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16
스피리도노바는 저 막대한 물량을 싣고 수평선을 넘는 배들을 보며,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
전쟁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 (4)
“이게 이번 정벌에 동원될 병력의 전부인가?”
“예, 전하. 헝가리, 브란덴부르크, 포메른, 작센, 보헤미아 등 각국에서 기독교 세계의 영광을 위하여 달려온 명예로운 기사들입니다.”
“…명예로운 기사라?”
내 눈에는 고기를 앞에 두고 헐떡이는 들개들밖에 안 보이는데.
그리 빈정대려다 말았다. 결국 카지미에시 자신 또한 탐욕에 굶주려 다시금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굶주린 개가 아니던가?
심지어는 그와 적대하던 튜튼 기사단이 지배하는 독일 기사단국이나 리보니아 기사단의 리보니아 연맹도 눈에 띄었다.
결국 눈앞에 거대한 적이 도래하여 전쟁을 멈췄다 하더라도, 오랜 원수의 지휘 아래 움직인다는 부끄러움도 없는지 그들 또한 얼굴에 물욕만이 가득했다.
“우선 지난 정벌 이후로 플레스코프 공국의 방비가 보다 탄탄해졌습니다. 고로 벨리를 지나 스트라야루사를 통해 노브고로드와 모스크바 대공국 서부 일대를 휩쓸려 합니다.”
“훌륭한 작전 요약일세. 모두들 더 묻고 싶은 바가 있소?”
카지미에시가 지도에 그어진 선과 화살표, 이런저런 기호를 내다보다 물으니 누구도 답하는 이가 없었다.
“일단, 지난 정벌 이후 달라진 루스 일대의 전략적 형세는 우리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잘 아오. 그러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우리의 지도를 따르시오.”
카지미에시가 말하자 몇몇 혈기왕성한 불만분자들 빼고는 빠르게 수긍한다. 카지미에시는 청중들의 반응을 살핀 뒤 말을 잇는다.
“또한 이 정벌의 목적은 다수가 아닌 소수 정예로, 적의 후방을 교란하며 적들의 힘을 갉아먹는 데 있소.
명예를 좇아 강한 적에게 죽음을 택함은 도리어 그리스도인들의 왕국에 패배를 가져오는 불명예가 될 테니 사탄을 도운 자는 반드시 지옥에서 불타리라, 아멘.”
“아멘.”
“그러면 숙지가 되었을 터이니 이제 출발하겠소. 미하우(Michal)! 깃발을 들어라!”
“예, 주군!”
마침 알맞은 때에 바람이 불어 일제히, 바람에 색색의 깃발들이 휘날린다.
각국의, 각 가문의, 각 종족의 깃발들이 깃대에 매달려서는 서로 뒤엉켜 날아다니니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알록달록한 괴물 같아 보이기도 한다.
저 괴물이, 이교도들에게는 레비아탄(Lewiatan, 성경 속 거대한 바다 괴물)처럼 두려운 존재가 되리라.
“진군하라!”
“우와아아아아아!”
이 기세 좋은 진군, 기분 좋은 성과.
“이 마을도 버려진 채 비어 있습니다, 전하!”
“물자는?”
“전부 남아 있습니다! 급히 도망친 듯합니다!”
“약탈하라!”
“우와아아아아!”
산책하듯 쉬운 정벌이었다. 어차피 루스는 넓고 요새들은 완공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선 방비보다야 빠른 대피와 피해 최소화가 낫다는 점을 총관부도 알고 있었기에 주요 거점들을 제외하면 방어는 내버린 상태였다.
“주군! 저기 루스인들의 상단입니다!”
“와아아아아! 돌격!”
“블린(блин, 젠장)! 습격이야! 습격이라고! 말 머리 돌려!”
“이교도의 백성이 도망칠 곳은 없다!”
거기에 원래 이 지역이 유럽과 루스 사이의 육상 교역로다 보니 상인들만 털어먹어도 이익이 쏠쏠했다.
”카지미에시! 저들이 이교도의 백성이라니? 루스인들이 아닌가? 기독교인들이라고!”
“이교도에게 세폐를 바치니 이교도를 살지게 하는 배교자가 아니겠소?”
“…뭐?”
기독교인들을 털어먹고 있다는 사소한 문제라면, 카지미에시의 참신한 교리 해석으로 모두 해결해 냈다.
“이교도를 향한 성전 아니었습니까? 어떻게 같은 기독교인들끼리 이런 야만적인 짓을!”
“저놈 바이에른인이라고 했나? 이 근방 사정은 잘 모르나 보군.”
