은 그저 이들에게 수술만 가르쳐 주면 될 일이었다.
“어려운 수술이 될 거야. 원래 재수술이 어려우니까.”
“네.”
“우선 이거 따면 뭐가 나올지 생각하면서 당겨.”
“네, 주인님.”
“어……. 그래.”
아무리 그래도 주인님은 좀 선 넘은 거 아닌가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까 어차피 단기로 있을 거니 괜찮지 않나 싶기도 했다.
해서 그냥 주인님 호칭을 두고는 12번 블레이드로 다니엘의 배에 가로로 그어져 있는 절개 면에 있는 봉합사를 툭툭 끊어 나갔다.
애초에 재수술을 염두에 두고 해 둔 봉합사였기에 얼기설기 되어 있었다.
그 말은 곧 다시 뜯는 데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았단 얘기이기도 했다.
게다가 수술한 지 그리 오래된 게 아닌 데다가 애초에 가로는 살결이나 근육의 결과 수직 된 방향이다 보니 살도 거의 안 붙어 있었다.
투두두둑.
강혁이 봉합사를 뜯어내고 손으로 잡아 뜯자, 어설프게 이어져 있던 배의 절개 면이 후루룩 벌어져 버렸다.
보는 관점에 따라 끔찍할 수도 있는 광경이었으나 적어도 이 방 안에 있는 이들 중에는 그 누구도 놀라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외상 외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인데 눈앞에서 사람 배가 좀 갈라진다고 해서 놀라겠는가.
다만 아직 부상이 심하다 보니 장이 부어서 비죽 튀어나왔는데, 그건 좀 보기 싫은지 2호가 장갑 낀 속으로 안쪽으로 밀어 넣기는 했다.
“이거까지 다 걸어서 위로 당겨 봐. 안이 안 보이잖아.”
“아, 네.”
강혁은 그의 손에 리차드슨을 들려 준 채, 시야를 확 확보하게끔 만들었다.
그렇게 시야를 확보한 강혁은 우선 방광부터 살폈다.
‘오……. 이제 보니 아예 안에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놨었구나.’
방광 자체가 심각하게 다친 상황에서는 거기에 줄을 꼽아다 소변을 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과연 최윤섭이나 강성지가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을 허투루 보낸 건 아닌 모양이었다.
양측 요관을 잘라다 배 안에 임시로 주머니 형태의 플라스틱 풍선에 이어 놓았다.
그 안에 소변이 차기 전에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러니까 역류하는 일이 없도록 소변줄을 꼽았고.
그 덕에 방광은 망가진 채로 밑에 놓여 있었는데 나름 휴식을 취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워낙 심하게 망가진 상태이기에 딱히 휴식이란 말을 써먹기에도 애매하긴 했지만.
“아. 이렇게…… 음, 근데 이건 정말 임시방편인데.”
“나 올 때까지만 버티자고 해 놨을 거야.”
“아, 근데. 이게…….”
제1 보조를 맡고 있는 1호가 의문을 표했다.
강혁의 실력을 믿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처음 여기 왔던 이들에게 강혁의 실력에 대해 전해 듣기만 한 게 아니라 아예 영상까지 받아서 봤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건 현대 의학의 한계에 가까워 보였다.
장기가 망가졌는데, 그걸 어찌 다시 만들어 준단 말인가.
“흐음.”
한데 강혁은 죽은 아이 불알 만지듯 자꾸만 망가져 있는 방광을 뒤적거렸다.
아주 신중한 얼굴이었기에 뭐 하냐고 묻기도 어려웠다.
지금이야 보조의로 들어와 있지만 1, 2호 둘 다 집도의를 맡아도 되는 실력임에도 그랬다.
뭐라 말로 꼭 집어낼 수는 없는데, 확실히 강혁은 실마리를 잡아 가고 있는 듯했다.
“소변 자주 보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겠네.”
“네?”
“다행히 스핑터는 다 살았어.”
“그렇긴 한데…….”
스핑터(sphincter)란 괄약근 형태의 근육을 말하는 단어로써, 여기서는 방광에서 요도로 향하는 곳에 있는 근육을 뜻했다.
이게 살아 있지 않으면 환자는 계속해서 소변을 지려야만 했다.
물론 몇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삶의 질은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강혁은 그게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한 후, 손을 내밀었다.
“칼.”
“아, 네.”
같이 들어와 있던 간호 장교는 망설임 없이 칼을 건네주었다.
그 또한 장미에게 나름 수술을 읽어 내는 법에 대해 배우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강혁의 수술은 따라갈 수가 없어서였다.
오히려 이 사람이 이 타이밍에 왜 이걸 찾나 하는 고민이 없어서 더 빨랐다.
장미처럼 미리 준비하는 건 아니라서 장미에 비하면야 당연히 느리긴 했지만.
강혁은 이만하면 만족할 만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나도 정말 많이 착해졌다.’
원래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놀랍도록 쉽게 만족하는 편인 강혁은 후후 웃으면서 칼로 이미 엉망이 된 방광을 난도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어.”
“이게 대체.”
이번에는 강혁과 경원을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배를 여는 거야 늘상 보는 일이겠으나, 방광에 이런 식으로 칼질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서 그랬다.
그렇다고 말릴 생각이 들진 못했다.
강혁이 워낙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였다.
속으로는 잠시 이 다니엘이라는 놈이 개새끼라던데, 그래서 복수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둘이 전해 들은 강혁은 뭐가 되었건 진짜 의사였다.
진짜 의사는 적어도 사람 생명 가지고 장난치는 일은 없었다.
후두두둑.
잠시 후 강혁은 그렇게 잘라 낸 방광 조각을 수술대 위에 떨어뜨렸다.
양이 꽤 됐다.
딱 봐도 방광의 3분지 1은 잘려 나왔다.
대개는 엉망이 된 부위였는데 딱히 그렇게 보이지 않는 부위도 꽤 있었다.
“봉합사. 마이크로로.”
“아, 네.”
“이제부터는 중요해. 잘 봐. 지금 내가 자른 게 망가진 부위야. 그걸 딱 이으면 되게 자른 거야. 이건 사실 이해가 불가능할 텐데……. 사실 혈관만 잘 들어가고 있으면 대강 잘라도 살기는 사니까 나중에 쓸 일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어……. 네.”
1, 2호는 사실 강혁이 한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지 않나.
막 칼을 휘두르더니 그게 망가진 부위를 그저 잘라 내기만 한 게 아니라, 이를 것도 고려한 거라고?
“멍하니 있지 않아도 돼. 우리 병원…… 내가 하는 수술은 다 녹화하니까.”
강혁은 둘의 멍한 얼굴을 보다가 무영등을 가리켰다.
일반적인 무영등이 아니라 카메라가 달려 있는 녀석이었다.
무영등은 어차피 수술 부위에 빛을 비추기 위해 움직이는 물건이다 보니 여기에 렌즈가 있으면 그 어떤 기구보다 잘 수술을 녹화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거 보라고.”
강혁의 말에 둘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