소수의 반발이 있었으나 기독교인들끼리 잡아다 무슬림에게 노예로도 파는 것이 세상이다. 젊은 기사들의 치기 어린 발악에 다들 비웃음 정도만 남겼을 뿐 대오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죄가 문제라면 죄지어서 번 은화와 향신료를 팔아 면죄부를 사면 그만이다. 죄를 안 지으면 그냥 깨끗한 빈털터리지만, 죄를 짓고 면죄부를 사면 깨끗한 데다 호주머니도 든든해진다!
이 기적의 계산법에 군목조차도 혀를 내둘렀고, 귀족들은 눈이 돌아가서 루스인들을 약탈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잔챙이들만 털어야 하나! 고작 해 봐야 텅 빈 마을 몇 곳에 운수 나쁜 상인 약간을 털었을 뿐 아닌가?”
“폴란드 국왕 전하, 정말로 이 길이 맞는 것입니까? 저기에 더 큰 건물과 마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논의를 할 여유가 없소. 지금 몽골군과의 교전을 최소화하며 달리고 있지 않소? 우리는 후방 교란이 목적이니 규모 있는 전투를 벌여서는 안 되오.”
“하지만 저기에 병사들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거의 처음으로 보이는 타타르인이 아닙니까?”
“그건… 맞는 말이구려.”
카지미에시에게 따지고 드는 젊은 영주가 가리키는 건, 작은 언덕만큼 거대한 성채, 그리고 그 주위로 몰려 있는 마을들이다.
성곽이 둘러져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땅 좀 파 놓고 장난 같은 철책 좀 세워 놨을 뿐.
병사로 보이는 이들도 단 100여 명? 200여 명?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모를 불길함이 카지미에시에게 엄습한다.
“…그래도 진격은 자제하는 게 어떻겠소?”
“말도 안 되오! 저기 전리품과 적군이 있거늘, 도망침은 수치가 아니오?”
“옳소! 등 뒤의 상처는 전사의 수치라 하였다!”
“우와아아아아아!!”
카지미에시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사들 사이에서 술렁임과 흥분 어린 분위기로 무리가 들썩인다.
“우리가 여기서 이교도들을 베리라!“
“옳습니다! 제가 2군으로 서겠습니다!”
“나도 가겠다! 타타르인들과 한번 제대로 붙어 보겠어!”
어차피 이들 하나하나가 원정에 끼워 주는 대가로 카지미에시에게 이런저런 물자와 이권을 제공했으니 아무 이유 없이 명령으로 ‘정당한 요구’를 틀어막을 수는 없다.
“말 위에 오르라! 적들에게 돌격!”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상황처럼.
“머, 멈추시오! 젠장! 일단 남은 군세는 내가 이끈다!
저들 2군이 서쪽을 쳐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동안 1군이 우회하여 남쪽을 친다! 그렇게 포위한다면 저 성채 또한 쉬이 함락시킬 수 있다!”
“우와아아아아! 주님 만세!”
별수가 없다. 아무리 목놓아 외쳐도 저들은 뛰쳐나간 이상 멈추지 않으리라.
차라리 카지미에시는 마치 의도된 작전인 양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어 ‘1군’을 이끌고 적진을 크게 우회한다.
그래, 너무 불안증이 심했다. 좀 큰 마을 하나 친다고 별 일 있겠는가?
지난 정벌에는 지나친 신중론 때문에 미약한 방비를 갖춘 거점지들도 털어먹지 못했지만, 지금 저곳은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이 이어져 있으니 저기만 털어도 이문이 크게 남으리라.
곧장 말 위에 올라 카지미에시를 따르는 1군의 병력은 전체 병력의 약 4할에서 5할.
“타타르인들이 우리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지금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군에 합류한 이반 셰먀킨이 말을 카지미에시의 옆에 따라붙어 와서 묻는다. 카지미에시는 짜증을 담아 답한다.
“신경 쓰지 마라! 2군이 알아서 적들을 붙들고 철책을 부술 것이다! 우리는 우회에 집중한다!”
“전하, 하오나 저곳은 수도를 건설할 벽돌을 생산하는 곳입니다. 저들이 본토에서 데려온 중요 인력들도 자리한 듯한데 이리 방비가 허술하다니….”
“신경 쓰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너의 생각이고, 지금 저기를 봐라! 어디 방비가 제대로 된 모양이란 말이냐?”
이반 셰먀킨, 이 겁쟁이 같은 놈. 어차피 진격하게 됐는데 괜히 불안한 소리를 지껄이지 말란 말이다, 젠장.
저들이 잠시 소요를 일으키는 동안 빠르게 뒤를 찔러야 더 많은 노획물이 나올 터이다.
카지미에시는 답답함에 고개를 돌려 돌격을 감행하고 있을 2군을 가리킨다. 이반 셰먀킨 또한 말 위에서 고개를 훽 돌려 그의 손끝을 시선으로 좇는다.
“저길 봐라! 돌격이 이뤄지고….”
저기… 를… 보… 면?
“…맙소사.”
돌격하던 2군의 대오에는 번뜩이는 철갑들, 잘생긴 기사들과 준마들, 휘날리는 문장들이 있었는데….
“끄아아아악! 살려…!”
-두. 두. 두. 두. 두. 두.
“후, 후퇴하라! 말 머리를 돌려!”
* * *
“…분명 지난번까지만 해도 카지미에시 4세는 기관총 포대들을 피해 다니지 않았습니까?
대체 이번에는 왜 바보같이 병력을 거기에 직격으로 처박은 겁니까?”
“아마 방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소. 한탕 크게 땡겨 보려고 무리하다가 그만… 펑.”
“…고르바초프 동지?”
손으로 실감 나게 폭발음과 그 모습을 손으로 묘사하던 고르바초프는, 곧 회의의 엄중한 분위기를 깨닫고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고친다.
아니… 정말 왠지, 왠지는 모르겠지만 에드워즈는 저 인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불길하다는 말이다!
이상한 오한을 느끼며 에드워즈는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축하해야 하겠소. 총관부의 위엄이 곧 온 유럽에 널리 퍼질 터이니.”
권람은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본때를 보여 준 것이 아니겠느냐고 즐거워하지만, 에드워즈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왜… 적들이… 다 제 발에 걸려 넘어지지?
아니, 넘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허공에서 텀블링 세 번 하다 자빠져서 두개골 깨 먹는 꼴이 아닌가?
제일 걱정하던 주치인 울루스는 다루가치들이 전부 죽은 뒤 루스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게다가 이들이 하던 짓이란 게 거의 사보타주와 현지민에 대한 조세 약탈뿐인지라 행정에 큰 악영향도 없었다.
그 뒤로는 이반 셰먀킨. 루스 내에서 주치인 울루스의 세력을 일소하는 혁혁한 공과를 세워 주셨다.
사실 조선인 이반(李泮)이었나? 루스 통치를 도와주기 위해 조선에서 보낸 스파이였나?
사실 이반 셰먀킨의 계획 자체가 나빴다고는 말 못 하겠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일개 영주에게 다루가치가 모조리 죽었으니 총관의 권위도 실추되고 지배력도 떨어지겠는데… 저 인간이 다루가치들과 총관부 내의 알력 다툼을 제대로 알았을 리가.
게다가 카지미에시가 거나하게 헛발질을 날리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반 셰먀킨, 저 작자를 중심으로 루스의 각 영주들이 규합하여 반몽골 세력을 형성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일명 ‘기관총 사건’이 일어나자 갑자기 온 루스의 영주들이 겁에 질려 총관부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단순히 ‘우리 배불려 주는 좋은 나으리’인 줄 알았는데, 자기네들을 언제든 몰살할 수 있는 무력이 확인되었으니 그럴 만하다. 주치인 울루스 역시 순식간에 조용해진 건 덤이다.
사실 기관총이나 철조망이라는 무기는 철저히 국지적인 몇몇 지점의 방어에만 쓰일 수 있고, 기병들의 기동전이 이뤄지는 광활한 루스의 전장에서 제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사실은 루스인들과 주치인 울루스에게 잘 알려지지 않다.
당연하다. 직접 마주한 게 아니니까.
즉, 카지미에시는 알 거다.
* * *
“…전하?”
“괘, 괜찮다. 국경은 넘어왔고, 이미 우리는 안전하다. 게다가 약탈품도 충분히 챙겼고….”
횡설수설하는 카지미에시의 모습에서 이반 셰먀킨은 줄을 잘못 타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당장 문제는 그들이 안전하냐 안전하지 않냐 하는 것이 아니고, 약탈품을 잘 챙겼느냐 하는 것도 아니다.
“각지의 귀족들이 많이들 죽고 다쳤으니 어떻게 합니까?”
“….”
동유럽에서는 지배자 유목 민족들의 후손들답게 전투에는 언제나 몸소 나다니던 귀족들이 많았다. 그것도 지금처럼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는 전투, 명분상에서도 꿀리지 않는 전투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신성 로마 제국과 리보니아 연맹, 헝가리 등 다양한 나라의 영주들이 갑자기 죽어 버렸다.
물론 2군에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았으나, 선두에 있던 이들은 여지없이 찢겨 나갔으니….
저들이 이 원한을 그냥 넘길 리가 없다.
“망할….”
카지미에시는 멍하니, 그저 갈 길 없는 분노와 허망함을 허공으로 풀 낼 뿐이었다.
이거, 더는 시간 못 끈다.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나서 루스를 향한 전쟁을 시작하자고 여론이 들끓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귀족들은 유력 영주들이 죽어 자신들의 세력이 약화될까 두려워 왕에 대한 압박을 더더욱 가중시키리라.
“앞으로 두세 번은 더 탐색전을 펼쳐서 적들의 경제력을 깎아 놓아야 했는데… 그게 못내 아쉽군.”
카지미에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물론 카지미에시가 아무리 털어먹어 봤자 지방 상인과 영주들은 몰라도 총관부 입장에서는 생채기 수준의 피해일 것이지만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제 곧바로 전면전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전하.”
“…자네의 말이 맞네, 대공. 자네의 말이 맞아.”
길어야 앞으로 수개월 이내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선전 포고를 날려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되었으니 카지미에시의 기분이 좋을 리가.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곧 썩어 가는 어느 나무둥치에 걸터앉았다.
“그… 래도 말일세. 겁먹을 건 없네. 그 적들의 알 수 없는 총기가 공격에 좋든, 이동이 간편하든 했다면 벌써 말을 탄 타타르 기병대가 무수한 구리 탄을 날리면서 쏘다니지 않았겠나?”
그게 맞다. 그래도 역시 잔뼈가 굵은 지휘관답게 카지미에시는 빠르게 기관총의 특징을 파악해 냈다.
압도적인 우세의 방어를 이뤄 낸 무기, 그러나 공세에서 쓰이기는 부적합한 무기.
만일 기관총이 공격에도 유리했더라면 1차 대전에서의 그 숱한 ‘니가 와’식 참호전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결국 루스 지역을 넓게 쓸어버리면서 최대한 전면전을 피하고 기습과 약탈 중심으로 압박한다면….”
…그래도 답이 없기는 하다. 그냥 견제용이 아니라 타타르를 몰아내는 정복 전쟁이 되려면 결국 공성전을 진행하기는 해야 할 텐데. 그때마다 뭐 얼마나 막대한 손실이 일어나겠는가?
카지미에시에게는 다행히도 루스 쪽이 가진 기관총이 많은 것은 아니다. 약탈 중이던 그가 보기에도 모든 거점과 요새에 근대적인 무장이 설치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용병을 최대로 고용해야겠군. 약탈로 얻은 재화를 모조리 뿌려서라도.”
다만, 정확히 어느 요새에 얼마나 설치되었는지를 파악 못 하고 공격해 들어갔다가는 몰살당하기 십상이라는 게 문제지.
지금까지 번 재화를,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재화를 쏟아부어 용병들의 목숨값을 치러야 한다. 그들이 대신 목숨을 버려 가며 어디에 화력이 배치되어 있는지 조사할 수 있도록.
그렇게 겨우겨우 정보를 수집해야 싸워 볼 만할 테다.
카지미에시가 애써 쌓아 놓은 재부로 결국 흥청거리는 것이 제네바의 도시 귀족들, 이탈리아인들, 헝가리인들이 되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문제는 그렇게 싸워서 이길지를… 모르겠다.
카지미에시와 이반 셰먀킨의 한숨이 늘어 간다.
전쟁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 (5)
“주님께서 축복하실 전(全) 루스의 총관 전하, 부디 저희 성의의 표시를 받아 주십시오!”
“흠, 모피 300장? 고맙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모피를 수백 장이나 바쳤음에도 전혀 놀란 기색 없이 흥미롭다는 듯한 반응, 거기에 여유 있는 태도.
에드워즈의 모든 언행이 플레스코프의 공작과 포사드니크에게는 강자의 과시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플레스코프를 악마 같은 카지미에시와 리보니아 기사단의 손길로부터 지켜 주시니 저희는 모두 목숨을 빚졌습니다.
목숨보다 귀중한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과 구원뿐이오니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바는 모두 총관 전하의 은혜보다 보잘것없을 뿐입니다.”
에드워즈가 여전히 의문스러운 듯 갸웃거리자, 서로를 힐끔힐끔 바라보던 공작과 포사드니크는….
“총관 전하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갑자기 조선어로 외친다? 대체 어디서 배운 건가 싶었는데 인근의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인만 수백은 넘으니 충분히 수년 사이에 저 몇 마디 정도는 외울 수 있었으리라.